74주년 광복절, ‘세종시 배일(排日) 마을’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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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주년 광복절, ‘세종시 배일(排日) 마을’ 재조명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9.08.1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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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의병 진원지 유래, 기념비 없이 지명 안내판만 남아… 인근 뒤웅박고을 등으로 외부인 왕래 잦아
전동면 청송리 배일길 전경. 임진왜란기부터 자연지명으로 굳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74주년 광복절을 맞아 항일 정신이 깃든 ‘세종시 배일(排日) 마을’이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현재는 배일길이란 지명 안내판 외 이렇다할 기념적 요소는 없으나, 연기군 지명유래에 그 유래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15일 세종시 및 전동면사무소와 청송리 주민들에 따르면 배일마을은 전동면 청송리 3반 소재지다. 시민들에게 잘 알려진 청송산업단지를 지나 뒤웅박고을(한정식)과 청송 농촌체험휴양마을 진입 직전 입구 좌측에 자리잡고 있다. 

길가에는 450년 추정의 높이 14미터, 폭 1.4m 크기의 느티나무 보호수가 마을 지킴이와 같은 형세로 남아 있다. 시점상 임진왜란(1592년) 이전에 심어져 꿋꿋이 자라온 것으로 보인다.  

세종문화원이 발간한 연기군 지명유래 책에 담긴 배일마을 유래. (제공=세종시 및 전동면)
현재 배일과 연관된 기념비 모습. 

세종문화원이 발간한 연기군 지명유래 책을 보면, 배일 지명은 이곳에 살던 학자 권주(權柱)가 임진왜란기(1592년~) 의병 300명과 군량 450가마를 이끌고 금산 싸움에 나섰다고 전사하면서 비롯했다. 

그때부터 이곳 주민들은 일본을 배척한다는 의미에서 배일(排日)이란 이름을 붙였다. 배나무가 많은 골이라 해서 리곡(梨谷)이라고도 했는데, 현재 배나무 농가는 없다. 

이후 조선왕조 정조 시절(1776~1800년) 학자 권복이 일본을 멀리한다는 뜻을 담아 자신의 호를 이일(梨日)로 짓기도 했다. 

마을 곳곳에는 무궁화 꽃이 피어있어 이채롭다.

마을의 한 주민은 “지금도 안동 권씨 후손들이 이곳에 많이 산다”며 “역사적으로는 500년 이상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사연을 갖게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1910년 일제강점기 그후로는 소위 조선시대 벼슬을 지낸 참봉댁이 마을 주민들을 착취하곤 해서 배일 감정은 더욱 커졌다”고 “1950~1960년 대 어린 시절에는 이일동천비 등 기념비가 여러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나 어느덧 종적을 감췄다”고 덧붙였다. 

배일마을을 지나면, 뒤웅박과 농촌체험휴양마을 등 왕래가 잦은 명소가 자리잡고 있다. 

현재 이곳은 뒤웅박고을과 청송산업단지, 농촌체험휴양마을로 더 알려지면서, 세종시민 뿐만 아니라 인근 도시민들까지도 왕래가 잦다. 

윤형권 시의원은 "최근 노종용 의원과 함께 일본 전범기업 제품 구매 제한 조례 제정을 추진키로 했다"며 “그런 의미를 담아 배일길이란 지명 표지만만 남아 있는 이곳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도 고려해볼만 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실제 배일마을 아래쪽 입구에는 이일동천비가 있다고 전해오나 현재는 자취를 감춘 것으로 마을 사람들은 전한다. 마을 곳곳에 피어 있는 무궁화 꽃과 배일길이란 지명 안내판만이 배일과 애국애족 정신을 계승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공교롭게도 이날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선 무궁화축제가 열렸다. 

배일마을 곳곳에 피어있는 무궁화꽃. 
배일마을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느티나무. 450년 이상 이곳에서 자란 것으로 전해진다. 
74년 광복절을 맞아 시민사회에 공유되고 있는 메시지.
74년 광복절을 맞아 시민사회에 공유되고 있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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