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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장 - 부강 사람들의 흥망성쇠를 그대로 투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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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장 - 부강 사람들의 흥망성쇠를 그대로 투영하다
  • 김수현
  • 승인 2012.08.09 0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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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 좌판 사이에서 식사를 함께 하시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김정자 할머니(75세, 사진 맨왼쪽)는 3,40년 전만 해도 부강장이 지역에서 가장 번성했다고 아쉬워 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축소판

부강장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궤를 같이 했다.
항상 ‘자본의 속도’는 변화의 선두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며, 평균적인 ‘삶의 속도’를 앞질러 왔다.
자본의 집적,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부강 경제의 흥망성쇠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 맹아가 싹틀 무렵, 부강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교통 수단은 금강의 나루터였다.

구들기 나루와 부강 오(五)부자
부강리에는 서해로부터 들어오는 소금, 젓갈류, 해산물 등을 싣고 나르는 배의 종착점인 구들기 나루가 있었다. 부강 사람들은 구들기 나루를 아직도 舊장터(옛장터)라 부른다.
상인들은 충북 보은과 경북 상주, 강원도 남부 지역까지 소금과 해산물을 등짐에 지고 내다 팔았다. 부강장은 내륙과 해안을 잇는 중부 지역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한편 부강장의 번성은 부강리에 ‘부강 오(五)부자’ 집안을 흥하게 했다. 부강 오부자는 오대마을의 김씨네 만석꾼과 나주사댁, 부촌의 우씨네 천석꾼, 태산의 곽씨네 백석꾼과 김씨네 집안이다.
그러나 이들도 자본의 ‘속도’와 ‘변화’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제국주의 일본의 독점 자본이 들어오고,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조선의 병참기지화’를 위해 건설되었던 철로가 건설되면서 결정적으로 도태하게 되었다.

부강역과 시장의 이동
경부선 철로가 이 지역을 지나면서 1909년 부강역이 개통되었다. 당시 철로를 놓기 위해 부강리 남성골 마을에서 태산까지 연결되어 있던 산줄기를 깎았다. 마을 사람들은 산의 기(氣)를 끊게 되는 것을 염려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만석꾼 김씨네가 망한 이유가 철로로 인해 땅이 반으로 갈라졌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부강역의 건설로 인해 상권의 이동이 구들기 나루(구장터)에서 부강역 인근으로 옮겨지게 됐다. 신속하고 값싸게 운반하는 철도의 경쟁력을 이겨낼 수 없었던 것이다.

새로운 부강시장의 번성
불과 3,40년 전까지만 해도 부강시장은 전성기를 누렸다. 버스와 다리가 없고, 기차만 있는 조건에서 상인들은 직접 걸어서 모여들었다. 인근 내판, 강내, 강외, 현도, 금남, 남이, 조치원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지금의 면사무소 앞으로 우(牛)시장과 나무시장이 들어섰다. 우시장은 말이 우시장이지 사실상 가축시장이었다. 유랑극단과 씨름판도 성행했고, 먹거리뿐만 아니라 볼거리도 많아 장이 서면 사람들로 왁지지껄했다.
특히 당시에는 ‘부강약수’와 ‘부강수영장’이 유명하여 시장 활성화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부강약수는 대전역에서 임시 열차를 운행할 정도로 전국에서 유명했으며, 부강역에서 약수터까지 2km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 부강리 태산 경로당에 계신 곽창록 옹(74세)을 소개받았다. 부강장의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사회경제적 요인, 부강 경제의 전망에 이르기까지 자료를 토대로 분석적으로 말씀해주셨다. 참고하라고 주신 책과 자료가논문을 쓸 정도이다.

자본의 첨단화와 시장의 쇠락
자본의 첨단화와 교통통신의 발달은 전국적인 사통팔달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개방성은 ‘협소한 지역경제’에서 ‘경쟁적인 개방경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이것은 ‘식료품 위주’, ‘판매자 중심’의 시장에서 ‘다양성 위주’, ‘수요자 중심’ 시장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강시장은 이러한 자본 논리와 변화의 속도를 수용할 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다. 자본의 취약성과 유통의 지엽성, 경영의 전근대성으로 인해 자본의 전방위적 공격으로부터 무기력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세종시 출범, 재도약 기회로 삼아야
부강장은 5일, 10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러나 부강장을 가보면 사람사는 정겨움을 느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시장의 역동성을 체감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이것은 단지 부강시장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부강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강 장날에 대한 향수와 아울러 세종시 출범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구들나루의 관광자원화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부강역을 세종의 관문으로 브랜드화하여 역세권 개발을 하자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가 있었다.
세종시가 출범하였다. 세종시에 새롭게 편입된 부강 사람들에게 기회의 도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부강사람들 또한 ‘과거 안주’가 아닌 ‘미래 지향’으로 나아가고, 머리를 하나로 맞대는 지혜와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 선술집에서 약주를 드시는 할아버지들을 만나 부강장 얘기를 들었다. 특히 김상원 옹(85세, 사진 맨오른쪽)은 인간극장에 출연할 정도로 유명한 철물점 주인이다. 조치원, 금남, 부강, 신탄진, 청주 장이 열리면 철물을직접 지고 장에 나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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