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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제국주의의 광기, 그 희생자들이 남긴 역사의 증언[인터뷰] 사진작가 전재홍,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서 ‘제국의 제국’ 다큐 프로젝트 선보여
사진작가 전재홍 박사는 25일부터 30일(27일 휴관)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제6회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트벌'에서 자신이 진행해온 프로젝트 '제국의 제국'을 선보인다. 인터뷰는 세종시 부강면 '세종 홍판서댁'(옛 유계화 가옥)에서 차담으로 진행했다.

[세종포스트 이충건 기자]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일제강점기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여전히 우리 도시들 곳곳에는 일제의 잔재가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도시들을 답사하며 근대유산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 대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사진기자로 활약했던 전재홍(59) 작가다.

건축공학박사로 근대도시연구원 원장이기도 한 그는 은퇴 후 세종시에 정착, 본보에 <전재홍의 근대도시답사기 ‘쌀·米·Rice’>를 연재하기도 했다. 일제의 쌀 수탈 현장과 제국주의의 희생자들을 카메라에 담아온 다큐멘터리 작업의 결과물이었다.

전 박사는 기자 시절부터 사비를 털어 국내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 일본을 틈틈이 왕래하며 위안부, 강제징용자, 731부대・남경대학살・원폭 희생자 등을 기록했다. 그의 도큐먼트에 등장하는 많은 근대유산이나 사람들은 소멸했거나 작고했다. 그가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전 작가의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25일부터 30일(27일 휴관)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변화의 틈(Duration and Change)’을 주제로 열리는 <제6회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에서다.

‘제국의 제국’이란 이름의 오랜 다큐 작업의 결과물 25점은 ‘특별전 섹션 3 – 다큐, 그 무게감(3.1절 100주년 기념)’에서 관람할 수 있다. 전 작가는 별도의 개인 부스에서 한옥의 구조와 여백이 빚어내는 조형미를 미니멀리즘하게 재해석한 대형 작품 3점도 선보인다.

25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서 열리는 <제6회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변화의 틈'에 초대돼 관람객과 만난다. 그는 특별전 섹션 3 다큐, 그 무게감(3·1절 100주년 기념)에 모두 25점의 작품을 내보인다. 또 개인 부스에서는 우리나라 전통 한옥을 담은 대형 작품 3점 등 모두 28점을 선보인다.

충남 논산시 강경의 동양척식주식회사 강경주재소 건물. 전 작가가 촬영한 후 철거됐다. 역사의 흔적은 언제든 지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전 작가는 이때부터 일제의 수탈 현장을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전 작가의 프로젝트 ‘제국의 제국’은 우연에서 비롯했다. 1990년대 초반이었다.

충남 논산시 강경을 방문했다가 2층짜리 일식(日式) 건물을 촬영했다. 이후 강경을 다시 찾았는데 그 건물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주민들을 탐문 했더니 그 건물이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 강경주재소였다는 것이다. 전 작가는 “일제가 수탈 전초기지로 세웠던 건물이 소멸한 것을 보고 기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 일로부터 근대 건축물을 기록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사진의 특징이 기록성이자 사실성 인만큼 사진작가로서 소명의식을 느꼈던 듯하다.

이후 논산평야와 호남평야를 다니며 일제의 쌀 수탈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에 몰두했다. 일제강점기 기록사진도 수집했다. 일본인 지주가 세운 건축물, 주택, 쌀 창고 등을 수소문하며 당시 역사기록을 찾아내고 사진을 찍었다.

소록도 시체해부대를 앞에 두고 포즈를 취한 한센인 고 장기진 씨. 장 씨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단종(거세)을 당했고,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팔 다리를 모두 잃었다. 전 작가가 실질적으로 '제국의 제국' 프로젝트를 시작한 단초다.

근대도시에 머물던 그의 작업은 점점 범위가 커졌다. 남한 땅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소록도 신사를 찾아가면서다. 신사에 대한 기록을 뒤지고 사람들의 증언을 채집하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단종(斷種) 당한 한센인이 생존해 있다는 것이다.

고인이 된 장기진 씨. 전 작가가 만났을 때 그에게는 손도 발도 없었다. 남성을 상실한 그에게 남은 건 몸뚱이뿐이었다. 그에게 어떤 기구한 사연이 있는 걸까.

고(故) 장기진 씨는 일본군에 의해 군납용 벽돌과 가마니를 만들어야 했다. 발을 절단한 이유는 맨발로 흙을 다지면서 파상풍에 걸렸기 때문이다. 또 겨울철 손으로 짚에 물을 뿌리며 가마니를 만드느라 동상으로 손까지 잘라야 했다.

전 작가는 장기진 씨를 만나 나라 잃은 민초의 삶이 어떤 것인지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그의 작업이 공간과 건축에서 사람으로 확대된 까닭이다. 전 작가는 일제의 시체해부 만행이 이뤄진 현장에 장 씨를 세웠다.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제국의 제국’이란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대전 서구 월평동 임대주택에 살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화선 할머니의 생전 모습.
대전시 동구 천동 판잣촌에 살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오순 할머니.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거주하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문필기 할머니와 이옥선 할머니는 나눔의 집 지하 일본군 위안소를 재현한 공간에서 사진 촬영을 허락했다.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춘화마을에 살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박서운 할머니 생존 모습.

제국주의의 광기는 소녀들의 삶을 수도 없이 짓밟았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세상을 뜨기 전 역사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슴 속에서 끓어올랐다.

대전 서구 월평동 임대주택의 김화선 할머니, 동구 천동 판잣집의 김오순 할머니,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 문필기·이옥선 할머니를 촬영했다.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나눔의 집 지하에는 일본군 위안소를 재현한 공간이 있다. 문・이 할머니는 전 작가의 다큐 취지에 공감해 평생 치를 떨던 그 공간에서 기꺼이 모델이 돼주었다. 이들 중 이옥선 할머니는 지금도 주한일본대사관 앞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휴가 때가 되면 사전 답사계획에 따라 중국, 러시아, 일본으로 날아갔다. 중국 길림성 훈춘시의 ‘춘화’라는 마을에 살던 위안부 피해자 고 박서운 할머니도 생전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충북 영동 일본군 탄약저장소 동굴을 파는 강제노역에 동원됐던 고 김팔복 할아버지.
일본해군의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건설에 강제동원됐던 목수 이백년 씨.
제주도 송악산 어뢰정 기지 건설에 끌려갔던 문도기 씨 외 2명.

강제징용자들은 충북 영동에서 작업이 시작됐다. 현재 와인 저장소로 사용되는 동굴이 일본군 탄약저장소였던 것. 일제강점기 이 동굴을 파던 강제노동자 고 김팔복 씨가 역사의 증인으로 카메라에 담겼다.

제주도 일본해군의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거푸집을 만드는 일에 동원됐던 목수 이백년 씨, 제주도 송악산 어뢰정 기지 건설에 끌려갔던 문도기 씨 외 2명도 카메라 앞 역사의 현장에서 후대에 증언을 남겼다.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들은 한민족에 국한되지 않았다.

‘마루타’ 부대로 알려진 731부대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중국인 손전본 씨는 사람을 무더기로 죽이고 태운 그때 보일러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마루타' 부대로 알려진 731부대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중국인 손전본 씨는 일제가 패망하면서 사람들을 대량 학살하고 태운 보일러실 앞에서 역사를 증언했다.
중국 길림성의 김옥자 할머니는 731부대 만행의 희생자이면서 강제 이주의 피해자다.
남경대학살의 생존자인 중국인 예취평 씨는 총에 맞아 어깨가 함몰되고 총검에 찔려 큰 자상을 입었지만 생존했다. 예취평 씨는 중국정부가 세운 자신의 청동상과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남경대학살의 생존자인 중국인 강근복 씨는 30만 추모기념관에서 당시의 상황을 되돌아봤다.

당시 731부대에는 군인과 노동자, 생체실험대상자(마루타), 이 세 가지 부류의 인간이 있었다. 손 씨는 당시 지붕수리공으로 있다가 부식조달로 업무가 바뀌면서 부대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때 도주하지 않았다면 일제가 패망의 광기로 무참히 학살한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화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 길림성에서 탐문 끝에 찾아낸 김옥자 할머니는 731부대의 생화학전 피해자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시고 전 가족이 전염병에 걸린 것. 김 할머니는 일제가 만주로 강제 이주시킨 피해자이기도 하다.

남경대학살의 생존자인 중국인 예취평 씨와 강근복 씨는 자신을 모델로 빚은 청동상 앞에서, 그리고 중국 정부가 학살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30만 기념관에서 각각 역사의 증인이 돼주었다. 예 씨는 일본군의 총에 맞아 어깨가 함몰됐고, 총검에 머리 뒤쪽을 찔려 10여㎝의 자상을 입고도 살아남았다.

러시아 연해주 그라스키노시의 리삼수 씨. 스탈린 강제 이주정책의 피해자다.
히로시마 원폭 돔 앞에서 선 재일조선인피폭자협회 서히로시마지부 회원들.
전재홍 작가(사진 오른쪽)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 경남 합천 원폭피해자복지회관 사망자 위패 사진 작품을 디스플레이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러시아 연해주 그라스키노시의 리삼수 씨는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다가 되돌아온, 갈 곳 없고 의지할 데 없던 우리 민족의 가련한 삶을 보여줬다.

이밖에 이번 전시에서는 히로시마 원폭 돔 앞에서 촬영한 재일조선인피폭자협회 서히로시마지부 회원들, 경남 합천의 원폭피해자복지회관 사망자 위패 사진도 볼 수 있다. 합천 위패 사진은 높이 220㎝, 폭 600㎝의 대형 작품이다.

전재홍 작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난 희생자 분들 대부분은 현재 작고하신 상태”라며 “이번 전시가 일본 제국주의의 광기를 되돌아보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역사를 공유하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전재홍 작가는 최근 한옥의 구조와 여백이 빚어내는 조형미를 미니멀리즘하게 재해석한 사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충건 기자  yibi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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