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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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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이름
  • 문지은
  • 승인 2019.05.1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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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문학 단편소설] 문지은

“이미 회의는 시작했는데요. 그냥 슬쩍 들어가 보시지요.”
학생회를 담당하는 강 선생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평소 캐주얼을 즐겨 입던 강 선생은 오늘은 감색 수트를 입고 하얀 와이셔츠에 감색 줄무늬 넥타이까지 하고 있었다. 감색 줄무늬 넥타이는 학교 교복 넥타이 색깔과 같아서 마치 교복을 입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강 선생 말대로 이미 도서관에 꾸려진 회의실은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고, 의장석에 앉은 학생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얼마 전 학교 운영위원회의에서 학생들 의견도 듣고 반영해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어서 강 선생에게 학생회 회의에 운영위원들의 참관을 부탁해 놓은 터였다.
 
이미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회의실에 들어가려니 좀 미안했다. 뒷문으로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들어가서 준비되어 있는 좌석에 앉았다. 교장 선생님과 다른 운영위원들은 미리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과 다른 운영위원들에게 살짝 목례를 하고 학생회의에 집중했다. 학교 교실이 부족해서 따로 학생회의실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도서관이 임시회의 장소가 되어 있었다. 평소 도서관 열람석으로 이용되던 테이블을 모두 붙여 큰 사각형 테이블을 만들고 중앙에 의장으로 보이는 학생과 노트북으로 기록하는 서기가 앉아있었으며, 나머지 3면엔 서른 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두 교복을 단정히 입고 빼곡하게 앉아있었다. 명패까지 마련된 회의실에 있는 학생들이 제법 의젓해 보였다.
 
축제에 대한 안건을 토의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한동안 축제 날짜를 언제로 잡을 것인가에 대하여 여러 학생이 의견을 내었고, 모든 의견을 종합해서 학교 일정과 선생님들 일정까지 고려해서 꽤 합리적으로 날짜를 정하고 있었다. 날짜를 정하고 난 후 주제는 프로그램을 무엇으로 할지를 정하는 일이었다. 장기자랑, 연극제, 합창제, 운동경기를 하자는 의견들이 나왔는데, 결국 장기자랑으로 결정이 났다. 무엇보다도 의장 역할을 맡은 학생의 회의 진행 솜씨가 돋보였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 김수현을 닮은 햐얀 피부에 짙은 눈썹, 무엇보다도 강 선생보다 큰 키에 단정하게 입은 교복과 넥타이가 썩 잘 어울리는 멋진 남학생이었다. 그 학생을 보자 기억의 빙산 깊은 곳에 숨어 있던 한 이름이 떠올랐다.

박진수

가만있자… 중학교 때 학생회장 이름이 박진수였던가?

요 근래 학창시절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학교는 이미 아이가 다니는 공간에 불과했다. 내가 학교에 다녔다는 사실조차 가물가물했다. 대학 시절을 기억에 떠올려본 적이 언제였던가? 그런데 내 기억은 타임머신을 탄 듯, 중학교 때 학생회 장소로 갑자기 순간이동을 하였다.

전교학생회를 들어가게 된 것은 정말 우연한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반장은커녕 학급 임원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그보다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임원을 맡으면 어머니께 부담을 드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철이 일찍 들었었는지도 모르겠다. 중학교에 올라와서 반 편성 고사라는 것을 보았는데, 우연히 반에서 가장 성적이 좋았다. 학기 초라 서로에 대해 잘 모르니 그냥 1등 한 학생이 반장을 하라며 담임 선생님께서 지명하셔서 싫다고 해보지도 못하고 반장이 되었다. 내가 반장이 되었어도 매일 남의 집에 일을 나가시던 어머니는 한 번도 학교에 찾아오지 않았고, 학기 초에 있는 환경미화에 필요한 커튼이나, 화분을 준비해 달라는 말을 차마 집에 전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목소리도 작아서 수업시간마다 들어오는 선생님께 차렷, 경례라는 말을 하는 것도 어찌나 민망했던지, 그보다 더 난감한 일은 매주 금요일 오후에 학생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전교학생회에서는 각 반에서 학급회를 거쳐서 모아진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지만, 나는 학급회를 제대로 진행해본 적이 없었다. 어느새 우리 반에서 나는 왕따를 당하는 반장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권위를 실어주지 않으니, 아이들도 역시 나를 무시했다.

당시 학생회장은 키가 크고 잘 생긴 남학생이었는데, 학생회를 운영할 때는 거의 모든 구성원에게 발언권을 주려고 했다.
“이번 안건에 대한 각 학년의 의견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앞줄에 앉은 안경 쓴 1학년 대의원님 의견 없으십니까?”
이렇게 콕 집어 지명하는 데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저 그렇게 특별한 건의사항은 없는데요.”
지명받을 때마다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개지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이렇게 대답하곤 했었다. 그리고 회의 때마다 웬만하면 구석진 자리에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앉아서 회장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회장이 말을 시킬 때마다 얼굴이 빨개졌던 것은 그가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학생이었다는 사실도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운동도 잘해서 점심시간이면 늘 축구를 하곤 했던 그를 따르는 여학생들이 많았다. 공부도 잘했고, 키도 컸으며 함께 공을 차는 운동 잘하는 학생들처럼 시커멓거나 우락부락하게 생기지도 않았다. 당시 운동을 잘하던 아이들은 대부분 공부를 못하고 담배를 피우거나 싸움을 잘하던 그런 친구들이었다. 그러니 라붐의 소피 마르소 남자친구로 나왔던 마튜를 닮은 그가 다른 친구들에게 작전을 지시하면서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그렇게 멋질 수 없었다. 특히 한참 더운 여름에 축구를 마치고 세수를 하느라 살짝 젖은 머리는 눈부시게 매력적이었다.

원래 내성적이었던 나는 중학교에 들어와서 반장을 맡게 되면서 더욱 자신감이 없어졌다. 반에서 왕따를 당하는 반장이라니,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점심시간에도 늘 밥을 혼자 먹었던 난 운동장에서 큰 소리로 그를 응원하는 여학생 무리에 끼지 못하고 교실 창문을 통해서 슬쩍 그의 모습을 훔쳐보는 팬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시 유행했던 순정만화 캔디의 남자주인공 중 하나인 스테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전교 1등을 하는 수재인 그에게 썩 잘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중학교에 들어올 때 이모가 입학선물로 소니 워크맨이라는 당시 유행하던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 주었는데, 그 워크맨만이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밥을 먹을 때도 쉬는 시간에도, 등하교시간에도, 수업시간을 제외하고 나는 늘 이어폰을 꽂고 다니며 라디오 방송을 듣거나 좋아하는 곡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듣곤 했었다. 당시 유행하던 디스코 댄스 음악은 좋아하지 않았고, 감성적인 가사를 가진 가요를 즐겨 들었다. 대학가요제 가요나, 이문세, 전영록, 그리고 특히 당시 인기그룹 중 하나였던 해바라기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아마 그들의 곡이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사춘기에 막 접어들고 있는 열다섯 소녀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신비로운 것이었다. 특히 좋아했던 노래는 “사랑은 받는 것이 아나라면서”라는 서정적인 노래였다. 늘 엄마가 일을 나가시고 집에 혼자 있었기 때문에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었다. 나에게 가요의 가사는 교과서였고, 참고서였으며, 두근거리는 알 수 없는 감정을 해석하는 해설서였다. 그리고 가요를 통해 사랑을 배웠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니, 학생회장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사랑이라 믿었다.

2학기가 되어도 나는 계속 혼자였고, 학생회에서 의견을 내지 못하는 반장이었다. 그 당시 학생회의 주요 안건도 오늘처럼 일 년에 몇 안 되는 학교행사 프로그램을 정하는 일이었다. 근 날의 주제도 가을 소풍 장소와 프로그램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장소는 학교에서 매년 가던 전등사로 정해졌으며, 반 대항 장기자랑을 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럼 반장은 각 반의 장기자랑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하나씩 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그 날 회의도 결론이 났다.
우리 반에선 아무도 신청하지 않았다. 노래를 잘 부르거나 댄스를 잘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반장이 학생회에서 들고 온 프로그램에 참여해 주고 싶지는 않은 눈치였다. 오히려 자기들끼리 소풍 빨리 끝내고 신나게 롤러스케이트장이나 가자는 의논을 하며 아무도 나에겐 함께 가자고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명단에 내 이름을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안 내보낼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나름 노래를 좋아하니, 늘 따라 부르던 그 노래는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내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학생회장 앞에서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을 수도.

소풍은 반장에게 달갑지 않은 부담을 많이 지웠다. 선생님의 도시락도 싸 가야 했고, 다른 반 반장 엄마는 학생들 간식까지 보내주었다. 그렇지만 나는 담임 선생님께 내놓을 것이 아침에 서둘러 내가 손수 싼 유부초밥 정도였다. 선생님께 드렸더니 받지 않으셨다. 나는 점심시간에도 역시 음악을 들으며 구석진 자리에서 내가 싸 온 김밥과 유부초밥만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그때 학교에서 불량학생으로 소문 난 남학생이 이어폰을 확 빼면서 자기 귀에 댔다. 난 그때도 내가 부를 해바라기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이어폰을 빼앗긴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주위를 둘러봐서 아이들이나 선생님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워크맨을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워크맨은 내 유일한 재산이었으니까.

“난 또 소풍까지 와서 영어 공부하는 줄 알았네. 아무튼 공부 잘하는 애들은 놀러 와서도 티를 낸다니까. 야 이거나 한번 먹어봐. 요 옆 감나무에 많이 달려 있더라.”
그는 반쯤 투명해진 홍시 하나를 도시락 뚜껑에 휙 던져놓고 저만치 뛰어갔다. 나는 워크맨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말랑거리는 감을 그냥 가져가다가는 가방 속을 버릴 것 같아서 한 입 베어 물었다. 떫은맛이 나며 목이 메었다. 나는 급하게 물을 마시고 빈 도시락에 그냥 감을 담았다. 먹는 것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장기자랑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고 긴장은 더욱 심해졌다. 그냥 우리 반에서 아무도 안 나가더라도 신청서에 내 이름은 쓰지 말걸. 후회가 들었다. 다른 반 아이들은 단체로 나가는지 함께 댄스를 연습하거나 함께 노래를 연습하고 있었다. 멋진 무대의상을 준비해 온 친구들까지 있었다.

점심 식사 후 노란 은행나무로 둘러싸인 공터에서 장기자랑을 시작했다. 학생회장은 어디선가 마이크를 준비했고, 마이크를 통해서 4비트의 빠른 고고댄스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신나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로 고요하던 산사 옆은 시끌벅적해졌다. 모두 흥에 겨운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고른 발라드곡은 이런 소풍 장기자랑엔 어울리지 않는 곡이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언젠가 당신이 말했었지. 혼자 남았다고 느껴질 때… 음정이 불안했지만 용기를 내어 노래를 시작했다. 마이크를 대고 불렀지만 앞줄에 앉은 몇몇 아이들한테 밖에 안 들릴 정도로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였으리라. 아이들의 야유소리가 커졌고, 나는 중간에 가사를 잊어버렸다.

그 당시의 나로서는 거기까지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이 기적에 가까웠다. 노래방 기계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고 반주도 없어서 나는 마이크를 들고 멀뚱멀뚱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굴은 불타는 고구마처럼 열이 나면서 빨갛게 달아올랐고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했다. 그때 학생회장이 옆으로 왔다. 나는 눈가에 눈물까지 한 방울 맺혔고, 이만 그에게 마이크를 주고 도망치려 했다. 그런데 학생회장이 나에게 윙크를 하며 그다음 노래를 이어서 불러주었다.
-단 한 번 스쳐 간 얼굴이지만 내 마음 흔들리는 갈대처럼…
나는 얼굴이 더 빨개졌다. 갑자기 남녀공학에서 남학생과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다니, 정말 놀랍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길게 휘파람을 부르는 남학생도 있었다.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지만 기적처럼 다음 가사가 생각이 났다.
-정녕 난 잊지 않으리. 순간에서 영원까지, 언제나 간직하리다. 아름다운 그대 모습.
아이들이 우레와 같이 크게 박수를 쳤다. 내 평생에 이렇게 큰 박수를 받은 것은 처음이리라. 그리고 그것은 아마 나에게 쳐 준 것이 아니라 학생회장에게 보내는 박수였을 것이다.

소풍이 끝나자 나는 더 심하게 왕따를 당했다. 학생회장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였다. 학생회장에게 꼬리를 치고 다녔다고 축구를 할 때마다 그에게 응원을 보내던 무리는 대놓고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나는 학생회장과 함께 노래를 부르던 장면을 생각할 때면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또는 유난히 그 전등사 근처에 많았던 노란 은행잎을 볼 때마다 그와 함께 노래를 부르던 장면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 후에도 학생회장은 나에게 특별히 말을 걸거나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매주 학생회에서 그를 만났지만 그는 노래를 함께 부른 것도 잊은 듯해 보였다. 그는 여전히 회의를 주도하는 회장이었고 나는 말을 한마디도 못 하는 학생회 구성원일 뿐이었다.

어느 하굣길이었다. 나는 30분쯤 지나는 외진 길을 따라서 집으로 걸어가곤 했는데, 왼쪽은 산이었고, 오른쪽은 차가 많이 다니는 대로였다. 버스로 두 정거장쯤 가는 길이었지만 난 늘 버스비도 아끼고 음악도 들을 겸 해서 걸어 다녔다. 한참 음악을 들으며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나를 특히 괴롭히던 여학생과 다른 남학생들이 사복으로 갈아입고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가고 있었다.
“저기 문지은이네. 학생회장한테 꼬리나 치며 다니는 년.”
껌을 씹으면서 그 아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나는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대꾸했다.
“아휴 반에다 화분 하나 못해놓는 반장 주제에 워크맨은 듣고 다니네. 그거 내놔. 우리가 듣게. 반장은 이런 거 양보해야 하는 거 아냐?”
그 아이는 거칠게 내 가방을 낚아챘다.
“야! 그만둬!”
그때 뒤에 있던 한 남학생이 소리쳤다.
“왜 가만있는 애를 가지고 그래. 너 갈 길이나 가셔.”
키가 그 여자아이 머리 하나만큼 더 큰 아이였다. 올려다보니 소풍 때 나에게 감을 던져주고 간 아이였다.
“야, 무슨 상관이야. 공부 쫌 하는 거 가지고 반장하는 것도 재수 없고, 반장이면 반장답게 가끔 더울 때 아이스크림도 돌리고 그래야지. 다른 반은 반장 엄마가 그런 것도 사오고 그러는데 일 년 동안 반장을 하면서 그런 거 하나 없잖아. 꼴에 워크맨이나 듣고 다니고. 쟤네 엄마 뭐 하는지 알아? 나연이네 집 파출부래. 그러고 보니, 나연이가 얼마 전에 워크맨 잃어버렸다던데, 그거 너네 엄마가 훔쳐간 거 아니야?”
“쟤 학기 초부터 맨날 음악 듣고 다녔는데 무슨 소리야? 증거도 없는 일로 그렇게 친구 모함하는 거 아니지. 공부 못하는 게 무슨 벼슬이니? 에이 재수 없어. 야.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 저딴 년 상대하지 말고 그냥 가.”
그는 내 가방을 들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가방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거의 뛰듯 그를 쫒아 갔고 뒤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위원장님 인사말 한 말씀 해 주시지요,”
회장을 맡고 있는 그 학생의 말에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 기억 속을 헤매고 있는 사이 어느덧 회의는 끝나 있었다.
“회의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학생회 임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학교 축제를 자율적으로 기획하는 여러분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모쪼록 운영위원회에 요청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동아리 예산을 좀 더 지원해 주십시오.”
“편한 교복을 입게 해 주세요.”
“수학여행은 제주도로 가고 싶어요.”
아이들은 몇 가지 요구사항을 말했고, 나는 최대한 교장 선생님과 의논해서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들어주겠노라고 대답하고 회의가 끝나자 다른 운영위원들과 함께 교장실로 향했다. 다과로 홍시가 작은 찻숟가락과 함께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한 숟가락 떠먹어보았다. 달았고 떫은맛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박진수

그 떫은 감을 주었던 아이 이름이 박진수였다는 사실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 날 집에까지 가방을 들어주고 아무 말 없이 집에 갔었던 그 아이. 그다음 날부터는 나에게 말을 거는 아이들은 역시 없었지만 대놓고 괴롭히는 아이도 없어서 조용히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간간이 학교에서 그 남학생과 지나쳤지만, 그런 불량 학생과 엮이는 게 싫어서 일부러 피해 다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내에서 큰 패싸움이 있었고, 주동자였던 그 아이는 퇴학을 당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첫사랑 학생회장의 이름을 기억해 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보았지만 내 기억 속 어느 곳에도 그 이름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아까 교장실에서 먹었던 단 홍시의 맛에서 30년 전에 그 떫은맛이 느껴졌다.

첫 키스의 느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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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은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와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창작공동체 ‘이도의 날개’ 홍보이사, 세종교육문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며, 세종시 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시동인지 ‘하이디하우스’ 회원으로, ‘백수문학’에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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