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가 이상한가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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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제가 이상한가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 김우현
  • 승인 2019.04.2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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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병원재단 건강칼럼] 유성선병원 김우현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유성선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우현 과장

처음 진료실을 방문하는 분들이 마지막에 꼭 던지는 질문이다. “선생님, 저 정상인 거죠? 제가 크게 이상한가요?”

많이 받는 질문이지만 사실 그만큼 난감한 질문도 없다. 대체 정상의 기준이 무엇이길래 처음 본 사람을 감히 그 자리에서 정상, 비정상으로 나눌 수 있단 말인가.

정신과학에선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주관적인 증상을 듣고 최대한 객관적인 방식으로 정의해야 한다. 그러나 질환에 대한 진단 기준을 숫자로 표현할 수는 없다. 주관적인 증상을 객관적으로 진단하는 방식에 대한 전문가들의 약속이 정신과학만의 진단 기준이다.

정신과학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진단 기준은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으로, 최근에 5판이 나왔다.

이 진단 기준이란 것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면, 4판에서 5판으로 개정되면서 자신이 잘못된 성(性)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성 정체성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의 명칭을 자신의 성에 대해 감정적 불쾌함을 느낀다는 뜻인 ‘성 혐오감’(gender dysphoria)으로 바꿨다.

같은 증상에 대해서 4판에서는 장애(disorder)라고 했는데 시간이 흘러 이제는 장애라는 말이 빠지고 개인의 불쾌감으로 기준이 바뀐 것이다. 장애가 비정상이라는 편견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 보니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더더욱 모호해진다.

최신 기준에 맞춰 최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그 판단을 과연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질문과 대답이 여러 번 오갔다고 환자의 증상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환자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음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 흔히 이뤄지는 대화다.

“당신에게 이러저러한 증상이 있어서 이런 종류의 정신질환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치료를 시작합시다.” “제가 왜요? 제가 기분이 좀 가라앉고 불안하고 더 예민해졌기는 한데 제가 그렇게 이상한가요? 약 먹을 정도는 아니잖아요.” “당신의 이러저러한 말들은 이런 증상에 해당하고, 이 질환에는 이 약이 가장 효과가 좋습니다. 그러니 복용을 시작하시죠.” “뭐 그러면 일단 한 번 받아가 볼게요.” “아니에요, 꾸준히 복용해야만 효과가 있습니다. 며칠 뒤에 다시 오세요.”

위의 사례에 해당하는 분들은 다음에 내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유형이다. 떨떠름하게 나가는 환자분의 뒷모습을 보며 진단 기준을 이렇게 잘 설명했는데도 치료를 안 받으면 어쩌나 걱정 반, 실망 반 하게 된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전공의(레지던트) 시절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약을 안 먹으려는 입원 환자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시더니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백날 약 효과가 어떻고, 진단이 어떻고 하면 그게 환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겠어? 뭐가 불편하냐고 물어봐야지.”

정신과학의 진단 기준 중 A 항목은 우울감, 불안, 환청 등 질환별 특징적인 증상을 포함하고 있다. A 항목은 치료 방향과 약물 선택을 좌우하므로 의사에게 중요한 항목이다. 그런데 모든 진단 기준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B 항목이 눈에 띈다. B 항목은 ‘증상이 사회적, 직업적, 기타 중요기능 영역에서 임상적으로 심각한 고통이나 장해를 일으킨다’고 명시되어 있다.

면담 중에 정말 중요한 항목은 B 항목이다. B 항목으로 접근할 땐 “최근에 일상생활이 어떠셨나요. 직장에서 일할 때나 가족, 친구들과 지낼 때 변화가 있습니까” 등을 묻게 된다. A 항목의 느낌이 마치 ‘당신은 비정상이니 빨리 치료를 받으세요’ 라면 B 항목은 ‘그동안 불편하셨죠? 그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게 도와 드리겠습니다’에 가깝다.

치료 과정에서 정신건강의학과와 다른 과의 가장 큰 차이는 병식(환자가 자신에게 병이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가령, 팔이 부러진 사람들은 당연히 바로 정형외과에 간다. 그러나 기분이 우울하다고 즉시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사람들은 드물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선 환자가 자신에게 병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의사의 진단을 인정하면 마치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 비정상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환자 본인도 질문을 ‘저 정상인가요?’에서 ‘제 일상이 진짜로 어려워졌나요?’로 바꾸면 자신의 문제를 더 일찍 인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더 빨리, 적극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을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은 분위기에서, 스스로 혹은 주변 사람의 권유로 진료실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아직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 일상에서 부정적인 변화가 느껴진다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정신건강의학과에 와 전문의와 함께 본인의 상황을 파악해 나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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