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이미지는 왜 뒤틀리고 왜곡되어 나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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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이미지는 왜 뒤틀리고 왜곡되어 나타날까?
  • 이충건
  • 승인 2019.03.12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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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 |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 이환 편역 | 돋을새김 펴냄]
이충건

코페르니쿠스, 다윈, 프로이트. 인류의 ‘나르시스’에 상처를 안겨준 세 명의 역사적 인물이다.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는 ‘태양중심설’을 제창했다. 그의 이론은 지구와 그곳에 사는 인간의 우주적 의미를 보잘 것 없는 차원으로 만들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그리고 인간이야말로 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존재라는 믿음을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하나의 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세의 우주관과 인간관, 세계관의 뿌리를 뒤흔들었다.

영국의 아마추어 자연학자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진화론을 발표하자 사람들은 ‘인간이 기껏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조롱했다. 원숭이는 원숭이를 낳고 코끼리는 코끼리를 낳는다고, 세계 어디에도 고양이가 개를 낳고, 민들레가 장미를 낳는 경우는 없다고 반박했다. 진화론은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는 기독교 전통은 물론 사람과 다른 모든 생물을 미물로 취급했던 인류의 보편적 사고체계를 ‘멘붕’ 상태에 빠뜨렸다.

“인간(자아)은 자기 집의 주인이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무의식’을 발견하면서 단언한 말이다. 우리 내면의 ‘자아’라는 단단하고 확고한 실체 대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폭로한 것이다. 인간의 정신을 이성의 산물로 믿어온, 그리고 세계를 과학과 합리성으로 인식하려 했던 당시까지의 서양철학을 단숨에 뒤집었다.

퇴폐와 향락. 프로이트가 활약하던 19세기 말 세계 지성의 중심도시였던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골목길은 매춘부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공권력은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성적 욕망에 대한 강력한 억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를 성에 대한 기억과 환상이 억압되어 신체적 징후로 바뀐 것으로 정의했다. 히스테리(hysteria)는 그리스어로 자궁을 뜻하는 ‘후스테라(hustera)’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노처녀 히스테리’란 말처럼 히스테리는 한 마디로 ‘성적 억압’에 의해 발생하는 신경증인 셈이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를 연구하면서 무의식적 환상, 갈등, 억압, 동일시, 전이 등의 개념을 발견했다. 여기에서 정신분석이 시작했다.

'꿈의 해석' | 지그문트 프로이트 지음 | 이환 편역 | 돋을새김 펴냄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발견을 선언한 것은 <꿈의 해석(Traumdeutung)>을 통해서다. 그는 무의식을 ‘의식이란 작은 세계를 품은 더 큰 세계’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무의식은 접근이 가능한 세계인가? 프로이트는 ‘꿈’이야말로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라고 했다. 그때까지 꿈은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자신이 지은 죄를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프로이트에 이르러 꿈은 ‘욕망의 충족’이다. 현실에서 욕망은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배출구가 바로 꿈이란 얘기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성적인(sexual), 그것도 근친상간 등 인간이 사회를 이루며 금기(taboo)시해온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꿈이 표현하는 기호들은 뒤틀리고 왜곡되어 나타난다. 욕망과 억압이 한 바탕 전쟁을 치른 결과다. 프로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검열이 있어서’다.

정신분석비평은 검열을 거쳐 나타난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의 기호들을 해석한다. 기호들의 연쇄는 결코 연대기적이지도 않고, 정작 중요한 지점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그 구멍이 바로 무의식이 솟아오르는 자리다. 그 구멍은 절대 메워질 수 없지만, 정신분석가나 정신분석비평가들은 기호의 연쇄들에서 그 심연에 숨어 있는 것을 끄집어내고 추론해낸다. 꿈의 해석이고, 무의식의 해석이다.

세종포스트이화독서클럽 회원들이 이충건 회원의 발제를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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