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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비상하려는 시선-즉 자유[유태희 사진전 후기] 김백겸(시인)
김백겸 시인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금강문화원 세종보 2층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유태희 사진전’에 다녀왔다.

일부 컬러사진이 있으나 대부분 흑백인 작품들은 이집트 벽화처럼 지나간 시간 한때, 삶의 죽음과 그 부활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삶이란 죽음의 창에 저항하는 방패’라는 명제를 떠 올리니 이미지를 장식으로 드러낸 사진 틀이 방패처럼 보였다. 작가의 기억을 이미지의 주문(呪文)처럼 드러낸 사진들은 공간의 한 부분을 혹은 시간의 한 편린을 잘라 보여주고 있었다.

작품 중 콘크리트 건축물의 곡면이 우주선처럼 휘어져 있기에 광각렌즈로 찍었느냐고 물었더니 유태희 작가는 모든 작품을 50㎜ 단 렌즈로 찍었단다. 사진 속 피사체는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한 부분이다. 사진의 곡면들은 마치 사진이란 지나간 시간의 기억을 구부려 현재에 닿게 하는 마법이라는 생각을 환기한다.

이미지(image)란 인간의 삶의 욕망이 외부세계에 투사한 상상이기에 ‘7정(情) 6욕(慾)’을 품고 있다.

작가의 내면에 간직한 환상의 한 자락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가 이 사진전에 던진 사진-이미지라는 열쇠(clue)를 통해 독자가 들여다보는 광경은 무엇인가. 사물 그 자체-존재가 한사코 드러내기를 거부하는 세계의 본질에 관한 비밀인가.
 
전시장의 첫 작품인 유태희 작가 부모님 사진이 인상에 남아 물어보니 부모님들이 70대에 스튜디오 조명으로 찍었다고 한다. 어머니를 60% 아버지를 40% 닮았다는 작가의 모습을 이분들에게서 찾아보니 인간은 시간을 여행하는 유전자의 숙주라는 도킨스의 이론이 떠오른다.

금강문화관 세종보 2층 갤러리에서 유태희 사진展 'try someone - 그대에게 말을 걸다'가 열리고 있다.

생명도-정확히는 DNA 정보도 시간의 방랑자이다. 35억 년 전에 시작해서 자신을 복제하는 욕망으로 가득 찬 이상한 정보체들. 죽음이라는 소멸에 저항해서 생식의 삶을 끝없이 창조해서 살아남고자 하는 정보체들. 그러기에 유전자의 표현형식의 하나인 인간의 정신도 자신을 끝없이 복제해서 시간의 부패를 견디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일까. 유태희 작가의 사진전도 기억의 복제를 통해 자신의 영원성을 드러내려는 시도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플라톤은 현실은 부패하지 않는 영원인 이데아(idea)의 복제이고 예술작품은 현실의 복제이기에 일회성의 시뮬라크르(simulacre)라고 생각했다. 예술이란 복제의 복제이기에 이데아(idea)의 농도가 흐려져 있기는 하나 모든 예술작품에는 이데아의 흔적이 남아있다. 플라톤의 이론으로는 우리 유니버스(universe)가 부분과 전체가 동일한 모양으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프랙탈 구조로 되어있듯이 모든 예술작품의 부분은 전체로서의 이데아의 한 부분을 프랙탈처럼 반복한다.

전체 속에는 전체와 부분의 관계, 부분과 부분의 관계, 나아가 관계와 관계의 관계라는 식으로 무한히 착종(錯綜)된 구성요소가 실재적으로 존재하기에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예술 장르와 그 작품들, 그 대상인 삼라만상의 만화방창(萬化方暢)은 작가 개인이 시야와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러기에 예술가 개인의 작품에는 마음이라는 렌즈를 통해 본 사물의 한 부분, 전체의 한 부분만이 드리워져 있다.

유태의 작가의 사진 중에서 금강 수목원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몸통을 감싼 겨울 나목(裸木)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구친 작품이 내 마음에 들었다. 인간의 생명과 의지가 자유로운 하늘을 향해 비상하려는 시선-즉 자유가 피사체에 드러나 있었다. 소멸하고 늙어가는 예술가가 그 의지와 상상만큼은 죽음을 거역하는 자세로 서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일까.

김백겸  webmaster@www.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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