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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차장 출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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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차장 출세기
  • 문지은
  • 승인 2019.03.0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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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문학 단편소설] 문지은

임차장은 오늘도 술이 거나해져 전기통닭 한 마리를 사 들고 집에 들어왔다.
“문 열어! 문. 이 아빠가 들어오셨는데 다들 자고 있는 게야?”
열두 시가 훨씬 넘었는데 자고 있는 두 딸을 깨우려 집안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동네 창피하게 왜 그래요? 아이 참... 옆집까지 들리겠네.”
아내는 눈을 살짝 흘기며 타박을 하고는 옷을 받아 걸었다.
“당신 조금만 기다려. 내가 곧 지점장 사모님을 만들어줄 테니.”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고성방가까지 하는 남편의 주사가 부끄러워 눈을 흘기고 타박하던 아내의 얼굴이 금방 환해졌다.
“당신 승진발령 받았어요?”
“아니, 아니. 그렇지만 곧 이 임차장이 곧 임지점장님이 되신다 이거지. 이지점장이 곧 인사과장으로 들어갈 터이니.” 임차장은 내민 가슴을 손으로 탁 치며 이렇게 말했다.
“아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거에요?”
“그렇지. 이제 곧 신호그룹 주거래은행을 우리 은행이 맡게 되신다 이거야. 게다가 그걸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 누구냐? 나, 이 임차장이다, 이거지.”
그러던 임차장은 옷을 벗자마자 씻지도 않고 이미 따뜻해진 이부자리에 푹 엎어져 잠이 들었고 이를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은 오랜만에 밝아진다.

지점장 사모님.
참 오랫동안 꿈꾸었던 자리였다.
언니 심부름으로 집 앞 은행에 갔을 때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친절하게 일을 처리해주던 임대리를 만났던 것이 벌써 십년이 넘었다. 특별히 호감 가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깔끔한 은행 사무실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게다가 통장에 슬쩍 메모지를 함께 내밀던 센스라니.

“나 5시에 퇴근하는데요, 앞 다방에서 차 한잔하시겠어요?”

이 메모 한 장에 연애가 시작되었고 곧 서른을 바라보는 미영과 임차장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서울 변두리 산동네에 그것도 은행 직원대출을 받아 어렵게 구한 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미영은 당시 선망의 대상이던 은행 대리의 부인이라는 자리가 싫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임차장에게 이제 학교에 다니는 세 명의 동생과 툭하면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편지를 쓰는 시어머니, 또한 임차장을 은행 금고로 여기는 형수가 있었다. 게다가 은행원 월급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나마 월급봉투가 그대로 집으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 김미영씨는 알뜰살뜰 살림을 했고, 은행 대출을 반 이상 껴서 조그만 집 한 칸을 마련했다. 결혼한 지 십 년 만에 집 대출을 거의 모두 갚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알뜰하게 살림하며 보낸 세월이 십 이년. 이제 허리띠 좀 풀고 살아도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은행 지점장 사모님이라니. 여고 동창생 중에 가장 미모가 뛰어났던 미영은 동창모임이 있을 때마다 위축되었다. 특히 늘 돈 자랑하던 수민이 때문에 특히 기분이 나빴다. 큰 아이가 같은 학년이었는데 피아노며 영어며 수영이며 안 가르치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미영이에게도 아이 어릴 때 예능 교육 안 시키면 큰일 난다는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후훗 수민이 기다려봐, 지깟 년이 그래 봐야 장사꾼 마누라지. 어디 사업하는 사람이 자기 돈 가지고 사업을 하려고. 은행 대출 다 막아버린다고 협박하면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수 있겠지. 돈 좀 있다고 어디다 유세야?'
아내는 설레어서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달그닥 달그닥 아침을 차리는 아내의 손길이 경쾌했다. 아침부터 북어 한 마리를 방망이로 탁탁 두드려 부드럽게 만든 북어는 가스렌지 위에서 구수한 북엇국으로 끓고 있었다. 임차장이 특히 좋아하는 간장에 조물조물 무친 찐 가지는 참기름 냄새가 고소했다. 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계란찜을 올려놓고 어제 남편이 사 온 전기통닭구이까지 쪽쪽 살을 발라 상에 올렸다.
“와 통닭이닷, 오늘 무슨 날이에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큰딸 은희는 환호성을 올리며 식탁에 앉았다. 이제 일학년인 둘째 은정이도 눈을 비비며 식탁으로 왔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해 봐요.”
아내는 식탁에 앉는 임차장에게 채근했다.
“그러니까 말이지 어제 지점장이 나를 은밀히 밖에서 보자 하더라고. 그래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가봤지. 근데 누가 함께 있는 거야. 근데 놀라지마 여보. 그 사내가 글쎄 신호그룹 사위라는 거야. 윤이사라고, 당신 알지? 얼마 전 떠들썩하게 신호그룹 둘째 딸이 결혼했잖아. 평민하고 결혼한다고 어찌나 언론에서 떠들어 댔는지 말이지. 남자 신데렐라라고. 그 윤이사가 떡하니 앉아 있는 거야. 게다가 지점장 집안 조카라더군. 그러니 지점장은 이제 출셋길이 열렸지. 얼마 전 윤이사를 행장한테 소개했다는군.”
“그래서요. 그럼 지점장님 승진하면 그 지점장 자리 당신 준대요? 어차피 다른 지점에서 승진해서 그 지점으로 새로운 지점장이 발령받지 않겠어요. 영등포지점같이 큰 지점 지점장 자리에 초임 발령 지점장이 가당키나 하겠어요?”
“이 사람이. 나를 뭘로 보고. 나도 다 역할을 하고 있다니까 그래.”

임차장은 만원 버스에 시달리면서도 비실비실 삐져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지점장이 되어 전용 기사가 딸린 차가 나오면 이런 만원 버스 신세도 그리워질 것 같았다.
‘어제 윤이사가 나한테 형님이라 했단 말이지. 어험 그럼 나도 재벌 사위 형님인 거야. 짜식 예의는 발라서 말이지. 재벌 사위는 아무나 하나. 그런데 녀석 찌질하긴, 아니 삼십억도 아니고 삼백억도 아니고 고작 삼억을 은행 대출을 쓰냐. 그 정도 돈이면 신호그룹에선 광고 하나 값도 안 되겠구만. 쯔쯧.’

어제 갑자기 이지점장이 밖에서 만나자고 할 때는 조금 의아했다. 아니 널찍한 지점장실 놔두고 어두운 다방이 웬 말인가? 그래도 뭔가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만나자고 할 테지 하고 이지점장이 만나자고 한 장소로 나갔다. 은행 가까이에 있는 허름한 빌딩 이층에 있는 다방이었다. 계란을 띄운 쌍화차가 맛있다며 이지점장이 즐겨 가는 곳이다. 실은 쌍화차 맛보다도 마담의 언변이 좋은 곳이었다. 이미 이지점장은 구석진 자리에 말쑥하게 빼입은 젊은 청년과 함께 앉아 있었다.
“인사하지. 내 조카뻘 되는 윤상묵이라 하네.”
“처음 뵙겠습니다. 윤상묵입니다.”
하면서 공손히 내미는 그의 명함에는 신호상사의 이사 직함이 찍혀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임기수라고 합니다. 젊은 분이 벌써 대기업 이사시라니 출세하셨습니다.”
임차장은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윤상묵이라는 사내를 자세히 쳐다봤다. 말쑥한 맞춤 감색 수트는 호리호리한 몸에 썩 잘 어울렸다. 프라다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명함 지갑이며, 금테 안경에도 조그맣게 구찌 로고가 박혀 있다. 한눈에 봐도 명품으로 휘감은 사내였다.

“아휴 이사가 다 뭔가. 얼마 전에 신호그룹 구회장님댁 둘째 따님하고 결혼한 친구라네. 이제 곧 사장이 되겠지. 그룹 전문 경영인으로 회장이 점찍어 놓았다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까지 한 친구지.”
“아 그러십니까? 결혼 축하드립니다.”
인사를 하면서도 뭔가 속에서 무언가 어두운 것이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명문대를 졸업했다는 놈들을 보면 느끼는 그런 기분이었다. 게다가 재벌 사위라니. 젊은 놈이 참 운도 좋다 싶었다.
“무엇보다도 신호그룹 주거래은행을 우리 은행으로 옮기기로 내 다 약속이 되어 있다네.”
“아니 신호그룹 주거래은행은 민국 은행 아닙니까?”
“그러게 말일세.” 이 지점장의 눈에선 우쭐대는 표정이 역력했다.
“내가 얼마 전에 행장 만나 뵙고 다 이야기해 놓았지.” 하며 너털웃음을 짓는 이지점장은 금방 특유의 비굴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근데 말이지. 좀 어려운 부탁을 하나 해야겠네.”
“무슨… 일이십니까?”
“그러니까 자네 이 서류에 싸인 하나 해 주게.”
이지점장이 내민 서류를 보니 신용대출 보증서류였다.
“다 내가 책임짐세. 그리고 이깟 보증서류 하나가 대순가? 뭐. 대 신호기업 사위께서 돈을 떼어먹겠는가? 결혼할 때 이런저런 비용이 좀 들어갔는데 아직 처가 집에 이야기를 못 한 모양이야. 어려울 때 다 돕고 살아야 되지 않겠어? 그래야 들어오는 것도 좀 있지.” 이지점장은 평소와는 좀 다르게 구구절절이 이유를 붙여댔다.

지방에서 상고를 나온 임차장에게 이지점장은 잊지 못할 학교 선배였다. 상고를 수석 졸업하고 한진은행에 들어온 것도 당시 대리로 있던 이지점장의 추천서가 큰 역할을 해 주었다. 게다가 서울에 처음 온 촌놈인 임기수에게 이지점장은 친형처럼 세심하게 살펴주었다. 그런 이지점장의 부탁인데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들어줘야 할 사이였다.

“어려울 때 도와주신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윤이사도 머리를 깍듯이 숙이며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곧 본부 인사과장으로 발령이 나게 되었네. 그럼 내 후임으로 자네를 추천하지. 내가 임차장을 얼마나 아끼는 줄 알지? ”
이지점장이 더 어려운 일을 부탁했다고 해도 임차장은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큰 기회까지. 임차장이 지점장에 승진발령을 받는다고 해도 영등포지점 같은 A급 점포에 발령을 받기 위해선 또 지방의 작은 지점에서 한 5~6년 열심히 실적을 내야 한다. 그런데 한 번에 파격 승진까지 약속하는 데에야 싸인 하나 못 해 줄 바 아니었다. 조금 찜찜하기는 했지만, 이지점장이 다 책임진다고 했으니 별로 걱정할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고 출신으로 지점장까지 초고속승진을 한 이지점장이 아닌가? 오히려 이럴 때 조그만 신세라도 지게 해야 나중에 큰소리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업무를 하는 중에도, 거래처를 만나는 중에도 임차장은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점에선 임차장 자리에서 옆을 보면 보이는 호화로운 지점장실을 한참 동안 바라보곤 했다.
지난 이십 년 세월 직장에 충성한 보람이 있었다. 그사이 지랄 맞은 상사한테 당한 설움이 얼마며 수신 몇억 유치하겠다고 거래처 문지방 닳도록 쫓아다닌 것이 얼마였던가. 이제 떡하니 신호그룹 주거래은행이 되고 나면 그동안 거래처의 돈 정도는 푼돈에 불과하리라. 게다가 이지점장이 본부에 들어가고 본인이 그 직속 라인이 되면 승진은 고속도로일 게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나도 뭐 이사 상무 못하란 법이 없지.’
상고 출신이라 은근히 명문대 출신 직원들에게 받았던 설움도 갚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며칠은 그렇게 구름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일상이 평범한 하루하루였지만 이지점장에게 언질 받은 것이 있는 임차장은 한 달 이내에 승진발령이 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가끔 조바심이 날 때면, 본부 인사과에 있는 입사 동기에게 귀동냥이라도 할까 해서 전화 수화기를 누르다가도 서울상대 출신이라고 본부 편한 부서만 돌면서 평소 어깨에 힘주던 모습이 떠올라 수화기를 그냥 내려놓고 말았다.

일주일쯤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이지점장은 거래처에 간다고 늘 출장이었고 여느 때보다 지루한 일상이었다. 가끔은 턱도 없는 담보물건을 가지고 대출해달라 사정사정하는 중소기업 사장도 있었고 콧구멍 같은 집 한 채 담보 잡히겠다고 들고 오는 아낙도 있었다.
“그냥 김대리가 처리하지 뭐 이런 것까지 나한테 가져오고 그러나.”
임차장은 그저 모든 일이 하찮게 느껴졌다.

은행은 4시에 셔터를 내리는 순간부터 더 바쁘게 돌아갔다. 여신계, 수신계 계수도 맞춰야 했고, 서류와 잔고도 맞춰보아야 했다. 새로 들어온 여직원 하나가 잔고가 안 맞는다고 계속 서류를 검토하고 있던 중이었다. 꽤 차이 나는 금액이라 임차장과 김대리도 달려들어 서류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항상 거래처에서 퇴근하곤 했던 이지점장이 들어와서 임차장에게 눈짓을 했다. 둘이 자주 가던 실내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하자는 신호였다.
“저 오늘 잔고가 안 맞아서요, 한 번만 더 검토해 보고 나갈게요.”
“뭐 그딴 것 가지고. 그런 일은 아랫것들에게 맡기고 한잔하자구.” 평소 꼼꼼하던 이지점장 답지 않았지만 임차장은 순순히 따라 나갔다.

“야, 우리 조금만 참자.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온다구.”
술이 꽤 들어간 이지점장은 임차장에게 이렇게 말하며 연거푸 소주를 들이켰다.
“자네 처음 왔을 때 생각하면 참 웃음이 나는군. 그땐 시커멓고 꾀죄죄한 시골쥐 몰골이었는데 많이 세련되어졌단 말이지.”
“그럼요. 은행에서 이십 년을 있었는걸요. 고향 떠난 지 벌써 그렇게 됐네요.”
“그러게. 다른 놈들이 우리 임차장 시골뜨기라고 얼마나 우습게 보던지. 딱 내가 들어올 때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도 정수형이 양복 한 벌 맞춰줘서 촌놈 티를 벗었지 않겠습니까. 저 그때 생각하면.”
임차장은 감격에 겨운 듯 말을 이었다.
“그땐 의지할 데가 정수형밖에 없었어요. 정수형이 정말 친형 같았습니다. 부모도 정수형 같지 않아요. 서울에서 일하면 뭐 은행 돈이 다 제 돈인 줄 아시는가 봐요. 맨날 병원비가 없다, 생활비가 없다 편지를 보내시는데.”
“그래도 자식, 장가는 잘 갔단 말이지. 제수씨가 얼마나 미인이냐? 그때 우리 지점에서 다들 꼬시려고 안달이었잖아. 그래도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자식 제법이란 말이지.”
“다 옛날얘기인걸요. 애 둘 낳고 완전 아줌마가 다 되었다니까요. 게다가 잔소리는 얼마나 심한지.”
“그래도 제수씨만한 사람 없다. 벌써 집 대출금 다 갚아간다며? 정말 알뜰한 부인이지. 잘 챙겨드려.”
“그래도 너무 구두쇠같이 구니까 제가 본가에 볼 낯이 없어요.”
“부모 형제 다 소용없다. 어려울 땐 조강지처뿐이라니까.”
이지점장은 이렇게 말하며 포장지로 포장한 작은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윤이사가 갖다 드리라더라. 목걸이라든가? 여자들은 그런데 약하잖아. 이제 제수씨한테 이런 것도 선물하고 그래야지.”

월급봉투 맡기는 것이 가장의 책임인 줄 알고 살았던 임차장이었다. 점심값과 버스비를 쓰고 나면 거의 남는 것이 없는 용돈을 받아 생활한 세월이었다. 빠듯한 생활에 늘 용돈 가지고 아내 미영과 티격태격했다. 대출금 다 갚을 때까진 국물도 없다며 짜게 구는 부인에게 섭섭한 마음이 든 적도 많았다. 그러나 다음 달이면 대출금도 다 갚을 터였다.

“자. 이거.”
임차장은 미영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조금은 긴장하며 선물을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그동안 고생한 당신에게 주는 선물.”
“아이, 참. 돈도 없는데 뭘 이런 걸 사와요? 저 이런 목걸이 필요 없어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목에 스와로프스키 파란 상자를 열어 반짝거리는 크리스탈 장식이 달린 목걸이를 보는 미영의 얼굴은 환하게 피었다.

다음 날은 미영의 여고 동창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날이었다. 미영은 오랜만에 정성스럽게 화장을 했다. 눈가에 주름이 하나둘씩 잡혀가고 있었다.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정성껏 발라 주름을 감추고 립스틱으로 마무리했다. 옷장을 아무리 뒤져봐도 입을 만한 옷이 없었다. 미영은 오래된 하늘색 새틴 원피스에 어제 선물로 받은 목걸이를 걸어보았다. 썩 잘 어울렸다.

“어머 미영아,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졌다.”
“그러게, 뭐 좋은 일 있나 봐.”
평소 친하던 금자와 성은이는 미영을 보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요즘 기분이 들떠서인지 표정이 한층 밝아진 미영은 한눈에 보기에도 평소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이 목걸이는 뭐야?”
“응. 은희아빠 선물.”
“와, 예쁘다. 은희아빠는 센스도 만점이라니까.”
“그래. 은희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데 피아노학원은 보내?” 수민은 평소와 같이 미영의 교육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시작했다.
“피아노학원은 아무 데나 보내면 안 돼. 가르치는 것도 격이 있거든. 꼭 학원 선생님이 음대 피아노과를 나왔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니까.”
“뭐 음악 전공시킬 것도 아닌데.”
“사람 일이란 모르지. 게다가 딸 아이 아무 데나 시집보낼 거야? 좀 괜찮은 집 며느리로 보내려면 음악이며 외국어며 교양이며 좀 갖춰놓아야 하지 않겠어?”
“얘는 뭘. 아직 초등학교 3학년밖에 안 되었는데.”
친구들의 타박에도 수민은 아이 교육을 들먹이며 동창들을 가르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남편이 지점장으로 승진한다는 기대에 미영은 수민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월급이 오르면 은희 피아노부터 가르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지점장이 며칠째 지점에 나타나지 않았다. 임차장은 좀 불안했지만 급한 사정이 생겼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대부분 지점 업무는 임차장이 이지점장 대신 처리해 왔었으니 별다른 문제가 있진 않았다. 다른 직원들은 이지점장이 임차장에게 말을 하고 안 나오는 것이려니 생각하는 듯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수요일 아침 출근하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른 아침부터 감사팀이 들이닥쳤다. 온갖 서류를 검토하겠다며 지점장실을 점령했고 임차장도 이지점장에게 연락을 취하려 애썼다. 이지점장 자택에 전화하니 가정부가 전화를 받아서 속사포같이 소식을 전했다.
“사장님께서 어제 목을 매서 자살하셨대요. 사모님도 병원에 실려 가셨어요.”
임차장은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면서 정신이 아득해 옴을 느꼈다. 김대리가 급하게 임차장을 찾았다.
“임차장님 감사팀에서 빨리 와 보시래요.”
임차장은 급하게 지점장실로 달려갔다.
“임차장, 이지점장하고 공모해서 윤상묵에게 신용대출을 70억이나 해 줬네요.”
“네? 뭐라구요? 그럴 리가…”
“윤이사라고 하고 다니던 윤상묵 알아요? 몰라요?”
“저 한번 보기는 했는데, 신호그룹 둘째 사위 아닌가요?”
“내, 참. 금융에 이십 년이나 있던 사람이 이런 초보적인 사기에 당하다니. 지금 제정신이에요?” 감사팀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윤이사는 사기꾼이었단다. 신호그룹 사위 이름을 도용해서 벌써 몇 군데 사기를 쳐서 이미 수백억을 해 먹고 해외로 도피했다는 것이었다. 책상 위에는 영등포지점에서 대출한 몇 장의 대출서류가 따로 빠져 나와 있었다. 그 맨 앞장에 임차장이 싸인한 신용대출 서류가 임차장을 비웃듯 놓여 있었다. 그때 휴대폰 전화가 울렸다. 미영이었다. 임차장은 갑자기 세상이 멈추어 버린 것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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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은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와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창작공동체 ‘이도의 날개’ 홍보이사, 세종교육문화연구소 소장, 세종시 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시동인지 ‘하이디하우스’ 회원으로, ‘백수문학’에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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