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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에 무뎌질 때, 문득 조각이 내게로 왔다[인터뷰] 안의종 조형연구소 사람들
세종시 연기면 눌왕리에 위치한 안의종 조형연구소 사람들. 서 있는 사람이 안의종 조각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하단 왼쪽부터) 양승문, 김성원 씨.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두꺼운 손들이 흙덩이를 깎고 또 빚는다. 사내들이 내뿜는 열기가 작업실 한쪽에 놓인 화목난로보다 더 뜨겁다.

지난 13일 오후 세종시 연기면 눌왕리에 위치한 안의종 조형연구소를 찾았다. 작업복 차림의 두 사람이 주위 시선에는 아랑곳않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세종시가 고향인 안의종(60) 조각가의 레지던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신진예술가 지망생들이다.

지난 2011년 고향에 작업실을 차려 기념 레지던시 사업을 펼쳤던 안의종 조각가가 올해 다시 작업실을 내줬다. 삶에 치이면서도 늘 조각을 동경해온 50~60대 미술계 후배들을 위해서다.

그는 “8년 만에 다시 레지던시를 운영하게 된 건 평소 조각에 대해 열의가 크지만, 제대로 해 볼 기회가 없었던 후배들 때문”이라며 “개인전을 목표로 작가로서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지도해주려 한다”고 말했다.

인생 전환점 지나 예술가로 새 삶

안의종 조형연구소에서 직접 지도를 받고 있는 양승문(왼쪽)·김성원 씨.

레지던시 운영은 지난해 말 시작했다. 안 작가는 2011년 연기군 시절 사비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해 일본과 인도, 한국 작가 총 3명의 예술가과 함께 지냈다. 당시 신진작가들의 작품은 레지던시 개인전이 끝난 후 연기군에서 직접 구입하기도 했다.

그는 “인도 델리대학에서 강의하며 연구교수로 일했던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실제 레지던시 생활을 경험했다”며 “당시 이질적인 공간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인 발전도 컸고, 한국에 돌아와 작업실을 열면 한 번쯤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밝혔다.

현재 작업실에서 지도를 받고 있는 두 사람은 양승문(58)·김성원(53) 씨다.

양 씨는 충남대 시각디자인 전공자다. 지난해까지 직장생활을 했다. 퇴직 후에는 수십 년간 마음으로만 품어온 조각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이 작업실은 퇴직 후 얻은 즐거운 새 일터나 다름없다.

그는 “퇴직 전까지 서울에서 북커버 디자인 일을 했었다”며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미술은 꿈도 못 꿨는데, 요즘은 평일에도 주말에도 조각을 할 수 있어 매일이 즐겁고 새롭다”고 말했다.

김성원 씨는 조각 작품을 올려놓는 좌대 기자재 제작 일에 종사해왔다. 지금도 현업을 병행 중이다. 기자재를 만들면서도 그의 눈은 줄곧 조각 작품을 향해있었다. 그는 한남대 미술교육과 졸업자다.

김 씨는 “평소 조각을 동경만 해오다 좋은 기회가 생겨 열심히 배우고 있다”며 “평소 인연이 있었던 안 선생님을 통해 꿈을 실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가진 예술 유전자도 남다르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18호 민화장 보유자 고안(古岸) 김만희 선생이 그의 부친이기 때문. 김 선생은 민화장 보유자로는 국내에서 유일할뿐더러 민화 전승의 맥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장인으로 지난해 4월 향년 88세로 타계했다.

그는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님이 한국민화 무형문화재셨다”며 “아이도 한국화를 전공했고, 내 머릿속에도 늘 조소가 있었다”고 했다.

대대손손 서당집 아들, 각별한 고향 사랑

안의종 조각가는 충남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28년 간 건양대 교수로 재직했다. 2011년 고향 세종시 연기면에 조형연구소를 설립했고, 올해 두 번째 레지던시 작업실 운영을 시작했다.

어릴 적 안의종 조각가는 눌왕리 서당집 아들로 불렸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증조할아버지도 대를 이어 마을 훈장이었다. 연남초등학교를 나와 지금은 사라진 성남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주고등학교에 입학해 미술부 활동을 했다.

그는 “가난한 시골 동네에서 태어났지만, 훈장인 아버지 밑에서 한문과 유학을 배울 수 있었다”며 “지금도 문학과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고, 박사과정도 철학을 했다”고 밝혔다.

안 작가는 충남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28세 늦깎이 입학해 학과 선배들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입학 전 8년 동안 군복무를 마치고, 서울 한 사립대에 입학해 잠시 국문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고향에 돌아와 농사일을 도우면서도 조각에 대한 꿈은 버리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충남미술대전, 한국미술대전 대상을 휩쓸었다. 1997년부터 2015년까지 28년간 건양대 조형예술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안의종 조각가(오른쪽)의 공주고 재학 당시 모습. 당시 미술부에서 활동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세종시 조치원 구청사와 대전경찰청 등 공공기관, 연서면 고복저수지 인근 연기대첩비 조각공원에 전시돼있다. 세종시 출범 이후에는 행복도시 민간 건물과 공동주택 아파트 등에도 여러 작품이 설치됐다.

안 작가는 “앞으로 고향에서 모든 활동을 이어가려 한다”며 “선진국에서는 이미 많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고, 타 시도는 굵직한 대기업에서 개인 레지던시를 지원하기도 한다. 세종시는 아직 기반이 부족해 문화재단이나 시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공 문화예술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질 때까지 개인 전시장이나 작가 작업실 활용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지역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 육성·지원사업이 미흡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지역 작가들이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외지에서 좋은 작품, 좋은 작가들을 들여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지역 예술인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시 내 전시 공간에 대한 아쉬움도 내비쳤다. 그는 올해 1월 홍콩을 여행하면서 다시금 이 문제를 체감했다.

안 작가는 “홍콩에 가보니 하나의 건물에 영국 대표 화랑, 프랑스 대표 화랑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며 “도시는 보행 환경, 도로 계획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 작가들의 활동 통로를 내주는 일도 필수적이다. 고향 세종시 건설에서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려면 기존 문화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점을 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향을 사랑한 한 조각가와 평생 조각을 열망해 온 늦깎이 지망생들. 세 사람의 꿈이 안의종 조형연구소에서 새롭게 빚어지고 있다. 

한지혜 기자  wisdo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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