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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 흙으로 빚은 도자, 새 세대의 ‘요산도요’[인터뷰] 즈엄 세라믹 이현동 대표
즈엄 세라믹 이현동 대표.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도예의 신산업화를 꿈꿨던 외삼촌의 흙으로 생활도자를 만드는 청년이 있다. 한 줌 흙에 민족혼을 담아낸 故(고) 김구한 도예가의 외조카, 즈엄 세라믹 이현동(25) 대표다.

이 대표는 학창시절 야구선수를 꿈꿨다. 부상으로 좌절한 후 뒤늦게 학업을 시작해 지난 2015년, 스물셋에 고려대 세종캠퍼스에 입학했다.

야구 배트를 쥐었던 손은 이제 흙을 만지는 예술가의 손이 됐다. 그는 도예가인 부모님, 외삼촌인 고 김구한 선생과 한집에 살며 어깨너머로 도예를 익혔다. 이 길에 접어든 것이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

지난 21일 오전 고려대 세종캠퍼스 인근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방학을 맞은 그는 현재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요산도요 도예 공방에서 대부분을 지낸다.

바이오도토로 만든 원두 보관 용기

즈엄 세라믹 이현동 대표가 외삼촌 고 김구한 도예가가 특허 개발한 흙인 바이오도토로 만든 커피 원두 보관 용기. 현재 온라인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바이오도토(Bio陶土)는 고 김구한 도예가가 특허 개발한 흙이다. 점토에 황토와 숯을 혼합해 만든다. 흙에 함유된 숯 층은 정화작용을 하는데, 도자기를 굽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물질인 세라믹 카본은 높은 원적외선 방사율(93.5%)을 갖는다.

현재 이 흙은 이 대표의 부모님에게만 전수된다.

김 선생은 타계 직전 바이오도토로 쌀통을 빚어 구웠다. 쌀이 누지지 않고 쌀벌레도 생기지 않는 경험을 했다. 하루 서 너 잔의 커피를 마시는 커피 애호가인 조카 이 대표는 크기가 큰 쌀통 대신 원두 보관 용기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시제품은 김구한 선생이 타계한 뒤 1년이 지나 지난해 9월 출시됐다. 원두를 장기간 보관해도 본연의 맛과 향이 유지되는 것이 큰 장점. 직접 원두를 사 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람들이 늘면서 수요도 커질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이 대표는 “보통 가정집 쌀통은 크기 때문에 제작 시간도 많이 걸리고, 가격도 비싸져 비교적 작은 원두 용기 개발을 시작했다”며 “아버지와 상의해 디자인부터 흙 입자까지 계속 개선하고 있다. 앞으로는 시중 원두 판매 용량에 맞춰 다양한 사이즈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통형의 용기는 숯을 갈아 넣어 만든 첨목 유약을 칠해 구웠다. 곧 커피잔과 핸드드리퍼(Hand Dripper), 컵받침 등도 시리즈로 출시된다.

격동의 현대사 살다간 예술인의 삶

생전 담배를 즐겨 태웠던 고 김구한 도예가 모습. 그는 지난 2017년 8월 별세했다. (사진=이현동)

도예가 김구한 선생은 194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대전 선화초등학교를 다녔다.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으나, 서울대 미대를 다니며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가담한 것이 계기가 돼 쫓기는 신세가 됐다. 이때 경북 문경 탄광촌에서 숨어 지내며 한 도공을 만나 도예에 눈떴다.

그가 1997년 일본 위안부 배봉기 할머니를 소재로 만든 작품 ‘망향’은 1999년 독일 중앙박물관에 영구 보존작으로 전시됐다. 세계 최초 도자집인 높이 4.7m 즈엄집은 2002년 일본의 나이카타현 공원에 전시된 후 관광 명소가 됐다. ‘즈엄’은 흙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당시 김 도예가가 높이 4.7m 크기의 즈엄집 한 채를 통째로 굽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불가능하다며 ‘미친짓’이라고들 했다. 굴하지 않고 그는 두 번째, 세 번째 즈엄집을 만들어냈다. 

작품명 '망향'. 일본 위안부 할머니를 소재로 만든 작품으로 현재 독일 중앙박물관에 전시돼있다. 1999년 박물관 측은 김구한 선생에게 영구 보존작 형태로 작품을 매입하고 싶다며 백지수표를 내밀었다.

김 선생은 대부분의 삶을 예술가로 살았다. 젊은 시절의 삶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그는 서울대 미대에 재학하면서 반(反)독재 투쟁에 참여했다. 수배령이 내려지면서 재적과 복학을 반복했고, 입학 12년만인 1980년에 졸업장을 받았다. 이후 일본 유학을 떠난 사연도 알고 보면 도피에 가까웠다.

그는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카메라에 담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비디오를 국내 반입한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그는 일본에서 비디오를 가지고 건너왔다. 우연치않게 그가 타계한 2017년, 당시 이야기를 담은 영화 ‘택시운전사’는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현동 대표는 “돌아가신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삼촌이 당시 원본 테이프를 일본에서 가지고 들어온 분이라고 들었다”며 “생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잘하지 않으셨고, 또 그런 성격이셨다. 험난한 시대를 가진 것 없이 살면서 예술에 대한 신념을 지킨 삼촌을 여전히 존경한다”고 말했다.

김 선생의 아내는 일본인으로 알려졌다. 일본에 거주 중인 두 아들은 언론계에 종사하고 있다. 평생 김 선생이 지냈던 이촌 요산도요 작업실은 조카인 이 대표와 김 선생의 여동생인 김문한 도예가, 처남 이상민 도예가가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현동 대표는 “지금껏 도자기의 발전은 흙 속의 불순물을 제거해 ‘0’에 수렴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삼촌은 계속 혼합하는 방식을 시도하셨다”며 “힘들고 배고픈 직업임을 알기에 제가 업으로 삼길 바라시진 않으셨지만, 삼촌의 흙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몰입하는 즐거움

이현동 대표.

물레 앞에 앉을 때면 하루 24시간이 짧게 느껴진다는 이현동 대표. 그는 최근 몰입하는 즐거움을 깨닫고 있다. 흙을 만질 때만큼은 잡념 없이 완벽한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에만 심취한다는 것.

이 대표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 같다”며 “돌아보면 야구를 할 때는 열심히 노력한 것 같은데 ‘왜 보상이 이만큼 안따라줄까?’ 답답한 마음이 컸다. 무조건 잘하고 싶은 마음뿐이어서 스스로 즐기지 못했는데, 도자기는 그런 것이 없다”고 말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새로운 디자인. 현재 커피용품으로 잡은 테마를 어떻게 발전시킬지도 남은 숙제다. 그는 그간 크게 빛을 발하지 못했던 바이오도토의 이점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생활자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대표는 “환경호르몬이 없는 이점을 살려 생활자기인 보관 그릇 등도 계획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생활 찜질기 등 의료분야 창업도 준비하고 있다. 평생 부모님과 삼촌이 힘을 쏟았던 분야를 차근차근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기존 미학 상식을 깨부수고, 도자예술의 신산업화 꿈꿨던 김 선생을 따라 새 세대인 조카 현동 씨가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삼촌의 흙이 조카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려 한다. 

한지혜 기자  wisdo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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