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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초한쟁패기, 전설이 된 항우와 우희의 러브스토리[이길구의 중국 한시(漢詩)기행] <14>항우(項羽)의 ‘해하가(垓下歌)’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우리에게 생소한 경극(京劇)을 상영한다는 포스터를 종종 볼 수 있다. ‘베이징 오페라’로 불리는 경극은 노래(唱)·대사(臺詞)·동작(動作)·무술(武術) 등 네 가지가 종합된 공연 예술로 중국 문화의 꽃이다.

1790년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乾隆帝:1711-1799)의 8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의 극단(劇團)이 북경에 들어와 새로운 형태의 극을 공연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경극은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와 우희(虞姬)’, ‘제갈공명(諸葛孔明)’,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 ‘조조(曹操)’ 등 중국 역사를 수놓은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인생의 보편성을 노래한다.

이 중 초한(楚漢)의 전쟁을 배경으로 초나라의 패왕 항우와 우미인(虞美人)과의 이별을 그린 <패왕별희(覇王別姬)>는 단연 압권이다. <초한의 싸움>이라는 제목으로 초연된 이 경극은 명나라 종산거사(鍾山居士)가 쓴 소설 《초한지(楚漢志)》를 각본 한 것이라고 한다. 원제목은 <서한연의(西漢演義)>다.

‘패왕별희(覇王別姬).’ 초한(楚漢)의 전쟁을 배경으로 초나라의 패왕 항우와 우미인(虞美人)과의 이별을 그린 경극이다. 사진은 영화 ‘패왕별희’(1993년) 스틸컷.

이번에 알아볼 시는 항우의 <해하가(垓下歌)>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원작인 《서한연의》의 내용을 알아보자.

소설의 시작은 팽성(彭城)에 웅거하고 있던 항우가 한나라의 군사(軍師) 한신(韓信)이 보낸 첩자 이좌거(李左車)의 꾐에 빠져 팽성에서 나오자, 곳곳에 병사를 매복시키는 장면부터다. 구리산(九里山)을 향해 진격해오는 항우를 맞서 병사를 매복시킨 한신은 번쾌(樊噲)로 하여금 산 정상에 올라가 초나라 병사들의 이동상황을 깃발로 알리도록 지시한 뒤, 유방에게는 직접 항우를 유인하도록 한다.

성미가 급한 항우는 유방의 유인작전에 말려들어 구리산 깊숙이 들어오다가 부하들의 만류로 말머리를 돌리려 하는데, 이좌거가 또 나타나 재차 항우를 유인한다. 이에 항우는 분함을 참지 못해 더 깊숙이 그를 추격해 들어가다 매복하고 있던 한나라 군사에게 크게 패하고 만다. 위기에 처한 항우는 구원병을 이끌고 나타난 주란(周蘭)의 도움으로 겨우 본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중국 서주에 있는 항우의 조각상. 초나라의 패왕(覇王)으로 유방과 패권을 다투다가 대패하여 자살했지만, 원나라 이후 경극과 희극의 주인공으로 숭배의 대상이다.

팽성으로 돌아가 전열을 정비하고자 했으나, 팽성도 이미 한나라에 의해 함락되어 버린다. 항우는 이 사실을 알고 크게 실망한다. 항우를 포위하고 있던 한신은 이좌거, 장량(張良) 등과 함께 초나라를 일거에 멸할 계책을 찾는다. 이에 장량은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초나라 병사들에게 초나라 노래를 들려주어 모두 도망치도록 한다.

초나라 병사들은 어둠을 틈타 달아나버리고, 종리매(鍾離眜), 항백(項伯)과 같은 장수조차도 병사들과 함께 도망치고 만다. 새벽이 되어서야 이 사실을 안 항우는 우미인(虞美人)과 마지막 시를 주고받은 뒤, 비장한 각오로 탈출을 계획한다. 탈출이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우미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항우만이 강동(江東) 땅으로 탈출하고자 한다.

그러나 강동으로 가는 길을 거짓으로 알려준 농부에 의해 항우는 늪에 빠졌다가 겨우 벗어난다. 다시 한나라 병사를 만났고 마지막 28명의 부하만 남게 된다. 지친 항우는 낡은 장원(莊園)을 발견하고 잠시 쉬어가고자 하는데, 이곳에서 두 노인을 만나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난다.

앞서 이야기에 있듯이 유방의 연합군에 포위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막다른 위기에서 항우는 더는 싸움에 승산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모든 것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항우는 마지막 술상을 차려 놓고 애첩인 우미인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패배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처지를 탄식하는 <해하가(垓下歌)>를 불렀다.

역발산혜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  
시불리혜추불서(時不利兮추不逝)   

추불서혜가내하(騶不逝兮可奈何)    
우혜우혜내약하(虞兮虞兮奈若何)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하나
시운이 불리하여 오추마조차 내닫지 않도다
오추마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나
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역발산혜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라는 별명처럼 천하장사였던 항우는 31세라는 짧은 나이에 애첩 우미인(虞美人)과 함께 죽었다.

이 시는 사마천의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온다. 그 유명한 역발산혜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가 여기서 나왔다. 뜻은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의기(意氣)는 세상을 뒤덮을 만하다는 뜻’으로 ‘기력(氣力)이 뛰어난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추(騶)는 항우의 ‘애마(愛馬)’ 이름이다. 추마(騅馬)는 ‘흰 바탕에 흑색, 짙은 갈색, 짙은 적색 따위의 털이 섞여 난 말’을 말한다.

추불서(騶不逝)는 항우(項羽)의 준마인 ‘오추마(烏騅馬)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기세가 꺾이고 힘이 빠져 어쩔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우(虞)는 항우의 첩이며, ‘우미인(虞美人)’이라고도 한다. 정확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한서》에는 ‘우 씨 성을 가진 미인(有美人姓虞氏)’, 《사기》에는 ‘우란 이름의 미인(有美人名虞)’이라고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미인(美人)’이라는 말도 모습을 묘사하는 말일 수 있지만, 후궁에 대한 칭호일 가능성도 있다.

항우는 노래를 끝내고 자신이 그토록 아꼈던 명마 추를 보검(寶劍)으로 죽였고 우희는 항우의 해하가(垓下歌)에 답가를 부르고 그 칼로 역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스스로 ‘초패왕’이라 일컬으며 패업을 이루어 나갔으나, 한왕(漢王) 유방의 30만 병력에 초토화된 것이다.

천하를 뒤덮을 기개를 가졌던 항우, 그의 애마였던 오추마마저 나아가지 않고, 절망 속에서 연인이었던 우희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우희도 목숨을 끊기 전 항우의 해하가에 다음과 같은 화답의 시 <우희가(虞姬歌)>를 불렀다고 전한다,

한병이약지(漢兵已略地)    한나라 병사들이 이미 땅을 차지하였고 
사방초가성(四方楚歌聲)    사방에서 들리느니 초나라 노래뿐인데
대왕의기진(大王意氣盡)    대왕의 뜻과 기운이 다하였으니
천첩하료생(賤妾何聊生)    천한 제가 어찌 살기를 바라겠나이까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의 초한쟁패기는 이렇게 5년 만에 끝이 나고 최후의 승자는 유방이 되어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한제국(漢帝國)을 열었다. 유방은 초반의 열세를 극복하고 막강한 위세의 항우를 꺾고 천하의 주인이 되어 역사의 성좌에 등극하며 패업의 군주로 빛나게 된 것이다.

유방과 항우가 싸운 초한쟁패는 매우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는데 사기(史記)의 유방본기(劉邦本紀), 항우본기(項羽本紀),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등에 잘 기술되어 있다. 유방과 항우 두 영웅이 직접 싸우는 전쟁도 숱한 계책이 난무하면서 흥미진진한데 두 사람이 노래한 <대풍가(大風歌)>와 <해하가(垓下歌)>도 문학적으로 서로 잘 대비가 되어 매우 재미있다.

이와 함께 우리가 즐겨두고 있는 장기(將棋)도 유방과 항우의 각축전을 상징한다. 빨간 말은 유방의 한나라로, 파란 말은 항우의 초나라로 돼 있다.

유방은 초반의 열세를 극복하고 막강한 위세의 항우를 꺾고 천하의 주인이 되어 역사의 성좌에 등극하며 패업의 군주가 된다.

<대풍가(大風歌)>는 유방이 천하 통일 후 일어난 경포(黥布)의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오면서 고향인 패현에 들러 죽마고우(竹馬故友)들을 불러 모아 술잔치를 벌이면서 지어 불렀다는 노래다. 말하자면 일종의 금의환양가(錦衣還鄕歌)인 셈이다. 유방이 얼마나 득의양양하며 감흥에 젖어 불렀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대풍기혜운비양(大風起兮雲飛揚)
위가해내혜귀고향(威加海內兮歸故鄉)
안득맹사혜수사방(安得猛士兮守四方)

큰 바람이 불어오니 구름이 날리네

천하에 위세를 떨치며 고향으로 돌아왔도다
어떻게 용사를 얻어 사해를 지킬 것인가

‘대풍가(大風歌)’는 유방이 천하 통일 후 고향인 패현에 들러 죽마고우(竹馬故友)들을 불러 모아 술잔치를 벌이면서 지어 불렀다는 노래이다.

전설과 야담 속에서 항우는 ‘항우장사’로, 우희는 절세미인으로 이미지화됐다. 가장 남자다운 남자와 여자다운 여자라는 식이다. 우희는 월나라 미인 서시(西施), 삼국시대 초선(貂蟬), 당나라의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의 하나로 손꼽기도 한다.

전설은 계속해서 우희가 스스로 죽자, 그녀가 흘린 피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났고, 이를 ‘우미인초(개양귀비)’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한 편의 시로 읊은 송나라의 증공(曾鞏)은 <우미인초(虞美人草)>라는 시를 남겼다.

우미인초(虞美人草). 초(楚)나라 항우의 애첩 우미인의 무덤에서 핀 꽃으로 양귀비와 꽃이 비슷해 우리나라에서는 ‘개양귀비’, 중국에서는 ‘우미인초’라 부른다.

홍문옥두분여설(鴻門玉斗紛如雪)   홍문의 옥두는 부서져 눈처럼 날리고
십만항병야유혈(十萬降兵夜流血)   항복한 십만 군사는 밤새 피 흘리네
함양궁전삼월홍(咸陽宮殿三月紅)   함양궁은 불이 타올라 석 달이나 붉고
패업이수연진멸(霸業已隨煙盡滅)   패업은 벌써 연기 따라 사라졌네

강강필사인의왕(剛强必死仁義王)   강한 자 반드시 죽고 어진 자 왕이 되니
음릉실도비천망(陰陵失道非天亡)   음릉에서 길을 잃은 것은 천망이 아니었네
영웅본학만인적(英雄本學萬人敵)   영웅은 만인에 필적함을 배워야 하거늘
하용설설비홍장(何用屑屑悲紅粧)   어찌 미인 하나를 두고 저토록 슬퍼하나

삼군산진정기도(三軍散盡旌旗倒)   삼군은 흩어지고 기가 넘어지니
옥장가인좌중로(玉帳佳人坐中老)   옥 장막 속 미인은 앉은 채로 생을 마치네
향혼야축검광비(香魂夜逐劍光飛)   향기로운 혼은 한밤 칼 빛 따라 날아가고
청혈화위원상초(靑血化爲原上草)   푸른 피는 언덕 위에 풀이 되었네

방심적막기한지(芳心寂寞寄寒枝)   아름다운 마음은 찬 가지에 쓸쓸히 머물고
구곡문래사렴미(舊曲聞來似斂眉)   옛 가락 들리니 그 눈썹 거두는 것만 같네
애원배회수불어(哀怨徘徊愁不語)   슬픔과 원망 속 배회하며 말못할 괴로움에
흡여초청초가시(恰如初聽楚歌時)   흡사 초나라 노래를 듣던 그때 같네

도도서수류금고(滔滔逝水流今古)   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도도히 흐르고
한초흥망양구토(漢楚興亡兩丘土)   한과 초의 흥망은 두 언덕의 흙이라네
당년유사구성공(當年遺事久成空)   그 옛일은 헛되이 사라진 지 오래거늘
강개준전위수무(慷慨樽前爲誰舞)   술잔 앞에 강개, 누구를 위해 춤추는가?

필자 이길구는 한문학 박사다. 계룡산 자락에서 태어나 현재도 그곳에서 살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산과 역사에 관심이 많아 계룡산과 실크로드에 대한 많은 저술을 출판한 바 있다. 현재는 한시(漢詩)에 관심을 두고 연구 활동과 저작에 몰두하고 있다.

 


이길구  gg2009@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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