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기준 국내 반려동물 보유 가구가 600만에 달한다. 5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반려동물의 건강에도 관심이 커졌다. 이에 따라 본보는 반려동물 건강칼럼을 연재한다. 필자 장주원 고운동물병원장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 대치동 펫프렌즈 동물의료센터 진료수의사, 대치동 래이 동물의료센터 진료팀장, 송파 두리 동물병원 진료 수의사, 24시 대전 동물의료센터 부원장 등을 역임했다. <편집자 주>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검은자가 푸르스름해 보인다며 튀어나올 듯한 눈을 가진 시츄 한 마리가 내원했다. 보호자에 따르면, 증상이 보인지는 일 주정도 됐다. 나아지겠거니 생각하고 지켜봤는데 얼굴 쪽을 만지면 아파하고 밥도 잘 안 먹어 병원에 데려왔다고 한다.
단단하게 앞으로 돌출된 안구의 안압을 측정했더니 수치가 매우 높았다. 시력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빠른 응급처치로 통증은 완화되고 안압도 회복됐지만, 이미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시력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상태였다.
이 시추의 병명은 녹내장이었다. 녹내장은 안구를 채우는 안방 수가 잘 배출되지 못해 안압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시신경에 손상을 주는 질환이다.
사람에게도 많이 발병되는 녹내장, 우리 반려견도 예외일 수는 없다. 검진과 치료를 통해 잘 관리될 수 있는 질환이지만, 문제는 녹내장을 제때 치료하지 못했거나 급성인 경우 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과에서 급성 녹내장을 응급질환으로 여기는 까닭이다.
특히 개나 고양이는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력을 잃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 알아채기 어려워 ‘소리 없이 시력을 앗아가는 질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녹내장은 안압을 상승시키는 모든 상태를 말하는 용어이다. 안압 상승으로 인해 각막에 안방 수가 들어가 부종을 일으켜 푸르스름해지고(blue eye) 동공이 산대(散大)되며, 빛을 비추면 눈이 녹색으로 보인다.
안압은 안방 수의 생성과 배출의 균형에 달려있다. 개에서는 대부분 안방 수 과잉생성에 의한 녹내장은 보고된 바 없다. 안압이 40mmHg 이상으로 48~72시간이 지나면 시신경 압박으로 신경세포의 손상을 일으켜 실명할 수 있다. 골든타임 안에 내원과 검진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녹내장은 급성 녹내장과 만성 녹내장, 두 부류로 나눠질 수 있다.
급성 녹내장은 갑자기 상승한 안압 때문에 눈에 강한 충혈 현상이 나타나며 동공이 열리고 각막의 부종으로 인한 푸른 회색빛을 띠게 된다. 또 눈에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되므로 얼굴 주변을 만지는 것을 싫어하고 눈꺼풀 경련과 눈물을 흘리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구토나 식욕 부진 등을 보이기도 한다.
만성 녹내장의 경우 초기에는 증상이 잘 발견되지 않는다. 대개는 안구가 이전보다 커지고 다른 눈 질병이 발생했을 때 알아차리게 되는데 만성 녹내장이 이 단계쯤 되면 대부분 시신경과 망막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녹내장의 원인은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으로 나눠진다.
선천적 요인(primary glaucoma)은 안방 수 배출로인 우각의 발생 장애로 인해 배출구멍이 작아 배출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해 나타난다. 주로 양측성으로 발병한다.
녹내장은 아메리칸 코커스패니얼, 비글, 시추, 말티즈 등의 견종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에 반해 후천적 녹내장(secondary glaucoma)은 모든 연령대의 다양한 종의 개에게서 다른 안질환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발병할 수 있다. 포도막염(uveitis)에서 녹내장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수정체 탈구로 인한 홍채 손상 및 노령의 백내장으로 수정체가 커지거나 염증이 생기면서 진행되는 경우도 흔하다.
녹내장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단시간에 실명까지 이르기 때문에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 증상을 발견해 병원을 방문한다면 서둘러 안압을 낮추는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안압을 낮추는 데는 일반적으로 안방 수 생성을 억제하고 배출을 돕는 안약을 점안하고 삼투압성 이뇨제를 투여한다. 안압이 내려가지 않으면 수술을 하기도 한다. 성공적인 수술 이후에도 적정 안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점안 약물을 투여하는 경우가 많으며, 동물병원에서 정기적인 안압 측정으로 관리 및 모니터링을 해주게 된다.
안정기에는 점안으로 충분히 안압이 관리가 되며 불편감 없이 유지관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시력을 상실하고 눈의 통증이 지속하는 경우는 안구 적출 수술이 올바른 선택이다. 지속적인 안구의 통증은 반려견의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떨어뜨리며 이차적인 다른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강아지의 녹내장은 안타깝게도 완치되는 질환이 아니다. 안압이 다시 높아지거나 상태가 악화할 수 있어 보호자들이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하는 질환이다. 가벼운 안질환을 제때 치료하지 않아 생기는 합병증으로 흔히 병발하기도 하므로 평소 눈의 이상이 보인다면 바로 동물병원에 내원해 검진을 받고 정기적으로 안압을 측정해줌으로써 반려견의 사랑스러운 눈을 지켜줘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