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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나비부인’에 나타난 여성과 남성[기고] 세종시가 문화예술 도시로 가는 길
문지은 | 세종시 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 회장

남자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한동안 달콤한 연애 기간이 지나고 남자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사냥꾼의 유전자를 타고 난 남자는 다른 사냥감을 찾아 헤맨다. 원래 동굴에서 아이를 키우던 유전자를 지닌 여자는 남자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 흔하고 뻔한 스토리는 우리에게 ‘어떤 갠 날’이란 아름다운 아리아로 잘 알려진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주요 내용이다. 지난 16일 청주예술의전당에서 관람한 청주예술오페라단(단장 최재성) 창단 12주년 기념 공연이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집안의 몰락으로 게이샤가 된 15세 소녀 초초상(나비부인)이 나가사키에 입항한 미 해군 장교 핀커톤과 결혼하지만, 핀커톤은 곧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 여자와 결혼한 그는 3년이 지나서야 나가사키로 돌아온다.

핀커톤을 일편단심 기다리던 초초상은 그의 아내 케이트가 아이를 데려가 키우려는 것을 알고는 아버지가 남긴 칼로 자결한다. 아이를 생각하며 죽음을 결심한 나비부인의 마지막 아리아(안녕, 꽃이 피는 사랑의 집)는 가슴을 메이게 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리고 자신의 충동으로 한 여자의 삶을 비극으로 만든 한 남자의 마지막 절규가 한참 동안 귓전에 맴돈다.

사랑과 죽음. 문학이나 예술작품 속에선 아름답게 그려지는 두 단어의 조합이 실제 삶에선 얼마나 잔인한가. 나비부인의 스토리는 뮤지컬 <미스사이공>에서도 반복되고, 우리나라 고전인 <춘향전>과 입센의 희곡 <페르귄트>가 떠올려지기도 한다. 떠난 임을 기다리는 기생의 딸 춘향과 게이샤 초초상, 그리고 평생 돌아오지 않는 애인을 기다리는 솔베이지의 인생은 왜 이리도 비슷한 것인지. 여성성은 늘 ‘기다림의 존재’로 표현된다.

지난 16일 청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청주예술오페라단(단장 최재성) 단원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공연은 15~16일 이틀간 2회 열렸다.

여자의 운명은 하염없이 기다리는 남자에 따라 결정된다.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되어 돌아온 이몽룡을 만난 성춘향의 결말은 행복한 재회다.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여러 여자를 만나고 모험을 즐기던 페르귄트도 삶의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평생 그를 기다리던 솔베이지를 찾아 그녀의 품에서 죽는다.

핀커톤이란 남성상은 최악이다. 고국에 어엿한 약혼녀가 있었지만, 총영사 샤플리스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단지 재미로 결혼식을 올린다.

반면, 초초상은 결혼을 위해 종교도, 가족도 버렸다. 초초상이 자신을 변함없이 3년간 기다렸고, 그 사이 자식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돌아왔다. ‘난 당신을 잊었으니 다른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살라’는 말 한마디 직접 할 용기 없이 부인과 친구 뒤에 숨는다. 결국, 죽음을 택한 그녀 앞에서 때늦은 후회와 자책이 있을 뿐이다.

나비부인의 여성성은 서양 남자들에게 ‘지고지순한 아시아 여성’이란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돌아가고 싶을 때 언제나 품을 내어줄 수 있는 여성이랄까. 그러나 나비부인은 전혀 너그럽지 않다. 자신을 잊은 채 다른 여자와 돌아온 핀커톤에게 더는 사랑의 감정은 없다. 오직 배신만이 있을 뿐이다. ‘명예롭게 살지 못할 바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다’는 문장이 새겨진 아버지의 칼로 자신을 찌른 이유다.

한국여성이었다면 어땠을까?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 한국인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 같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릴 뿐 아니라 사뿐히 즈려밟고 갈 수 있도록 꽃까지 뿌린다. 게다가 가시는 임의 마음이 상할까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한다. ‘언제가 돌아오겠지’ 하는 미련이 없다면 떠나는 임의 마음까지 헤아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며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이런 여성의 모습은 선비정신과도 통한다. 선비란 세속적 욕구에 매몰되지 않고 더욱 높은 이상을 지향하는 가치의식을 지닌 사람이다. 신념의 실천을 위해 꺾이지 않는 용기를 실천하는 사람이며, 자신의 과오를 반성할 줄 아는 성찰의 자세를 취한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여성의 모습에서도 이러한 성찰의 자세가 느껴지는 것 같다. 붙잡고 싶지만, 눈물을 머금고 기꺼이 떠나보내고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내는 위대한 옛 한국 어머니의 모습이 선비와 겹쳐진다.

하지만 <나비부인>의 초초상에게는 그런 기다림의 미학이 보이지 않는다. 나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 그와의 인연을 단칼에 끊어버리는 것이다. 남겨진 아이가 걱정되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명예다. 명예를 지킬 방법은 오로지 할복하는 것뿐이다. 일본의 어머니에게서 사무라이 정신이 겹쳐지는 대목이다.

자, 남성들이여, 여기서 한 번 물어보자. 냉정하고 단호한 초초상이 좋은가? 아니면 실낱같은 미련을 가지고 끝까지 기다려주는 진달래꽃의 여성상이 좋은가?

한편으로 충북 청주가 세종시보다는 문화예술 도시라는 생각도 들었다. 시민예산을 들여 문화예술을 사는 일은 쉽지만, 진정한 문화예술 도시라면 그 도시의 순수한 자원으로 이 정도 오페라는 무대에 올릴만한 자생력은 갖춰야 하지 않을까?

다른 한편으로는 어서 빨리 제대로 된 세종아트센터가 건립되길 기대한다. 현재 확정된 공연장 규모로는 여전히 대규모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관람하려면 다른 도시로 여정을 떠나야 하는 일이 되풀이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어두운 밤 세종에서 청주를 오가는 왕복 60㎞가 그리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문지은  webmaster@www.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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