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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술 권하는 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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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술 권하는 사회’인가
  • 이규식
  • 승인 2018.11.1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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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의 ‘문화의 눈으로 보다’] <13>시성 이백(詩聖 李白)의 여유와 낭만
세계적인 술 소비국이지만 거의 방치되다시피한 술 구입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어긋난 음주문화, 사회를 탓할까

담배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는 달리 술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관대한 통념의 비호 속에 안주해 있다.

뒤늦게 정부가 나름 강력한 음주 문제 대책을 내놓았지만, 일제강점기 빙허(憑虛) 현진건 선생(1900-1943)이 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서 그려낸 파행적인 음주행태가 여전하다. 하루 평균 13명이 술로 인하여 숨지는가 하면 국민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이 8.7ℓ에 이른다고 한다. 이로 인한 사회적 부담과 음주운전을 비롯한 폐해가 엄청난 실정인데 이런저런 강력한 조치를 시행하여 술이 초래하는 더 이상의 허무한 피해를 줄이겠다는 다짐에 기대를 걸어본다.

‘술 권하는 사회’가 지속하는 이유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으나 전통적으로 술에 관대한 의식, ‘빨리빨리’ 마셔야 하는 습성, 외국처럼 시간 차이를 두고 제공되는 ‘시간 계열형’과 달리 동시에 펼쳐놓고 먹는 ‘공간전개형’의 우리나라 음식문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대화기술이나 음주 이외의 공통 취미활동이 미흡하여 장시간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거북해하는 결과 음주 행위와 이른바 고스톱이 발달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음주 금지구역을 만들거나 술 광고를 규제하고, 음주운전 강력처벌 등 다소 강도는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책으로서는 효과가 미흡해 보인다.

나날이 낮아지는 청소년 음주연령, 풍미를 오감으로 즐겨야 할 비싼 양주를 맥주에 섞거나 소주와 맥주를 혼합하여 단숨에 들이켜는 폭탄주 습관, 여전히 젊은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대학 신입생환영회 음주행태, 경기침체를 반영하는지 나날이 피폐해지고 거칠어지는 국민 심성에 비추어 사회적 기강확립 차원에서 음주 규제와 음주 관련 처벌은 아무리 강력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라는 게 공론이다. 술을 마신다면 제대로 마시는 범국민적 음주문화 혁신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백을 기리는 사당 경내의 이백 상. 우측 상단 원 안은 이백의 초상.

#.이백과 낭만주의

음주의 여유와 낭만,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술과 벗하여 풍류를 즐기는 중국 시인 이백(701-762)의 경우를 살펴본다. 자연과 인간이 술이라는 매개체로 인하여 친화적이고 유연한 관계를 형성하는 시성(詩聖) 이백의 노래를 들어본다.
 
꽃나무 사이로 한 동이 술을
친한 사람 없이 혼자 마신다.
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그림자를 마주하니 친구가 셋이다

달은 술을 마시지 못하고
그림자만 내 몸을 따라 다니네
잠시 달과 동반하고 그림자를 거느리며
즐거움 누리는 일은 봄철에 즐겨야 하리

내가 노래하면 달은 서성거리고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는 마구 흔들린다
깨어서는 함께 서로 즐기지만
취한 다음 노곤해지면 제각기 흩어진다

그들과 사심 없는 친구로 맺어지기를 원한다
어느 날 저 은하수에서 다시 만나 노닐겠지

 

중국 안휘성 마안산 시에 있는 이백의 묘소

아름다운 봄날의 밤, 용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술 한 병 들고 꽃밭 사이로 들어가는 시인 이백. 비록 함께 벗하여 술잔을 주고받을 일행이 없으니 다소 적요하겠지만 외로움을 느낄 경지는 넘어선 듯하다.

술잔을 들어 달과 달빛에 어리는 내 그림자를 부른다. 그럭저럭 셋이 모인 셈. 달은 늘 거기 있는 든든한 존재이지만, 자발적인 감성이 없으니 달빛 아래 화목한 분위기를 더불어 즐길 수 없겠다. 그림자 역시 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하는 수동적인 침묵의 분신일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유자적 취흥을 즐기는 이백에게 술로 인한 행패나 주취폭력, 음주운전 같은 불상사는 원천봉쇄된다.

혼자 있지만 혼자가 아닌 정경, 달과 그림자 둘을 벗으로 삼은 시인의 쓸쓸하면서도 화려한 봄밤의 한 정경을 우리는 그려본다. 시각, 후각, 촉각, 청각 그리고 미각이 비로소 제대로 어우러지며 감성을 고양하는 공감각의 경지, 밤의 독작이 전해오는 나지막한 주흥의 떨림이 우리에게도 전해 오는 듯하다.

내가 노래하면 달은 서성거린다. 내가 춤을 추면 그제 서야 달이 흔들린다. 처음에 다소 밋밋하게 쭈뼛하던 달도 취기가 무르익으니 익숙한 동반자의 역할을 감당해 내고 있다. 술에 취하면 이윽고 각기 흩어져야 하는 시간. 술친구의 영원한 숙명, 본질적 행보가 아닐까. 그러나 그들과는 변함없이 사심 없는 친구로 맺어지기를 원하고 언젠가는 저 머나먼 은하수에서도 만나 교류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 모든 과정과 흐름에서 폭력적 언사나 민폐, 자신을 학대하는 일체의 낌새를 찾아보기 어렵다.

나날이 풍류가 사라지고 거칠고 메마른 감정의 격돌이 솟구치는 사회, 삶의 궁핍, 배신과 굴종의 인간관계를 푸념하는듯한 가학적 음주행태가 불거지는 이즈음 8세기에 살았던 인물 이백의 여유롭고 낭만적인 시편 속의 음주 모습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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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규식은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다. 한국외국어대 불어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남대 명예교수다. 대전시 문화예술진흥위원, 대전시 도시디자인위원, 대전예술의전당 운영자문위원장, 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 지회장, 사단법인 희망의 책 대전본부 이달의 책 선정위원장, 외교부 시니어 공공외교단 문화예술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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