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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주소·우편번호·휴대전화 번호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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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주소·우편번호·휴대전화 번호를 생각한다
  • 이규식
  • 승인 2018.11.1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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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의 ‘문화의 눈으로 보다’] <12>그냥 두었어도 좋았을 것들
낭만적인 문화콘텐츠와 지역 문화사를 간과해버릴 위험이 큰 데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마당에 도로명주소가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사진은 세종시 한 상가건물의 도로명주소 표지판.

#. 사라지는 전통, 묻히는 문화

대전광역시 대덕구 오정동 133번지가 주소였던 한남대학교는 도로명 주소로 바뀐 뒤 대덕구 한남로 70으로 변경되었다.

난마와 같이 얽힌 종전 우리나라 주소체계를 선진국처럼 도로 위주로 ‘선진화’하면 이점이 많다는 홍보에도 불구하고 아직 낯설고 다른 나라에 온 느낌이다. 전국의 수많은 도로이름을 짧은 기간에 새로 만들다 보니 중국식 표기도 허다하고 그중에는 일본풍 이름도 눈에 띈다.

각기 개별 도시형성과 발전과정, 도로와 주택 그리고 건물의 배치구조가 독특한 우리나라에서 외국 주소체제를 도입하는 데 따른 문제점과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하고 보완했을까. 더구나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 거주자가 국민의 절반을 훨씬 넘은 현실에서 도로명 주소 시행은 어떤 실효성이 있을까.

도로명 주소를 쓰고서도 아직 괄호 안에 예전 동네 이름을 함께 쓰니 새로 도입한 지번의 효용성은 그만큼 축소된다. 오정동이 한남로가 되어 대학홍보와 지명도 향상에는 일정 부분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겠지만 오정(梧井), 오동나무와 우물이라는 자연환경에 얽힌 낭만적인 문화콘텐츠와 지역 문화사를 간과해버릴 위험이 크다. 법정동이나 행정동 같은 관청 시스템으로는 오정동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어도 주소에서 사라진 동네 이름의 영향력은 미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국 방방곡곡 숱한 길 이름을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부여하다 보니 졸속은 물론 어색한 길 이름이 적지 않고 실제 위치와는 한참 동떨어진 도로명이 붙여져서 도로명 주소 제도의 정착이 더딘지도 모르겠다. 서울 서대문경찰서의 위치는 서울역에 가까운 서대문구 미근동인데 도로명 주소로는 통일로 113이어서 파주, 임진각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연상시키는 통일로와는 체감상 너무 멀리 있다.

프랑스 파리 오트페이유 거리 MK2 영화관의 도로명주소 표지판.

#. 살가운 예전 주소가 그립다

군 훈련을 마치고 임관하여 소위 계급장을 달고 부임한 첫 부대는 강원도 삼척이었다. 낯선 곳이라 우선 부대 근처 후진(後津)해수욕장 인근에 방 하나를 얻어 지냈다.

동료 하숙집은 삼척읍내에 있어 자주 놀러 갔는데 아예 그쪽으로 옮길까 하고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에 동네 주소가 자지(紫芝)리(이 이름은 그 뒤 자원(紫園)동으로 바뀌었다)임을 알고 좀 황당하고 머쓱했다.

무엇보다도 편지에 발신자 주소를 적기가 민망하여 반대 방향인 북평읍에 방을 구하였는데 며칠 뒤 알게 된 그 동네 이름은 대구(大口)리였다. 듣기에 따라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명칭이기도 하겠지만 모두 그 지역의 오랜 전통 속에서 지형과 풍토, 기후, 문물 그리고 그 고장의 오랜 일상이 녹아든 정겨운 이름인 것이다. 이런 사연 저런 내력이 깊게 배인 전국 곳곳을 획일적으로 ‘…대로, …로, …길’이라는 단위로 구분하여 급조한 인위적인 이름을 붙이니 오랜 향토문화가 묻혀버린 듯 허전함이 든다.

나인문・나재필 형제가 쓴 <기자형제 신문 밖으로 떠나다>(행복에너지 펴냄)라는 흥미로운 책에서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다양한 지명을 키워드로 삼아 우리 문화의 속살을 맛깔스럽게 펼쳐 보인다.

충북 영동 고자리, 충북 충주 야동리, 경북 경주 모서리, 경북 예천 갈구리, 강원 원주 양아치, 충남 예산 고도리같이 눈길을 끄는 이름 속에 오롯이 집적된 우리 향토문화의 체취는 오래 갈무리할 소중한 무형문화재나 다름 아니다.

행정의 효율성을 앞세워 신속하게 밀어붙이는 조치로 가치를 헤아리기 어려운 문화가 멸실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지나치기 쉬운 어느 동네 한 모퉁이, 비슷비슷해 보이는 마을과 길이 각기 차별성으로 독특한 개성을 지니게 되고, 나름의 사연과 전통이 스며든 이름과 그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쌓여간다. 그런 스토리를 담아 오랫동안 주소로 써왔는데 도로명 주소로 사라진다면 못내 아쉬운 일이다.

차량 출고 연도를 번호판에 명기하는 포르투갈 자동차 번호판. 우리도 고려해볼 만하지 않을까.

#. 바뀐 우편번호, 바꾼다는 자동차 번호판, 늘어나는 휴대전화 번호

우편번호도 5자리로 바뀌었다. 도로명 주소 체계와 함께 사용하면 효율적이라고 당국은 홍보하고 있다. 더 시급하게 예산을 지출해야 할 분야나 사업도 숱할 텐데 쪼들리는 예산으로 이런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우편번호가 5자리에서 6자리 숫자로 바뀐 것이 불과 30여 년 전, 우편번호를 적어 넣는 봉투편지를 비롯한 종이 우편물이 급격히 감소하는 가운데 주로 전화로 배송확인이 이루어지는 택배가 급격히 늘어나는 마당에 우편번호 개편의 실익이 얼마나 될까.

엄청난 예산 소비는 물론이려니와 각급 기관, 단체, 기업 등의 봉투와 온갖 서식, 명함제작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비용지출과 시행상의 혼선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다시 바뀐다는 자동차 번호판이야 차량등록 폭주로 새로운 체제도입이 불가피하다지만 휴대전화 번호도 010이 어느덧 포화상태여서 새로운 번호를 도입한다고 한다. 016, 017, 018 그리고 019 번호 사용자를 대상으로 그토록 집요하게 바꾸도록 종용했는데 이제 010이 소진되어 간다니 정부나 기업 모두 단기간 미래예측은 물론 투자 대비 기대효과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제대로 거쳤는지 모를 일이다.

큰 불편이 없으면 그냥 사용할 것은 그대로 써가면서 중・단기 예측으로 꼭 필요한 분야의 개선과 발전을 도모해 나가는 행정문화의 선진화, 예산집행의 효율화가 그래서 아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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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규식은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다. 한국외국어대 불어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남대 명예교수다. 대전시 문화예술진흥위원, 대전시 도시디자인위원, 대전예술의전당 운영자문위원장, 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 지회장, 사단법인 희망의 책 대전본부 이달의 책 선정위원장, 외교부 시니어 공공외교단 문화예술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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