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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내고향 세종시, 시로 물들이다[인터뷰] 이은봉 세종마루시낭독회장
이은봉 시인.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등단 이후 꾸준한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수많은 제자를 배출해 낸 이은봉(65) 시인이 고향 세종시로 돌아왔다. 시 전문 무크지(부정기간행물) ‘세종시마루’ 창단과 함께다.

세종마루시낭독회는 지난 4일 오후 4시 30분 고운동 세종갤러리에서 세종시마루 창간호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세종마루시낭독회는 세종 지역 시인들이 중심이 돼 지난해 2월 창립된 문학 모임이다. 회장 이은봉 시인을 필두로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4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 시인은 줄곧 서울과 광주 등지에서 활동해왔다. 그가 떠나있는 동안 어릴 적 고향은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되고, 옛 지명들은 사라져버렸다. 

그와 지역 문학인들이 세종시마루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퇴임 후 돌아온 고향, 사라진 막은골

세종시마루 창간호 표지. 작가들의 시 작품과 평론, 인터뷰 등이 실렸다.

이 시인은 공주 장기면 당암리 막은골에서 태어났다. 당시 주민들이 망골이라고도 부른 곳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어린 그에게 금강물을 막아놓으면 비옥해져 좋은 세상이 온다는 이야기를 했다.

“막은골은 장기면 끝쪽에 위치한 곳으로 당시 공주와 연기의 경계 지점이었지요. 지금은 새로운 행정동명인 다정동이 됐더군요. 이 이야기를 듣고 쓴 시도 있고요. 늘 객지에 가면 불안하고 긴장되지 않나요. 고향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편안하고 가슴이 열리는 느낌입니다.”

그는 올해 8월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정년 퇴임했다. 강단에 선 건 1982년부터다. 그간 광주대 문창과는 문예사관학교로도 불렸다. 한 해 5~6명씩 등단해 그를 거쳐 간 제자들만 100여 명에 이른다.

“대전작가회의, 충남작가회의 멤버들이 모두 제자입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삶의 문학>이 만들어지기도 했고요. 퇴직 후 조용히 농사짓고 시 쓰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바쁜 생활을 하고 있네요. 

시마루라는 뜻은 시의 꼭대기라는 의미입니다. 세종(世宗)도 마루 종(宗)자가 들어가지요. 세상의 마루인 세종시처럼 시의 마루가 되겠다는 의미입니다.”

창간호는 세종시문화재단 지원을 받아 발간됐다. 회원들의 시 작품을 실었고, 민주화 시대의 시의식을 주제로 한 이은봉 시인의 평론, 조재훈·나태주 시인 인터뷰, 세종시 건설 과정을 추적한 정용기 시인의 르포, 성배순 시인의 역사 문화 인물편 등이 함께 담겼다.

특히 2012년 세종시 첫마을로 이주한 정용기 시인은 ‘세종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라는 글을 통해 과거 대평리와 종촌에 대한 기억, 실향민 이야기를 기록해 실었다.

#.사라진 옛 지명과 문화예술 중심 도시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 날은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귀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와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 박목월 시 <나무> 전문.

이은봉 시인은 세종시마루 창간호 머리말에서 박목월 시인의 시 <나무>를 소개했다. 화자는 유성에서 조치원, 공주, 온양을 거쳐 돌아오는 길에 느낀 인상을 설명하고 있다. 그곳에서 본 풍경은 이내 그의 마음속에 묵중한 나무로 뿌리박힌다.

“시의 첫 시구,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은 세종시에 편입된 장남평야를 말하고,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길은 이 장남평야를 가로지르던 1번 국도를 이르는 말이지요.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귀는 지금의 종촌삼거리입니다. 시인은 당시 삼거리를 뒤덮고 있던 플라타너스 터널을 본 거예요. 제가 원주민이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지요.”

2005년에 발간된 이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길은 당나귀를 타고>에도 고향을 소재로 한 작품 <종촌리>가 실려있다. 1990년대 초 종촌의 모습을 포착한 시로 미장원과 생맥주집, 파출소가 위치한 삼거리 풍경을 통해 열악해진 농촌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산자부, 고용부, 국토부, 환경부 등 정부부처가 들어선 곳이 바로 과거의 종촌리였어요. 종촌이라는 이름을 보면, 선대들이 행복도시가 들어올 것을 예측했다고도 볼 수 있지요. 마루 종(宗) 마을의 최고, 꼭대기라는 뜻이죠. 세종(世宗)과 같은 한자를 씁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연작시를 통해 고향과 관련된 시를 발표해보려 합니다.”

세종시가 건설되면서 ‘지명’은 하나의 이슈가 됐다. 행정동명, 학교명, 마을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았기 때문. 이 과정에서 옛 지명은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역시 세종시 원주민 중 한 사람으로 역사를 담고 있는 옛 지명이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세종시마루를 통해 세종시 옛 지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겠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당암리는 당동과 용암리가 합쳐진 명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당나라와 의자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패배의 역사이긴 하지만 동시에 이곳이 요새였던 것을 증명하는 기록이기도 하지요. 대한민국 어딘들 명승, 고적 아닌 곳이 없어요. 건설이라는 이름 아래 역사와 전통을 지우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은봉 시인.

당암리 당골은 위험한골이라고도 불렸다. 모퉁이에 있었던 표지판 때문이다. 그곳에 근무하던 초소 경찰들은 그 길에서 동네 처녀들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지금 청사 인근 어진동 상가 모퉁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초소가 있던 곳입니다. 길가 모퉁이에 ‘위험’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서 ‘위험한골’로도 불렸지요. 처음엔 초소가 생겨 주민들이 긴장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청원 경찰들이 동네 처녀들과 만나 연애하는 놀이터가 돼버렸지요.”

새롭게 건설되는 세종시가 사람 사는 터전으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건설과 문화예술이 함께 나아가야 된다는 것이 시마루 작가들의 생각이다. 이번 창간호 발간을 통해 세종시의 문화예술을 새롭게 만들고, 가꾸는 역할에 앞장서겠다는 것을 알린 셈.

“시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 예술, 역사까지 넓힐 계획입니다. 언어 예술은 지역과 장소, 공간이라는 매개 없이는 향유되기 어렵지요. 세종시가 행정 중심을 넘어 문화예술 중심지로 도약해 최고의 시인, 소설가들이 몰리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고향에 내려와 봉사하는 정신으로 이를 도우려 합니다.”

한편, 세종시마루 회장 이은봉 시인은 1984년 ‘창작과비평’ 신작 시집 <마침내 시인이여>로 등단했다. 첫 시집 <좋은 세상> 등 10권의 시집과 1권의 시조집을 냈으며 계간 ‘시와사람’ 편집주간,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2014년 질마재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한지혜 기자  wisdo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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