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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or 'To do' 당신의 선택은?[미노스의 동화마을] <18>어느 칭웨이 전사의 후예

묘는 작았지만, 비석은 우뚝했다.
칭웨이는 준비한 꽃을 경건한 자세로 화병에 꽂았다.

그리고 비석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긴 묵념을 오래 했다.

… 소년들의 꿈을 바꾸어 주셨던 젊은 선생님.
이곳에 계시다…

눈망울에 묘비명을 새기기라도 할 듯 눈을 떼지 않고 비석을 바라보던 칭웨이는 눈빛을 거두고 조용히 일어섰다. 눈가가 눈물에 젖었다.
묘역을 등지고 산 밑에 이르자 대원들이 양쪽으로 도열 해 있다가 일제히 경례를 했다.

“충성!”
 
칭웨이가 검은 세단에 오르자 기다리고 있던 젊은 여성이 재빨리 차에 올라 동석했다.

“감사합니다. 취재에 응해주셔서.”

젊은 여성은 깍듯이 인사를 하였다.
칭웨이는 미소를 지으며 여성을 바라보았다. 훈훈한 눈빛이었다.
젊은 여성이 말문을 열었다.

“돌아가신 선생님과는 언제 처음 만나셨어요?”

칭웨이는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멀리 하얀 바위가 석양에 물들며 황금빛으로 빛나는 티벳의 산악 고봉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생에는 들어가는 입구가 있소.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그 입구 앞이었소.”

큰 형 칭웨이가 묵묵히 걸으니 아우들도 말이 없어졌다.
칭웨이의 기분이 썩 좋지 않아 보였다.

“각자 장래 커서 되고 싶은 꿈을 적어 보아요. 그리고 왜 그런 꿈을 가졌는지 생각해 보아요.”

종이를 꺼내주며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어른이 되면 되고 싶은 사람을 적어보라고 하였다. 학생들은 어둠 속에서 얼굴을 더듬듯, 연필을 매만지며 장래의 꿈을 종이에 적기 시작했었다.
장군. 축구 선수. 가수. 대통령…

칭웨이는 벼랑길 위의 뾰족한 돌멩이를 발꿈치로 더럭 찼다. 돌멩이는 벼랑 끝을 날아 아득히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책상 밑으로 떨어지는 종이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적지 않았다. 장래 무엇이 되고 싶은지 새삼 적을 필요가 없었다.

“칭웨이.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은데?
본인이 되고 싶은 꿈을 적어보아요. 선생님이 도와줄게…”

종이를 앞에 놓고 망설이고 있는 칭웨이를 보고 선생님이 자상하게 말을 건네자 자리를 일어나고 말았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어요.”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종이는 책상 밑으로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선생님은 손목시계를 보더니 고개만 끄덕거려 주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런 칭웨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종이 위에 열심히 적고 있었다.

다시 집으로…
아우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칭웨이는 생각에 빠졌다.
요즘 가끔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우들은 형이 이런 모습일 때에는 말없이 뒤를 따랐다. 동생들 중 누군가가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내 모두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귀신인가. 아니면 물러서라.
우리 앞에 나설 자, 아무도 없다…’

깎아지른 절벽, 밧줄을 타고 오르지 않으면 다다를 수 없는 곳, 사람이 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뾰족 솟은 바위들과 그 틈에 자라는 나무들.
눈을 들어 보면 하늘과 흰 바위, 가멸차게 우거진 숲, 그리고 큰 비가 오면 숨어드는 동굴. 공기도 희박하고 물도 귀했다.
산비탈의 가파른 계단식 밭에서 자라는 귀리나 수수를 기르고 깡마른 닭이나 산양을 기르며 사람이 살고 있었다.
여자들은 오랜 전통으로 목에 굵고 무거운 구리 목걸이를 여러 겹 걸고 있었다.
겹이 많을수록 미인이라 했다. 어려서부터 하나씩 끼워 넣어 목은 길어지고 어깨는 좁아졌다.
남자들은 눈이 매서웠다.
다부진 어깨와 종아리를 드러내면 나타나는 굵은 힘줄, 곰 발바닥같이 두터운 손바닥. 구부러진 날이 있는 창처럼 생긴 칼 ‘나카리’와 밧줄을 허리에 차고 바위와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며 사냥을 할 때는 원숭이처럼 날랬다.
마을 입구에는 힘찬 문구가 깊게 새겨진 거대한 바위가 서 있었다.

‘너희들은 귀신인가. 아니면 물러서라.
우리 앞에 나설 자, 아무도 없다.
지옥아 문 열어라. 지옥을 거쳐 우리는 낙원에 간다.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다.
죽음의 승리만이 우리의 것.’

마을의 청년들은 이 문구를 노래로 불렀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어김없이 이 노래가 남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사나운 짐승을 사냥할 때 청년들은 한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렀다. 그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노래였다.
마을 사람들은 좀처럼 산 아랫마을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산 아래 사람들은 이들과 마주치기를 피했다. 그들은 거칠고 무서웠다.

‘귀신 원숭이’

산 아래 사람들은 그들을 그렇게 불렀는데 별명이라기보다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칭웨이 마을.
칭웨이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었다.
큰 전쟁이 있었다. 노인이 아기를 죽이고, 여인이 노인을 죽이고, 아이가 여인을 죽이는 치열한 전쟁이었다. 피가 내를 이루어 쇠절구공이 핏물에 떠내려갈 정도의 참혹한 전쟁이었다.
햇빛은 불타는 시체의 연기로 가려져 낮이 밤 같았고, 밤이면 핏물에 비추어진 달빛이 핏빛으로 보이는 전쟁이었다.
부족이 전멸당하고, 그중 목숨을 건진 전사 한 사람이 죽음을 피해 산속에 숨어들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오지였다. 공기가 희박하여 숨쉬기도 어렵고 땅은 척박하여 곡식도 자랄 수 없으며 다람쥐도 오르다가 포기하는 가파른 절벽 위였다.
깊은 동굴이 있어 전사는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전사는 한 여인을 만났다.
그는 여인의 목에 구리로 무거운 목걸이를 끼웠다. 여인이 도망갈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수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들을 낳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전사로 단련시켰다.
마을 입구에 바위를 세우고 문구를 새겨 마음을 다잡으며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칭웨이 전사의 노래’였다.
노래 속에는 전설에 녹아 있는 원한과 복수의 피 끓는 염원이 서려 있어 이 노래가 들리는 곳에 사람들은 가까이 가지 않았다.
칭웨이 마을 사람들은 무서운 전사의 후예들이었다.

어느 날 아침.
칭웨이 마을의 한 아이가 학교에 나타났다. 이제까지 없었던 일이었다. 칭웨이 마을에서 2시간을 걸어 학교에 왔다고 했다
배우기 위해 온 학생을 내치지는 않는다.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교라지만 학생들은 제각각이었다. 어린 티를 못 벗은 아이부터 제법 콧수염이 거뭇한 나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이었지만, 학교는 모든 학생을 동등하게 가르쳤다. 배움에 나이란 의미가 없었다.
선생님은 유심히 그 학생을 관찰했다. 보통 학생보다 나이가 서너 살은 많아 보였다. 산길을 타고 매일 2시간을 걸어 학교에 오고 또 같은 시간을 걸어 집에 가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더욱 그랬다.
그 학생은 결석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말수가 적었다.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었다. 체력이 유달리 강한 것은 그들이 살아온 환경으로 미루어 말할 것도 없었다.
학생들은 칭웨이를 두려워하여 멀리하다가 그의 한결같은 모습에 차츰 마음을 열어 주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신뢰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친구가 된다는 것을 자산을 얻은 것처럼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전설 속의 칭웨이 전사를 보았던 것이다.

그 이듬해 칭웨이 마을의 학생이 늘었다. 칭웨이가 동생들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칭웨이 아이들은 학교에 함께 오고 함께 갔다.
겨울이 되어 해가 짧아지면 그들은 수업이 끝나기 전에 학교를 나서야 했다. 어두워지면 길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칭웨이 아이들은 한 팀을 이루어 서로를 도왔는데 전체가 하나같이, 하나가 전체같이 생활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이튿날, 선생님이 칭웨이를 불렀다.
작은 나카리처럼 가느다란 눈을 쳐다보며 선생님은 칭웨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칭웨이. 어제 꿈을 적으라 했는데 적지 않았지… 선생님에게 조용히 말해 줄 수 없니? 장래 되고 싶은 사람을?”

여선생님은 상냥하게 말했다. 그러나 칭웨이는 말이 없었다.

“칭웨이. 위대한 전사가 되고 싶지 않니?”

칭웨이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표시였다.

“그런데 왜? 적지 않았지?”

“……”

“말해 보아요. 선생님이 도와줄게…”

칭웨이는 한참을 망설였다.

“전사가 되고 싶어요. 훌륭한… 근데 전사가 무엇인지 몰라요…”

“……”

“학교에 가면 가르쳐 준다고 했어요. 전사가 무엇인지…그런데 아직…”

“누가 학교에 가면 가르쳐 준다고 했어?”

“아버지요.”

선생님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전사가 무엇인지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칭웨이와 헤어진 뒤 선생님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장래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선생님이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학생들에게 물어온 질문이었다.
그것은 학생들의 꿈이 궁금했다기보다는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꿈을 말하고 그 꿈을 가꾸어 나가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꿈을 적으라고 하면, 잠시 생각하다가 곧 종이에 적곤 했다.
종이에 적힌 글은 언제나 짧았다.
장군. 축구 선수. 가수. 대통령…
선생님은 학생들의 꿈을 들여다보며, 칭찬해주고, 열심히 노력해서 그 꿈을 꼭 이루라고 격려해주었다. 그것이었다. 해마다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칭웨이는 전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묻고 있는 것이었다.

‘적과 싸우는 사람…’

그런 답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선생님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선생님은 고개를 흔들었다. 얼굴이 붉어졌다.
문득 한줄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는 것은 입구만 있을 뿐 출구가 없는 질문 같았다. 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묻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누가 죽은지도 모르고 초상집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질문을 바꾸어 보았다.

‘커서 무엇을 하고 싶니?’

무엇을 하려고 장군이 되고, 축구 선수가 되고, 가수가 되고, 대통령이 되고 싶은지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칭웨이는 그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한낱 산속 야만족의 아이라고 생각하였던 한 학생에게서 선생님은 깨달음을 얻었다.

칭웨이 마을은 외지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1년에 단 한 번 예외가 있었다. 청년들이 힘을 겨루는 시합이 열리는 날이었다.
건장한 청년들이 가장 높은 바위에서 가장 높은 나무에 오르기, 가파른 벼랑길을 따라 망태기에 돌멩이를 지고 달리기, 그들의 전통 창칼 ‘나카리’를 가장 멀리 가장 정확히 던지기 등의 시합이었다.
이날 청년들은 목숨을 걸고 경쟁에 임했다. 지켜보는 눈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을의 어른들, 부모들… 그보다는 먼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의 눈 때문이었다.
그들은 날카로운 눈으로 전사들의 시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합이 끝나면 그중에 몇 사람을 지목했다.
칭웨이 전사들은 보통사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한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공기가 희박한 산악과 고공에서도 견디어내는 체질, 좁고 가파른 산길도 평지처럼 뛰어다니는 날렵함, 무거운 짐을 가볍게 어깨에 메고 뛰는 지구력과 인내력, 그리고 정확히 던지는 나카리의 살상력이 바로 이 외국인들의 눈을 매혹했다.
그들이 지목한 사람들은 전사가 되었다. 칭웨이 용병부대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꿈에도 꿀 수 없는 영광과 풍요를 약속하였다.

칭웨이 용병은 세계 최강의 외인부대였다. 그들의 전설은 세계의 전쟁터 곳곳에서 증언되었다.

나카리 하나로 총을 든 적군 40명을 죽인 전설…
잘린 팔을 입에 물고 적 소대가 전멸할 때까지 싸워 이긴 전설…
홀로 적진에 들어가 수백 명의 아군 포로를 구출해 온 전설…
또 하나 살아있는 전설은 그들의 노래였다. 전투를 앞두고 그들은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노래를 불렀는데, 칭웨이 전사의 노랫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적군은 도망치기 바빴다. 적에게는 얼어붙는 공포를, 전사들에게는 피 끓는 사기를 불러일으키는 전설의 노래였다.

‘너희들은 귀신인가. 아니면 물러서라.
우리 앞에 나설 자, 아무도 없다.
지옥아 문 열어라. 지옥을 거쳐 우리는 낙원에 간다.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다.
죽음의 승리만이 우리의 것.’

칭웨이 용병부대의 전설은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서는 어디든 탄생했다.
그들은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없었다. 적이기 때문에 죽일 뿐이었다.
동정도 감정도 없기에 더욱 냉혹한 그들은 지옥의 사자로 불리었다. 그들은 가장 혹독하고 가장 열세한 전투의 현장에 가장 선두에 투입되었다. 칭웨이 용병이 나서면 승산이 없는 전투에 기적이 일어났다. 적이라면 이처럼 두려운 적은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을 고용한 국가는 오직 전투만을 위해 태어나고 싸우고 죽는 그들에게 경탄해 마지않았다. 그들은 이름도 없었다. 그저 칭웨이 용병이었다.
그에 대한 보상은 막대한 돈이었다.

다음 날 선생님은 칭웨이를 불렀다.

“칭웨이. 말해 봐요. 아버지는 왜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지.”

“칭웨이를 위해서요. 싸우는 전사만이 칭웨이를 살린다고 했어요.”

“……”

“아버지는 싸움에서 이겨야 칭웨이 전사를 다시 고용한다고, 죽음으로 배신하지 않아야 자식들도 칭웨이 전사가 되어 살 수 있다고 했어요.”

선생님은 투명한 눈으로 칭웨이를 바라보았다. 연민과 증오의 눈빛이 스쳐 갔다.

“칭웨이는 전사가 되어 무엇을 하고 싶어?”

칭웨이는 멍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전사가 되어 싸울 뿐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칭웨이. 너는 학교에 가라. 가서 배워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워라.”
 
아버지가 죽으면서 칭웨이에게 한 말이었다. 아버지는 전설적인 칭웨이 용병이었다. 아버지가 어디서 누구와 싸우다 죽었는지는 모른다. 막대한 돈을 벌어 가족에게 남기고 아들 칭웨이에게 이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그 돈으로 칭웨이는 학교에 온 것이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세요.”

젊은 여기자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칭웨이 대장에게 물었다.

“선생님에게 무엇을 배우셨나요?”

“선생님은 전사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셨소.
전사란 두 종류가 있다고 하셨지. 돈을 벌기 위한 전사와 뜻을 이루기 위한 전사.
돈을 벌기 위한 전사를 용병이라 하셨소. 뜻을 세우기 위한 전사는 돈 이외에 무슨 꿈을 품고 있는 전사라 했어. 혁명가일 수도, 야심가일 수도 있겠지.
용병은 직업전사라고 하는데, 자신이 하는 일에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 하시더군. 일이 좋아서도 싫어서도 아니고 돈을 주기 때문에 싸우는 사람. 용병은 상대방이 미워서 싸우는 것이 아니야. 말하자면 킬러 부대 같은 것이지.
어렵고 남이 하지 못 하는 일을 할수록 유능한 용병이지. 그 대가는 다 알겠지만…”

대장은 숨을 멈추었다.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셨어. 남이 나서지 않는 위험한 전투를 하시다가…”

“뜻을 이루기 위한 전사는요?”

여기자가 물었다.

“꿈이나 신조를 위해 싸운다 했어.
하긴 돈도 꿈이 될 수 있겠지. 그런데 선생님은 돈은 꿈이 아니라 했어. 돈은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지. 꿈과 신조를 위한 전사는 상대방을 똑똑히 분별한다고 했어요. 감정도 분명하고 격하다고 했어. 그런 전사의 적은 꿈과 신조에 반대되는 사람이라는 거야. 그들이 사람을 죽일 때는 더 잔인하다고 하더군… 기술보다는 애증의 감정이 격한 전사. 그 대가는 자신의 신조와 꿈의 성취야.
그리고 선생님은 나보고 어떤 전사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셨어.”

“그래서요?”

“대답을 못 했어. 나는 선생님께 되물었지. 왜 또 어떤 전사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시냐고,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지 않고…
선생님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시더군. 그리고 말씀하셨어.

‘칭웨이. 네가 옳다. 우리는 되는 것에 중독되어 버린 것 같아. 무엇을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아. 무서운 일이구나…’

하시더군. 지금도 그 표정이 잊히지 않아요.”

“그것이 왜 무서운 일이지요?”

칭웨이 대장은 여기자의 눈길을 피하면서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를 담담히 술회했다.

며칠이 지난 후 선생님이 칭웨이를 불렀다. 그리고 조용히 말씀을 시작했다.
선생님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앓고 온 사람처럼 뺨이 수척했고 눈은 빛났다.

“칭웨이.
무엇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분명히 꿈이 있을 거야. 되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
무엇을 하고 싶으니까 무엇이 되겠다고 했겠지.
그런데 세상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
장군… 장군 중에는 장군이 되기 위해서, 나라를 패망케 하는 일을 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
유명한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동료도 소속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스타.
대통령? 대통령이 되기 위해 국민을 속이고, 반대하는 정적을 없애고, 나라마저 위태롭게 하는 대통령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가수? 인기만 있다면 악마의 저주로 만든 가사라도 목청껏 부를…

칭웨이.
인간은 이름 때문에 위대하기도 하고 추악하기도 해.
이름 석 자를 역사에 남기기 위해 목숨을 걸지. 그래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기도 해. 하지만 내 이름이 빠진다면? 천사의 손목도 뿌리치지. 명성의 동판에 이름을 새겨준다는 악마에게 명함을 들고 달려갈 사람은 의외로 많을 거야. 한없이 추해지고 악해지지.
무엇이 되고자 한다는 것은 그렇게 이름에 집착하는 것이야.
하지만 무엇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달라.
내 이름이 중요하지 않고 이루어내는 업적이 중하다는 생각이지.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면 일일수록…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사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그런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어 하지. 그것을 희생이라고 하고 그런 사람을 의인이라 하지. 성인이라고도 하겠지. 바로 어머니 같은 사람이지…

물론,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악마의 음모를 꾸미는 사람도 있을 거야. 복면을 쓰고 어두운 지하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남의 꿈을 짓밟는 폭탄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을 거야. 돈과 신조의 맹신에 빠져서…

칭웨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어.
무엇이 되고 싶은 사람,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
되기 위해 하는 사람, 하기 위해 되는 사람.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
하기 위해 되어 서는 안될 사람이 되는 사람…
그런데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늘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지는 않았지. 선생님은 어쩌면 이렇게 묻는 것으로 다 됐다고 생각했는지 몰라. 선생님은 이미 선생님이 되었으므로…

아버지는 어떤 전사였을까?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셨겠지.
칭웨이…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돼. 그 돈으로 무엇을 하든… 사람을 죽일 때는 적어도 돈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해. ‘인간’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는 사람을 죽이고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을 생각하지는 않으셨겠지. 위대한 용병이 되기 위해 용감하게 적을 죽였을 뿐이었겠지. 아버지는 성공한 전사가 되었어. 그러나 그런 전사가 되어서 무엇을 하셨지?

칭웨이.
그런데 되돌아보니 선생님은 아버지와 똑같은 전사였어.
학생들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가를 묻었을 뿐, 그 물음으로 그 학생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았던 거야. 선생님은 선생님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다음을 생각하지 않았던 거야. 아버지처럼…
나는 그동안 학생들이 되고 싶은 사람이 바라는 대로 되기만을 바랐지.
‘되고 싶은 사람이 꼭 되어라’ 독려하면서 나는 성공한 전사로, 돈만 버는 전사로 내몰고 있었는지 몰라.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르쳐주지 않은 거야.
‘너는 커서 무엇을 하고 싶니?’
라고 물어서, 학생이 하고 싶은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생각하게 해주었어야 옳았던 거야.

칭웨이.
그것을 네가 깨우쳐 주었다. 너에게 배운 거야.”

“호호호… 아버지가 선생님에게 배우라고 했는데 선생님이 대장님께 배웠다는 말씀이네요. 그래서 대장님은 어떤 전사가 되셨어요?”

“허허허… 선생님 말씀대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묻기 시작했죠.
그런데 그게 답이 없더란 말이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영 모르겠는 것이었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꿈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소. 남이 전사가 되었으니 나도 저런 전사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소.
기자 아가씨는 어때요? 그런 꿈을 그려본 적이 있어요?”

여기자는 느닷없는 질문에 당혹스러운 듯했다.

“있기야 있었겠죠. 기억나지 않지만… 하지만 한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 있겠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밥벌이가 되느냐가 더 중요하잖아요?”

“맞았소. 그게 세상 사람들 생각이지. 전사가 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전사가 되겠다는 꿈은 참 편한 길이었소. 되면 되는 것 아니겠소?
하나 정작 중요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려고 한 적이 없었소. 아시겠소? 나는 내 꿈이 무엇인지, 하아, 전혀… 내가 나를 모르겠더라는 말이요.
그러던 때 선생님이 나를 또 불렀소. 아니요. 나만 부른 게 아니라, 학생들 모두를 불렀지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요.”

‘학생들.
조용히 눈을 감아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가 지금 억만금의 부자라고 상상해 보세요.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아요. 신나지 않아요? 상상만 해도 뭐든지 아무런 간섭도 없이 무한히 할 수 있으니…’

선생님은 우리를 고요하게 안정시킨 다음 우리에게 엄청난 돈을 주셨지. 상상으로…
학생들 표정이 행복해졌소. 엷은 미소마저 입가에 감돌았지.

‘제일 먼저 무엇을 하고 싶죠? 상상해 보아요. 무엇이 하고 싶죠? 칭웨이…’

나는 비싸서 못 먹던 양 갈비 고기와 따끈한 옥수수 수프가 제일 먹고 싶었소.

‘먹어요. 마음껏 먹어요. 상상 속에서…
최고로 비싼 호텔에서 최상의 요리사가 해준 요리를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보아요. 어서…’

상상만 해도 즐겁고 행복했소. 상상으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어요. 눈을 감고 침을 흘리면서… 그 맛과 향, 그 포만감. 상상으로 실제로 먹는 것처럼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지요. 상상이란 그런 마법이 있었어요. 정말 실컷 배부르게 먹었죠. 상상으로…
그러자 선생님은,

‘그다음 하고 싶은 것은?’

하고 물었어요. 나는 계속 맛있는 음식이 생각났어요. 먹고 싶었던 것이죠.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마음껏 드세요. 마음껏 뭐든지.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칭웨이. 어떨까? 매일 양  갈비 고급 요리를 한 10년간 계속 먹으면 좋을까?’

갑자기 양 갈비가 속에서 올라오더군요. 상상으로 먹었을 뿐인데 10년간 먹을 생각을 하니 쳐다보고 싶지도 않게 물리더라고. 다시 먹고 싶지 않게 되었죠.
그랬더니, 선생님은

‘좋아요. 그다음 하고 싶은 일은?’

하고 물었소. 생각해 보니 여행을 다니고 싶었소. 세계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상상이 참 즐거웠소. 선생님께 이렇게 말하자, 선생님은

‘좋아요. 마음껏 세계여행을 하세요. 크루즈를 타고 스위스도 가보고, 오로라도 보고 마음껏 가고 싶은 곳에 가세요. 돈은 얼마든지, 걱정하지 말고…’

신났다오. 마음이 붕붕 떠다니더군. 상상 속에서 나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려보았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그렇지만 선생님이 10년간이면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것은 고역이라고 상상되었지.
나는 다음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시작했소. 이런 일이 반복되었소이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을 한들 10년을 계속한다 생각하니 질리고 말았소.
결국, 상상이 막히기 시작했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상상이 안 되는 것이었소.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학생들에게 그다음 지침을 주셨소.
나는 그다음부터 나의 내면과 대화를 시도했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나에게 묻고 내가 대답하는 대화였소.

‘얘, 너 무엇을 하고 싶니?’

마치 난청 지역의 고주파 소리를 듣기 위해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다이얼을 정조준하듯이, 나는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오.
처음에는 먹통이었소. 그러나 어느 날 들리지 않던 나의 내면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소. 들릴 듯 말 듯 속삭이는 소리가…

‘너는 아버지를 닮았잖아. 싸움에 자신 있잖아. 싸워야지. 싸워서 이겼을 때 희열이 기다리고 있잖아. 그걸 하고 싶잖아!’

놀라고 말았소. 나에게는 역시 전사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거요.
놀랍게도 다른 학생들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소. 장군이 되겠다던 학생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너는 장군이 아니잖아. 너는 그림을 그리고 싶잖아. 너는 보이는 것은 다 그릴 수 있잖아. 어울리는 물감을 골라 종이에 그릴 때 너는 너를 잊어버리잖아!’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소.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뜻밖의 소리를 듣곤 하였소.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가 정작 하고 싶은 것은 댄서라고 고백하는 것이었소.
이제까지 우리는 남이 되어있는 것이 되고 싶다는 꿈만 꾸었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거요.
놀라운 것은 그 내면의 소리가 들려주는 일을 한다고 상상하면 10년을 해도, 100년을 해도 즐겁기만 하다는 것이었소.
선생님은,

‘여러분이 들은 그 내면의 소리가 진정으로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것이 바로 하늘이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것이 천명이고 자신의 소질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여러분은 바로 그 일을 하라고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것이 바로 100년을 해도 행복한 우리가 하고 싶은 꿈이라오. 그 꿈을 이루세요.
어쩔 수 없이 현실이 이끄는 길을 가야 한다 해도 잊지 마세요. 가슴속 깊이 간직하세요. 하늘이 도울 거예요.’

그것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리고 말았소.”

여기자는 눈을 반짝이며 칭웨이 대장의 말을 들었다. 기자의 눈은 동심으로 돌아간 눈빛이었다. 우리는 꿈을 잊고 살고 있었다. 나를 잊고 살고 있었다…
여기자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작은 라디오가 켜진 것 같았다.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안테나를 세웠다. 그러나 소리가 너무 작아 들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전사가 되었나요?”

칭웨이 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칭웨이 대장의 얼굴에 구름이 한 점 지나가는 듯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하늘이 도울 것이요’라는 선생님의 말은 틀림없었소. 그렇지만 하늘이 부르는 방법은 상상할 수가 없었소.”

그다음 칭웨이 대장의 말은 지어낸 것이 아니라면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선생님과 학생들은 주말이면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다니며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에서 몰랐던 꿈이 잠에서 깨어난다는 선생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사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고 하지만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학생이 많았다. 하고 싶은 것은 많았다. 그러나 10년 그 이상을 지속하고 싶은 하늘의 부름을 듣기란 어려웠다.
꿈…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도달하고 싶은 것.
선생님은 꿈이 무엇인가를 말해주었다. 하고 싶지만, 10년 이상 계속한다고 할 때, 싫증이 나는 것은 꿈이 아니라 했다. 그것은 채우지 못한 욕구라 했다. 꿈은 상상할수록 가슴이 두근거리고 백 년 천 년을 해도 즐겁기만 한 그런 것이라고 했다.
꿈이든 욕구든 모두 상상 속에서 깨닫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상은 아는 것이 많아지면 질수록 그만큼 더 커진다 했다.
산악과 동굴, 달리고 던지고 싸우는 사냥만을 보고 자라온 칭웨이에게 상상의 크기는 바로 그만큼이었다. 용감한 전사…
상상력의 크기가 커지기를 바란 선생님은 아이들의 눈과 귀를 넓게 열어 인생의 입구를 한없이 넓혀주고 싶었다.
1년, 2년. 주말여행은 계속되었다.
아이들이 바뀌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시 물었을 때 시간이 지나면서 내면의 대답이 달라지고 있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선생님은 만족한 미소를 짓곤 했다.

“사람은 변한다. 몸도 마음도 세상도 달라지는데 변함이 없다면 그것은 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성장이 없는 것이다. 변함없는 사람이 될 것을 바라지 말고 어떻게 변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를 바라야 한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변하는 세상에서 변함없는 꿈이라는 것은 있는 것일까?
칭웨이는 그것이 궁금하였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잊지 않으며 그는 세상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세상은 넓고 컸다. 나카리를 겨누며 멧돼지, 늑대, 토끼를 쫓으며 정글만 보았던 그가 하얗게 흐르는 강을 보고, 푸른 파도가 치는 바다를 보고, 모래폭풍이 날리는 사막을 보았다.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보았다. 스치는 수많은 사람, 풍습들, 그리고 그들의 삶들…
세상은 본 만큼 그 이상으로 상상의 창은 크게 열렸다.

그러나 어느 날, 상상이 우주로 뻗어가도, 그 넓은 세상에 내 몸을 편히 뉘 일 공간은 송곳 끝만큼도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요, 의욕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현실에 구속받아서도 아니었다.
내가 누워 기쁘고 마음 편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마음의 평화, 행복감이 우러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의 공간.
여행을 다니며 세상을 많이 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작은 소리로 속살거리던 내면의 소리가 커지며 강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너는 누구보다 강하잖아. 빠르잖아. 싸움에 자신 있잖아. 싸워야지. 싸워서 이겼을 때 희열이 기다리고 있잖아. 그거잖아!’

전사…
선생님이 절대 하지 말라는 전사였다. 선생님께 그 메시지를 고백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면에서 불끈거리는 욕망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그는 밤이면 나카리를 던지고, 밧줄을 감고, 무릎을 안고 몸을 솟구쳤다.
어느덧 코밑에 수염이 자라기 시작할 때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선생님과의 마지막 수학여행은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하는 도회지였다. 새로운 정글이었다. 학생들은 눈을 두리번거리며 미래 어느 거리에서인가 서성이고 있을 자신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그들의 마지막 여행은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간의 감회는 깊기만 했다.

‘안녕.’

나의 꿈과도 안녕.
안테나를 세우고 자신의 양심에 귀를 기울이며 꿈을 찾아낸 아이들에게는 희망을 향한 안녕이었고, 하늘의 부름을 듣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상상의 세계와의 안녕이었다. 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10년이 되지 않아 질려버릴 욕구가 손짓하는 세상으로, 무엇인가가 되어서…
수학여행의 마지막 밤.
선생님과 학생들은 화려한 도시의 휘황한 야경을 보며 사방이 유리창으로 트여있는 호텔 맨 위층의 객실에서 아쉬운 작별의 건배를 하였다.
꿈같은 경치의 꿈같은 밤이었다.

“우리의 꿈을 위하여!”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 것도 꿈 때문이었으리라. 정글에서 적을 죽이는 꿈을 꾸다 소스라쳐 놀라 일어났다.
사방은 적이 피운 연기로 가득했다. 불길이 시시각각 창문을 침범하고 있었다.
칭웨이는 몸을 작고 둥글게 말고 재빨리 문을 박차고 나갔다. 복도에도 독한 연기가 가득했다. 칭웨이는 선생님의 방으로 달려갔다. 선생님은 침대에서 기침하며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 칭웨이는 선생님을 번쩍 안고 복도를 내달렸다.

“안 돼…안 돼…칭웨이. 아이들을 먼저 구해야 해!”

선생님은 고개를 저으며 몸부림을 쳤다.

“학생들을 먼저…제발…”

칭웨이는 선생님을 바람이 통하는 복도의 낮은 곳에 뉘었다. 손수건으로 선생님의 코와 입을 막아 주었다. 숨을 멈추자 복도에 걸려있는 소화기와 밧줄이 눈에 띄었다. 그는 소화기를 들고 밧줄을 어깨에 걸치고 잠자고 있을 학생들의 방문을 부수었다. 벽에 걸린 구조용 갈고리는 칭웨이에게는 나카리 그것이었다.
그는 동료들을 둘러업고, 부축하여 호텔 옥상으로 올라갔다.
호텔 밖의 도로는 소방차와 구조대원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다리차가 옥상까지 닿지 못하고 있었다.
칭웨이는 동료들을 밧줄로 묶기 시작했다. 그리고 밧줄 끝을 굴뚝에 묶고 동료들을 지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바위 끝 나무에 밧줄을 묶고 절벽을 내려 숨어있는 산양을 나카리로 잡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어깨가 밧줄에 패여 살갗이 벗겨지며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한 사람 한 사람 학생들을 내리면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귀신인가. 아니면 물러서라.
우리 앞에 나설 자, 아무도 없다.
지옥아 문 열어라. 지옥을 거쳐 우리는 낙원에 간다.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다.
죽음의 승리만이 우리의 것.’

밧줄로 내려오는 사람을 보고 사다리차가 공중에서 마중 나와 그들을 받았다.
도시의 모든 조명이 칭웨이를 비추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붉은빛으로 반짝거리는 카메라 불빛이 정글에서 눈에 불을 켜고 칭웨이를 지켜보는 여우들의 눈빛처럼 보였다.
동료들을 다 구하고 칭웨이는 몸을 날려 선생님이 누워있는 복도로 진입했다.
연기가 코를 막았다. 숨을 멈추었다. 선생님을 찾았을 때 선생님은 의식이 없었다.
칭웨이는 옷을 벗어 선생님을 감싸 안고 옥상으로 한발 한발 올라갔다.
옥상에 도착하자 밧줄을 선생님 몸에 감았다. 그리고 자기 몸을 함께 묶었다. 바위를 내려오듯 점프를 하며 루프를 내렸다. 팔과 다리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다시 노래가 흘러나왔다.
지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 기적의 초인이 누구인가?
유튜브와 TV 방송에서는 생중계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송출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이 귀신같은 원숭이 인간을 바라보았다.

‘칭웨이 전사.’

하늘은 그렇게 칭웨이 전사를 불러냈다. 그리고는 이내 문을 닫아 버렸다.
선생님은 끝내 목숨을 건지지 못하였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먼저 구하라고 절규하며 칭웨이를 내몰고 자신은 독가스가 숨통을 막는 손가락 틈 만한 복도의 구석에 코를 박고 가쁜 숨을 몰아쉬다 생을 다하였다.
선생님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선생님으로 있기를 포기하면서…

선생님을 묻고 나서 칭웨이와 학생들은 선생님의 비석을 세웠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묻지 않고,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며
소년들의 꿈을 바꾸어 주셨던 젊은 선생님. 이곳에 계시다.”

그날이 오면 모두 선생님의 비석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선생님을 기렸다.
무엇이 되지 말고 무엇을 하라고 가르치시던 진정한 선생님이셨다.
오늘이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날이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듯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꿈에서 깬 듯한 표정으로 여기자가 물었다.

“그리고 용병대장이 되셨나요?”

“용병대장… 그렇소. 그것도 대장이라면…”

“호텔 화재사건이 난 후 나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소이다.
칭웨이 마을에 사람들이 몰려왔소. 칭웨이 전사들을 구경하러 오는 것이었소.
그리고 우리 청년들을 뽑아가기 시작했소. 지옥 같은 악조건에도 견뎌내는 우리 부족의 청년들이 필요했던 모양이오.
그들은 가장 위험한 재난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는 구조대원이 되었소. 마을이 달라지기 시작했소. 외국의 용병부대원이 꿈이었던 청년들이 구조대를 지원하게 되었소.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던 전사들이 죽음에서 사람을 구하는 구조대원으로 달라진 것이지. 내가 그 대장이고…”

“칭웨이 전사라시더니… 아니었군요.”

“전사지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재난과 싸우는 전사.
우리의 적은 사람보다도 더 무섭소. 용병부대의 전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할 때가 많소. 우리는 목숨을 바쳐 싸우는 전사요. 구해준 사람들의 감사와 존경을 받는…”

칭웨이 대장이 말을 이었다.

“달라진 것이 또 하나 있어요. 무엇인지 아십니까?”

“……”

“칭웨이 전사의 노래였소. 전사들이 전투를 앞두고 부르던 이 노래는 적이 가장 무서워하는 공포의 노래였소. 그런데 구조를 앞둔 대원들의 이 노래는 희망의 노래가 되었소.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이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환호성을 지르며 희망을 보게 된 것이요. 칭웨이 전사가 왔다고… 우리도, 희생자도 다 같이 이 노래를 합창하며 죽음을 극복할 때까지 함께 싸운다오.”

인터뷰는 끝났다.
여기자는 녹음기를 닫고서 칭웨이 대장에게 진심으로 존경 어린 인사를 했다.
칭웨이 대장은 여기자에게 미소로 답했다.

“여기자님은 기자가 되기 위해 기사를 쓰시는 분은 아니겠지요?”

여기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가볍게 숙여 목례를 하고 자리를 일어났다.

잡지의 특집으로 실린 칭웨이 전사의 스토리는 수천만의 클릭 수를 기록하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감동의 스토리였고 한 편의 드라마였다.
기자는 칭웨이 전사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글을 맺었다.

“(전략)
……죽어서 묘비명에 무엇이 새겨져 있는가는 그 인생의 결산 장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묘비명을 새기느냐는 그 사회의 결산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었는가를 새기는 사회와 무엇을 하였는가를 새기는 사회는 어린이들에게 미래를 묻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떤 선생님이 무엇이 될 것인지, 아니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느냐가 그에 따라 인생의 앞길이 달라진다고 생각할 정도로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묻는 것이 그 사회가 그런 미래를 지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투비(To be)냐? 투두(To do)냐?
투비(To be) 인생을 사는 사람과 투두(To do) 인생을 사는 사람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것이다. 그 시선에 따라 그는 전혀 다른 인간들과 인생을 살게 된다. 나의 자리를 빼앗는 경쟁자인가? 아니면 내 일을 도와줄 협력자인가?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투비(To be) 사회인가? 투두(To do) 사회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인터뷰를 통해 칭웨이 전사는 나에게 깊은 내면의 성찰을 하게 해주었다.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양심이 속삭이는 작은 소리를 듣게 해주었다.
나는 어떤 기자이며, 어떤 인간인가?
그는 나에게 많은 부끄러움을 가르쳐 주었다.”

수많은 독자가 좋아요!를 던지며 이 기사의 마지막 글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에 열렬한 찬사의 댓글을 보냈다.
그러나 이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은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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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스의 본명은 최민호(사진)다. 대전 출신으로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공직에 입문했다. 충청남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인사실장, 소청심사위원장(차관급),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 수료,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일본 동경대학 법학석사, 단국대학 행정학 박사를 취득하고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하였다. 공직 퇴임 후 고려대·공주대 객원교수, 배재대 석좌교수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홍익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퇴임한 후, 어린 손녀들에게 들려줄 동화를 만들어 달라는 딸의 부탁을 받고 온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지어 주다 <어른이 되었어도 너는 내 딸이니까>(새움출판사)라는 단편소설과 동화가 있는 이야기책을 출간, 뛰어난 상상력과 아름다운 문체로 호평을 받고 있다.


미노스  cmh10245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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