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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관람 50여년, 단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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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관람 50여년, 단관의 추억
  • 이규식
  • 승인 2018.10.2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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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의 ‘문화의 눈으로 보다’] <10>‘동도극장 키드’의 추억

#1000만 관객의 빛과 그림자

예전에는 이런 단관극장이 중요한 문화공간 역할을 했다. 사진은 영화세트장으로 복원된 옛 극장 모습

까마득한 기록이라고 생각되었던 1000만 관객 동원 영화가 2003년 ‘실미도’를 시작으로 어느 사이 스무 편에 가까워지고 있다.

많은 관객이 몰려 기록을 경신하는 것도 나름은 의미가 있겠지만 극소수 영화의 나 홀로 흥행 호조보다는 안타를 치는 작품이 많아야 영화산업 성장의 탄탄한 밑바탕이 되지 않을까 싶다. 150억 원 정도의 제작・마케팅비를 투입한 작품의 경우 400~500만 안팎의 관객을 동원해야 수익분기점을 넘긴다고 한다.

1000만 명 이상이 몰려드는 영화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제작사의 투자, 배급사의 엄청난 마케팅과 스크린 독점이 필요하다. 그 이면에는 공들여 만든 작품이 상영할 영화관을 찾지 못해 묻혀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이 있다. 근근이 마련한 제작비로 힘들게 만든 영화를 상영조차 하지 못하고 IP TV나 DVD로 보내야 하는 영화인들의 실망이 거기 있다.

이는 관객의 다양한 선택권이 보장받지 못하고 다양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영화예술에 거대자본의 입김이 나날이 커지는 부작용도 함께 한다.
 
#단관(單館)은 정겨웠다

충무로 스타벽화

이른바 멀티플렉스라고 불리는 복합상영관이 이제 우리나라 영화관의 대명사가 되는 사이 단관(單館) 체제로 운영되는 예전 극장들은 모조리 개축하여 멀티플렉스로 전환하거나 문을 닫아 다른 용도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서울 삼선교 근처 동도극장. 도심을 약간 벗어난 지역에 있던 준(準) 재개봉관이었다. 멀티플렉스 체제에서는 개봉과 동시에 상영이 끝나버리지만, 과거 단관 시절에는 개봉관-재개봉관-준재개봉관 그리고 두 편의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는 그 아래 등급 등 여러 부류로 나뉘어 관객 각자의 취향과 사정에 맞는 영화관람이 가능하였다.

초등학생 시절 집에서 약 15분 거리였던 동도극장. 도시개발 와중에 사라져 지금은 흔적도 없는 이곳에서 1960년대 중반, 후반 초등, 중학교 시절의 감수성은 스크린을 통하여 자랄 수 있었다. 접할 수 있는 미디어라고는 라디오와 아직 흑백에 머물러 있던 TV가 전부인 가운데 영화관의 넓고 시원한 총천연색 화면은 즐거운 상상과 꿈을 펼치기에 적합한 공간이었다.

영화 포스터들.

스스로 ‘동도극장 키드(kid)’라고 불러본다. 주로 ‘연소자 관람가’ 영화였지만 더러 표를 받는 아저씨와 안면을 익힌 덕택에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도 볼 수 있었는데 극장 안에 임검 경찰관 좌석이 있었다. 단속한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거기서 봤던 아마도 수백 편에 이르는 우리나라 영화는 지금까지도 생생한 기억 속에 실물감으로 재생된다.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광야의 호랑이’ ‘옥이엄마’ ‘추풍령’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맨발의 청춘’ ‘저 하늘에도 슬픔이’ ‘어느 여배우의 고백’ ‘월하의 공동묘지’ 같은 온갖 장르의 영화를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어린 나이였지만 나름 집중해서 배우들의 연기, 대부분 권선징악과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스토리의 재미 등을 생각하며 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영화광고 전단지를 A4용지 절반 정도의 종이에 인쇄해 신문에 끼워 배달했다. 거기서 배우들의 얼굴만 오려내 몸통은 연필이나 크레파스로 그린 뒤 엉성한 포스터를 만들어 감상문을 적은 노트에 끼워 보관했던 유치한 작업도 떠오른다.

국산영화 몇 편을 만들면 외국영화 수입권을 주는 스크린 쿼터 제도 때문에 영화가 엄청나게 생산된 시기였다. 때로는 졸속 시나리오로 최소한의 예산을 가지고 가급적 필름을 아껴가며 단기간에 찍은 국산영화가 많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작가 정신과 예술성을 구현하려 했던 감독들이 적지 않았음을 대학생이 되고 나서 그때 기록했던 감상 노트를 다시 읽으며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 한국영화의 발전은 1960~70년대 어려운 환경에서 완성했던 우리 영화의 노하우가 디딤돌이 되었을 것이다. 이즈음 관객의 다양한 선택권이 일정 부분 유보된 채 때로는 본의 아닌 관람으로 채워지는 기록 경신은 그래서 1960년대 한국영화가 추구했던 장인의식, 실험정신의 전통을 일정 부분 가려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영화는 다양하게, 선택기회는 넓혀야

'쟈이언트'와 '여자의 일생' 영화 광고.

뛰어난 인재, 비교적 여유 있는 자본 그리고 상상의 극한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에 힘입은 국산영화의 호조는 반가운 일이다. 외국 유수 영화제에서의 입상 소식은 우리 영화의 역량이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동도극장 키드’가 수십 년 나름대로 관심 있게 보는 우리 영화에 던지고 싶은 고언도 적지 않다.

자극에 둔감한 현대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해서인지 나날이 극한을 달리는 주제와 설정이 그렇고 지나친 폭력과 폭언, 고증과 학설에서 크게 벗어나는 역사해석은 물론 엄청난 고액의 톱스타 출연료와 대비되는 스텝들의 열악한 대우는 이제 널리 알려진 우리 영화계의 그림자가 아닐까. 거대한 자본을 배경으로 하는 제작사, 배급사 그리고 상영관의 단단한 카르텔 앞에 참신한 감성과 상상력으로 무장했지만, 인지도와 자본에서 취약한 영화인들을 위한 제도적 배려가 미흡한 것도 그렇다.

할리우드의 자본과 정교한 첨단 컴퓨터 그래픽 기술, 아메리카니즘을 바탕에 깔고 전 세계 관객의 의식과 감성을 통제하는 미국영화의 파상공세는 나날이 거세어 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사회의 밝고 어두운 면을 진솔하게 비추면서 절묘한 상상력과 탄탄한 서사로 감동을 주는 국산영화를 기다린다.

점점 편차를 벌여가는 사회 양극화, 심각한 고령화 문제, 위기를 치닫는 교육의 현실, 환경파괴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빛과 그림자같이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영상에 담아 함께 즐기면서 생각해보도록 이끄는 영화를 보고 싶은 것이다.

‘재미와 감동’이라는 예술의 본질적 기능이 새삼스럽다. ‘동도극장 키드’가 반세기 동안 관심 있게 관람해온 한국영화가 21세기 우리 사회의 향기와 거울로 온전히 자리 잡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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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규식은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다. 한국외국어대 불어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남대 명예교수다. 대전시 문화예술진흥위원, 대전시 도시디자인위원, 대전예술의전당 운영자문위원장, 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 지회장, 사단법인 희망의 책 대전본부 이달의 책 선정위원장, 외교부 시니어 공공외교단 문화예술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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