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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존폐논쟁’ 다시 가열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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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존폐논쟁’ 다시 가열될까
  • 이규식
  • 승인 2018.10.18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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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의 ‘문화의 눈으로 보다’] <9>한-프랑스 정상회담과 마크롱의 발언
공포정치의 주역인 로베스피에르와 공범자들이 자신들이 만든 방식대로 단두대에서 처형 당하고 있다. 익명의 판화. 프랑스국립도서관(파리), 1794년.

문재인 대통령이 프랑스를 국빈방문했다. 정상회담이 끝나고 공동기자회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모두(冒頭)발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무엇보다도 대통령님께 경의를 표하려 합니다. […] 젊은 투사로서, 변호사로서 1980년대 이후 많은 노력을 하셨고, 정치인으로서 그동안 많은 헌신적인 참여를 해오셨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한국에서 사형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하기 위해 심사숙고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희에게 굉장히 중요한 투쟁입니다. 다시 한번 무조건적인 프랑스의 지지를 표하는 바입니다.”

이와 관련한 후속 보도나 해설은 그리 눈에 띄지 않았지만, 한동안 수면 밑으로 잠복하였던 사형제도 존폐논쟁이 다시 재점화 될 수 있겠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까지 통일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제각기 다른 견해의 편차가 상존하는 현안이 다시금 새롭게 부상하게 될 듯하다.

이 의제는 이미 오래전 16대 국회 이후 해묵은 과제로 넘어오곤 했는데 그만큼 의견대립이 첨예하여 합일점을 찾기 쉽지 않은 아젠다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16대를 거쳐 17, 18, 19대 국회를 지나 지금 20대 국회에 이르러서도 다른 의안에 밀려나 있고 국민 사이에서 의견대립이 팽팽한 난제의 하나인 만큼 정치권에서는 선뜻 앞장서지 않고 있다.

십수 년 전 16대 국회 중반까지 나름 활발한 토론과 연구,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의원입법 등을 통하여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 국회의 고질적 악습인 소모적 정쟁과 여야 당리당략이 걸려있는 다른 사안에 묻혀 흐지부지되어버렸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여론이 엇갈리는 사안에는 선뜻 손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형제도 존폐논쟁, 언제까지 미룰 것인가

19세기 프랑스 비세트르 감옥의 죄수 사슬 부착과 집행장 이송 광경.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사형제도는 사회정의 확립 차원에서, 그리고 강력범죄 예방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함께 해왔다. 실제로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사형집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법의 이름 아래 다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본질적 인권 차원에서나 실질적인 효과 면에서 실효가 있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가 확산하면서 사형제도 존폐문제는 그 이후 큰 관심 속에서 여러 차원의 담론과 논쟁을 이끌어 냈다.

사형제도가 존속하면 그 응징 효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범죄가 감소, 예방될 것이라는 주장은 오랜 세월 설득력을 얻어왔다.

반면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 논리가 실질적으로 큰 실효가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형제도가 존속하지만, 흉악범죄는 여전히 발생하고 나날이 흉폭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사형제도를 폐지한 국가에서는 오히려 소폭이나마 범죄 발생이 줄고 있다는 통계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존치를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마지막 범죄 경고장치인 사형제 폐지가 몰고 올 후폭풍과 더욱 거세어질 범죄의 악순환을 우려한다.

이제는 더 미루지 말고 사회적인 공감대 도출과 철저한 연구와 제도적 보완을 통하여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낼 시점에 이르지 않았을까. 전 국민의 완벽한 합의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다수의 공감과 전문연구가의 분석은 필수적이다.

빅토르 위고의 제언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열혈투쟁을 벌인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1802-1885)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 프랑스의 경우, 특히 19세기 전반기 이후 사형제도 존폐에 대하여 전 국가적인 의견대립과 갈등, 시행착오를 겪은 후 20세기에 들어서야 폐지를 입법화하였다.

1829년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발표한 1인칭 독백형식의 작품 ‘사형수 최후의 날’에서는 사형제도에 대한 방법적 반박을 통하여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쳐 보였다. 전 세계적으로 사형제도 찬반에 대한 다양한 담론, 작품 등이 허다하지만 ‘사형수 최후의 날’에 담긴 치밀한 논리와 구성, 설득의 기술 그리고 공감을 유도하는 호소력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 작품의 의도를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위험한 인물은 투옥으로 충분하며 사회는 생명을 빼앗을 권리도 그 실익도 없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 일부를 범죄의 나락으로 몰아넣는 환경을 조성해 놓고 과오를 범한 범죄자를 죽음에 처한다 해도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위험한 범죄자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려면 감옥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빅토르 위고의 지론이다.

반면에 사형제 유지론자들은 이 제도를 폐지한다면 무기징역 또는 20~15년형 등으로 경감되어 얼마 안 있어 다시 사회로 복귀, 더 큰 범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있으므로 이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사형이 차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위고는 이에 대비해 ‘일체의 감형이 없는 종신형’을 명시하고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하되 목숨을 빼앗지는 말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아울러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사람들에게 사회는 얼마나 아량을 베풀고 재활과 사회적응을 위해 격려했는가 반문하면서 명작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의 선행을 통하여 선순환 구조의 정점을 보여 주었다.

이제는 풀어야 할 과제

사회 다른 여러 분야의 놀랄 만한 소통, 진보와 발전추세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사형제도 찬반 담론의 이론적 논거는 아쉽게도 아직 19세기 프랑스 사회에서 제기된 양측의 주장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대북 관련 정책지지와 국제사회에서의 협력 유대 증진 그리고 경제, 문화 교류 확대 같은 현안에 대한 한국-프랑스의 전통적 우호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언급된 사형제 폐지문제를 보며 조만간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이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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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규식은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다. 한국외국어대 불어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남대 명예교수다. 대전시 문화예술진흥위원, 대전시 도시디자인위원, 대전예술의전당 운영자문위원장, 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 지회장, 사단법인 희망의 책 대전본부 이달의 책 선정위원장, 외교부 시니어 공공외교단 문화예술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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