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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넉넉하게 돌아보았던 소중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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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넉넉하게 돌아보았던 소중한 시간
  • 김형규
  • 승인 2018.10.16 11:4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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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45>산티아고 순례를 마치며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달린 799㎞의 산티아고 순례기를 마칩니다. 그동안 연재를 사랑해주신 독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에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 앞 거리의 악사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 주요관광지를 투어하는 코끼리열차.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은 지금의 웅장한 윤곽이 드러나기까지 1200년간 수많은 건축의 대가들이 참여해 증・개축이 이어졌다.

아스투리아스의 알폰소 2세는 야고보 유해를 봉안하기 위해 829년 성당을 처음 세웠다. 이후 순례자들이 늘어나면서 레온의 알폰소 3세는 879년 성당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증・개축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던 대성당 파사드는 뒷날 바로크 양식으로 바뀌었다. 오브라도이로 광장 방면의 서쪽 파사드와 북쪽 파사드는 1700년대 완성됐다. 프라테리아스 광장을 바라보는 남쪽 파사드는 1103년, '영광의 문'이라 불리는 서쪽 파사드는 1188년에 건립됐다. 하나의 건축물에 수백 년의 시간을 뜸 들이는 건축기법은 스페인에선 특별하지 않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의 미사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영화 ‘나의 산티아고’ 마지막 장면에는 대성당 안에서 커다란 향로를 그네처럼 띄우는 장면이 나온다.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는 이름의 향로다. 세계에서 제일 큰 향로로 알려진 보타푸메이로는 갈리시아어로 '연기를 내뿜는 것'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는 11세기부터 향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80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 군대가 향로를 약탈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1851년 은으로 도금한 향로를 다시 제작했다고 한다.

산티아고순례 인증서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인 순례자들.
산티아고순례인증서를 받고 즐거워하는 어린이.
탬프가 찍힌 순례 여권.
순례인증서.
순례 거리를 인증해주는 유료인증서.

대성당 인근 순례사무국은 인증서를 발급받으려는 순례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20대의 젊은이부터 허리가 구부정한 노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순례자들이 저마다 행복한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1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아이는 부모 앞에서 인증서를 흔들며 좋아라고 폴짝폴짝 뛰었다.

사무국 직원에게 순례자 여권을 건넸다. 여권에는 그간 들렀던 숙소‧식당에서 받은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30~40일씩 걸은 도보순례자들은 한 장의 여권으로는 스탬프를 모두 담기가 버거울 수 있다.

우리는 자전거로 8일 만에 순례를 마쳤기 때문에 스탬프란에 여유가 있었다. 하루에 수백 명의 순례자를 대하는 사무국 직원은 여권과 순례자의 얼굴만 보아도 그가 걸어온 여정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었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선 일반 관광객과 순례자를 금방 구분할 수 있다. 순례자의 볼과 코끝은 보통 사람과 확연히 다르다. 피골이 상접 한 몰골이나 걸음걸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대충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몇 군데 스탬프를 받은 얌체족들의 번지르르한 얼굴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무국 직원은 우리의 얼굴을 한번 보고는 ‘수고했다’는 따뜻한 눈인사와 함께 인증서에 사인을 해줬다.

산티아고순례 인증샷.

우리는 공식인증서 이외에 3유로를 더 지불하고 거리인증서를 별도로 발급받았다. 공식인증서와 유료인증서는 세로와 가로쓰기 차이 이외에도 달린 거리가 적혀있었다. 우리 유로인증서에는 출발지점인 생장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거리가 799㎞라고 기재됐다.

요즘 각종 대회에 참가하면 발급해주는 인증서나 완주증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산티아고순례길이 유력하게 등장할 것이다. 숫자와 지명을 제외하면 라틴어로 적힌 인증서의 내용을 알 수는 없었지만 종이 한 장이 전달해주는 감흥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들은 대학합격증을 다시 받은 듯 인증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멋진남님은 인증서를 손에 쥔 자신을 신기하게 여겼다.

대성당 인근 프란치스코 수도원도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다.
성당 벽면에 새겨진 순례자의 상징 가리비 문양.
비가 오는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구도시 상가.

지난 8일간 만났던 많은 순례자들의 행복한 얼굴과 “부엔 카미노!”가 낭랑하게 뇌리를 맴돌았다. 길을 잃고 헤맸던 아찔한 기억, 펑크가 나 조바심을 냈던 순간들이 슬라이드 영상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산티아고 순례라는 고난의 시간을 넘겼다고 해서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고는 애당초 믿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다.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고 지금의 나를 차근차근 살펴보는 넉넉한 시간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산티아고 순례길에 고맙다.

순례를 마치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식당에서 푸짐한 해물요리로 무사완주를 자축했다.

소설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오랜 방랑 생활을 접고 연인이자 영원한 안식처인 파티마에게 돌아간다. 산티아고와 파티마의 서정시와 같은 사랑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영화 ‘나의 산티아고’에서 주인공 하페도 자신을 되돌아본 소중한 추억을 품은 채 일상으로 회귀한다. 딸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산티아고순례길에 오른 여주인공 스텔라 역시 아픔을 가슴 깊이 묻고 남편 곁으로 돌아간다.

자신을 되돌아볼 인생이 짧은 아들은 대학에 복학해 학업에 여념이 없다. 자전거를 다시 타고픈 생각은 없다는 아들은 힘들었던 산티아고의 추억에 대해 “팍팍한 대학 생활보다 나은 것 같다”고 언젠가 말했다.

멋진남님은 산티아고에 다녀온 뒤 체력이 많이 소진돼 원기를 회복하느라 자주 병원신세를 졌다. 그래도 “이번엔 걸어서 산티아고에 다시 가고 싶다”고 나를 부추기는 중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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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교영 2018-11-03 14:00:08
아쉬움이 먼저 느껴지네요.
그동안 저도 혼연일체가되어 마치 함께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느낀으로 글을 읽었었는데 아쉽습니다 가상에 순례인증서를 제 가슴에 품어보렵니다.
저 또한 이번 여행기를 토대로 꼼꼼히 준비하여 도보순례길에 꼭 다녀오겠습니다.
무사완주를 축하드리며 끝이아닌 다른시작으로 더 좋은 기사 칼럼 여행기 등 많이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세분께 정말 감사드리고 환절기 건강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이제 두달남짓 올한해도 기분좋게 잘 마무리 되시길 바라옵고 내년에는 더욱더 넉넉하고 힘찬한해 되십시요.
감사합니다 굿 럭 ~

JC 2018-10-30 22:37:59
축 ! 드뎌 인증서를 보게 되는군요. 누구에게 인증 받았다는 것 보다 자신의 수고로움과 고생에 대한 삶의 흔적과 추억으로 잘 간직되겠죠 ! 몇 편에 걸쳐 이렇게 글로 나누기도 하셨으니 더 바랄게 뭐 있을가 싶네요. 부럽기만 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BWS 2018-10-16 15:09:49
마지막 기사 잘봤습니다.
해외판 도장깨기! 정말 해보고싶네요~
수고하셨습니다.

kusenb 2018-10-16 14:40:01
드디어 대장정이 마무리됐군요~
산티아고 순례길의 풍경은 물론 주변의 역사와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읽으면서 저도 함께 여행을 잘한것 같습니다
고생하셨고 더 좋은 이야기로 빠른 시일 안에 다시 뵙고 싶습니다

자전거중수 2018-10-16 14:38:20
멋지십니다.
다음 여행기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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