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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만에 드러난 세종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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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만에 드러난 세종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지
  • 한지혜 기자
  • 승인 2018.10.02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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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시 6생활권 산울리 유해 발굴 본격화, 경사 능선 따라 고무신 수십 개 발견
충북대 박선주 명예교수를 단장으로 하는 세종시 연기면 유해매장지 조사팀이 발굴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 LH세종특별본부는 지난 6월 시굴조사에 이어 조사팀에 본격적인 발굴작업을 의뢰했다.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한국전쟁 당시 학살돼 묻힌 억울한 유해가 68년 만에 빛을 봤다. 경사진 능선을 따라 수십여 개의 고무신도 모습을 드러냈다.

2일 LH세종특별본부와 세종시 연기면 유해매장지 시굴조사팀(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1950년 한국전쟁 시기 국민보도연맹 민간인 학살지로 기록된 세종시 은고개 일원 비성골 지역 유해 발굴작업이 이달 중순까지 실시된다. 지난달 28일 발굴작업에 착수했다. 

조사팀은 지난 6월 20일부터 25일까지 시굴조사를 통해 학살지를 확인,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성인 정강이뼈와 고무신, M1 소총 탄피, 카빈 소총 탄피 등을 발견한 바 있다.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진행되자 지난 29일부터 일부 유해와 카빈소총, M1소총 탄피와 탄두, 고무신 등이 다량 출토됐다.

박선주 단장은 “발굴작업 2일차 아침부터 3명으로 추정되는 유해, 고무신 등이 발견됐다”며 “기존에 시굴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곳에서도 탄피 등 유류품이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발굴작업이 진행되는 곳은 옛 충남 연기군 남면 고정리였으나 현재는 6-3생활권(산울리)에 편입됐다.

행복도시개발계획에 따르면, 이곳 일대는 공동주택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특히 이번 발굴지에는 폭 26m의 도로가 개설될 계획. 현재는 이를 표시하는 붉은 깃발이 꽂혀있는 상태다.

생생한 유족 증언, 학살일 구체적 추정

본격적인 발굴작업 2일차 아침부터 성인으로 추정되는 3명의 유해와 고무신, 탄피 등이 발견됐다. 사진은 호를 따라 이어진 발굴지 모습.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연기군 보도연맹원 100여 명은 1950년 7월 조치원경찰서에서 트럭으로 실려와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고개 1지점과 2지점에서 희생됐는데 1지점은 여성, 2지점은 남성을 매장했다고 기록돼있다.

지난 7월 조사팀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시굴작업 당시 유족과 목격자들이 현장을 찾아 당시 사건을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임 모 씨(80)는 당시 희생자들의 모습을 건너편 밤나무 숲에서 직접 목격한 이로 호의 길이, 위치 등에 대해 증언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산은 민둥산으로 사건 현장이 생생히 보여졌다. 두 사람씩 묶여 있던 희생자들이 총에 맞아 쓰러졌고, 그 호의 길이는 60~70m 정도로 추정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피난을 갔다 마을로 돌아왔더니 이미 마을은 인민군이 점령하고 있었다”며 “당장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일부 유족들은 이곳저곳에 가매장을 했다가 나중에 이장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2살이었던 한 모 씨(70)는 외조부로부터 부친의 사망과 시신 수습 과정을 들었다.

보고서에서 밝힌 증언에 따르면, 외조부가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는데, 음력 5월 23일마다 제사를 지내왔다. 외조부가 시신을 수습한 날은 1950년 7월 9일(음력 24일)로 기억했다.

세종시 전동면 보덕리는 청주 한씨 집성촌이었는데, 당시 그 마을에서 14가구가 부친과 같은 날 제사를 모셨다고 밝히고 있다.

조사팀은 보고서에서 “당시 가매장했었다는 증언처럼 시굴작업에서 임시 매장했던 흔적도 발견됐다”며 “기록과 증언 등을 토대로 학살일자는 1950년 7월 8일로 추정된다”고 했다.

군경 학살 피해자, 초졸 이하·농민 가장 많아

한 데 뒤엉켜 발견된 희생자들의 고무신이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신원이 확인된 충남지역 희생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대부분 초등학교 졸업 이하(31%), 농업 종사자(64%)인 것으로 확인됐다. 나이는 18세에서 65세까지 다양했으나 20대가 40%, 30대가 29%로 가장 많았다.

은고개 2지점에서 약 600~700m 떨어진 곳에 또 다른 희생지가 있고, 전동면 봉대리와 노장리 경계지점인 먹뱅이 지점에 대한 학살 기록도 남아있다. 특히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먹뱅이 지역은 타 지역 보도연맹원이 희생당한 곳으로 시신 수습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팀은 보고서를 통해 희생자들의 넋과 유족들의 상처를 위로할 수 있는 위령탑 설립, 위령제 지원, 독거 유족에 대한 국가 지원 등 위령사업 지원을 권고했다. 특히 연기군 전동면 봉대리 먹뱅이 지역에 대한 증언과 기록 등을 고려, 추가 발굴작업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향후 희생자들의 유해, 유류품 등은 전동면 추모의 집에 안치될 예정이다. 세종민예총에서는 이곳에서 매년 위령제를 열고 있으며 세종국제고등학교 학생과 교직원들은 지난해 9월 위령비를 세우기도 했다.  

발굴지 맨 끝쪽 11번 지점에서 발굴된 안경. 돋보기가 아닌 근시용 도수 안경으로 비교적 나이대가 젊은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9월 세종국제고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함께 세운 희생자 위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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