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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셋, 여전히 쓰임 있는 사람이고 싶다[인터뷰] 류광석 시인 | 새샘마을9단지 작은도서관장
세종시 새샘마을 9단지 류광석 작은도서관장.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세종시 공동주택 단지 내 도서관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곳이 있다. 총 4개의 공간을 연령별 작은 도서관으로 꾸민 새샘마을 9단지다.

이곳 도서관 관장은 류광석(73) 시인이다. 그는 지난 2016년 세종시로 이주해 6개월에 걸쳐 주민들과 함께 도서관을 꾸몄다.

초기 2000여 권에 불과했던 장서는 주민들에게 책 기증을 독려한 덕분에 1만 2000여 권으로 늘어났다. 이용객이 증가하고, 도서관이 활성화되면서 인근 단지에서도 비결을 묻고자 찾아오는 모범 도서관이 됐다.

“나이는 들었지만, 내가 어떤 쓰임새가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고 말하는 류광석 관장. 보람동 주민자치위원이기도 한 그를 만나 세종시 최고의 아파트 단지 내 도서관을 만들게 된 과정에 대해 물었다.

빈 공간이 4곳의 도서관으로

세종시 새샘마을 9단지에 위치한 초등·유치원생 전용 도서관. 북카페까지 총 4곳이 도서관 시설로 꾸며졌다.

류 관장은 심장이 좋지 않은 아내의 건강을 고려해 계룡시로 들어가 5년 간 생활했다. 세종시로 이주한 건 2016년 9월이다. 초기 공사현장이 많은 세종시 환경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3생활권 아파트 입주와 주변 공사가 끝나면서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MBC 전 기자 출신이다. 오랜 시간 기자 생활을 하다 이후에는 사업가가 됐다. 도전정신이 강한 그는 일흔이 다 돼 시(詩) 창작에 몰두, 첫 시집으로 등단 시인이 되기도 했다.

그가 이주했을 때만 해도 아파트 단지 내 공간은 모두 빈 공간에 불과했다. 이 빈 공간이 작은 도서관으로 변신하게 된 건 류 관장의 추진력과 주민들의 봉사 정신 덕분.

그는 “장소와 책장 등 환경은 갖췄지만 모두 도서관 만드는 일을 해 본 적이 없어 걱정이 많았다”며 “우선 성인, 중·고생, 초등·유치부, 키즈, 월간지 등 대분류 작업을 하고, 대상별로 문학, 학습서, 취미서 등 최대 9가지 소분류로 나누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소분류가 끝나면 책 한 권, 한 권마다 숫자를 쓰고, 라벨과 바코드를 붙였다. 책 한 권을 분류하는 데만 8번 손이 가 분류작업만 6개월이 걸렸다. 주민 봉사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류 관장은 “지난해 8월 8일 도서관 개관 기념 열린음악회를 열었는데 200여 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석해 개관을 축하했다”며 “당시 함께 일했던 주민 봉사자들이 일부 지금도 운영을 돕고 있다. 덕분에 시청과 인근 단지에서 벤치마킹 올 정도로 잘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책, 버리지 말고 ‘기부하세요’

새샘9단지 작은도서관 인근에 배치된 도서기증함. 이곳 도서관은 자발적 주민 기부로 장서를 늘려왔다. 

9단지 작은도서관 장서는 1만 2000여 권이 넘는다.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일일이 책을 버리지 말고 기증해달라고 요청한 덕분이다. 입주 신고 시 매번 스티커를 나눠주며 책 기증을 홍보했다.

류 관장은 “현재 특히 어린이 도서의 경우 기증도서가 넘쳐 정리가 곤란할 정도”라며 “주민들이 꼭 몇 권이라도 기증하다보니 장서가 이렇게나 늘었다”고 했다.

부족한 일반도서는 중고책방을 통해 구입했다. 신간의 경우 만나는 사람마다 읽은 책을 기증해달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세종에서 “집에 굴러다니는 책 있음 두 권만 가져와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떤 조직이든지 우스꽝스럽고, 조금은 미친 사람이 있어야 잘 된다는 것이 그가 가진 삶의 철칙 중 하나다.

그가 일흔이 돼서 시 창작을 공부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2015년 3월 첫 시집 <노랑과 빨강>을 출간한 뒤 같은 해 문학광장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풀꽃시문학 동인과 시삶 동인으로 활약하면서 올해 초 두 번째 시집 <노랗게 웃고 빨갛게 웃고>도 펴냈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값진 삶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신념 때문이다.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쓰임 있는 사람이고파”

류광석 작은도서관장.

그는 연고도 없는 세종시로 이주해 아파트 선거관리위원장을 맡고, 주민들에게 동대표 출마를 독려해 아파트 조직 만들기에 힘썼다.

아파트주민공동체 '전진새샘9', '새샘라미' 출범에도 일조했다. 올해부터는 세종시 주민공동체사업 공모에 선정돼 새샘9단지 아파트 신문도 발행하기 시작했다. 

작은 행사부터 금연아파트 지정 등 각종 사안에 대한 주민 찬반 토론, 아이들의 그림 작품과 입주민들이 겪는 고충, 불평·불만의 목소리까지. 소소하지만 유익한 정보를 엄선하는 편집국장의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아파트 생활 문화가 왜 이렇게 삭막해진지 모르겠다”며 “아파트 신문이 반응도 좋고, 주민 소통 창구가 되고 있다. 늙은 사람들이 이제 옛날 것들은 잊고, 지금 사는 동네에 내가 어떤 쓰임새가 있을지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향후 류 관장은 아파트 내 특강 개최, 구연동화 프로그램 등을 준비하고 있다. 내달 8월 첫 강의로는 ‘우리나라와 서구 교육의 차이점’이라는 주제의 특강이 열린다.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의 결정과 요청이 있다면, 지난해 성황리에 마쳤던 음악회 개최도 힘껏 도울 생각이다. 

‘우리 동네, 우리 집처럼 가꾸기’ 캠페인도 추진 준비 중이다. 아파트 단지를 내 집 앞 처럼 생각하고, 가꾸자는 취지에서다.

그는 “불평만 할 게 아니라 단지 내 길가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를 함께 줍고, 풀숲의 쓰레기를 다 같이 주워 관리하자는 생각”이라며 “9단지 김재방 아파트관리소장이 마침 솔선해서 아파트를 내 집처럼 돌봐주고 있다. 이런 마음이 확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인으로의 활동도 이어간다. 적어도 2~3년에 한 권씩 시집을 출간하겠다고 다짐한 것. 현재 써놓은 작품만 해도 책 한 권 이상의 분량이다.

류 관장은 “작은도서관과 아파트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항상 연구한다”며 “마음을 비우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삶이 바로 일흔 평생 깨달은 가치”라고 말했다.

류 관장이 편집국장으로 발행하고 있는 새샘마을 9단지 아파트 신문.

한지혜 기자  wisdo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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