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조각에 대한 무한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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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조각에 대한 무한 동경
  • 유태희 문화전문기자
  • 승인 2018.07.16 15: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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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문화 인물] 임선빈 한국예총 세종시연합회장
임선빈 세종예총 회장. 조각과 예술에 대한 끝없는 동경으로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세종시로 이주, 조각가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세종시 명소로 알려진 연서면 고복저수지. 그 근처에 예술가의 집이 자리하고 있다. 임선빈 한국예총 세종시연합회장의 집이다. 잘 가꾸어진 과수원과 깔끔한 작업실이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하다.

반대 없이 성공을 향해 가는 사람은 없다. 설사 그렇게 성공했더라도 인생에서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나폴레온 힐이 “사소한 반대를 두려워 말라. 성공이라는 ‘연(鳶)’은 역풍을 타고 날아오른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한 이유다.

조각가 임선빈의 삶이 그러했다. 돌이켜보면 교사로서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스스로 고단한 삶을 선택했다. 존재의 차원에서 보면 뒷걸음질이 아닌 앞으로 내디딘 발걸음이었다. 반대에 반대하기 위해 힘을 쏟기보다는 오로지 조각가로서의 길만을 뚜벅뚜벅 걸었다.

― 세종예총 회장에 재선된 소회를 밝혀달라.

“연기군 예총 회장 4년, 초대 세종시 예총회장 4년을 수행하고, 다시 제2대 세종시 예총 회장에 당선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앞으로 3년 6개월 남은 마지막 임기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좋을지 고심하고 있다. 이 지역 문화예술발전에 일조하는 것은 물론 세종예총의 위상이 우뚝 설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고 있다.

8년 전 예총 회장에 취임하던 그 날 많은 일을 할 것 같았는데 세월만 흐른 듯하다. 돌이켜보면 4개 지회로 구성된 연기군 예총이 세종시가 되면서 9개 지회의 세종예총으로 몸집만 성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든다. 세종시라는 도시의 건설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도 특별자치시에 어울리는 수준으로 발전해야 한다. 중앙정부나 세종시의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동안 예총 사무실을 다섯 번이나 이사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전국에서 으뜸가는 예총으로 발전시키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남은 임기 동안에도 섬기는 자세로 예술인들의 의견을 듣고 소통하는 회장이 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 세종시가 고향은 아니라고 들었다, 언제부터 세종시에서 살았는가. 가족들은 어떻게 되나.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아내가 과수원을 경영하고 나는 조각에 전념하기로 작정하고 세종시 연서면 용암리로 이사를 왔다. 가족은 아내와 남매, 네 식구다

대전에서 나름대로 잘 살다가 교사생활을 접었다. 조각 공부를 하여 어느 정도 되었을 때 이사를 왔는데 비포장도로는 물론이고 환경이 도시 생활에서 시골 생활로 갑자기 바뀌니 나도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닌데 아이들이야 오죽했겠나. 하지만 자연생활의 좋은 점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아이들도 이제 모두 성장하여 자기의 본분대로 잘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사를 와서 마을 분들과 어울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지역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모내기도 도와주고 잘 못 먹는 막걸리도 함께했다. 이제는 가족같이 지내지만, 처음엔 너무 힘들어 잠시나마 후회를 한 적도 있다. 벌써 이사 온 지 30여 년이 지났다. 자연호수공원에 10여 점의 조각작품이 연기대첩비와 함께 설치되어 있는데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임선빈의 조각작품

― 세종예총 회장으로서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세종시가 명실상부한 문화예술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문화예술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문도 함께하며 고민하려고 한다.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에 도움을 주는 문화재단의 역할이 막중하듯이 세종예총도 세종시에 거주하는 예술인들에게 힘이 되어야 한다.

당장은 예술인들이 전시, 공연, 출판, 홍보 등을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확장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문화예술인들이 주체가 돼 국제교류행사를 추진함으로써 우리의 역량도 알리고 국제적 위상도 갖춰나가는 일도 할 것이다. 그 일환으로써 지난해 열린 세종국제민속예술제는 관중들의 호응이 매우 좋았다.

올해 들어서는 7월 5일부터 12일까지 주중 한국문화원에서 한・중 문화교류 작가초청전을 열었는데 대성황을 이루는 만족할만한 소득도 있었다. 세종예총과 청화대학교 미술대학 교우회가 주관한 행사였는데, 중국 작가 9명과 한국 작가 12명이 참여했다.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연례행사로 이어지도록 하고, 무용과 국악 등 복합예술행사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 미래 세종시를 위한 예총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행복청에서 추진 중인 예술인마을 건설이 잘 될 수 있도록 자문하고, 세종시에 훌륭한 예술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 싶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공연장과 전시장,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이 공동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됐으면 좋겠다. 아울러 문화예술단체들이 혜택을 보는 ‘세종예술 메세나 운동’도 추진됐으면 하는 바람도 숨길 수 없다.”

임선빈의 조각작품

― 지금까지 조각가로서의 삶을 되돌아보신다면.

“초등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예술, 조각의 매력에 빠져 제대로 교사생활을 할 수 없었다. 예술을 향한 동경으로 조각가의 길을 걷기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 뒤돌아보니 제일 미안한 사람이 아내다. 내가 선택했으니 내 고생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생계가 막막한 때가 되었을 때는 정말 얼굴을 못 들었다.

그러다가 1986년 4월 지금의 세종시 연서면 용암리로 이주하면서 작업장도 만들고 개인전도 열면서 30여 년이 넘는 조각가로서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가시적인 성과들도 있었다. 동경, 북경 등 외국에서의 조각전을 시작으로 충남 미술대전 최우수상, 추천작가상을 수상하며, 충남과 대전에서 미술대전 초대작가가 됐다. 국전과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11회의 입선을 했고,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가 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조소 심사위원장을 비롯해 여러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과천 국제조각 심포지엄 운영위원장과 보령 국제조각 심포지엄 예술총감독을 지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KT용산점, KBS 대전총국 작품 등을 제작했고 단재 신채호 선생, 박기성 독립군 장군 어록비를 제작했다. 조각은 형태나 재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성을 나타내야 한다. 그래서 끝없는 스스로와의 싸움과 타협이 이뤄져야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나의 내면과의 대화를 통해 지금껏 나만의 예술세계를 만들고 그 길을 걸어왔다.

지금은 대학강의는 접고, 조형연구소를 운영하며 고향인 보령에서 모산조형미술관 관장 일도 하며 조각가의 삶을 살고 있다.”

― 조각가로서 후배 예술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예술가의 길은 험하고 난해한 길이다. 세상사는 사람들과 같이 잘 살기를 바란다면 처음부터 시작도 말고 고생하고 굶기를 하루가 멀다 않고 할 각오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하고 싶다.

남들에게 내 것을 다 내어주는 조건 없는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예술가는 불행해진다. 물질과 명예를 원한다면 예술가의 길은 외롭다. 예술가에게는 오직 자신의 예술혼만 있을 뿐이다. 자신이 하는 예술적 행위에 미치도록 빠지고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서만이 성취감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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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래 2018-07-23 17:09:39
물질과 명예를 멀리두고 오직,
조건없는 사랑의 마음을
예술혼으로 승화시킨 작품과
그 진정성이 어려있는 활동에
이시대 예술가들의 모범이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모쪼록 후배와 후손들에게
길이 추앙받는 예술가,
이로부터 수백년 후에 그 작품이
더욱 칭송받고 높이 평가받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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