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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와 윤석남, 여성의 삶이란?[유현주의 문학과 미술 사이] 소설 ‘등대로’와 나무여인상 ‘999’
유현주 미술평론가 | 미학박사

21세기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삶이란 어떠한 것인가? 아니 여성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혹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 앞에 서면 필자는 천재적인 한 여성 소설가가 떠오른다. 바로 버지니아 울프이다.

필자에게 버지니아 울프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는 박인환의 시에 나오는 비극적인 주인공, 즉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비운의 여성 소설가로서의 이미지가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울프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독특한 소설기법을 창안한 섬세한 정신의 소설가이자 풍부한 위트와 예리하고 통찰력 넘치는 페미니스트 강연자로서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이다.

<등대로>, 가정의 천사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비판적 회고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누구인가?

<댈러웨이 부인>(1925), <등대로>(1927), <올란도>(1928), <자기만의 방>(1929), <3기니>(1938) 등 그녀의 많은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의 주체적인 삶’이었다.

그중에서 <등대로>는 울프의 소설 중 가장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며 가족에 대한 추억과 그중에서도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복잡한 감정이 잘 드러나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 가족 이야기의 소설이 페미니즘과 연관되는 이유는,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전시키는 모티브가 가족 내부의 경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램지 부처는 실제 울프의 어머니 아버지인 줄리아와 레슬리 스티븐을 모델로 하고 있으며, 장소 또한 울프 가족의 실제 별장이었던 세인트 아이브즈 해안(스코틀랜드 서쪽)의 별장 톨랜드 하우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의 모델이 된 해가 지는 거드리비(Godrevy)의 등대.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왼쪽은 <등대로>의 1927년 5월 5일 초판 표지. 표지 아티스트는 바네사 벨(Vanessa Bell)이며, 출판사는 영국 호가스(Hogarth Press)다.

전부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1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그 이전과 이후 램지 가족의 여름 별장에서 있던 일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어느 여름날 별장에 여덟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온 램지 부부와 그 별장에 기거하는 손님 및 저녁 식사에 초대된 이웃과의 하루 일정이 소설의 1부를 차지한다. 작중 인물 화가 릴리 브리스코(울프 자신을 반영한)를 통해 램지 가족과 특히 램지 부인을 묘사하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 돋보이는 서사구조이다.

2부는 그로부터 10년이 흐르는 사이, 램지 부인과 자녀 몇이 세계대전 중에 사망했다는 사실과 가족 중 누군가가 폐허로 변한 별장을 다시 손질케 해서 남은 가족들과 별장에 방문했던 손님 일부가 다시 모일 거라는 암시가 나온다.

3부는 그 별장을 다시 찾은 가족 이야기이다. 여전히 부인을 잃은 슬픔이 가시지 않은 아버지, 램지 씨는 이제는 성장한 막내들을 데리고 그 옛날 가고자 했던 별장 인근의 등대로 배를 타고 가는 또 다른 하루의 시간이 그려진다. 램지네가 등대로 간 사이 별장에 남은 화가 릴리는 램지 부인의 초상을 완성한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 하루의 일상 외에는 이렇다 할 드라마틱한 장면이 없는 이 장편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 삶의 진실을 완성하고자 한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란 마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기억, 자유연상, 마음에 스치는 느낌을 그대로 적는 것으로, 원래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말하자면 ‘의식의 흐름’ 기법은 의식과 무의식에서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무작위적이고 비논리적이며 정신분열적인 독백과 같은 것이다. 이 기법을 통해 울프는 소설 속 인물들의 내면에 있는 솔직한 언어로 그녀 부모의 초상화를 완성하고자 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울프는 자신의 부모에 대한, 특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모델 즉 램지 부인은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중산층 여성 즉 ‘가정의 천사’였던 모양이다.

램지 부인은 8남매의 어머니로서 철학 교수인 남편을 보좌하면서, 손님들을 초대해 별장에 머무르게 하고, 하인들과 요리 및 정원 손질 등 큰살림을 꾸리는 것도 모자라 보살핌이 필요한 이웃들을 돌본다. 실제로 울프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하녀들에게 맡기고 아픈 이웃을 돌보다 옮은 바이러스로 사망했다고 한다.

램지 부인의 이러한 이미지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모범적인 부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울프가 살던 시대는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1837년부터 19세기 말까지의 시기 즉 대영제국의 시기였고, 여성의 지위는 남성보다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간주 되었으며, 여성이 전문적 교육을 받는 것은 거의 간단한 산수나 읽기 정도만을 교육받는 때였다.

이 시기 여성들은 어머니와 가정교사로부터 어떻게 남자를 붙잡는가 하는 방법과 부인이 되는 법을 배웠는데, 21세가 되면 결혼을 해서 즉시 아이들 갖는 것이 보통이고 결혼 자체가 중산층 여성들에게 유일한 직업으로 인식되었다.

소설에서 울프는 까다롭고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의 폭정에도 인내심이 강했던, 그러면서도 이웃에게 연민의 손길을 늦추지 않았던 어머니 줄리아 스티븐을 회고하는 듯하다. “저 남자는 결코 줄 줄 모르고 빼앗기만 한다.” “램지 부인은 주었지. 주고, 주고, 또 주고, 그러다 죽었고, 이 모든 것을 남겨 놓았다.” “그녀는 사람들의 호의를 얻는 데 대체로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녀는 찬사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상을 당한 이들이 있는 방에 들어가면 다들 그녀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남녀 할 것 없이 그녀 앞에서 잡다한 일들을 다 털어놓으면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매사에 남을 돌보고 동정하는 램지부인이 만약 어떤 이웃이 자신의 호의를 거절할 때는 “그녀가 베풀고 도우려는 것이 모두 허영이라는 느낌의 의심”을 받고 있다는 식으로, 혹은 “그녀 자신의 지친 느낌은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데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식의 표현을 통해, 울프는 남들을 돕는 행위가 램지 부인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한 선행이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간에 여성의 삶을 ‘천사’ 역할로만 몰아세우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 소설 <등대로>에는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999>개의 나무 여인상, ‘다함께 홀로’ 스스로를 바라보기

1990년대 페미니스트 문화 운동과 미술에 큰 기여를 한 작가, 페미니스트 잡지 <이프>를 발행한 이력의 작가, 현재 한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작가로 알려져 있는 윤석남 역시 버지니아 울프만큼이나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예술가이다.

어머니를 주제로 한 <어머니> 연작, <족보>, <엄마와 딸들>, <아들, 아들, 아들> 등에서 윤석남은 “한국의 전근대와 근대를 살아온 여성들의 체험적 모성”을 그린다. <어머니> 연작은 열아홉 살에서 노년에 이르는 어머니 삶의 역사를 결혼 제도와 함께 탐색하는 작업이다.

그 연작에서, 우리는 젊은 여성이 출산과 양육, 가사노동 등을 통해 꿈을 가진 열정적인 처녀로부터 어떻게 노쇠하며 움츠러든 노년의 여성으로 바뀌는지 볼 수 있다. 작가는 나무를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는데, 즉 폐목, 빨래판, 문짝 등을 이용해 “나무의 표면을 다듬고 파내어 거칠고 투박한 몸과 얼굴에 삶의 흔적을 배어나게” 하면서, 보편적 어머니상에 대한 의문 혹은 질문을 던진다.

윤석남의 삶은 어떠했는가? 나이 마흔을 넘겨 그림을 시작하기 전 윤석남은 36살 때 서예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한 가정의 아내로, 딸을 둔 어머니로, 시어머니를 모시는 주부의 삶을 살던 그녀의 자아 찾기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4년간 시인 박두진에게 서예를 배우면서 하루 수백 장씩 미친 듯 글쓰기를 연습했던 윤석남 안에는 자기표현에 대한 욕구가 잠재되어 있음을 깨달았고 화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곧 개인 화실을 운영하던 이종우 화백의 화실에서 6개월간 드로잉과 회화 교습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결혼 이후 가정 안에 묶여있던 윤석남의 자아 상실을 치유하는 과정이었고 미술은 작가의 존재 이유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윤석남의 어머니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작가의 어머니는 문학을 사랑하는 하숙집 딸로 정혼한 아내와 별거 중이던 중년의 소설가를 19세에 만나 사랑에 빠져 만주로 건너갔고, 셋째 딸 윤석남을 낳았다고 한다. 작가는 아들을 원하던 부모의 바람 때문에 사내 남(男)의 이름을 얻었다. 어머니의 나이 서른아홉, 작가의 나이 열다섯에 아버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 때문에 어머니는 온갖 노동과 행상으로 일곱 남매를 키워야 했다. 작가의 어머니는 우리가 보통 아는 전형적인 강하고 인자한 어머니의 이미지로 떠올릴 만하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은 바로 그런 ‘고정된 모성’ 이미지에 저항하고자 한다.

‘Seeding of light(999)’ 윤석남, 나무에 아크릴, 각각 3×23㎝ 999개, 전시 모습 촬영, 서울시립미술관 'SeMA Green : 윤석남 - 심장' 展(2015년 4월 21일~6월 28일) 중.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윤석남이 1997년에 발표한 작품 <999>는 바로 그런 여성성의 스테레오타입화, 즉 고정된 여성상을 해체하는 작업이다. 999개의 나무 조각에 그려진 그림들은 모두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고, 간절히 손을 모으거나 옷을 여민 채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한복을 입은 전근대의 여성, 얼굴과 그 일부의 확대된 모습, 슬픔과 사색의 표정, 미소를 짓거나 무표정한 얼굴도, 거대하게 확대된 얼굴 모두 이름 없이 살다간 한국의 여성들이다.

불교에서 천은 만수(滿數) 즉 완전한 수를 뜻하는데, 거기에서 하나가 빠진 999개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직 온전하지 못한 여성의 삶, 이 땅의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여전히 1이 부족하고, 그 1은 수백 년을 더 필요로 한다고 윤석남은 말한다.

윤석남이 제작한 한복 차림의 여성들, 무표정하고 정적인 자세의 투박한 나무 조각상들은 얼핏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아름다운 한국의 어머니로 오인되거나, 강인한 한국의 여성상으로 단순화 될 소지가 있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모성이란 사회가 강요하는 환상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울프의 소설 속 램지부인이 등대의 불빛을 바라보며 홀로 있는 순간, “모든 존재와 행위가 팽창하면서 반짝이고 시끌벅적하다가 흩어져 버린” 고요 속에서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즉 여성이 사회로부터 기대되는 ‘천사’의 역할을 넘어서 온전히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것처럼, <999>의 여인들도 ‘다 같이 그러나 홀로’ 우뚝 서서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현주  adorno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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