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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교육감 재선, 최교진은 누구인가[6·13 지방선거] 4번 구속 3번 해직… "아이들 행복 바라는 모든 이들의 승리"
선거운동 중인 최교진 당선인.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세종시민들의 선택은 2014년에 이어 다시 한번, 최교진(64) 당선인으로 향했다.

교육특별시를 꿈꾸는 시민들이 뽑은 수장. 4번 철창에 갇히고, 3번 해직당한 수난을 겪은 그가 재차 ‘새로운 학교, 행복한 아이들’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게 됐다. 

최 당선인은 당선소감문에서 “이번 당선은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승리이자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일군 세종 교육가족들의 승리”라며 “아이들을 미래가 원하는 인재로 키우고, 대한민국 교육의 새 길을 열겠다. 세종교육을 세계가 본받고 싶은 교육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최교진 당선인은 1953년 충남 보령 미산에서 4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충남 대천국민학교와 서울 경동중학교를 졸업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학업을 마친 후 1972년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좋은 교사가 되고자 마음먹었다.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부인 김영숙 씨를 만났다.

최교진 당선인(오른쪽)과 부인 김영숙 씨(왼쪽).

1975년에는 공주 최초의 시국사건을 주도하다 학교에서 제적당한 뒤 강제로 군대에 징집됐다. 문학의 밤 행사에서 시낭송을 하다 경찰에 붙잡혔는데, 공주사대 설립 이래 최초의 제적 학생으로 기록됐다.

결혼 후 1981년 3월 대천여자중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교사 임용 전에는 충남 태안 안면도 누동학원에서 야학교사로 활동했다. 1983년 이오덕 선생과 함께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창립했다.

참교육 운동에 앞장서다 1984년 전두환 군사정권 때 첫 번째 해직을 당했다. 1986년 충남민주운동청년연합 의장을 지냈고, 이듬해 충청민주교육실천협의회 의장직을 수행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돼 서대문교도소에 수감됐다.

1988년 7월 복직해 1989년 6월까지 강경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하지만 1989년 전교조 결성에 참여해 재차 해직됐다.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전교조 수석부위원장, 1994년부터 1998년까지는 전교조 충남지부장을 지냈다.

해직 이후 10년 만인 1998년 9월부터 2003년 1월까지 충남 부여 세도중학교 교사로 근무했으나 2003년 전교조 활동과 관련해 다시 해직됐다. 독재정권과 맞서다 총 3번의 옥고를 치렀다.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이었던 1992년 5월 28일, 최교진 당선인이 참교육 설명회 연단에 서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부터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자치분권전국연대 공동대표,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다. 2006년 한국토지공사 감사 직을 지내면서 세종시 건설 계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참여정치연구회 대표, 2010년부터 현재까지는 노무현재단 대전·세종·충남지역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최 당선인은 2012년 4월 초대 세종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했지만, 당시 신정균 교육감에게 1345표 차로 고배를 마셨다. 이후에는 세종교육희망포럼 대표로 활동하며 절치부심했고,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38.17%의 지지율을 얻어 제2대 세종시교육감으로 취임했다.

취임 이후에는 세종시 고교평준화와 혁신학교를 도입했으며 주요 공약이었던 캠퍼스형 공동교육과정 운영을 시작했다.

2007년 최교진 당선인의 한국토지공사 감사 재직 시절. 당시 그는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면서 세종시 건설 계획에 참여했다.

한지혜 기자  wisdo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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