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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스페인판 4대강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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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스페인판 4대강 사업
  • 김형규
  • 승인 2018.04.09 10:47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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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18>카스티야 운하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카스티야 운하 전체 노선도(파란선). ‘Y’자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모양이다.

120번 도로를 따라 멜가르 데 페르나멘탈(Melgar de Fernamental) 마을을 지나자마자 왕복1차선 소로로 좌회전했다. 마을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자 밀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의 주요 포인트인 프로미스타(Frómista)에 도착할 것이다.

그동안 120번 도로는 도보순례길과 평행선을 이뤘지만 부르고스 이후부터는 서로 멀어졌다. 그 이유는 메세타 지형 때문일 것이다.

메세타 가운데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을 티에라 데 캄포스(Tierra de Campos)라 부르는데 뒤에 나올 운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르고스와 팔렌시아 지방을 통과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주로 티에라 데 캄포스를 가로지른다. 아마도 지형 상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이 지역에 간선도로를 건설하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평탄한 자전거길을 찾느라 도보 순례길에서 너무 멀어지는 것도 부담이다. 이쯤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순례길 본선에 합류할 필요가 있다.
 

타디야에서 프로미스타로 가는 농로. 티에라 데 캄포스 지역이라 주변이 온통 밀밭이다.
농로 교차로에서 자전거와 자동차 통행 주의표지판.

남진을 하다 부르고스주의 마지막 마을 팔라시오스 데 리오피수에르가(Palacios de Riopisuerga)입구에서 우회전하니 피수에르가江(Río Pisuerga)과 피수에르가 운하가 나타난다. 곧이어 등장하는 란타디야(Lantadilla) 마을부터 팔렌시아(Palnecia)주가 시작된다.

프로미스타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지점에 18-19세기 스페인의 4대강사업이라 할 만한 카스티야 운하(Canal de Castilla)가 눈에 들어왔다.

카스티야 운하는 스페인의 국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역사다. 이 토목공사는 부르고스주, 팔렌시아주, 바야돌리드주 등 스페인 ‘카스티야 이 레온’ 자치지역 3개 주에 걸쳐 ‘Y’를 거꾸로 매단 물줄기로 건설됐다.

오소르노에서 프로미스타까지 카스티야 운하 안내표지판.
레케나 데 캄포스 마을앞 카스티야 운하위에 놓인 다리에서 멋진남님과 아들이 포즈를 취했다.

스페인 근대에 이루어진 토목 공사 가운데 첫손으로 꼽히는 사업이다. 운하 길이는 207㎞에 46개 도시를 통과한다. 너비 11-22m, 수심 1.8-3m로 큰 배가 다닐 정도는 아니다. 1753년 첫 삽을 뜨기 시작해 거의 100년 후인 1849년 완공됐다. 완공이라기보다는 사업 중지라는 표현이 맞겠다.

황금물결 곡창지대 ‘티에라 데 캄포스’

앞서 언급했던 대규모 밀밭인 티에라 데 캄포스는 예나 지금이나 스페인의 곡창지대다. 운송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밀을 스페인 북부의 여러 항구까지 실어 나를 최적의 루트가 운하건설이었다는데 이견이 없었을 것이다. 미국도 남부에서 동북부까지 미시시피강과 오대호를 연결해 물길로 써먹었다.

당초 계획은 스페인 북부 항구도시 산탄데르(Santander)까지 400㎞를 뚫어 국내산 밀의 반출은 물론 식민지로부터 수탈한 물품을 스페인 내륙으로 들여오는 루트로도 활용할 계획이었으나 예산부족과 산악지형 난공사 등으로 사업을 축소했다.

카스티야 운하. 지금은 관개시설과 생태보전지역, 관광루트 등으로 활용된다.

무엇보다 철도의 등장이 운하 사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지금이었다면 카스티야 운하 건설을 결정했던 정권은 앞을 내다보지 못한 무능에 중죄인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스페인이 운하사업을 결정했던 비슷한 시기인 1765년 와트는 증기기관을 완성했다. 이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영국의 스티븐슨은 1825년 세계 최초로 철로에서 증기 기관차를 운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신흥강국 미국은 1850년대 5개의 동서횡단철도를 개통했다. 스페인의 운하사업은 증기기관차 등장에 100년 가까이 흘린 땀방울이 일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증기기관차 한방에 훅 간 운하 건설

카스티야 운하 안내판.

공교롭게도 현재 운행 중인 철도는 카스티야 운하와 피수에르가 강변을 따라 건설됐다. 운하는 19세기 중후반 20-30년간 스페인의 주요 운송루트로 활용됐으나 금세 내연기관차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국가의 백년대계가 20년의 일장춘몽으로 끝장난 것이다.

전 세계를 주름잡았던 스페인은 카스티야 운하를 건설할 당시 영국, 프랑스 등의 열강에 밀려 국운이 쇠하던 중이었다. 국력이 무너질 땐 걷잡을 수 없는 모양이다.

카스티야 운하는 물류기능이 사라지고 1991년에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지금은 관개시설과 생태보호지역, 관광자원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프로미스타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자전거 순례자.

우리는 카스티야 운하 옆마을인 레케나 데 캄포스(Requena de Campos)를 지나 농로를 타고 프로미스타에 도착했다. 도보순례자라면 5㎞정도 카스티야 운하 둑길을 따라 프로미스타까지 도달할 수 있다.

프로미스타 노천카페에서 피자와 볶음밥으로 점심을 하고 곧바로 카리온을 향해 출발했다. 카리온까지 코스는 도보순례자와 함께 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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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 2018-04-13 20:13:50
운하 vs 증기기관차. 흥미로운 역사네요.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나올때 마다 그랬지만 그 당시 스페인 사람들이 믿기 어려웠겠죠 아마도 . 현재도 AI가 가져올 새상을 잘 이해 못 하는 것처럼 .

kusenb 2018-04-09 14:42:17
이번 주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조용만 2018-04-09 14:30:15
스페인 대운하의 일장춘목
잘 보고 갑니다..^^

진교영 2018-04-09 12:01:03
이번 한주도 산티아고 순례기로 시작합니다
홧팅 입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4대갱 사업으로 우리 국만이 얻은것과 잃은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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