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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혁신학교 소담초가 건네는 소소한 기록[소담초에세이] 에세이 쓰는 법에 대하여1

에필로그의 프롤로그

     소담초 유우석 교사.

결국 책을 냈다. 지난 일년 전 학교게시판에 소담 에세이 게시판을 만들고 돌아가며 채우다 아예 소담 에세이 팀을 꾸렸다. 바쁜 연말에도 저녁이 되면 학년 연구실에서, 회의실에서, 카페에서 종종 모였다. 시도 때도 없이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서로에게 건네는 칭찬과 격려 그리고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의 공유는 모두 완주하는 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글을 썼고 팀이 되었다.

이 글은 에세이를 쓰는 과정, 그 과정속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담았다. 이를 테면 소담에세이의 에필로그 쯤 되겠다. 또한 에필로그 또한 긴 글이 되기에 프롤로그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글은 에필로의 프롤로그쯤 되겠다. 

3월 출간된 소담 에세이. 책 '어쩌다 혁신학교' 표지

#1. 팀을 구성하다.

2017학년도 학교교육과정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제 네 번째다. 그래도 세 번째까지는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2017학년도 교육과정은 갑작스럽게 담당하게 되었다. 게다가 세 번째 교육과정을 담당한 지 3년도 넘었으니 감도 잃었다. 그러나 학교교육과정은 맡는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다.

먼저 2016학년도 소담초등학교 교육과정과 인근 학교의 교육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덮었다. 아쉬웠다. 내가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은 아니었다. 좀 더 말랑말랑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욕심이지만 말랑말랑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았으면.

그러다 어느 학교의 교육과정을 구하게 되었다.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홈페이지에 공개 자료실에 올라와 있었으니까. 두껍지도 않아 출력을 해서 한 장씩 넘겼다. 읽다가 궁금하여 다시 앞으로 넘겨 읽기도 했다. 그 곳에는 학교 구성원이 어떤 논의를 했는지, 논의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과정을 읽을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논의 과정이 들어가 있지 않았으나 얼마나 진지한 논의 과정이 있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물음에 대해 공동으로 답을 찾아가고 흔적들이 보였다. 등줄기가 오싹했다. 그 곳에서 학교를 발견했다. 그 학교는 남한산 초등학교였다. 얼마나 엎어지고 깨졌을까.

지난 시간 동안, 치열한 삶 속에서 도전, 실패, 좌절, 갈등, 성공, 다시 좌절, 갈등, 다시 도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긴 시간을 과정을 한 권의 교육과정으로 읽어보다니. 교육과정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다니. 이것이 협의의 힘이고 기록의 힘이었다. 이것이 필요했다.

교사들은 대단히 도덕적인 사람들이다. 우습게도 이것은 대단히 큰 공백을 만들어낸다. 교사로 됨과 동시에 도덕적이라는 것이다.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교사니까 당연히. 그래서 늘 옳은 말을 하지만 교육의 철학과 방향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 교사니까. 교사 열 명 중 최소 아홉은 스스로 아이들을 위하는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본인의 말이 아니라 실천이고 기록이다.

나는 에세이를 생각했다. 처음부터 에세이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당시 ‘소담소통이’라는 프로그램이 학교에 들어왔다. 인근학교의 프로그램을 들여온 것이다. 소담소통이는 학교의 자료를 축적할 수 있고, 회람, 연수번호 등록, 학교 일정 안내 등이 가능한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에 에세이를 쓸 수 있는 게시판을 만들어달라고 한 것이다. 에세이 게시판이 죽고 사는 건 우리의 몫이었다.

에세이는 삶을 기록하는 것이다. 가볍게. 그러나 평범한 일상 속에 위해단 진리가 숨어 있는 법. 나는 그것을 믿었다.

5월 초, 긴 연휴 중 이틀을 투자하여 학교의 일상을 적었다. 시간의 흐름대로 있었던 일을 가볍게 써 내려갔다. 그리고 학년을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여백을 만들고 학년으로 넘겼다. 그러나 지지부진했다. 그럴 것이라 예상을 했지만. 지지부진한 것은 누구의 책임이 아니다. 우리는 늘 그랬다. 보고서는 밤을 새워 쓰더라도 이러한 글은 순위가 늘 뒤로 밀렸다. 오히려 지지부진함 속에서도 그 내용을 채우려고 애쓰는 모습이 반가웠다. 그렇지. 이것이 가능성이지.

11월이 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에세이를 책으로 묶을 생각을 했다. 공식 출판으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작업이 필요했다.

먼저 교육청에 제안했다. 교육청은 ‘주요업무계획’이라고 일 년의 계획을 세운다. 그 안에 혁신학교라는 사업이 있으며, 혁신학교 안에 ‘현장실천자료집 제작 및 배포’를 한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래서 혁신학교 담당자에게 그 얘길 하며 학교에서 혁신학교 1년의 기록을 에세이로 낼 테니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온책읽기 연구회원 중심으로 제안했다. 우리의 기록을 책으로 묶어내자고. 책을 쓴다는 자체가 부담이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에게 당장 답을 듣고자 하지 않았다. 먼저 던져 놓은 다음 지나가듯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렇게 아홉 명이 모였다. 그리고 학부모 두 분에게 부탁하여 소담 에세이팀 열 한명이 만들어졌다.

#2. 소담에세이팀 1차 회의를 하다.

2017년 12월 7일, 장소는 학교 근방 커피숍이었다.

잘 진행이 될 것이다. 그래도 몇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첫 번째가 처음에 힘을 얻어야 되는데 그 힘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 위기가 올 텐데, 짐작컨대 그 위기가 누군가가 그만 둔다고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아홉이라 되는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마무리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걱정일 뿐 에세이팀은 훌륭했다. 위기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넘겼다는 것이다.

집필 기획안.

주어진 시간은 짧았다. 시간이 짧다는 것은 휘몰아칠 수도, 아예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열 명이 넘는 집필진을 구성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성공 여부를 떠나 일회성 모임이 아니라 몇 번의 모임이 계속 될 테고. 책임져야 되는 일이 생길 텐데. 게다가 글을 쓰는 일인데.첫 모임에서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얼마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였다. 대단히(?) 순조로웠다.

인근 커피숍 집필 회의.

#3. 글을 쓰다.

글을 쓴다는 일은 대단히 평범하다. 평범하지만 그 안에는 그 사람이 들어가 있다. 사람은 만만하지 않은 존재이므로 글이라는 평범함 속에 스스로를 집어넣어 만만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글을 쓰는 일은 대단히 용기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나를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남에게 무엇을 드러내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 삶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학교 이야기로 이어지는 글을 쓰자고 제안했다. 무슨 얘기를 할지 구성을 하는 간단한 마인드맵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내 얘기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최소한의 이정표 같은 것이다.

나는 첫 머리에 아버지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학창 시절 이야기와 교사가 된 후, 그리고 소담초의 이야기를 쓸 생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아버지 이야기는 나중에 뺄 생각이었다. 개인의 삶은 누구나 구구절절하다. 내 삶은 다른 삶과 비교하기 힘들기 때문에 내 삶은 누구의 삶보다 구구절절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러해야 한다. 즉 이 말은 같은 팀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기엔 충분한 소재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에겐 삼류 인생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완벽히 빼진 못했다. 아마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분명 뺐을 것이다.

두 번째 모임부터 글이 나오기 시작했다. 에세이 모임에서도 얘기했지만 이렇게 글이 빨리 나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마감이 워낙에 촉박해서 혹은 교사이기 때문에. 혹은 일을 되게 하려는 적극적 조력자의 힘이거나.

에세이 팀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한 달이다.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책임감이 강한 교사로서 특별한 책임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회의록.

2차 회의가 끝나고 회의록이 올라왔다. 회의록이 올라오는 것은 마치 수업이 끝났으나 수업의 잔상이 남아 있음을 알리는 것과 같다. 나는 이런 것을 동력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동력은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3차 회의가 끝난 주말에는 카페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노트북을 쓰는 모습들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러한 자료들을 모아 티저 영상이 만들어졌고, 새벽에도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마감 시간에 몰려 벼락치기 글을 쓰기도 했고, 좀 더 글쓰기 연습을 통해 다음으로 미루었으면 하는 바람도 다른 사람들의 격려 지지에 밀려 포기마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우리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묶인 원고는 총 1300매가 되었다. 그대로 책으로 묶어낼 경우 400쪽 가까운 분량이었다. <계속>

유우석  webmaster@www.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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