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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오랜 역사가 있다 ‘삼버들 작은도서관’[인터뷰] 전 세종시 부강면장 이규상·육경애 부부
전 부강면장 이규상 씨와 그의 아내 육경애 씨가 지난해 12월 개관한 삼버들 도서관 전경.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어두운 저녁 골목 어귀, 지붕 위에 솟은 별과 달이 새벽까지 마을을 밝힌다. 지난해 세종시 부강면에 생긴 작은 도서관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 부강면장 부부가 주민들을 맞이한다.

적어도 50대 이상의 토박이 주민들은 모두 안다. 도서관 이름인 ‘삼버들’은 지금은 없어진 동네 이름이다. 과거 이곳은 세 그루의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있는 삼버들 마을로 불렸다.

이규상(58)·육경애(60) 부부는 정년퇴임 후 전 부강면장이었던 남편의 고향에 작은 도서관을 개관했다. 지난해 5월부터 짓기 시작한 이곳은 같은해 12월 문을 열었다.

지난 8일 작은 책방 같기도 한 이곳을 직접 찾았다. 이제는 부부 도서관장이 된 두 사람을 만나 삼버들 작은 도서관에 대해 들어봤다.

고향 집터에 지은 도서관, 퇴임 후 제2의 삶

삼버들 도서관장 (왼쪽부터) 육경애·이규상 씨.

이규상 관장은 지난 2016년 12월 34년 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퇴임했다. 2009년 부강면장으로 부임한 이후 오창읍장을 거쳐 청주시청에서 근무했다.

그가 부강면장이던 시기는 부강면(과거 부용면)이 세종시에 편입되느냐를 두고 논쟁이 분분했을 때다. 주민들이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져 옥신각신 하던 때, 그는 그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부인 육경애 관장은 충북교육청 사서, 증평도서관 관장, 괴산도서관장, 보은도서관장, 진천도서관장을 지냈다. 도서관에서만 38년 일해 온 베테랑이다. 퇴임 후 부부가 작은 도서관 운영을 결정한 데에는 부인의 영향이 컸다.

이규상 관장은 “부강이 고향이고, 또 도서관 자리는 과거 집 터이기도 하다”며 “마을에 문화 인프라가 많이 부족해 아이들은 공부방으로, 주민들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이 되길 원한다”고 했다.

개관 후 이곳은 실제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재나 사학 관련 도서, 고서(古書) 등을 찾아 대학교수나 인근 충북대 대학원생이 방문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세종시 마을공동체 공모사업에 선정, 내달부터 ‘독서마라톤’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청소년과 실버세대,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독서·공예 공간으로도 새 출발을 앞두고 있다.

운영 시간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지역 주민을 위한 소모임 장소로도 대여하고 있다.

모르는 것이 없는 부강 ‘향토사학자’

전 부강면장이었던 이규상 관장이 도서관 한 쪽에 비치된 자신의 집필 책, 부강 역사 관련 서적을 설명하고 있다. 이 관장은 지역 인물사, 산성 등을 오래 연구한 지역 향토사학자로 불린다.

현재 도서관이 보유한 장서는 3000여 권에 이른다. 역사, 문화재, 종교, 문학, 여행, 어린이 도서는 분야별로 가지런히 정리돼있다. 쉽게 구하기 어려운 문화재 실측보고서 등 전문서적도 많다. 한 쪽 책장에 꽂혀있는 지역 역사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그가 부강면장으로 근무하면서 집필한 도서, 연구·논문 관련 서적들이다.

이규상 관장은 이 지역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향토사학자로 불린다. 한국전쟁 당시 백마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종오 장군, 지난해 영화 박열의 연인으로 주목받은 가네코 후미코 등 지역 인물사에도 박식하다.

이 관장은 “1985년 청원군청 9급 공무원 시절부터 향토사협의회에서 계속 연구해왔기 때문에 지역 역사는 소상히 잘 알고 있다”며 “다른 사람이 듣고 흘릴 이야기도 꼭 정리해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보니 그렇다”고 했다.

1994년 부강면 남성골산성을 처음 발굴해 문화재 지정에 큰 역할을 한 것도 바로 그다.

부강 남성골산성은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고구려 관방유적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구들을 갖춘 주거시설과 고구려계 토기를 굽던 가마터 등이 발견돼 산성이 군사 기능 외에 주거 기능까지 겸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고구려가 이곳 금강 유역까지 안정적인 지배권을 행사했다는 역사를 뒷받침 하는 자료다.

이 산성은 2003년 9월 26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30호 ‘청원 남성골산성’으로 지정됐다가 2012년 12월 31일 세종시 기념물 제9호 ‘부강 남성골산성’으로 재지정됐다.

이 관장은 “부강은 목책성, 토성, 석성 등 다양한 형태의 산성이 10개나 있는 세계에 유래 없는 곳”이라며 “금호리 강 건너에 있는 개소문산성은 문화재로 지정돼있는데, 이 역시 부강지역이 고구려, 신라, 백제문화의 접경지였다고 볼 수 있는 증거”라고 했다.

박열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도 여기 살았다

지난해 영화 박열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가네코 후미코는 조선 생활 7년을 부강면에서 보냈다. 사진은 그가 연구한 관련 자료.

18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박열 선생. 그의 파란만장한 항일투쟁 역사는 지난해 영화 ‘박열’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흥행 이후 그의 연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도 큰 주목을 받았다.

영화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7년간의 조선 생활을 이야기한다. 그의 옥중 수기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의 배경이 바로 세종시 부강면이다.

최근 가네코 후미코를 중심으로 한 영화 제작 움직임이 생겨나면서 제작사 측에서도 이곳 삼버들도서관을 방문했다. 가네코 후미코가 현재 부강초의 전신인 심상소학교를 다니고, 어느 산으로 밤을 주우러 다녔는지까지. 7년 간의 삶을 소상히 아는 사람도 바로 이 관장이다.

그는 “가네코 후미코에 관한 기록은 집 토지대장부터 다녔던 학교 지적도까지 다양한 자료를 수집해왔다”며 “영화에서는 일본으로 넘어가 재판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뤘지만, 그 이전 조선에서의 삶은 모두 부강이 배경”이라고 했다.

부부는 향후 작은도서관에서 독서 프로그램, 그림책 원화 전시, 실물 조선 기와 전시, 도예체험, 은공예 체험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곳 고향에서 반연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아들 이종화(33)씨가 운영을 도울 예정.

윤경애 관장은 “독서와 연계한 다양한 예술 체험을 기획하고 있다”며 “날씨가 풀리면 도자기 체험도 하고, 청소년과 실버세대, 주민들이 한 데 어울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장은 최근 세종향토사연구소 전문위원으로 위촉됐다. 부강이 세종시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고향에서 관련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다녀라’. 유명한 독서 명언을 몸으로 실천해 온 그가 고향의 작은 도서관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한다.

삼버들도서관 내부 전경. 문화재, 종교, 건축, 역사, 문학, 어린이, 여행 책이 분야별로 비치돼있다.
이 관장이 보유하고 있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족보. 때때로 고서를 필요로 하는 교수와 대학원생도 이 도서관을 찾는다고 한다.

 

한지혜 기자  wisdo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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