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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 굶주린 과부’ 옴팔레에 팔린 헤라클레스[박한표의 그리스로마신화 읽기] <25-13>이피토스와의 슬픈 인연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 문학박사

열두 가지 미션을 마치고 헤라클레스는 테베에 머문다. 그 때 귀에 솔깃한 소식을 듣는다. 오이칼리아의 왕 에우리토스가 활쏘기의 맞수를 찾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기를 이기는 명궁이 있으면 딸을 주겠다는 것이다. 당시 헤라클레스는 홀몸이었다.

헤라클레스에게 활쏘기를 가르쳐 준 스승의 이름도 에우리토스다. 그는 활은 잘 쏘았어도 겸손하지는 못했던 같다. 활의 신 아폴론에게 감히 도전했다가 아폴론의 화살에 맞아 죽었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가 아내 페넬로페를 괴롭히던 구혼자들을 쏘아 죽인 활이 바로 에우리토스의 활이었다.

스승과 이름이 같은 오이칼리아의 왕 에우리토스가 활쏘기 시합을 해서 이긴 자에게 자신의 딸 이올레를 주겠다는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승부에서 당당히 이겼지만 오이칼리아의 왕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헤라클레스가 후에 오이칼리아를 쳐들어가 모두를 죽이고 얻어 온 전리품이 이올레였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질투로 헤라클레스는 최후를 맡게 된다.

아우게이아스 왕이 외양간 치운 값을 치루지 않자 아버지의 신의 없음을 면전에서 탄핵한 필레우스처럼, 에우리토스에게도 아들 이피토스가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이 에우리토스의 왕을 단단히 벼르면서 빈손으로 티린스 성으로 내려가 있었다. 이 성은 헤라클레스가 열 가지 미션을 완수할 동안 머문 곳이기도 하다.

어느 날, 에우리토스의 아들 이피토스가 헤라클레스를 찾아왔다. 헤라클레스가 떠난 뒤 소를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도둑질과 말장난의 명수인 헤르메스의 아들 아우톨리코스가 범인이었다.

그는 씨름에 능해서 한 때 헤라클레스에게 씨름과 술 먹기, 여자를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어쨌든 그 소들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하고, 헤라클레스는 이피토스를 대접하기 위해 티린스 성벽 위에서 술잔치를 벌였다. 그런데 헤라클레스가 술에 취해 이피토스를 성벽 아래로 떨어져 죽게 했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프랑수아 르무안, 캔버스에 유채, 184×149㎝, 1724년, 루브르박물관(프랑스 파리)

헤라클레스는 이피토스를 죽인 죄를 씻기 위해 필로스 왕 넬레우스를 찾아가 종으로 부려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다. 넬레우스는 이피토스의 아버지 에우리토스의 절친이다.

헤라클레스는 대신 아미클라이의 왕 데이포보스 밑에서 종살이를 했다. 하지만 죄를 씻을 수 없어 이름 모를 병으로 앓았다. 그래서 델포이를 찾아가 죄 씻을 방도를 묻는다. 그때 헤라클레스와 아폴론이 한바탕 싸움을 벌일 뻔 했지만 제우스의 중재로 신탁을 받을 수 있었다.

델포이의 여 사제 피티아는 아폴론의 신전을 욕되게 한 죄로 다음과 같은 신탁을 전해주었다. “때가 되어 누가 너를 금 3 탈란톤에 팔아 3년 동안 종살이를 시키거든 그것이 내가 매기는 값인 줄 알아라.”

헤라클레스는 몸값을 지불했다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헤르메스가 리디아 왕국의 옴팔레 여왕에게 헤라클레스를 팔았다. ‘옴팔레’는 ‘배꼽’이라는 뜻이나 배 한가운데 있는 ‘배꼽’만을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는 ‘대지의 중심’, ‘세계의 축’, ‘근원’ 등을 싸잡아 가리키는 말이다.

옴팔레는 과부로 매우 음란했다. 헤르메스가 남자에 굶주린 과부에게 판 것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옴팔레의 궁전에서 신나게 놀았다. 특히 여장하고, 여종들과 신나게 놀았다. 과부 안주인과 천하장사 머슴의 꼴이었다.

그렇지만 옴팔레 여왕의 궁전에서 종살이를 할 때의 헤라클레스는 ‘근원’으로 되돌아가 남성과 여성, 미움과 사랑, 삶과 죽음같이 서로 상극하는 관념과의 화해를 시도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헤라클레스는 옴팔레 왕궁에 머물고 있을 때 재미난 일들을 많이 겪는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프랑수아 부셰, 캔버스에 유채, 90×74㎝, 1735년, 푸시킨미술관(러시아 모스크바)

첫 번째가 케르코페스라는 종족과 얽힌 이야기다. 헤라클레스가 소아시아의 에페소스에서 겪은 일이다.

에페소스에는 케르코페스라는 종족이 있었다. 다른 데는 다 검은데 유독 엉덩이만 붉은 이 종족은 남의 흉내 내기를 좋아하고, 실제로 흉내를 잘 내었다. 이들 중에 유독 장난이 심하고, 좀도둑질을 좋아해서 멀리까지 원정을 다니는 형제가 있었다.

이 형제의 어머니는 좀도둑질을 나갈 때마다 타일렀다. “멜람피고스(엉덩이가 검은 자)를 조심해야 한다.”

어느 날, 이 형제가 헤라클레스의 올리브 몽둥이를 훔치려 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의 올리브 나무 몽둥이가 너무 무거워서 들 수가 없자, 이 형제는 몽둥이를 질질 끌었다. 그 바람에 헤라클레스에게 잡히고 말았다.

헤라클레스가 이 형제를 몽둥이 양쪽에 하나씩 거꾸로 매단 채 산을 내려오는데, 몽둥이 뒤쪽에 매달려 있던 녀석이 큰소리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멜람피고스를 조심하라고 하시기에 세상에 ‘엉덩이가 검은 자’가 어디에 있겠느냐 싶더니 오늘 당신을 보니까 털이 나서 엉덩이가 새까맣소.”

앞에 매달려 있는 녀석도 웃어대기 시작했다. “엉덩이만 털이 나서 시커먼 게 아니고 사타구니도 시커멓소.” 이 말을 듣고 헤라클레스는 주저앉아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후 그 형제를 풀어주었다. 웃음은 죄를 씻어준다. 뒷날 제우스가 자신의 아들 헤라클레스를 웃김으로써 죄를 닦아준 공을 잊지 않고 이 둘을 바다 한가운데에 섬으로 박아주었다. 그 섬 이름이 ‘피테쿠사이(원숭이의 섬)’다.

두 번째는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의 이야기다. 헤라클레스가 하늘에서 떨어진 이카로스를 묻어준 에피소드다.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아들 이카로스가 미궁에 갇히게 됐다. 크레타의 미노스 왕이 미궁을 만들어 달라고 다이달로스에게 부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미궁에서 빠져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대신 너와 네 아들을 미궁에 가두겠다.”

그런데 영웅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가 건네준 실타래의 도움으로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로스를 제거하고 미궁을 빠져 나온다. 다이달로스와 아들 이카로스가 대신 미궁에 갇힌 이유다. 이 미궁을 빠져나올 방법은 단 하나, 하늘을 날아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손재주 좋은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을 모으고 이것을 밀랍으로 붙여 날개를 두 벌 만들었다. 하나는 자기 것, 또 하나는 아들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너무 높게 날면 햇볕에 밀랍이 녹을 것이니 조심하라고 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이 날개를 달고 미궁의 벽 위에서 뛰어내렸다.

날개는 바람의 도움을 받아 이 부자를 공중으로 날려주었다. 일단 날기 시작하자, 아들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말을 잊고 자꾸만 위로 날아올랐다. 밀랍은 당연히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녹기 시작했다. 밀랍이 녹자 날개는 더 이상 날개 구실을 하지 못했다. 이카로스는 바다 위로 떨어졌다. 이카로스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어준 사람이 바로 헤라클레스다.

‘힐라스와 요정들’ 프란체스코 푸리니, 캔버스에 유채, 230×261㎝, 1635년경, 피티 궁전(이탈리아 피렌체)

마지막은 아르고 원정대에 참여하면서 겪은 이야기다.

헤라클레스는 아르고나우타이에서 이탈한다. 아르고 호를 타고 황금으로 된 양 가죽을 찾으러 북방의 콜키스 땅으로 간 해양대원들(55명)을 ‘아르고나우타이’라고 한다.

원정 대장은 이올코스의 왕자 이아손이었다. 헤라클레스가 아르고 호에 승선한 것도 옴팔레 여왕 밑에서 종살이를 통해 죄를 닦고 있을 때였다. 테세우스의 제안에 헤라클레스가 동의한 것 같다. 55명의 대원중에는 테세우스를 비롯하여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 오르페우스, 어찌나 발이 빠른지 달리다가 하늘을 붕 날아오를 수도 있는 칼라이스와 제토스, ‘천리안’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린케우스, 여걸 아탈란테도 대원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어린 소년 힐라스를 동반했다. 수상할 것 없다. 어른에게는 소년의 정신적 스승(멘토)이 되어, 자신이 배우고 몸에 익힌 것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고 헬라스 남성들은 믿었다. 이 풍습은 ‘파이도필리아(소년 사랑)’라고 불렸다.

아르고 대원들은 물을 찾아 한 섬에 잠시 상륙했다. 대원들은 제각기 항아리를 하나씩 들고 샘을 찾아 산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다른 대원들은 모두 물을 길어 내려와 기다리는데도 힐라스만은 소식이 없었다. 샘의 요정이 힐라스를 채어간 것이다.

이아손 일행은 결국 행방불명이 된 힐라스와, 힐라스 때문에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헤라클레스를 그 땅에 남겨두고 동북쪽을 향해 떠나야 했다.

박한표  webmaster@www.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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