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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달린 자전거 '차라리 경찰차 와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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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달린 자전거 '차라리 경찰차 와줬으면'
  • 김형규
  • 승인 2018.02.12 11:11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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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10>모든 길은 통한다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하는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스페인 고속도로(자동차전용도로)는 ‘A-’로 시작된다. ‘LO 20’은 외곽순환도로로 자동차전용도로쯤으로 이해된다. <구글 스트리트뷰 캡처>
자전거가 통행가능한 도로는 회전교차로 12시방향 ‘NA 134’도로인데 고속도로인 9시 방향으로 진입했다. <구글스트리트뷰 캡처>
‘A12’ ‘LO20’도로는 자전거, 보행자, 우마차, 농기계 진입금지 표지판이 세워져있다. <구글스트리트뷰 캡처>

에스테야에서 로스 아르코스까지는 ‘A 12’번 도로 옆을 평행으로 달리는 111번 소 도로를 따라 안정되게 갈 수 있었다. 스페인에선 도로명이 ‘A’로 시작되면 고속도로다. 오토바이는 달릴 수 있지만 자전거는 들어갈 수 없다.

동서로 가로놓인 ‘A12’번의 별칭은 ‘산티아고 순례길 자동차전용도로(Autovia del Camino de Santiago)’이다. 산티아고로 가는 랜드마크여서 옆에 두고 달리면 마음이 놓이지만 늘 같이 가는 건 아니다. 로스 아르코스에 다다르자 우리가 달리는 111번 도로는 ‘A12’와 멀어졌다. 여기서부터는 자력으로 길을 찾아가야 한다. 111번 도로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

로스 아르코스를 지나 한적한 길을 무난하게 통과하는가 싶었다. 산솔(Sansol)마을을 거쳐 토레스 델 리오(Torres Del Río)마을을 빠져나가는 와중에 111번 도로를 잃고 말았다. 111번 도로를 찾기 위해 주변 농로까지 뒤졌으나 허사였다. 길을 물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도로표지판을 찾기 위해 그 지점에서 벗어났다.

갈림길에서 로그로뇨 표지판을 따라 달리다보니 111번 도로가 아닌 NA6310번 도로다. 111번도로는 산티아고를 향해 서쪽방향으로 나 있는데 6310번 도로는 남쪽방향이다. 또 한 번 먼 길로 돌아가야 하는 고행 길에 들어선 것이다.

로그로뇨 마지막 빨간 부분이 고속도로로 달린 구간.

아들이 불안한 듯 “이 길이 맞느냐”고 묻고 또 물었다.
“가다보면 나오겠지. 일단 가보자.”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스페인 시골에선 스마트폰 심칩이 먹히질 않으니 지도가 뜨질 않는다. 산티아고로 가는 지름길은 고사하고 비슷한 길도 아니고 계획된 길은 더더욱 아니다. 혼란의 연속이다. 외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마저 안 된다.

영화 ‘나의 산티아고’에서 주인공 ‘하페’는 도보순례 초반의 고행과 발의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남몰래 버스를 타고 한 구간을 건너뛴다. 버스가 도보순례자들 옆을 지나칠 때면 차창 너머로 자신을 들킬까봐 얼굴을 숨긴다.
 
6310번 도로 주변은 오전에 길을 헤맸던 환경보다 삭막했다. 마치 미국 서부영화에 나오는 황무지를 달리는 듯했다. 중간 중간 올리브와 포도 농장이 펼쳐지는 것을 제외하면 습지나 실개천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지름길인가, 혼돈의 우회로인가

로그로뇨 초입 카페에서 일행을 기다리면서 시원한 물과 맥주로 체열을 식혔다.
이날 하루 뙤약볕에 그을린 얼굴. 자외선을 차단한 헬멧의 경계선이 뚜렷하다.
하루 11시간에 걸친 강행군으로 아들은 거의 탈진상태에 빠졌다. 자전거 복장에 땀 소금이 밀가루처럼 허옇게 달라붙었다.

라사구리아(Lazagurría)까지 내려가 NA1120번 도로로 갈아타고 3㎞를 더 내려가 로그로뇨로 연결되는 간선도로를 겨우 만났다. 산티아고 코스인 111번 도로와 로그로뇨 간선도로는 남북으로 무려 10㎞나 떨어져 있었다. 시간은 벌써 저녁 7시를 지나갔다.

남은 물을 목구멍에 털어 넣고 서쪽방향만 보고 달렸다. 로그로뇨까지 남은 거리는 15㎞ 남짓. 간선도로에 들어서자 제법 민가가 나타났다.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스페인 자전거라이더에게 손가락을 가리키며 ‘로그로뇨!’를 외치니 고개를 끄덕인다. 직선으로 뻗은 간선도로만 따라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차츰 민가와 상업시설이 많아지자 도시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5㎞쯤 남겨뒀을 때 도로구조가 복잡해지더니 회전교차로에서 12시 방향과 9시 방향 도로 모두 로그로뇨행이다. 선택의 연속이다.

잠깐 고민하다 9시 방향을 택했다. 큰 길이니 짧을 거라 판단했지만 자전거는 출입이 안 되는 ‘A 12’번 고속도로와 ‘LO 20’자동차전용순환도로로 직행하는 통로였다. 바닥난 체력에 정신까지 흐트러졌다. 정신력이 신체(체력)를 지배한다는 말은 차츰 허투루 들리는 연배인가보다.

로그로뇨를 출발하는 다음날 아침 파이팅을 다짐하고 있다.
멋진남님이 다리근육에 테이핑을 하고 있다.

스페인을 갈 땐 (유료)도로 종류와 도로표지판, 회전교차로와 로터리의 차이, 주차방법 및 요금정산 방법에 대해 미리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에서도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나와 있질 않아 아쉽다.

영어권이 아닌 에스파냐어권이라는 점도 이해를 가로막는다. 우리는 투어가이드에 기댔지만 그 역시 잘 알지 못했다. 과거에 한 번 와본 경험에 의지했지만 현지 노하우가 일천했다.

렌터카로 마드리드-바르셀로나-생장으로 이동할 때 유료도로 입구가 느닷없이 나타나 당황했다. 같은 고속도로(자동차전용도로)라 하더라도 요금을 내는 구간은 별도로 지정돼 있는 듯하다. 유료도로 정산방법도 이방인에겐 낯설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는 어디서나 톨게이트라는 관문이 보행자나 자전거, 오토바이 등을 통제하지만 스페인은 그때그때 다르다.

혼돈 속에 자전거를 타고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아찔한 상황에 직면했다.

때론 거침없이 고속도로 직행

로그로뇨 시내 자전거전용도로.
로그로뇨 시내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아나서는 서양 라이더를 만났다.

스페인도 고속도로라면 톨게이트가 있을 테고 그 때 길을 물을 요량이었는데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다. 길이 꼬였다는 걸 깨달았을 땐 고속도로에 진입한지 꽤 지난 시간이었다. 되돌아갈까 후회됐지만 이미 늦었다.

뒤따라오는 아들에게 길을 잘못 들었으니 ‘되돌아가자’고 말할 면목이 서질 않았다. 돌아가더라도 또다시 길을 헤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질 않은가. 몇몇 차량이 외줄타기를 하듯 자전거로 갓길을 달리는 우리에게 경적을 쏘아댔다.

차라리 경찰차가 달려와 주길 바랐다. 그들의 지도편달과 보호에 우리를 맡기고 싶었다. 왕복 6차선의 도로에서 규정 속도 120㎞이상 달리는 차량이 때리는 돌풍과 굉음이 가뜩이나 힘든 라이딩을 더욱 위축시켰다.

가슴 졸여가며 5㎞쯤 달린 뒤에야 로터리를 통해 고속도로의 살벌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첫 번째 보이는 외곽 도로변 카페에 자리를 잡고 지원차량에 위치를 전송했다. 저녁 8시였다. 오늘 라이딩은 여기서 마치기로 했다.

오전 9시 팜플로나를 출발해 11시간 동안 115㎞를 달려 도착한 지점이다. 당초 목표했던 나제라까지는 25㎞를 더 가야한다. 길을 헤매지 않았다면 3시간은 단축할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이틀 만에 산티아고길 전체 800㎞ 가운데 200㎞를 달려온 것으로 위안 삼았다.

로그로뇨는 외곽에 물류창고와 공장이 많은 도시였다. 우리가 머문 카페는 고속도로 주변이라 화물차량 기사들이 식사 겸 숙박을 위해 주로 찾았다. 혹시나 기대했던 산티아고 순례자 인증스탬프도 없었다.

아들은 앉자마자 물과 맥주를 시켜 끊임없이 들이켰다. 저녁을 먹고 땀에 전 옷을 세탁했다. 모텔 급 좁은 숙소여서 빨래를 말릴 만한 공간이 없었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일제 36년 정체‧창의성 단절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려주는 가리비문양의 도료표지.
순례자 배낭에 매단 가리비 껍데기.

몸은 녹초였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투어가이드로부터 길 안내를 제대로 받지 못한 점도 있지만 출발부터 허둥지둥한 하루였다. 앞으로도 험난한 길 찾기를 계속해야 하는지 한숨이 나왔다.
 
우리 세대는 초등학교 때부터 제식훈련을 받았다. 체육시간이면 ‘좌향좌’, ‘우향우’, ‘뒤로돌아가’는 방법을 살벌한 분위기속에서 몸으로 배웠다. 강단에 선 상당수 선생님들은 겉으론 일본을 욕하면서도 은연중 일본식 교육의 우월성을 드러냈다. 튀는 아이들은 눌러버렸다.

요즘은 제도권교육에 대한 회의감이 늘어나면서 기존 코스를 이탈해 각자 품은 뜻을 향해 약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다양성과 창의성 문제다. 제도권과 비 제도권 중에 어느 길이 나은 지는 단정할 수 없다. 힘들고 돌아가더라도 꾸준히 전문가의 길을 연마하겠다는 의도는 비슷한 것 같다.

최근 미국 NBC 방송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중계하는 도중 망언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해방 이후 70년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군사독재의 혼란기를 겪으면서도 뜨거운 교육열과 전후 2-3세대의 창의력을 앞세워 단기간에 많은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종전에는 국가가 거의 모든 걸 주도했다면 요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 개인적인 두각을 나타낸다. 일제 강점기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36년을 앞당긴 1980-90년도부터 박세리 김연아 박태환 손흥민 정현 같은 걸출한 영웅과 독특한 한류문화, 세계를 선도하는 4차 산업‧IT기업을 거느렸을 거란 얘기다.

산티아고 순례자들은 대게 빨간 십자가가 그려진 가리비 껍데기를 배낭에 매달고 길을 나선다. 산티아고 도로표지 마크가 가리비 문양이다. 산티아고순례길은 프랑스에서 출발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가리비 문양처럼 도처에서 출발해 최종목적지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모인다.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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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만 2018-02-12 14:32:05
험난한 순례자의 길
라이딩 잘 보고있습니다
남은 코스도 무탈하길
기원합니다..^^

떠나볼까 2018-02-12 13:58:18
공감합니다~ 얼마나 고된 시간이었을까 사진이 보여주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Jerry 2018-02-12 19:14:26
길 잘 못 든 고속도로에서 차라리 경찰차가 오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심정이 참 와 닿네요 ^^.
그래도 그 어려움 결국 해결하셨다는게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요,
잘 읽고 갑니다 ~~

메이비 2018-02-12 14:40:51
스페인 제일 가보고 싶은곳 ~~
잘 읽고 갑니다

수니주니 2018-02-12 16:58:18
쉽지않은 시도입니다~멋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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