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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 큰 별 윤조병 작가가 그리워한 고향, 조치원[인터뷰] 임동천 시인
고(故) 윤조병 선생과 동인활동을 해 온 임동천 시인.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지난해 10월, 대한민국 대표 희곡작가 윤조병 선생이 향년 78세로 타계했다. 그의 고향 세종시 후배 문인들과 아들 윤시중 씨는 고인의 바람대로 한 달 뒤 고향에서 그의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계승자로 평가받았던 고(故) 윤조병 선생. 올해부터는 그를 기억하는 문화제가 세종시 조치원에서 열린다.

세종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 세종민예총) 이사이자 연기면 수산리 출신 임동천(59) 시인이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시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아픔에 익숙한 월요일>, <수산리 사람들>을 펴낸 시인이다.

연기면 수산리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임 시인을 만났다. 그가 기억하는 윤조병 선생, 그리고 그의 작품 속 배경이 된 세종시는 어떤 모습일까.

고향에 대한 그리움, 작품에 담다

연기군 시절 동인회 회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윗줄 왼쪽에서 6번째가 윤조병 선생, 아랫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임동천 시인.

윤조병 선생은 1939년 충남 연기군 조치원에서 태어났다. 1963년 영화전문지 월간 국제영화사의 시나리오 공모에서 <휴전일기>로 당선되며 등단했다. 문학계에서는 유치진, 차범석의 계보를 잇는 한국 사실주의 희곡의 계승자로 평가받는다.

“윤 선생님은 고향에서 등단해 젊은 시절 상경하셨죠. 하지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자주 동인회를 찾으셨어요. 작품활동이 없을 때에는 매달 오셨죠. 백수문학이 연기문학이 되고, 세종문학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 하셨어요. 상경 전에는 형편이 어려워 정규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유신학교에서 국어와 수학을 가르치시기도 했고요.”

실제 세종문학 회장 최광 소설가는 작품집에 실은 ‘반 세기의 인연’에서 이 이야기를 소개했다. 중학생 시절 유신학교에서 윤 작가의 수업을 받으며 문학인을 꿈꾸고, 조치원에서 서점을 운영하며 그와 인연을 이어간 사연이다.

윤조병 작가의 초기 대표작으로는 <참새와 기관차>, <농토>가 꼽힌다. 두 작품은 각각 1978년 현대문학상, 1981년 대한민국연극제 대상을 수상했는데, 모두 고향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1981년 발표된 작품 ‘참새와 기관차’는 당시 연출자와의 갈등이 컸던 걸로 알고 있어요. 정부가 지원하는 극단에서 연극으로 만들어졌는데, 연출자의 반공주의적 관점이 원작을 훼손시킨다는 이유였죠. 전쟁이 한 가족에게 남긴 상흔을 이야기한 작품이에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윤 선생님이 조치원 철도 건널목에서 느낀 감정이 모티브가 됐다고 합니다.”

작품 <농토>는 고복저수지를 배경으로 삼았다. 새로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땅을 가진 소수의 지주들은 큰돈을 벌고, 소작농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2016년 11월 윤조병 작가 초청 북콘서트 개최 이후 미발표된 희곡 작품과 그의 삶을 담은 시, 에세이는 지난해 세상의 빛을 봤다. 윤조병 선생이 작고한 건 지난해 11월 출판기념회를 한 달 여 앞둔 때였다.

“매년 11월 윤조병 선생님 주간을 운영할 생각입니다. 선생님이 2인극 작품 5편을 남기셨는데, 매년 한 편씩 선보일 계획이에요. 여건이 된다면 현재 극단 하땅세 대표를 맡고 있는 아드님과 상의해 연극 무대에도 올리고 싶어요. 마땅히 기록해야 할 것을 알리는 일, 누군가는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전 온기 남은 작품, 희곡 ‘계유년의 봄’

지난 2016년 11월 세종시에서 열린 고 윤조병 선생의 북콘서트 현장.

윤조병 선생은 고향 사랑이 남달랐다. 작품집에 실린 수필에서는 자신의 창작 에너지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침묵’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고향을 떠난 수십 년을 고향과 고향 사람에 기대 창작했다”고도 적었다. 살아생전 남긴 80여 편의 작품 중 25여 편이 고향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조천에서 금강까지 황톳길과 철길을 따라가는 실험적 희곡 <휘파람새>는 전국연극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조치원 봉산리와 서면 고복리, 전동·전의 등을 배경으로 한 농토·농녀·농민 3부작은 그의 작품 중 백미로 꼽힌다. 광산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는 고향의 스승, 이웃, 친구를 등장인물로 본땄다.

윤 선생은 건강이 악화된 후에도 진통제를 먹어가며 후학 양성에 매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후배 문인들을 위해 특별히 애착을 가졌던 작업도 있는데, 세종시 소설가 강소금 작가가 쓴 희곡 <계유년의 봄>이다.

이 작품은 강 작가가 윤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 3년 동안 쓴 장막극이다. 세종민예총이 발간하는 낮도깨비 계간지를 통해 연재되고 있다. 과거 연기군 백제사를 연구했던 고 김재붕 선생의 자료를 참고해 희곡화한 작품이다.

“선생님은 지역에서 희곡 작품을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지역 글쓰는 사람들을 모아 직접 쓰도록 지도하셨어요. 실제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지역의 독특한 고유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 3년 간 강 작가와 함께한 희곡 작품이 완성됐어요. 저희에게는 선생님의 온기가 남아있는 작품이고, 지역에서 연극화 하는 것은 남은 저희들 몫이죠.”

기록으로 남긴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발자취'

세종민예총에서 발간한 고 김재붕 선생의 연구 서적과 정기 계간지 '낮도깨비'.

세종민예총은 지역 문학인과 예술인에 대한 기록화 작업에 힘쓰고 있다. 항일운동가이자 백수문학 초대 회장인 강금종 소설가, 작고 전까지 조치원에 거주했던 백용운 소설가,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장욱진 화백, 최근까지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승자 시인이 그 대상이다.

“세종시 출신 문학인 중 작품으로 인정받은 분들은 꽤 많아요. 지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은 참 아쉬운 대목입니다. 올해는 윤조병 선생님 외에도 백제부흥운동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김재붕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려 합니다. 선생님이 남기신 자료를 바탕으로 세종시에 남아있는 성터를 찾아가는 기획을 준비 중이에요.”

임동천 시인도 올해는 마음의 짐을 덜고, 글쓰기에 매진할 계획이다. 그는 젊은 시절 10년 간 부산에서 거주하다 시를 쓰고, 90년대 초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꾼이 됐다. 두 번째 시집 <수산리 사람들>은 문단에서 꽤 좋은 평을 받았지만, 한동안 글쓰기를 중단한 적도 있었다.  

“세종민예총 계간지를 통해 지역 문학인들이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하고 있어요. 지난해부터는 저도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건 참 행복한 일이죠. 최근 탈고한 소설도 계간지에 실릴 예정이에요. 지금까지 지역 문화 정체성 확립을 위해 뛰어다녔다면, 이젠 작품으로도 인사해야죠.”

윤조병 선생에게 고향은 창작의 샘물이자 원천이었다. 이제 반대로, 그곳의 후배 동인들은 그의 샘물을 기억하고 지키고자 한다. 

한지혜 기자  wisdo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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