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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호호’ 떠들썩한 여학생들의 유럽여행[세종포스트 집현전 유럽체험연수 보고] 세종국제고 한연주
한연주 세종포스트 집현전 학사 | 세종국제고 1학년

㈜청암이 후원하는 세종포스트 집현전 학사가 되어 학수고대하던 11박 13일의 유럽체험연수를 다녀왔다. 2017년 고1의 마지막 시간을 유럽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보낼 수 있었다. 저마다 느낌과 감상이 다를 것이다. 세종포스트 지면을 빌려 나만의 여행기를 남긴다.

세계의 역사유산을 한 곳에 모아놓은 영국

영국 런던에 위치한 대영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희귀하고 많은 양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런던에 가면 꼭 들러야하는 박물관이 된 것은 아마 인간의 문화와 역사에 관련된 소장품이 아주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일 것이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이집트 미라. 정작 미라를 만든 이집트보다 영국박물관의 미라 보유량이 훨씬 많다.

대영박물관에서는 제국시대에 영국이 다른 나라들로부터 약탈한 문화재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고대 이집트 문화까지 모두 감상할 수 있다. 나는 유럽 여행에서도 특히 대영박물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영국인들이 식민지로부터 갖은 방법을 쓰며 문화재를 가져온 과정이 인상 깊고, 문화재 하나하나마다 얽힌 이야기들이 너무 흥미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집트관에서는 매우 많은 미라가 전시되어 있었다. 정작 미라를 만든 이집트보다 영국박물관의 미라 보유량이 훨씬 많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에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색감과 선이 여전히 아름다운 그림이나 장수풍뎅이 조각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집트인들에게 장수풍뎅이는 번영과 다산을 의미한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장수했다는 파라오의 상도 정작 이집트가 아닌 영국에서 볼 수 있다.

가장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있는 말과 소의 다리를 합쳐 놓고, 독수리의 날개가 달려있으며, 머리는 인간의 머리를 하고 있는 독특한 조합의 이집트 수호신 코샤벳도 인상적이었다.

이집트 역사상 가장 장수했다는 파라오의 상은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아직까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 신전.
고대 이집트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 로제타스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고대 이집트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 로제타스톤이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가 발견한 것으로, 그리스어가 함께 새져져 있어 이집트 문자의 비밀을 풀 수 있었다.

그리스 신전관은 그리스에 있던 그대로를 복원하기 위해 신전의 크기, 형태, 유물들이 있던 자리까지 모두 똑같이 복사해놓았다고 한다. 아직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전도 있었는데, 아름답기가 그지없었다.

런던의 랜드마크로 통하는 타워브리지는 1894년도에 템스 강 상류에 세워진 가장 훌륭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다리이다. 초기에는 다리를 들어올리기 위해서 증기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 때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위쪽에 사람만 지날 수 있는 다리를 따로 또 지었다고 한다.

대형 선박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요즘, 옛날보다는 다리를 개폐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다리가 개폐되는 모습은 모두가 보고 싶어 하는 광경이라고 한다.

버킹엄궁전 앞에서.

영국하면 타워브리지가 가장 먼저 생각났을 정도로 나는 나중에 영국에 간다면 꼭 보고 싶었다. 기회가 되어 보게 된 타워브리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사진이 다 못 담아낼 정도로 건축미가 뛰어난 이 다리를 보며 집현전 학사들과 하하호호 웃었던 그 날은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위치한 버킹엄궁전은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한 후에 주궁전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여행한 날에 여왕이 궁전에 머물고 있다는 스탠다드 깃발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고 기다려보았지만, 여왕이 직접 궁전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곰 한 마리를 잡아야 나온다는 모자를 쓰고 근엄하게 서 있는 근위병을 보니 영국에 왔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 인상 깊었다. 또한, 옛날에 존재했던 마찻길을 보며 길을 걷노라니 마치 옛날 말이 지나가던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 들기도 했다.

평화의 도시 제네바

제네바 유엔사무국 앞 부러진 의자 앞에서.

런던에서의 2박 3일을 끝내고 우리는 비행기를 이용해 스위스 제네바로 갔다.

국제연합 사무국 본부는 뉴욕에 있지만, 우리는 유럽 사무국이 위치한 스위스 제네바로 갔다. 집현전 학사 중에서도 유엔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품은 학사가 있고, 국제연합 회의의 대부분이 이곳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릴 만큼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유엔 사무국을 방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여행 일정 중 특히 더 의미 있는 장소였다.

유엔 사무국 앞에 자리 잡고 있는 ‘부러진 의자’는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를 잃게 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대인지뢰 사용금지 협약에 많은 나라들이 동참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1997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역시 유엔 사무국 앞에 설치된 건축물이라서 그런지 심오한 뜻이 담겨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제네바에서 1박을 한 뒤 오후 기차를 타고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프랑스 떼제베(TGV)였는데, 우리나라 KTX도 프랑스의 고속열차기술을 도입한 것이다. 파리에서는 3일간 체류하며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파리에서의 3일

베르사유 궁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베르사유 궁전은 많은 방과 정원, 그리고 궁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가 건설한 궁전으로, 루이 14세는 확장 공사를 하는 등 대대적인 건설을 통해 절대왕정을 확립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베르사유 궁전은 왕과 왕비가 거처했던 곳인 만큼 호화롭고 웅장했다. 특히, 거울의 방이 위치한 그랑 아파르트망과 루이 14세의 방이 가장 화려했고, 생각과는 다르게 전쟁의 방이 규모가 작았다. 베르사유 궁전하면 정원이 떠오를 정도로 아름답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크기의 궁전을 살펴볼 수 있던 값진 추억이었다.

에펠탑 야경.

에펠탑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이다. ‘파리 만국박람회’때 에펠이 공모에 당첨이 되어 세운 건축물이지만 당시에는 아름다운 파리 거리에 흉물 같은 철탑이 세워진다는 소식에 반감을 산 사람들이 반대 성명까지 받아 에펠탑 건설 철회를 받아내려고 하였다.

에펠탑이 건설되는 것에 반감을 크게 가지고 있던 모파상은 매일 에펠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고 한다. 파리는 높은 산이 없고 평평한 평지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든 에펠탑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는 파리 시내를 더욱 자세하게 감상하기 위해 바토 무쉬라는 크루즈를 탔다. 왕궁 광장인 콩코르드 광장부터 루브르박물관, 파리시청, 노트르담대성당, 오르세미술관, 에펠탑, 그리고 샤이요 궁까지 파리에서 유명한 곳은 모두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정착하기 전에는 정각 6시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에펠탑이 반짝였는데, 이 광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루브르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왕의 처소로 이용되었다가 1793년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3만 5000점 이상의 예술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는 이 박물관은 보유하고 있는 작품들의 수만큼 큰 규모를 자랑한다.

루브르박물관은 대영박물관과는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모나리자뿐만 아니라 밀로의 비너스, 승리의 니케여신상 등 교과서에서만 보던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독일에서만 6박 7일을 보냈다. 파리에서 프랑스 국적기인 에어프랑스로 베를린, 다시 베를린에서 독일 국적기인 루프트한자를 타고 뮌헨으로 이동했다.

베를린장벽 ‘형제의 키스’ 감명

베를린장벽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의 명소인 '형제의 키스' 앞에서.

첫 방문지는 베를린이었다. 베를린 장벽은 여행 가기 전 내가 맡아 조사했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친근함을 느낄 수 있었고, 기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인 독일은 1945년 얄타회담에서 미국, 소련, 영국 등의 연합국에 의해 점령당하였다. 독일 내에서도 미국과 영국이 점령하고 있던 서독은 시장경제체제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여 성공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소련이 점령한 동독은 공산주의 계획경제로 매우 낮은 수준의 경제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서독의 브란트 총리가 동방정책을 발표하고, 두 독일 간 공존 관계를 이루었으며, 고르바초프에 의해 소련의 개방과 개혁정책이 실시되어 동독이 민주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민족통합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베를린 장벽은 1961년 서독과 동독을 분리하기 위해 세워졌다. 1961년부터 1989년까지 약 5000명이 이 벽을 넘는 탈출을 시도했고, 약 100명~200명이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된다. 베를린장벽의 건설은 소련의 흐루시초프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길이가 무려 156킬로미터였고, 콘크리트 장벽 곳곳에는 감시탑이 설치되었다.

동독 주민들은 서독을 방문할 수 없게 되었고, 장벽 근처의 건물들이 철거되었다. 1965년에는 콘크리트 벽이 다시 세워졌으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장벽은 ‘제 4세대 장벽’이라고 한다. 통일 된 후 동독과 서독의 총리가 키스한 장면을 그린 벽화로 유명한 ‘형제의 키스’는 엽서 디자인으로도, 냉장고 자석의 디자인으로도 독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그림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이를 직접 보게 되어 매우 감명 깊었다.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마을이?

로텐부르크 옵데어 타우버는 마치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 속에 뻐져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독일 로텐부르크의 도시 옵 데어 타우버는 마치 영화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마을인 것 같았다. 동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42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고 오백 년 전통의 크리스마스 시장도 있다고 한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가게와 중세 분위기의 도시가 매우 낭만적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중세 범죄 박물관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중세의 고문 방법이 어땠는지, 그리고 마녀를 어떻게 처벌했는지 그림과 함께 고문 도구를 전시해놓은 박물관을 관람하며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고문을 할 수 있는지 충격과 공포를 받기도 했다.

정말 가보고 싶었던 서유럽 여행 기회를 세종포스트에서 주최하는 집현전 학사 모집 프로그램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양한 학년의 학사들이 선발되어 꿈 발표를 진행한 후 다수결에 의해 유럽 여행을 가는 것이 정해졌다.

그 후 겨울연가 김은희 작가와의 만남 등 여러 차례의 모임을 통해 서로 알아가고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역시 세종시에서 인문사회, 과학기술, 글로벌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로 뽑힌 학생들이어서 그런지 자신의 진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고, 여러 분야에 박학다식한 학생들만 모인 것 같았다.

여행의 마지막 밤, 롤링페이퍼를 쓰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록 고등학교 1학년이 한 명뿐이라서 걱정도 되고 다른 학사들과 친해지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지만 부푼 기대를 안고 영국행 비행기에 타게 되었다. 생애 첫 유럽여행이라서 그런지 설레어 12시간 비행이 전혀 힘들지 않았고, 시차 적응하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영국에 도착하여 빅 벤, 타워 브릿지를 보고 사진을 찍고, 대영박물관의 여러 작품들을 감상하였다. 스위스에서 유엔사무국, 프랑스에서 베르사유궁전, 에펠탑, 루브르박물관, 그리고 노트르담 대성당 등을 여행하며 눈으로도 담고 사진으로도 담았다.

마지막으로 독일에서 베를린장벽, 마리아광장, 괴테생가, 옵 데어 타우버 등을 구경하며 다른 8명의 집현전 학사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11박 13일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동안 함께 여행한 집현전 학사들과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K-pop을 알리기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같이 하며 정말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한연주  webmaster@www.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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