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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도시 사이’ 유럽에서 본 세종시[특별기고] 세종포스트 집현전 유럽체험연수를 다녀와서
이정훈 세종포스트 집현전 부제학 | 보람고 영어교사

유럽의 도시를 바쁘게 날아다닌 2017년의 마지막 날들. 내가 아끼는 세종포스트 집현전 학사 학생들과 함께해서 더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수천 킬로를 날아와 유럽의 한 가운데 서 있었어도 나의 실 한쪽 끝은 한국과 연결되어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 한국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 과거에는 유럽이 아주 먼 지구반대편이라는 표현이 맞았다면, 지금은 유럽도 편도 11시간 걸리는, 부산보다는 좀 더 먼 곳 정도로 여겨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비행기 표 값과 세관의 복잡한 절차를 생각하면 ‘외국은 외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럽에 왔어도 이제 세계 대도시라면 보편화된 각종 대중교통, 도로, 인테리어, 프랜차이즈로 완벽한 이질감을 느끼긴 힘들었다. 우리는 2017년의 마지막을 여기서 보내고 무엇을 만나서 무엇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에 감동을 느꼈다.

여행의 첫 아침, 런던의 타워브리지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살던 관습을 떠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다른 것들로 채워진 공간에서 며칠을 살아본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자 어찌 보면 뻔해 보이는 일상에 엄청난 활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런던, 파리 등 이곳 유럽인들의 삶의 터전은 그들에겐 단순히 반복되는 일상의 공간일지 모르나 낯선 이에겐 값진 경험과 통찰력,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주기도 한다.

근대화의 집약지인 런던과 파리, 제네바, 그리고 베를린을 비롯한 유수의 독일 도시들. 야구의 역사를 공부하려면 MLB를 보고 록의 역사를 공부하려면 영미공연문화를 연구해야 하듯이, 인류 근대화의 성지는 미우나 고우나 유럽의 도시들이 아닐까 싶다.

한때 갖은 역사와 전쟁, 영광의 순간들과 몰락의 순간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로 전 세계로 무한 확장했던 유럽의 ‘프랜차이즈’들은 이제 과거는 영광으로 남겨 놓은 채, 예와 다름없이 먹고 살기위한 삶의 터전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근사한 대리석 건물에 현대인들의 상징인 가로등과 간판이 달려있기도 하고 고층빌딩과 대리석 건물, 돌로 된 마차도로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것을 보면서 과거의 모습과 현대의 모습이 묘하게 섞여 무엇이 진짜 유럽의 모습인지 모를 정도였다.

자연 촌락에서 점점 뻗어나가 만들어진 집약적인 공간. 수도의 역할을 하는 동안 겪었던 수많은 상징들과 유적들. 나와 같은 땅을 밟았을 수많은 인물들을 생각하며 유럽에서의 첫 일정을 시작했다.

#1. 간판

프랑스 파리 시청. 아직 초저녁이지만 더 어둑해지면 화려한 건축물에 아래에서 조명을 쏘아 웅장한 느낌이 든다.

유럽 도시들이 자신들의 건축물에 대해 가지는 애정은 엄청나다. 밤에도 건물의 볼륨감을 잘 볼 수 있도록 조명을 달아 켜놓고, 건물의 미관을 해치는 표지판이나 전선도 최소화했다. 특히, 상가의 간판 광고를 엄격히 통제하여 간판이 도시 경관을 해치는 일이 드물다.

예를 들어 간판이 있더라도 건물의 균형미를 망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하고 디자인도 주변 색깔과 재질이 어울리는 것만 쓰도록 제한하고 있다. 당연히 글자는 가까이 가야만 보이고 특히 건물 외벽이나 튀어나온 간판이 없어 측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간판이 안 보이니 지리를 잘 알거나 구글맵의 도움 없이는 특정 장소에 찾아가기 힘든 불편함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간판을 크게 만들고 거기다 원색계열로 글씨를 큼직하게 쓴다. 어디서 사진을 찍으며 다녀 봐도 간판의 제국이다. 이런 간판이 달린 건물의 모습은 촌스러움의 극치를 달리기도 하지만 때때로는 지극히 한국적이고 해학적이며 창조적이기까지 하다.

세종의 간판은 깔끔하고 시인성이 좋아 거리를 아름답게 한다.

표지판과 간판에서 그 나라의 문화를 읽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길거리 풍경만으로도 굉장히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는 생생한 문화의 한 장면이다. 어쩌면 간판은 자영업이 많고 경쟁이 심한 한국의 정체성이자 상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왕이면 주변의 조화를 생각하여 아름다움의 가치도 같이 추구하면 좋겠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새로 개발하는 지역이나 재개발 지역에선 통일성 있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간판을 사용한다. 테두리가 없이 행간이나 글자모양을 세련되게 디자인하여 붙이면 눈에도 잘 띄고 보는 사람도 즐겁다. 세종도 예쁜 간판을 많이 다는 도시 중 하나로, 순우리말로 쓰인 아름다운 간판을 볼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또 눈에 잘 띄기 때문에 멀리서도 상가를 쉽게 알아보고 찾아가는 장점이 있다.

#2. 강과 도시

파리의 센강. 강 주변은 녹지나 제방이 거의 없고 파리 시내를 거닐며 바로 강을 내려 볼 수 있다.
에펠탑 위에서 바라본 센강 전경
세종시청에서 바라본 금강 전경. 넓은 수변공원과 제방이 인상적이다.

유럽 도시의 강은 우리나라의 강과 다르다. 세종을 흐르는 금강 같은 경우는 여름에 강우량이 집중되어 범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제방이 크고 강폭이 넓다. 따라서 일반적인 경우에는 강변공원을 조성하여 녹지 및 시민들의 여가활동 공간을 제공하고 장마기간에는 물이 불어나도 피해를 입지 않는 완충지대를 만든다.

반면, 유럽의 강들은 강과 제방이 거의 붙어있었고 강을 낀 공간이 딱 달라붙는 옷처럼 여유 공간이 없었다. 강이 풍기는 이미지가 많이 달랐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강처럼 녹지공간을 끼고 공간이 넉넉한 것을 좋아한다.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도 있다. 유럽은 여러 번의 치수사업과 강우량이 많지 않은 조건에 따라 좁은 강폭과 제방공간을 만들었을 테지만 너무 여유가 없어 보인다. 강 자체가 작은 것도 있다. 하지만 좋은 것은 강을 따라 산책하기도 좋고 강과 건물, 도시가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3. 유럽의 건축물

세종시의 고층 아파트 전경.

사실 세종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아파트이다. 세종은 부동산이 경제적 정점에 다다랐을 때 만들어진 도시이고 집약적이고 밀집된 생활공간의 문제로 고층의 아파트가 갈수록 많이 지어지고 있다.

파리, 런던, 베를린 도심지 주변에는 이런 고층아파트 무더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사실 고층의 아파트를 지을 공간이 없기도 하고 과거의 도시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기 때문이다.

공간에 대한 개념이 다르고 도시 개발의 접근법이 다르다는 것은 도시 전경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실용성보다는 멋과 위신을 강조한 유럽의 대리석 건물들은 먼 옛날 신분제 사회가 분명할 때 만들어졌고 땅도 왕실이나 귀족의 소유였기 때문에 드넓은 공간을 넉넉하게 사용하여 건물이 지어졌다. 덕분에 런던, 파리 등 유럽 유수의 도시들에 갈 때마다 아름다운 도시의 조경이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굉장히 무심해 보이는 대도시 한가운데 유적지들은 유럽인들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어찌 보면 자부심 그자체인 유럽의 역사이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는 베니스, 파리, 피렌체 등을 흉내 낸 호텔이 즐비하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는 유럽의 건물들을 모사하여 지은 호텔들이 있지만 정작 내부에는 카지노의 슬롯머신이 놓여있다. 가짜와 진짜의 역사와 삶이 공존하고 있다. 반면, 진짜 유럽의 건물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런 유럽 건축물들이기에 값을 매기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땅의 가치가 크다. 따라서 도시는 누군가가 소유하는 것이 아닌,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의 개념이 많았다.

물론 도심 한가운데 땅은 비쌀 수밖에 없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 매매가 런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값진 땅들을 관광객과 시민들이 자유롭게 누릴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는 경우도 있어 진정한 도시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돌이켜 보게 한다.

런던의 시내 한복판에는 전통적인 대리석 건물 사이로 비쭉 솟은 고층빌딩을 볼 수 있는데 전쟁 당시 폭격 당했던 지역을 재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시민들의 공간으로 공원이나 공공시설이 많이 들어서고 있고 갈수록 확장되고 있어 기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파트가 너무 공간 집약적으로 지어져 있고 집값이 유럽과 견주어도 차이가 안 나는 곳이 많을 정도로 높아 부동산이 과열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 역시 비싼 땅값을 보여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군데군데 더 많이 들어서고 있는 런던의 고층빌딩이다. 런던 중심가 중 폭격을 맞아 역사적인 건축물이 무너져 버린 공간에는 기존의 고층빌딩과 더 높은 빌딩이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고, 시청 근처에는 아랍 자본에 의해 지어진 유럽에서 가장 높은 ‘더 샤드’라는 고층 건물이 있다.

파리 에펠탑에서 내려다 본 시내 전경. 현대식 건물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주변과 참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이라 생각하지만 이 높은 빌딩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돈의 힘을 생각해보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이러한 런던과 달리 파리 중심부는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게 아름다운 전통식 건물로 빼곡히 차 있다.

에펠탑에서 내려다보면 높은 건물은 거의 없으며 계획도시답게 반듯반듯한 도로가 온 도시를 감싸고 있다.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답기도 하고 정말 과거에 온 것만 같아서 여행자를 항상 설레게 한다.

하지만 프랑스 고속도로를 타고 외곽으로 나갈수록 높고 세련된 현대식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고 파리를 떠나는 것은 마치 과거에서 시간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4. 파리의 신호등에 관하여

높이가 낮은 파리의 중심부의 신호등. 덕분에 주변 경관이 잘 보인다.

우리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밤늦은 시간이었고 비가 오고 있었지만 파리의 아름다운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에펠탑, 개선문, 그리고 노트르담 대성당. 밤에는 모든 건축물에 조명을 쏴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만든다.

하지만 여기엔 파리의 도시설계도 한 몫 한다. 신호등과 교통안내판을 낮추거나 없애서 어느 각도에서 봐도 건축물이 한눈에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신호등을 없애거나 낮추면 자동차 사고가 많이 일어날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운전자가 신호등보다 운전에만 신경을 써서 더 방어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교통이 아주 혼잡할 경우 역효과가 일어날 것 같다.)

또한 신호등이 낮고 교차로 한중간 보다는 정지선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이럴수록 차가 정지선을 잘 지킨다고 한다. 정지선에서 떨어져서 정차해야 신호등을 보고 다시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아진 신호등 덕분에 파리의 야경은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옛날 마차가 달리던 포석이 그대로 도로로 쓰고 있는 파리. 아름답고 과속을 줄일 수 있지만 승차감이 좋지 않은 단점이 있다.

도로 곳곳과 교차로는 벽돌로 된 표면(포석)이 있는데 이는 아스팔트가 보편화되기 전 마차가 다니는 길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도 있고 차가 과속을 할 수 없도록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사고도 예방하면서 파리의 아름다운 건물과 조화를 잘 이루는 도로를 보면 승차감과 실용성을 버리고 멋을 추구하는 프랑스의 가치관을 돌아보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신호등의 뒷면에도 불이 들어와 반대편의 차도 신호를 알 수 있다는 것인데 다른 차선의 운전자를 배려한 것이라 생각한다.

세종에는 다른 한국도시와 마찬가지로 교통표지판과 신호등이 많이 붙어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이 보편화된 시대에 교통표지판은 꼭 필요한 곳에만 붙고 신호등은 자율적으로 신호를 지킬 수 있는 곳은 효과를 검증하여 줄여나가는 방안도 생각해본다.

#5. 대중교통 속에서 엿보는 삶의 리듬

승객이 직접 열어야 하는 파리의 지하철 문. 타고내리는 것은 승객의 결정이라는 느낌을 준다.

유럽의 삶의 리듬은 한국의 것보다 느린 편이다. 물론 평일 아침의 도로나 지하철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도 있고 한국 이상으로 바빠 보이는 곳도 많아 보인다.

하지만 그곳의 템포는 아주 사소한 곳에서 엿볼 수 있다. 바로 버스에서 하차하는 승객들인데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후에야 그들은 일어난다. 런던의 2층 버스에서도 2층의 손님이 버스가 멈춘 후에야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모습은 하차하는 공간이 워낙 좁은 것도 있고 안전을 위한 이유도 있겠지만 운전기사가 자기들이 내릴 때까지 기다려 주리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파리에서 신기했던 것은 지하철 문을 승객이 직접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원터치로 열리는 자동문이긴 했지만 문을 열고 닫는 것을 승객이 직접 하는 건 신기했다.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하겠지만 언제 문을 열고 언제 문을 닫아야할지 판단하고 또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날까봐 조바심을 내야하는 기관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지 않나 싶다.

실제 일본에서는 담배 등 미성년자금지물품을 구매할 때 손님이 직접 미성년자가 아님을 동의해야 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판매원이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소한 차이 같지만 이 또한 판매원이 불상사에 대한 책임의 부담을 적게 받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파리나 런던에서는 이런 자율성을 무단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 사용하여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일도 보였다. 본인의 행동은 본인이 책임을 지고 필요할 때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교통흐름을 완전히 무시하고 무단 횡단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고 때로는 많이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세종에서도 일부 시간대와 지역에서는 심각한 교통난이 일어나기도 하고 교통신호 개선과 도로 개선에 대한 민원이 폭주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통신호를 잘 준수하지만 때로 어떤 이들은 자율성을 남용하여 교통신호를 위반하기도 한다.

이는 세종뿐만 아니라 많은 대도시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교통문화와 제도에 대한 탐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성숙한 민주의식을 바탕으로 좋은 교통문화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

#6.호텔 조식의 향연

프랑스 제네바 지역의 호텔 뷔페식. 하나씩 맛보다보면 엄청난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다.

음식이야말로 그 장소의 문화를 잘 알 수 있는 토대이다. 호텔에서는 기본적으로 아침 조식이 나오는데 간단하고 담백하게 먹는 한국의 조식 문화와는 달리, 느끼하고 기름진 음식을 포함해 뷔페식으로 식사가 나오는 바람에 이것저것 맛본다고 여행기간 내내 아침은 과식이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많이 비싼 치즈, 소시지, 각종 햄, 버터 등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 많이 먹어두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과식한 적도 많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텔체인에 주로 숙박하는 바람에 유럽 내에서 다른 국가를 가도 비슷한 음식이 나오고 거기에 각 나라에서 자주 먹는 메뉴가 추가되는 편이었다.

확실한 것은 독일에서 소시지 종류가 다양하게 나왔다는 것, 고기를 (무식할 정도로)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유럽은 역시 고기와 빵이 주식 같았다.

이런 호텔 뷔페 문화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기원은 흥미롭게도 러시아라고 한다. 추운 날씨 탓에 식당에서 서빙을 하면 다 식어버리는 탓으로 요리해 직접 나온 것을 손님들이 돌아다니며 먹도록 한 것이 기원이다.

서양에서도 뷔페는 흔히 단체 손님이 먹는 방식인데 비교적 저렴하게 여러 명의 손님을 대접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아마 테이블을 서빙할 때 드는 인건비가 비싸 그렇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뷔페식당이 주로 대기업 프랜차이즈나 예식장, 호텔 식당에서만 제공되는 경우가 많아 고급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음식의 재료를 알 수 없고 조리 품질을 보장할 수 없기에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또한 뷔페는 맛있게 보이기 위해 항상 음식을 푸짐하게 채워놓지만 그 음식이 다 소모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 많은 음식들이 유통기한 초과로 버려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뷔페는 식사량을 조절하기 힘들기 때문에 싫어한다. 먹어보고 싶은 것 하나씩 집다보면 어느 순간 엄청난 칼로리를 섭취하게 된다.

고기 크기에 충격을 주었던 독일식 왕족발 ‘학세.’ 제대로 먹으려면 만화처럼 손에 들고 뜯어먹어야 한다.

요즘 인터넷을 통해 ‘먹방’이라는 문화가 유행하고 있는데, 시청자들에게 다 먹을 수 있을까 궁금증을 유발할 만큼 음식을 많이 쌓아놓고 실제로 다 먹는 장면을 보여 주면서 시청률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유럽 호텔의 조식은 이 ‘먹방’으로 점철된다.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시대, 먹성도 하나의 공격성이다. 유럽에서 아침마다 겪었고 어쩌면 옛날 절대왕권을 군림하던 왕보다 더 잘 먹고 다닌 것인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여행기간 동안 몸무게가 1킬로 늘었는데 서구권에 왜 비만인구가 많은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침 외에 식사는 동선에서 가까운 여러 식당에서 먹었는데 주로 소-돼지-닭고기 중 하나와 빵, 감자로 만든 메뉴였다. 독일 베를린 길거리에서 파는 햄을 먹은 적도 있는데 겉보기엔 새까만 (썩은) 햄을 독일 사람들이 군침을 다시며 사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도 발효된 햄이었던 듯싶다. 호기심이 일어 조그만 조각을 무려 4유로나 주고 구입해 먹어 보았지만 나의 입맛에는 그리 맞지 않았다. 또한 독일 어떤 식당에서는 “Chimak”이라는 메뉴도 보았는데 아마 한국에서 유럽으로 수출된 메뉴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세종시 호텔에서는 어떠한 메뉴가 제공되는가. 안타깝게도 아직 세종시내 안에는 호텔이 들어와 있지 않다. 세종호수공원 앞에 호텔이 들어서고 있는데 완공되면 세종시의 정체성을 잘 알려주는 공간과 음식을 제공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아침에 제공되는 호텔 조식이 내가 있는 곳의 정체성과 문화를 알려준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고, 외국인이 세종시 호텔에서 특별히 귀하고 맛있는 한국음식을 먹을 기회를 누린다면 어떤 인상을 받을지 생각해 보았다.

#7. 밤 문화

밤거리가 화려한 파리 샹젤리제. 마치 강남의 밤거리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유럽 각지의 호텔에서 묵으며 밤에 나와 거리를 거닐어 본적이 있다. 사실 호텔의 위치에 따라 밤거리가 너무 달라 일반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파리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삼삼오오 노상 카페나 펍에 모여 수다를 많이 떠는 것 같았고 영국이나 독일 사람들은 비교적 조용하게 실내에서 지내거나 상가 문을 일찍 닫는 것 같았다.

실제 제네바를 제외하고 우리가 묵었던 파리와 런던, 베를린, 뮌헨, 하이델베르크 등의 숙소가 모두 관광지와 번화가에 가까운 붐비는 곳이었다.

문득 한국의 밤은 어느 곳과 비슷할까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밤 문화에 있어서는 열정적인 사람들이다. 1차, 2차 같은 문화는 우리나라에만 주로 있고 유럽에서는 보통 입장한 술집에서 끝까지 즐기다 귀가한다고 한다.

세종 도담동의 거리.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우리나라 상가나 술집과 달리 유럽은 대부분 일찍 닫는다. 밤이 되어도 택시 잡기 어렵지 않은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의 시내는 조금만 벗어나면 차하나 다니지 않는 어둑어둑한 도로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참으로 우리나라는 밤거리가 화려한 곳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종은? 세종은 어쩌면 유럽과 닮아있다. 도담동 일부를 제외하고는 밤늦게 까지 불이 켜진 가게가 많은 거리를 찾기 어렵고 대부분 주택이나 아파트 단지라 밤에 쥐죽은 듯 조용한 곳이 많다.

사실, 상가가 아직 많이 안 들어와서 조용한 것도 한 몫 한다. 이런 세종이 살기 좋다고 생각은 하나, 한편으로는 아쉽다. 대도시에서 잠이 안 오는 밤에 잠깐 차 한 잔 마시거나 술 한 잔 할 수 있는 것이 그리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세종에 좀 더 많은 상가가 들어서고 발전하면 밤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특화된 골목이나 상권도 많이 생길 것이라 믿는다.

#8. 배달·택배 문화

우리나라처럼 독일도 배달 어플이 등장해 꽤 인기가 높은 것 같다. 독일 시내 곳곳에서 자전거로 배달하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은 하이델베르크 NH호텔 로비에 전시된 접이식 자전거.

우리나라는 배달민족이란 말을 ‘배달을 잘하는 민족’이라 붙일 정도로 배달문화가 활성화되어 있다. 인터넷에서 살 수 있는 물건 중 배달이 안 되는 것이 거의 없고 배송료도 말도 안 되게 싸다. 거기다 대부분 하루 이틀이면 도착하니 배달의 성지라 할만하다.

배달은 비단 물품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야식, 간식 등도 모두 배달이 된다. 전화한통, 인터넷 클릭 한번, 어플만 켜면 바로 배달시킬 수 있다. 심지어 현금이 없어도 제자리에서 휴대폰으로 카드를 긁어 결제할 수도 있다.

유럽과 배달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근 배달 대행업체가 유럽, 특히 독일에서도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에서 보라색 배달 자전거를 마주쳤는데, 뒤에 따뜻한 음식을 실을 수 있도록 보온 박스가 달려있었고 피자배달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자전거로 배달을 한다는 점, 꽤 늦은 시간에 배달한다는 점으로 보아 그리 편한 직업은 아닌 듯 보였다. 안정적 고용이 어렵고 평지가 많은 편이지만 자전거로 배달을 한다는 점에서 힘들어 보였다. 유럽에서도 밤늦게까지 배달하는 문화가 생겼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9. 돈을 내고 들어가는 유럽의 공중화장실

화장실 이용이 무료로 여겨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돈을 받는다고 하면 싸움날 일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화장실은 찾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공짜도 아니다.

한번 사용할 때마다 약 50센트 정도의 돈을 지불하고 들어가는 곳이 많았고 입구에서 돈 통을 지키고 서있는 청소원도 있었다. 잔돈이 없으면 돈을 더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50센트짜리 동전은 그다지 흔하지 않고 가장 흔히 사용하는 동전은 1유로다.)

사실 우리에게 익숙지 않지만 한편으로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에 대한 급여나 대우를 향상시키는 방법이기도 하고 높은 유럽의 인건비를 고려했을 때 월급 외에 수익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중화장실 같은 경우 상가 건물이나 전문 청소원이 일정 형태로 고용이 되어 청소한다. 하지만 화장실 이용은 우리나라 정서상 무료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다 보니, 힘든 일을 하는데 비해 급여가 적고 복지도 좋지 않다.

게다가 무료로 사용하면 이용객들이 더 함부로 쓰는 경우도 있다. 휴지를 지저분하게 펼쳐놓거나, 토사물, 침 등은 예사다. 이용객에게만 화장실 천국인 우리나라에서 청소원에 대한 인식이나 복지를 높이려면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도 화장실 사용에 대한 제도를 바꿀 필요도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청소원들이 고생하지 않게 또 뒷사람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게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는 문화가 우선이다.
 
#10. 독일의 크리스마스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교회 근처 크리스마스 마켓. 독일 전통 음식과 군것질, 기념품 구매를 할 수 있다.

재밌게도 우리가 베를린 쿠담거리에 도착한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고 카이저 빌헬름 교회에서 성탄 예배를 드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독일어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분위기를 점치다가 같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렀다.

물론 독일어라서 발음과 박자를 많이 틀렸지만 흔치않은 경험이었다. 찬송이 끝나고 청년부로 보이는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연극이 이어졌다. 크리스마스는 유럽 지역에서는 대부분 가장 큰 명절로 크리스마스부터 신정까지 휴가를 보낸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이브는 우리가 설날 아침 친척들끼리 같이 떡국을 먹듯이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고 한다. 덕분에 베를린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인 쿠담 거리는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고 불이 꺼져 있었고 우리는 쌀쌀한 날씨 속에서 의무적인 산책을 해야 했다.

하지만 교회 근처 노상에 크리스마스마켓(Weihnachtsmarkt)이 있어 추위를 피하고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상점은 크리스마스 한 달 전인 11월 25일부터 연다고 하는데 독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이 이런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노상에서 맛본 즉석 핫도그 스타일의 빵과 따뜻한 와인은 추운 날씨 때문인지 너무나 인상 깊었다.

세종은 사실 노점과는 거리가 멀다. 노점은 위생적으로 좋지 않고 행인들의 이동을 방해하며 탈세 등의 문제를 낳아 세종 같은 신도시에서 쉽게 허용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베를린 쿠담 거리의 크리스마스마켓에서 느낀 것은 위생이나 불법 같은 걸 떠나 노상 점포가 겨울에는 사막의 오아시스요, 따뜻한 아랫목의 존재로 다가왔고, 전통시장과 노상에서 떡볶이나 뽑기 등을 사먹은 세대에게는 따뜻했던 추억을 선물하는 것 같았다.

#11. 역사와 함께하는 공간

유대인 집단학살(Holocaust)를 상징하는 베를린의 유대인 추모 공원. 네모난 조형물은 희생자의 관을 상징한다고 한다.

역사와 함께하지 않는 공간이 어디 있으랴. 평범한 황무지도 알고 보면 엄청난 인물들이 살아왔고 사건들이 펼쳐져 왔을 터. 하지만 사람들은 중요한 역사만을 기억한다.

현대사회의 체제를 만들어 내는데 중요한 역사의 페이지는 대부분 유럽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르네상스, 대혁명의 시대,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고 유럽은 전쟁이라는 폐허를 겪었다. 그리고 두 번의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이전보다 많이 겸손해졌을지도 모른다. 끔찍한 죽음의 공포가 몇 십년 간격을 두고 두 번이나 흘렀다는 것은 국가나 사람들을 충분히 겸손하게 만들 일이었다.

세계대전에서 두 번이나 유죄를 선고받은 독일은 현재는 전쟁과는 거리가 먼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강대국들에 의한 무장해제, 동독과 서독의 분단과 통일,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의 역사는 찬란하다.

하지만 절대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된다. 수많은 학살과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만들어냈던 과거를 그들은 반성하고 또 반성했기에 독일 곳곳 어디를 가도 과거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베를린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 규모가 큰 상징적인 교회이지만, 전쟁으로 무너진 탑을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베를린 의회 앞에는 회색 빛깔 무덤을 상징하는 거대한 조형물이 가득 찬 공원이 있었다. 매일 베를린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상징들이 만들어내는 메시지를 인식하게 되고 그것이 집단 기억이 되어 다시는 끔찍한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는 ‘면역’이 만들어 지리라.

2016년 베를린에서 일어난 트럭 테러로 숨진 12명을 추모하는 곳. 사건이 크리스마스 직전에 일어난 일이라 2주기를 추모하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었다.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적이 있지만, 전쟁의 피해자라고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죄를 회피하지 않고 전범들을 모두 재판에 보내 처벌하였다. 이후 분단의 역사를 겪었고 천신만고 끝에 통일을 이루고 유럽의 경제최강국으로 부상하였다. 그렇다고 그들의 과거가 사라진 것은 절대 아니다. 그들에게는 아픔이 있었고, 그 아픔이 작건 크건 간에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에게 IMF가 존재하고 세월호가 존재하고 1987년의 민주화운동이 존재했듯이 도시곳곳에 그러한 상처의 흔적이 있었다. 이런 상처들은 비단 먼 과거에서만 찾을 일은 아니다. 최근에 일어났던 난민에 의한 테러는 도시는 언제 어디서나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계속 살아간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거 같다. 그런 상처가 아물 듯이 도시 사람들은 아픔을 씻어내고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조치를 취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전념한다.

#12. 독일의 감기차와 예거마이스터

독일은 기초과학과 약학이 굉장히 발달한 곳이라고 한다. 독일 시내의 인상적인 점은 약국이 굉장히 많으며 식물성분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화장품과 차, 약품이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은 독일의 백화점식 약국이었는데 다양한 약품들과 화장품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팔리고 있었고 종류가 정말 다양했다는 것이다.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은 갑상선 차와 감기차이다.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감기나 갑상선에 좋다고 팔리는 차. 솔직히 맛은 없으나 감기로 목이 아플 때 정말 유용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약초로 만든 술인 예거마이스터도 있다. 박하 맛이 진하게 나며 감기 걸렸을 때 먹는 부루펜 시럽을 연상케 하는 이 술은 ‘사냥 장인’이란 뜻이며 날씨가 추울 때나 몸이 안 좋을 때 기운을 회복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사실 인간과 식물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공존의 역사를 보냈고 식물이 갖는 효능을 연구하고 정리하는 것은 모든 인간 문화의 당연한 특징이 아닌가 생각한다. 독일의 많은 약국과 다양한 화장품, 차, 맥주, 그리고 예거마이스터는 독일 문화 속 다양한 식물을 이용하여 다채로운 일상을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국도 이런 약초를 활용하여 수많은 차와 한약재,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 최근에 대전 중앙시장 약재거리를 갔는데 없는 약초가 없었다. 상황버섯, 가시오가피, 구기자, 오미자 등. 하지만 일부 마니아나 약효를 잘 아는 사람에게만 주로 거래되며 용어가 너무 어려워 한국에 잠시 머무는 관광객은 알 수도 살 수도 없다. 이러한 약초를 잘 배합하여 효능도 좋고 맛도 좋은 술이나 차를 상품으로 만들어 홍삼처럼 한국의 대표 관광 상품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3. 누가 유럽인인가 또 누가 한국인인가

민감한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유럽에 오면서부터 또는 외국에 오면서부터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이다. 세계 일주를 하는데 88일밖에 안 걸렸다고 해도 안 믿던 시절을 지나 이제 단 하루도 안 돼 전 세계 어디든 누빌 수 있는 대항공의 시대가 열리고 지구반대편에서도 맘껏 카톡과 전화로 실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터넷 시대 속에서 국적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나의 머릿속에는 유럽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그리스의 신전에 등장하는 모습이 유럽인의 모습이라고 오랫동안 배워왔고 그림책으로 봐왔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생긴 사람이 많다. 하지만 국적의 문제는 생긴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이다.

유럽에도 많은 한국 출신들이 산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중동 출신, 아프리카 출신, 아시아 출신 유럽인도 있으며 이유는 다 다르지만 어쨌든 그들은 다 유럽인이다. 많이 여행을 다니며 항상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겉모습으로 절대 국적을 판단하지 말자라는 것이다. 물론 겉모습이 국적을 말해주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내 머릿속에 항상 편견을 심어주는 일이다. 그렇다면 누가 유럽인이고 한국인인지 구분하는 것은 중요한가?

이는 이상적이 이야기일 뿐이고, 나는 이번 유럽여행에서도 굳건하게 ‘습관’을 지켰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서 친숙함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한국인인지 판단하게 된다. 반가운 것도 있고 이 먼 곳까지 와서 한국인을 본다는 것이 신기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여행지에서도 눈에 띄는 게 올겨울 유행인 롱패딩을 입으며 첨단기기기를 잘 만지고 사진을 많이 찍고, 한국인 특유의 몇 가지 동작을 취한다. 굳이 이야기 안 해도 그 동작을 알 것이다. 우리가 문화 유전자 속에서 공유하는 동작들. 여행지에서 한국인을 쉽게 찾고 생각보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서 내가 이리도 쉽게 타인의 국적과 우리나라의 국적을 구분해내는 것이 우스워서 피식 웃었다.

11박 13일의 여정은 끝이 났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럽의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다른 일상을 경험할 수 있는 배움이었으며, 우리의 일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또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많은 신도시 세종이 나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볼 시간이기도 하였다.

단순히 인터넷이나 책에서 말하는 유럽 말고, 직접 일상 속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제품을 쓰고, TV로 현지방송을 직접 시청하고 박물관을 거닐던 시간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고민이 많은 나는 물론이고, 나보다 살아가야 할 날들이 훨씬 많은 집현전 학사들에게도 큰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이정훈  webmaster@www.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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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 ㅇㅇ 2018-09-27 05:43:29

    세금으로 유럽여행도 다녀오고 개꿀이네요 세금 살살 녹는다   삭제

    • 임나형 2018-01-27 09:51:27

      정말 잘 썼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삭제

      • 세종소담시민 2018-01-24 11:33:37

        세종포스트 훌륭한 기자들 많으시네요.좋은 내용입니다. 특히 교통표지판과 신호등 줄이는건 굿아이디어입니다.
        특히나 세종처럼 도로가 좁은곳은 개선이 필요합니다.
        3생활권은 타생활권에 비해 도로가 잘되있다고는 하나 단지마다마다 신호등이 있어 비효율적인곳이 많습니다.
        얼른 개선되었으면 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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