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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꿈 이룬 유럽에서의 꿈같은 2주일[세종포스트 집현전 유럽체험연수 보고] 한솔고 문선영
문선영 세종포스트 집현전 학사 | 한솔고 2학년

드디어 12월 18일이 되었다. 기말고사 시험 기간도 유럽 여행 간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보는 유럽 여행!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할까? 생각만 해도 설레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버스를 탔을 때 집현전 학사 친구들이 밝은 얼굴로 인사했다. 밖으로 보이는 오빠와 엄마에게 손을 열심히 흔들고 나를 환상의 나라로 인도해 줄 아시아나항공 OZ521을 타러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12시간 20분 동안 비행기를 탄다고 들었을 때는 ‘어떻게 그렇게 긴 시간을 앉아서 가지?’라는 생각에 걱정도 되었지만 막상 타고 보니 금방 시간이 흘렀다. 먹고, 자고, 영화보고, 지루할 때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쓰니 12시간 20분이 길지만은 않았다.

내 옆자리엔 집현전 부제학이신 이정훈 선생님이 타셨고 나는 긴 시간 여행할 때 화장실 가기 편하다는 통로 쪽에 앉았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유럽 여행의 시작! 첫날부터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앞으로 펼쳐질 날들이 정말 기대됐다.

화려하고도 신비로운 곳, 런던

영국 런던의 타워브리지.

가장 먼저 여행한 곳은 영국, 런던이었다. 크루아상과 베이컨, 스크램블 에그 등 호텔에서 맛있는 조식을 먹고 런던을 안내해 줄 가이드와 함께 타워브리지로 향했다.

TV에서만 봤던 타워브리지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이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비록 다리가 열리는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푸른 하늘과 웅장한 타워브리지의 모습은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장관이었다.

사진을 얼마나 찍었는지 타워브리지 사진만 20장이 넘었다. 영국에서 만난 가이드는 다리가 열리는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에 급하게 가야하는 사람은 위쪽에 있는 일자 다리를 이용한다고 설명해주었다.

템스 강 상류에 세워진 타워 브리지는 국회의사당의 빅 벤과 함께 런던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건축물이다. 영국의 호황기였던 1894년에 총 길이 260m로 완성되었는데, 설계자는 호레이스 존스다.

양 옆으로 솟은 거대한 탑이 있는 우아한 도개교(跳開橋)이며, 도개교를 매단 두 개의 탑은 높이 50m의 철골 탑이다. 당시 런던탑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탑에는 1,000t이나 되는 다리를 들어올리기 위한 동력 장치가 있다.

지금은 증기 엔진이 아닌 전기 모터를 사용하지만 다리를 들어 올리는 유압의 원리는 당시와 동일하다고 한다. 탑 안에는 도개교의 원리를 알 수 있는 타워 브리지 전시관(Tower Bridge Exhibition)이 있으며 탑이 건설되었던 당시의 증기 엔진을 전시하고 있다.

영국박물관 '이집트관'에서 세종포스트 집현전 학사들이 미이라를 관람하고 있다.

대영 박물관은 세계 최초의 국립 공공박물관으로, 방대한 양의 희귀하고 가치가 높은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이드는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유물과 민속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무료입장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특히 ‘아시리아’,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품들’, ‘로제타석’, ‘미라’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시리아’는 인간의 뛰어난 지능, 말과 소의 튼튼한 다리, 독수리 날개 등 여러 짐승들의 훌륭한 부분들을 합쳐서 만든 수호신이다. 또한 ‘로제타석’은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데 크게 기여한 비석이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글씨 새겨진 돌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만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엄청난 비석 앞에 서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명언이 생각나는 일이었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품들’도 대단한 예술품이었다. 어떻게 대리석을 이렇게 정교하게 깎아놓았는지,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사진을 찍어보니 명암을 더욱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영국 런던의 버킹엄궁전.

기말고사 영어 교과서 Culture 부분에 나왔던 버킹엄 궁전! 깃발을 통해 지금 여왕이 신전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틈 사이로 영국 군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군인들은 궁전 문 앞에서 일정한 시간간격을 두고 옆으로 갔다가 총을 들었다가 놨다가 다시 제자리로 왔다가 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움직였다.

가이드는 영국군인 한명이 쓰는 검은 모자가 곰 한 마리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왕실을 지키는 군인들은 역시 남다른 대우를 받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얼마나 많은 곰들이 희생당했을까?’라는 생각에 섬뜩하기도 했다. 근위병 교대식을 보지 못한 것과 흐린 날씨가 아쉬웠지만 궁전 자체는 정말 멋있었고 죽기 전에 이런 곳에서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즐겁고 놀라운 시간이었다.

런던아이 앞에서.
런던아이의 운영시간 종료로 아쉬움을 달래며 탄 회전목마.

마지막으로 런던 아이를 타기로 했다. 한국전쟁 참전 영국 병사들을 추모하는 국방부 앞 공원에서 묵념을 하고 돌아올 때 바로 맞은편에 있던 런던 아이를 타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우리를 인솔한 세종포스트 대표님이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모든 일정을 마친 우리들은 버스를 타고 런던 아이로 향했다.

하지만 런던아이는 오후 6시까지 운영했기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높은 곳에서 우리나라와 다른 느낌의 런던 야경을 보고 싶었는데 정말 아쉬웠다. 그런데 운 좋게도 호텔로 가는 도중 회전목마가 있었다. 우리는 런던아이를 못 탄 대신 회전목마를 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한국 회전목마보다 스피드가 빨라 더욱 재미있었다.

우리의 부탁을 적극적으로 들어주신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타는 도중 김다현 학사 덕분에 회전목마 목 주변에 다리를 올려놓으면 편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들은 회전목마를 탄 후 길거리에 화려하게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면서 즐겁게 숙소로 돌아갔다. 마냥 행복했던 하루였다.

잊지 못할 제네바대학의 야외스케이트장

스위스 제네바의 UN본부 사무국.

‘이지젯(Easyjet)’이라는 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스위스, 제네바로 향했다. 제네바에서는 크리스마스시즌이라 가이드투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유엔 사무국과 제네바대학교에 갔고, 유엔 사무국 맞은편에 있는 부러진 의자도 봤다.

집현전 학사 친구들끼리 ‘NATIONS UNIES, UNITED NATIONS’이라고 쓰여 있는 곳 앞에서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었다. 외교관이 꿈인 서승희 학사는 정말 들떠있었다. “살다 살다 내가 유엔 사무국에 다 와보네”라며 밝게 웃는 승희를 보며 꿈과 목표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반짝 반짝 빛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유엔에 큰 관심이 없던 나도 건물 앞 나열된 여러 나라의 국기들을 보며 감탄할 정도였는데, 승희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승희가 꼭 성공해서 유엔 사무국에서 멋진 외교관으로 활동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위스 제네바 UN본부 앞 광장에 설치된 부러진 다리.

부러진 의자는 다리 하나가 부러져있는 매우 큰 크기의 의자로, 지뢰로 다리를 잃거나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어졌다. 유엔본부 앞 광장에 위치하고 있다.

신기하게 대학교 안에 스케이트장이 있었다. 우리는 스케이트를 탔다. 제네바대학교는 수요일 오후 4시에서 6시에만 스케이트장을 운영하는데, 놀랍게도 우리가 딱 그 시간에 맞춰왔었다. 제네바 대학교에 가는 것은 기존 일정에도 없던 것인데 정말 운이 좋았다.

초등학생 때는 스케이트를 꽤 잘 탔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번에도 잘 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온 후 점점 감퇴한 체력과 운동신경은 기대를 저버리게 만들었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생각보다 빙판은 매우 미끄럽게 느껴졌고 그 안에서 5m도 가지 못하고 기둥에 기댔다. 그동안 얼마나 체력 관리에 소홀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스위스 제네바대학 야외스케이트장에서의 즐거운 시간.

하지만 나보다 두 살 동생인 정혜윤 학사가 “언니, 제가 밀어드릴까요?”라며 손을 건넸고 그 덕분에 서서히 감을 익히고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흑인 스케이트 선생님도 계셨는데, 그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친 순간, 나보고 중앙으로 나오라고 해서 한 10초 정도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우리 9명은 빙판 위에서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스케이트 선생님께 부탁드려 K-POP을 울려 퍼지게 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트와이스의 CHEER UP, 방탄소년단의 DNA 등 여러 가지의 노래를 틀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보니, 다른 학생들이 스케이트 선생님께 항의를 하는 것 같았다.

언어가 달라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표정을 통해 그들이 이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제네바 대학교에서 자랑스러운 한국가요를 들었고, 그 가요에 맞춰 스케이트를 타봤다는 점에서 우리들은 큰 의의를 가졌고 뿌듯해했다.

양심에 찔려 나중에는 다시 POP SONG을 틀었다. 스케이트를 타며 넘어지고, 부축해주고, 웃고, 노래 부르며 우리는 더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마치 청소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는 너무나 즐겁고 소중한 시간을 보냈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이튿날은 유니세프와 세계무역본부 등을 들러보고 레만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건물에 붙어있는, 어른이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있는 듯한 그림의 마크가 인상 깊었다. 유니세프라는 기관명은 자주 들었어도 마크는 처음 봤는데, 그 마크가 아동구호기관이라는 것을 너무나 정감 있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충건 대표님께서는 유니세프 앞에서 우리 모두 개인사진을 찍어주셨다. 여행 내내 사진으로 잊지 못할 추억들을 담아주신 대표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나의 BEST 여행지, 프랑스 파리

프랑스 파리 에펠탑을 앞에 두고 다 함께 점프.

베르사유 궁전은 태양왕 루이 14세의 영광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지어진 궁전이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짐이 곧 국가’라는 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궁전 내부로 들어가면 화려한 그림들과 가구들이 많다. 건물 장식도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다. 오디오를 들으며 각 방이 뭘 나타내는지, 각 그림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 그림에 있는 인물은 누구인지 등을 알 수 있었다. 정말 동화 속에 나올 법한 궁전이었다.

비록 이 궁전은 내가 길을 잃어버렸을 때 ‘국제 미아가 되는 것 아닌가?’, ‘나 때문에 다음 일정 다 밀리면 어떡하지?’ 등의 두려움을 안겨준 곳이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이 베르사유 궁전은 내 기억 속 더욱 잊지 못할 명소로 남았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이 들어서 매우 익숙했던 이름, 에펠탑! 오늘 드디어 에펠탑 2층에 올라왔다. 날씨가 흐려서 아쉬웠지만 강 위에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과 ‘□’ 자 구조처럼 가운데가 뻥 뚫린 프랑스만의 독특한 특징의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록 비가 내려 기분이 찝찝하고 시야 확보가 잘 안됐지만 더 구름이 끼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프랑스의 문화를 눈에 담았다. 에펠탑에 서있으면서도 내가 에펠탑에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꿈만 같았다. 너무 행복했다. 다음에 프랑스 파리에 다시 오게 된다면 에펠탑 꼭대기까지 가봐야겠다.

달팽이 요리 에스까르고.

점심으로 프랑스어로 에스까르고라는 달팽이 요리를 먹었다. 프랑스에 오면 한번은 먹어줘야 한다는, 하지만 현지인들은 잘 먹지 않는다는 달팽이 요리! 고급 음식이라는 선입견이 강해서 달팽이 요리를 본 순간 징그럽거나 혐오스럽기 보다는 얼른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큰 소라를 먹는 듯한 식감이었고 적절하게 짠 소스와 어우러져 고소하고 맛있었다.

달팽이 요리가 메인요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크기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처음 맛보는 입장에서 크기며, 맛이며, 딱 적당했다. 다음에 파리에 오게 되면 엄청 큰 달팽이도 먹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6개의 달팽이가 담긴 접시를 먹은 후 나온 고기와 감자도 정말 맛있었다.

외국음식에 금방 적응하는 편이라서 거의 모든 현지 음식이 맛있었다. 유럽 여행 내내 느낀 건데 호텔 조식으로 나오는 빵(특히 크루아상), 현지식 먹을 때 함께 나오는 감자는 항상 맛이 100점 만점에 200점이었다. 가족 생각이 많이 났다. 꼭 성공해서 부모님 해외여행 보내주는 멋진 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노트르담 대성당은 내가 다니는 한국의 성당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외관이 화려하고 웅장하였다. 외관에 사람 조각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 머리가 잘려 머리를 손에 들고 있는 조각도 있었다.

외관 못지않게 내부도 매우 화려했다. 조명을 밝게 켜지 않아 내부는 살짝 어두웠는데 오히려 그것이 성당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대입을 앞둔 서재영, 서승희, 나는 그곳에 앉아 대학 가게 해달라고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천주교인 나는 학사들에게 성수가 무엇인지, 성호경을 어떻게 긋는 지 알려주었다. 가족을 위한 기도, 앞으로 남은 유럽 여행을 위한 기도, 한국에 있는 아픈 단짝 친구를 위한 기도도 했다. 유럽에 와서 기도를 한 것은 천주교도로서 뜻 깊은 경험이었다.

바또 무쉬와 파리 3대 미술관 탐방

바토 무쉬를 타고 센강을 따라 파리를 구경했다.

오후 4시가 넘어 프랑스 파리의 상징, 에펠탑이 보이는 센 강에서 바또 무쉬를 탔다. 바또 무쉬는 일종의 유람선인데, 바깥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서늘한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계속 2층에서 탔다.

루브르박물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모나리자’와 승리의 여신 ‘니케’였다. 47조 정도의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모나리자 진품을 내가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왔다는 사실이 너무 영광이었다.

수많은 미술작품 속에서도 모나리자는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모나리자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을 보며 나도 나만의 업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앞에서.

오르세 미술관은 루브르박물관, 퐁피두센터와 함께 파리의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고대에서 19세기까지의 작품을 다루는 루브르박물관, 1914년 이후의 현대 미술을 다루는 퐁피두센터의 국립현대미술관과 비교하면 19세기 이후의 근대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오르세 미술관은 시기적으로 앞의 두 미술관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본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초라한 빈고흐의 방>, <이웃집 소녀>, <닥터 가셰 초상화>뿐만 아니라 원래 알았던 작품인 <자화상>,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도 봤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본다는 것이 너무 영광스럽고 기뻐서 반 고흐 작품 전시관은 두 번이나 돌았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어 뜻 깊은 시간이었다.

독일 베를린에서 성탄 예배

독일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에어프랑스에 탑승해 어렸을 때 브루마블 게임을 하며 자연스럽게 익숙해졌던 독일 베를린에 갔다. 어느 새 비행기에 익숙해졌는지 이동을 많이 해도 엄청 피곤하진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도시의 모습을 곧 본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카이저빌헬름 기념교회에서 예배(독일어)를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여서 내 또래, 동생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연극을 했다. 조금은 특별한 예배였다. 독일어여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됐고 사람들이 웃어도 따라 웃기만 할 뿐 왜 웃는지 그 이유를 몰랐지만 독일 성탄 예배 문화를 체험해본다는 점에서 뜻 깊은 경험이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래가 흘러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언어는 달라도 종교를 통해 세계인은 통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예배를 마친 후, 우리는 카이저빌헬름 기념 교회 앞에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매우 큰 크기의 소시지를 먹었다.

노릇노릇 비주얼이 끝내줬다. 독일 베를린의 소시지는 우리나라 것보다 짠 맛이 강했다. (물론 그 마켓이 특히 짠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서양 음식 대부분은 우리나라 음식에 비해 조금 더 짠 맛이 강한 것 같다. 그 후 우리는 자유 시간을 가졌고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트리, 상자 등의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다. 크리스마스 마켓 대부분이 문을 닫아서 아쉬웠지만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어 행복했다. 

카이저빌헬름 기념교회는 독일 최대의 번화가로 유명한 쿠담거리에 위치해 있다. ‘썩은 이빨’이라고 불리며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입은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교회는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기억하고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는 의미로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였으며, 대신 바로 옆에 육각형으로 된 교회를 새로 지었다.

새 교회는 푸른빛을 띠는 돌 유리로 되어 있어 내부는 신비롭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독일의 첫 번째 황제였던 빌헬름 1세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해 1891년부터 1895년까지 4년여에 걸쳐 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다.

통일 독일의 현장, 베를린장벽

베를린 장벽의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는 베를린 장벽의 동쪽에 1990년 세계 각국의 미술 작가들이 그린 105개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야외 공개 갤러리로 알려져 있다.

갤러리에 그려진 그림은 변화된 시간을 기록하고 행복감과 더 나은 희망,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더 자유로운 미래를 표현하였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의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형제의 키스’ 앞에서 우리는 많은 사진을 찍었다. 

이는 냉전시대 소련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와 에리히 호네트 전 헝가리 구가평의회 의장의 키스를 표현한 작품으로, 심각한 훼손으로 인해 2009년 복원되었다고 한다. 벽화마을을 걷는 느낌으로 아주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도 좋았다.

독일 베를린의 동독 쪽 장벽 유적지. 장벽을 넘으려다 희생당한 옛 동독인들을 추모했다.

베를린 장벽은 1961년 동독 정부가 인민군을 동원하여 동베를린과 서방3개국의 분할점령 지역인 서베를린 경계에 쌓은 콘크리트 담장이다. 베를린 장벽 앞에는 십자가 모양의 비석이 있었는데 이는 동, 서독의 분단이 완전히 고착된 후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 오는 과정에서 공격을 받아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이었다.

넓은 들판 가운데에는 죽은 사람들의 사진을 모아둔 곳이 있었는데, 사진 속 인물은 아기에서 어른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탈북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와 연관지어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베를린 돔은 독일 베를린에 있는 루터교회이다. 박물관 섬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47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한다. 내부는 유럽의 여느 성당과 마찬가지로 넓고 화려했으나 노트르담 대성당보다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성당은 이 성당 나름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잘못 가고 있나?’싶을 정도로 복잡하진 않지만 일종의 미로 같은 통로를 거쳐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

베를린돔 꼭대기에서 바라본 베를린 시가지 전경.

야외로 나와서 바깥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해가 떨어질 무렵의 어둑함 속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건물의 조명을 볼 수 있었다. 중국 상하이의 동방명주같이 생긴 알렉산더광장의 TV타워와 빨간 지붕을 한 독일 주택이 너무 아름다웠다. 김다현과 함께 올라왔던 나는 여기서 한연주와 서승희를 만나 함께 사진도 찍고 감탄하며 경치를 마음껏 즐겼다.

유대인 학살을 추모하는 공원에도 들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원으로 독일 베를린 중심가에 있다. 홀로코스트 기념비(Holocaust-Mahnmal) 공원으로도 알려졌다. 1만 9000㎡의 부지에 2711개의 콘크리트 비가 세워져 있다.

커다란 관을 연상시키는 직육면체의 잿빛 비석들은 가로 0.95m, 세로 2.38m 넓이에 높이는 0.2m 에서 4.8m까지 다양하다. 비석 주변에는 총 41그루의 나무가 있다. 지하에는 면적이 930㎡인 박물관이 조성되어 있다.

자유시간 보낸 뮌헨에서의 여유

뮌헨 마리아 광장. 왼쪽 건물이 신청사다.

독일국적기인 루프트한자를 이용해 뮌헨으로 갔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마리아광장. 건물 1층은 상가들이 들어서 있었다. 특정 시간에 중앙탑 6층에서 빌헬름 5세의 결혼식을 구현한 인형극을 볼 수 있다는 데 우리는 시간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다.

1638년 30년 전쟁으로 스웨덴 군대가 이 지역을 점령했다가 해방됨을 기념하여 마리아탑을 세웠는데, 그때부터 이곳을 마리아광장으로 불렀다고 한다. 건물이 궁전처럼 너무 웅장하고 화려해서 처음 본 순간 반했다. 유럽 여행을 하는 동안 정교하고 화려한 건물들을 많이 봤지만 볼 때마다 놀라웠다.

자유시간이 주어져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함께 맥도날드로 갔다. 나는 키커 아이스크림과 프렌치프라이에 마요네즈를 찍어먹었다. 마요네즈를 찍어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느끼했지만 계속해서 먹다보니 고소했다.

각자 주문한 음식을 다 먹고 맥도날드를 나왔는데 아까 내 앞에서 치즈버거를 주문했던, 우리 또래처럼 보이는 남학생 두 명이 우리에게 염소가 어디 있냐고 물어봤다. 영어를 잘하는 승희는 “Really goat?”라며 다시 물어봤지만 그들은 “Yes! Really goat”라고 답했다. 틀림없이 염소가 맞았다.

길거리에서 염소를 찾는다는 게 어이없기도 하고 웃겨서 남학생들이 간 후 우리는 엄청 웃었다. 나는 내가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는데 정말 염소라니! 동양인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정말 잃어버린 염소를 찾았던 것이라면 미안한 말이지만 생뚱맞은 말에 웃기긴 웃겼다. 태어나 들어본 질문 중 top 7 안에 들 정도로 황당한 질문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보고서를 쓰면서 찾아봤는데 What has taken your goat?가 ‘무엇이 당신을 짜증나게 했나요?’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는 goat 밖에 못 들어서 그 남학생이 정확히 이 문장을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goat가 우리가 생각하는 뜻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예 다른 의미의 독일식 일상생활 표현일 수도 있다. 그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

로텐부르크에서 만난 독일식 왕족발

독일식 왕족발 학세.

학센은 독일식 튀긴 족발이다. 두 주먹을 나란히 두었을 때 정도의 크기였다. 바삭바삭한 껍질과 살코기의 조화! 부드러운 우리나라 족발과 달리 약간 질기다 싶을 정도로 살코기가 쫄깃쫄깃했다. 고기 자체의 맛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지만 치킨과 족발을 합쳐놓은 듯 독특한 요리방식 때문에 꼭 다시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다.

동화 속에 나올 법한 건물과 거리. 아름다운 음악이나 멋진 바다, 산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건물은 우리를 동화 속 주인공처럼 만들었다. 로텐부르크 옵데어 타우버의 풍경이다. 급한 경사의 빨간 지붕들이 참 예뻤는데, 빨간 지붕 위에는 울타리처럼 생긴 것이 세워져 있었다.

가이드는 이것이 지붕에 있던 눈뭉치들이 가파른 경사로 인해 미끄러져 떨어질 때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맞지 않기 위해 눈을 부시려는 용도로 세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여러 빨간 지붕 곳곳에 지붕용 울타리가 세워져 있었다.

도시를 감싸고 있는 이 벽의 총길이는 3.5㎞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뢰더탑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도 찍었다. 영화 ‘미녀와 야수’의 주인공 ‘벨’이 사는 마을처럼 평화롭고 한적하면서도 고품격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독일 로텐부르크 옵데어 타우버의 골목길.

일제강점기 때 독립을 추구했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고문을 당했다. 가끔 일제강점기나 고려, 조선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면 고문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싶을 정도로 끔찍한 고문들이 많다. 처음 ‘중세고문박물관’이라 했을 때 이 고문이 내가 아는 고문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문을 주제로 한 박물관을 가본 적이 없을뿐더러 매우 생소했기 때문이다.

중세 고문박물관은 생각보다 넓었다. 다양한 언어로 설명이 적혀있었는데, 한국어가 없어 그나마 친숙한 영어를 모국어처럼 읽었다. 가면을 씌워 수치를 느끼게 하는 것, 뼈를 으스러뜨리는 것, 사람을 불에 태우는 것, 물에 끓여 죽이는 것 등 매우 많은 종류의 고문 방법과 고문 기구들이 있었다. 동양, 서양 할 것 없이 인권이 중시되지 않았을 때는 사람들이 엄청난 고통과 역경을 겪어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친구들도 끔찍하다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하이델베르크 dm에서 폭풍 쇼핑

하이델베르크성.
카를 테오도르 다리.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오르기 위해 우리는 케이블카를 탔다. 정식 명칭은 모르겠지만 공중에 떠서 가는 우리나라 케이블카와 다르게 지하철처럼 레일을 타고 달렸다. 카를 테오도어 다리에 섰을 때는 노란 달이 우리를 반겼다.

다리 밑으로 여유롭게 흐르는 강물과 삼각형의 독일식 지붕을 자랑하는 건물들. 유럽에 있는 것이 꿈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는데 이 광경을 보며 ‘내가 정말 유럽에 있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꿈같았다. 매일 매일 여행만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문학에서 이상과 현실 세계를 배웠는데 유럽은 마치 내 이상인 것 같았다. 독일의 분위기는 내가 여행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도왔다. 

dm은 도이치 마르크(Deutsche Mark)의 약자로, 한국의 다이소 같은 느낌의 마트다. 나와 친구들 모두 물건을 많이 샀다. 나는 독일에서 유명하다는 물건을 위주로 구입했다. 세균을 98% 제거한다는 아조나 치약, 카밀 핸드크림, 발포비타민, 로레알 크림, 얼굴 팩, MILKA(오레오 맛) 초콜릿 등을 샀다.

여정의 마지막,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 뢰머광장.

아쉽지만 여정의 마지막이다. 프랑크푸르트. 인천행 아시아나항공에 탑승하기 전 오전 내내 프랑크푸르트를 둘러봤다.

4층으로 된 건물 내부의 20여 개의 방은 당시 상류층이었던 괴테와 그 가족의 삶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잘 보존되어 있다. 1층 부엌에는 괴테가 키가 작은 어머니를 위해 직접 고안한 사다리 겸 의자가 있고, 2층에는 중세 악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음악의 방’과 파티와 손님맞이를 위한 방이었던 ‘북경의 방’이 있다.

3층에는 괴테가 태어난 방과 세계에서 가장 값 비싼 천문시계가 있다. 4층에는 괴테가 ‘파우스트’ 1편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수많은 작품들을 집필한 방이 있는데, 항상 서서 글을 썼던 그가 사용하던 높은 책상이 있다.

4층인데다가 방도 많아서 괴테가 얼마나 부유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걸을 때마다 들리는 나무 바닥의 삐걱 소리가 ‘나 굉장히 오래되었어!”’라고 알려주는 듯했다. 괴테가 태어난 방도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딱히 특별하진 않았다.

괴테하우스.

괴테 생가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던 터라 나에겐 그저 청록색 벽지를 띤 방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괴테의 탄생과 죽음을 의미하는 별과 칠현금이 걸려있고 오른쪽에는 괴테 말년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등 나름 의미 있는 장식품이 있는 방이었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는 가보다. 괴테와 그의 생가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한 후 이곳을 다시 온다면 세세한 의미를 파악하며 인상 깊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다.

뢰머 광장은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의 구시가지 중앙에 위치한 광장이다. '뢰머(로마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고대 로마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인데 15~18세기의 건물들이 몰려 있다. 광장 주변에는 구시청사와 오스트차일레가 있다. 구시청사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대관식이 끝난 후에 화려한 축하연을 베풀었던 유서 깊은 곳이며, 프랑크푸르트 최초의 박람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바돌로메 교회를 끝으로 프랑크푸르트공항으로 가는 길에 한국식당에서 불고기와 순두부찌개로 점심을 먹었다. 2017년 한 해를 유럽에서 마무리하고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제, 고3이 나를 기다린다. 이번 유럽체험연수가 나의 미래를 향한 디딤돌이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문선영  webmaster@www.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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