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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코스 정석대로 피레네를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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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코스 정석대로 피레네를 넘다
  • 김형규
  • 승인 2017.12.18 15:22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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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3>나폴레옹 루트와 황제의 라이딩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서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산티아고를 순례하기 위해선 여권과 같은 증명서를 만들어야 나중에 완주증을 받을 수 있다.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이하 생장) 산티아고 순례사무소에서 아들(가운데)이 상담하고 있다.

첫날부터 비 그리고 이상 저온 

생장피에드포르(Saint-Jean-Pied-de-Port•이하 생장)의 첫날은 여름인데도 음습한 찬 기운이 돌더니 기어이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가 그치기만 기다리다 어느덧 오전 7시를 넘겼다.

대다수 도보순례자들은 판초우의를 걸치고 떠났다. 첫날부터 계획이 빗나가는 건가. 날씨가 더 악화되기 전에 무조건 출발하기로 했다. 덕분에 고민 하나는 해결됐다. 나폴레옹 길을 자연스레 포기한 것이다. 

홍콩-마드리드를 거쳐 바르셀로나에서 3일간 현지 적응 겸 관광을 하고 전날 오후 6시 스페인 국경에서 가까운 프랑스 땅 생장에 도착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순례자 출발코스다.

출발점인 생장 사무소에는 순례증명서를 만들려는 각국 신청자로 북적인다.

바르셀로나에서 500㎞쯤 떨어진 이곳까지 좁은 차안에서 구겨진 채로 7-8시간 달려오느라 모두 파김치가 됐다. 도착하자마자 산티아고 순례자사무소에서 순례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사무소는 여러 나라에서 온 예비순례자로 붐볐다.

증명서에는 국적과 이름, 여권번호, 순례방법(도보 또는 자전거)이 기재된다. 발급비용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자원봉사를 나온 담당자에게 기부금조로 2유로 동전을 건네니 고맙게 받았다.

산티아고 첫 관문은 ‘알베르게’ 

생장에서 하룻밤 묵은 알베르게. 생소한 환경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을 잘 사설 알베르게를 잡고 인근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 3일간 차에 보관해뒀던 자전거를 꺼내 조립하기 시작했다. 항공수하물로 공수하느라 접혀 있었던 접이식 톱튜브를 바로 잡고 꽁꽁 동여맨 바퀴와 핸들을 제자리에 맞춘 뒤 공기를 빼낸 튜브를 되살렸다.

아들과 나는 20인치 미니벨로를, 멋진남님은 ‘신상’ 27.5인치 카본 XC를 공수해 왔다. 누구나 알만한 ‘스페*****’모델을 1개월 전에 뽑았단다. 짧게 테스트 라이딩까지 마치니 어느덧 밤 11시가 다됐다.

잠을 잘 2층 숙소로 올라가는데 알베르게 주인이 계단 밟는 소리에 놀란다. 다른 투숙객은 자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검지를 세운다. 산티아고 알베르게는 다음날 새벽 출발을 위해 일찌감치 불을 끈다. 입구 옆에 위치한 공동화장실과 샤워실을 오가는데도 몸을 사렸다. 철제 2층 침대는 몸을 뒤척일 때마다 금속마찰음을 냈다.

생장 관광안내소 앞에서 아들과 출발하기 직전. 속은 비 때문에 타들어갔다.
생장 외곽에서 본격적인 산티아고 라이딩을 시작하기에 앞서 운명을 건 팀 3명이 기념촬영을 했다. 가운데가 멋진남님. 빗방울은 굵어지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 번째 고난은 알베르게에서 시작된다.

15명쯤 되는 한 방 투숙객은  반 이상 서양인이고 일본인 그리고 우리팀, 여성도 몇 명인 듯했다. 불이 꺼진 지 오래됐으나 모두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부터 시작될 순례의 설렘에 밤새 뒤척였다.

2층 침대에서 내려와 앞꿈치로 화장실을 오가거나 배낭의 짐을 다시 확인하는 지퍼 소리에 어수선한 첫 밤을 보냈다. 대다수 이웃이 성가시게 하는 일에 잠자는 척 모른 체 했지만 일부는 목기침으로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알베르게에선 인종이나 남녀노소가 없다. 모두 순례자일 뿐이다.

표고차 900m 극복할까 

피레네 산맥으로 오르는 초입에서 멋진남님이 추위와 빗속에서도 투지를 발휘하며 힘찬 페달링을 하고 있다.

몇 시간 동안 잠투정을 한 끝에 오전 5시쯤 일어나 여장을 챙겼다. 바게트와 우유, 커피로 아침을 대신하고 알베르게 밖으로 나왔는데 여전히 한밤중에다 빗물이 터질 듯하다.
     
첫날 달릴 코스는 팜플로나까지 80여㎞다. 충분히 소화해낼 만한 거리지만 자전거로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한다. 산티아고 순례자가 피레네 산맥의 최고봉인 아네토산(해발 3404m)을 피해 비교적 낮은 지대로 넘어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비포장 나폴레옹 길과 차도를 따라 가는 것이다. 이베리아반도를 침공할 때 넘어갔다는 나폴레옹길이 순례자코스의 정석이다. 해발 1450m를 넘어야하고 스토리텔링이 있으며 우리나라 임도와 같은 정경에 장대한 스케일이 매력적이다. 다만 궂은 날에는 피하는 게 좋다. 자전거도 산악용이 아니면 도전하기 어렵다.

도로변에 순례자들이 알아보기 쉽게 설치된 산티아고 표지석.

다른 방법은 135번 차도를 따라가는 것이다. 산속 도로변 경관이 아름답고 나폴레옹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해발 1100m를 넘어야 하니 나름 고진감래를 성취할 수 있다.

미니벨로를 끌고 가더라도 나폴레옹길에 도전하고 싶었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작품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이 떠올랐다. 알프스산맥에서 백마를 타고 진두지휘하는 나폴레옹의 역동성과 기상을 피레네에서 조금이나마 채취하고 싶었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날씨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미니벨로는 일정상 무리였다.

출발하자마자 “이 길이 아닌가벼.” 

피레네산맥을 올라가는 도로변에도 가끔 도보순례자를 위한 갈림길이 뚫려 있다.

아들과 멋진남님에게 고개를 돌리자 밤잠을 설쳐서인지, 피레네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표정이 굳어있다. 요즘 절기에는 비가 오지 않는데 몇 년 만의 이상기온이란다. 섭씨 10도의 찬 기운이 옥죄었다. 이 상태로 산에 오르면 저체온증이 올 것이다. 지도상으로 우리가 넘어야 할 정상 고도는 1105m. 전체 표고차가 900m에 달한다.

지리산 주변 도로를 따라 성삼재휴게소까지 업힐한 적이 있는데 대략 해발 1100m정도 된다. 피레네와 성삼재의 차이가 있다면 거리와 표고 차다. 우리나라에선 자전거로 갈 수 있는 업힐은 경험상 최대 15㎞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출발지점이 어디냐에 따라 다르지만 피레네는 무려 32km나 죽도록 올라가야 한다.

아들과 멋진남님에게 바람막이와 보온이 될 만한 여분의 옷을 챙길 것을 주문했다. 긴 업힐 구간이니만큼 조급함을 갖지 말고 무상무념으로 페달링을 할 것도 함께 당부했다.

첫날부터 아들의 무릎상태가 걱정이다. 멋진남님은 함께 라이딩한 적이 없어 어느 수준인지 가늠할 수 없다. 무리하지 말고 자기 페이스대로 전진해주길 바랐다.

장거리 자전거 업힐에서 초보자들이 낭패를 보는 대다수 이유는 에너지와 근육을 나눠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힘을 아껴 쓰면서 무리다 싶으면 내려서 끌다가 다시 타고 가는 방법이 상책이다. 쪽팔리더라도.

다행히 침낭과 옷가지 등 모든 짐을 자전거에 몽땅 싣고 가는 유럽친구들과 달리 우리는 단독군장으로 라이딩에 나설 수 있다. 큰 짐은 투어업체 직원이 운전하는 렌터카에 실었다.

우리는 황제 라이딩 중 

길을 잘못 들었던 3거리. 사진에 보이는 가까운 길로 가야 했는데 길이 좋아 보이는 프랑스 내륙행을 택했다. 문자를 좀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알만했는데 자전거라이더들이 가끔 간과하는 실수다.
피레네 등판 중 만난 네덜란드 출신 라이더 동지. 혼자서도 많은 짐을 싣고 낙천적으로 업힐하고 있다.

우중에 생장에서 기념촬영을 하자마자 서둘러 출발했다. 출발점인 성곽을 지나자마자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 길은 마을 뒷골목처럼 좁고 나머지는 그럴듯한 차도다. 머지않아 스페인과의 국경이 나올 터이니 당연히 넓은 길을 택했다.

첫 번째 오판이었다. 3㎞쯤 가다가 조짐이 이상해 지나가는 현지인에게 ‘산티아고!’라고 외치니 이 길이 아니라며 손가락으로 반대편을 가리켰다. 프랑스 중심부를 향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첫날부터 6㎞나 헛다리를 짚었다.

곧장 종전 삼거리로 돌아가 좌측 길로 들어서자 완만한 업힐이 시작됐다. 보슬비와 물안개에 덮인 피레네 농촌 숲길에 들어서자 길을 잃었던 혼돈이 치유됐다.

1시간쯤 달렸을까. 앞서서 완전군장을 한 자전거라이더가 보인다. 산티아고에서 첫 번째 만나는 동지다. 네덜란드에서 온 친구인데 패니어에 짐을 잔뜩 우겨넣고 피레네 산맥을 힘겹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나를 살펴보더니 “짐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차에 실었다. 우리는 (나폴레옹) 황제 라이딩 중”이라고 어눌하게 농을 건넸더니 웃으며 행운을 기원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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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 2017-12-19 13:52:08
ㅋㅋㅋ 황제 라이딩이라고 하지만, 쉽지는 않아 보여요.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kusenb 2017-12-19 13:52:18
마지막 농담이 참 위트있으시네요...
참 부러운 여행기입니다 ㅎ

BWS 2017-12-19 14:08:37
여기가 아닌게벼....라는 나폴레옹 놀이에서...
황제놀이이라는 새로운 의미도있군요...ㅋㅋ

한입만 2017-12-19 15:36:51
피레네 산맥에 비냄새 땀냄새 땅냄새가 느껴지네. 계절차로 인해 겨울 추위속에 읽는 맛이 쏠쏠 재미져요^^ '개고생'과 '대도전' 두바퀴로 나아가는 라이더의 순례를 읽어가는 리더(reader)의 즐거움!!! 갤러리가 되어 쭈욱 따라갑니다^^

jerry 2017-12-19 14:16:22
항상 여기가 아닌가봐! 하다가도 시간이 흘러 지나 온 길을 돌이키면, 어느 덧 인생 길로 만들어져 가고 있는가 보다, 부자간 좋은 추억 되셨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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