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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맞선 사랑,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여덟 번째 미션[박한표의 그리스·로마신화 읽기] <25-8>디오메데스의 식인마(食人馬)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 문학박사

헤라클레스에게 주어진 여덟 번째 미션은 트라키아로 가서 사람을 잡아먹는 디오메데스의 암말을 잡아오라는 것이었다.

트라키아는 먼 북쪽 나라이고, 말 주인인 디오메데스는 전쟁 신 아레스의 아들이다. 아레스가 저승 신 하데스의 졸개이니 디오메데스와 암말 역시 하데스의 졸개인 셈이다.

스팀팔로스의 새처럼, 디오메데스의 암말 역시 보통 말이 아니다. 이 암말은 자기의 등에 탄 기수를 떨어뜨려 짓밟고는 그 고기를 먹는다. 디오메데스는 자신의 말에게 사람 고기를 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트라키아의 왕 디오메데스는 올림포스의 싸움쟁이 아레스와 요정 퀴레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암말은 디오메데스가 거두는 승리의 부산물을 먹이로 받아먹는다. 말이 굶지 않으려면 트라키아에 전쟁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 실제로 디오메데스가 다스리는 비스토네스 족은 매우 호전적이었다.

‘디오메데스를 쓰러뜨리는 헤라클레스’ 샤를 르브룅, 캔버스에 유채, 60×45㎝, 1639-1641년경, 보나미술관(프랑스 바욘).

헤라클레스는 이 족속의 왕인 디오메데스로부터 어떻게 암말을 빼앗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이 암말은 전쟁터에도 나가지 않고, 굵은 쇠줄로 무거운 청동 구유에 묶여, 전쟁터에서 끌어온 포로나 도망자, 반역자를 먹으며 살고 있었다. 전쟁이 없을 때는 디오메데스 왕이 직접 씨름을 해서 패한 씨름꾼을 먹잇감으로 주기도 했다.

디오메데스는 씨름꾼과 겨루기를 무엇보다 좋아했고, 그 스스로가 트라키아 제일의 씨름꾼이었다. 헤라클레스는 디오메데스에게 씨름을 걸었다. 헤라클레스는 씨름의 신인 헤르메스의 아들 아우톨리코스로부터 씨름을 배운 적이 있다. 그리고 네메아의 사자를 맨손으로 목 졸라 죽일 정도로 힘이 셌다.

씨름이 시작됐지만 디오메데스는 손 기술을 채 부려보지도 못했다. 헤라클레스는 순식간에 디오메데스의 목뼈를 부러뜨리고는 암말의 청동 구유 안으로 집어던졌다. 암말은 주인을 맛나게 먹은 뒤, 순순히 헤라클레스의 손에 끌려 아르고스 왕에게 인계됐다.

‘죽어가는 알케스티스’ 장-프랑수아 페이롱, 캔버스에 유채, 327×325㎝, 1785년, 루브르박물관(프랑스 파리)

여덟 번째 미션을 수행하던 중, 헤라클레스가 겪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즉 액자 이야기다.

페라이의 왕 아드메토스와 그의 아내 알케스티스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러브스토리다.

이 이야기는 헤라클레스가 아르고스의 왕 밑에서 여덟 번째 미션, 트라키아로 가서 디오메데스의 암말을 붙잡아 오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겪게 되는 사건이다. 무대는 헤라클레스가 트라키아로 가는 길에 테살리아 땅을 지나다가 들리게 된 페라이라고 하는 조그만 나라다. 그 곳의 왕 아드메토스와 그의 아내 알케스티스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아드메토스 왕은 아폴론 신을 8년간이나 종으로 부린 왕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의술의 신이었다. 현자 케이론으로부터 의술을 배웠다. 그러나 죽은 자를 살려내는 것은 저승의 왕 하데스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죽은 사람을 살려내자, 하데스가 제우스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이에 제우스는 벼락을 던져 아스클레피오스를 저승으로 보냈다. 아폴론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신들의 대장간에서 일하며 벼락을 만들었던 퀴클롭스 3형제를 죽여 버렸다. 그러자 제우스는 벌로 아들 아폴론을 페라이 땅으로 내려 보내 인간의 종살이를 시킨 뒤 그 죄를 닦아주려고 했다. 이때 아폴론이 인간 세상의 주인으로 섬긴 이가 바로 아드메토스다.

당시 아드메토스는 펠리아스의 딸 알케스티스를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가 내건 사랑의 조건에도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가 내건 사위가 될 수 있는 조건은 이랬다. “사자와 멧돼지가 끄는 이륜마차를 타고 오는 자가 있으면 그 신분을 묻지 않고 딸을 주겠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멧돼지가 사자의 먹잇감이어서다. 그러자 그의 밑에서 종살이를 하던 아폴론이 나섰다. 아폴론은 자신의 할머니벌인 레아 여신으로부터는 사자 형상을 빌리고, 아레스로부터는 잠시 멧돼지의 빈 형상을 빌려 이륜마차에 매달아주었다. 이렇게 해서 아드메토스는 알스티아를 아내로 얻게 된다.

부부는 한참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아드메토스가 원인 모를 병을 얻게 된다. 아폴론이 그 이유를 운명의 여신에게 물었더니, 아드메토스가 아내를 맞고도 아레스에게 적절한 예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아드메토스를 살리려면 누군가가 그를 대신해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폴론이 아드메토스 왕을 찾아가, 왕을 대신에서 죽을 사람이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왕의 바람과는 달리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신하들은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했지, 왕을 대신해서 죽겠다고 맹세한 바 없다”고 했다.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왕의 부모도 거절했다.

‘알케스티스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신과 싸우는 헤라클레스’ 로드 라이튼, 캔버스에 유채, 132.4×265.4㎝, 1870년, 워즈워스 학당미술관(미국 하트퍼드).

그 때 왕을 대신해 죽겠다고 나선 이는 아름다운 왕비 알케스티아였다. 그녀가 선뜻 나선 것은 ‘사랑의 힘’이다. 아드메토스가 기사회생하는 것과 때를 같이해 알케스티스가 병석에 눕게 된다. 바로 이 시점에 헤라클레스가 페라이에 도착한다. 아드메토스가 알케스티스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을 때, 온 페라이 땅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을 바로 그 때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헤라클레스는 객사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사실을 알고나서야 헤라클레스는 스스로를 책하며 아드메토스를 도울 생각을 했다.

헤라클레스는 그 길로 알케스티스의 묘지로 달려가, 그 곳에서 진치고 있는 타나토스(죽음)와 싸워 이겨, 알케스티스의 혼백을 돌려받았다. 하데스도 이 일에는 가만히 있었다. 하데스도 “모든 것을 정복하는 사랑이 되살려 낸 것”이라고 생각한 듯싶다.

헤라클레스는 혼백을 시신에 돌려주어 알케스티스를 소생시킨 뒤, 아드메토스에게 보내준다. 이렇게 아드메토스와 알케스티스의 사랑을 다시 맺어주고 여덟 번째 미션을 위해 떠났던 것이다.

박한표  webmaster@www.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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