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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산중’ 불안한 산티아고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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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산중’ 불안한 산티아고 행
  • 김형규
  • 승인 2017.12.11 11:18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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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좌충우돌 산티아고 자전거 순례] <2>이미 시작된 고행 ‘마크툽’

전직 기자가 자전거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두 바퀴가 달려 만나게 되는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해왔습니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 필자는 뉴올리언스에 키웨스트까지 1800㎞를 여행하며 ‘미국에서 세계사 들여다보기’를 연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과 함께 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를 시작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칼럼 내용 중 '마크툽'은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아랍어입니다. ‘그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이미 씌어 있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어차피 그렇게 될 일’ 정도로 해석되며 우리식으로 간단히 말하면 피할 수 없는 ‘팔자(八字)’ 또는 ‘운명’쯤 되겠습니다.<편집자>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고속도로변은 온통 황무지다. 바람이 많이 불어 풍력발전설비가 눈에 많이 띈다.

- 자전거 비행기에 싣기, 묘수 없나

스페인 산티아고 행을 결정하고 나서 가장 큰 고민이 자전거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이었다. 현지에서 대여하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신뢰가 가지 않았다. 대여료나 성능은 둘째 치고 잠깐 타는 게 아니라 예상거리 800㎞를 훨씬 넘는 900㎞나 타야하기 때문에 자전거에 대한 믿음과 익숙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직접 가져가자니 인천공항까지 운송, 비행기 화물규격에 맞는 포장, 대형수하물 위탁‧수취, 현지 운반 등 신경 써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아들 자전거까지 챙겨야 하니 부담이 두 배다. 자전거 포장은 의외로 부피가 크다. 항공기 위탁수하물로 부치는 일반 캐리어의 두 배 정도 된다.
 
보행자들이 독점했던 산티아고에는 요즘 자전거 순례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비포장 순례길 옆으로 웬만하면 포장도로가 따라다녀 적잖은 라이더들이 차도로 순례라이딩에 도전한다. 대부분 스페인 젊은이거나 인근 유럽 친구들이다.

이들은 자전거를 분해하거나 튼튼하게 포장하지 않고도 대중교통편에 싣고 출발지점까지 이동한다. 지리적 이점을 안은 유럽 라이더들의 특권이다. 아예 보행자가 다니는 비포장 길을 체험하기 위해 쿠션이 좋은 풀샥 자전거를 가져오기도 한다.

단프라박스나 종이박스로 포장할 경우 서로 부딪힐 수 있는 부위는 사이에 완충재를 넣고 단단히 묶어야 프레임 손상을 방지할 수 있다.
단프라박스에 미니벨로를 넣은 모습. 빈 공간은 옷이나 완충재를 넣어 충격을 방지한다.
미니벨로 전용 가방. 바퀴와 잠금장치가 있어 편리하지만 비싼 게 흠이다.

반면 항공 수하물로 보내야 하는 바다 건너 이방인에게는 자전거 포장을 놓고 골머리를 앓는다. 몇 해 전 일본 후쿠오카(福岡)로 자전거 여행을 떠난 적이 있는데 부산항에서 배편에 미니벨로를 싣고 간 적이 있다. 비행기와 달리 배는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지 않고도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

고민 끝에 일단 자전거는 20인치 접이식 미니벨로로 결정하고 포장문제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크기가 작은 미니벨로가 운송하기에는 유리할 것 같았다.

두 대의 미니벨로 가운데 한 대는 바퀴가 달린 전용하드캐리어를 구매하고 나머지는 이삿짐을 담는 단프라박스에 넣어가기로 했다. 전용하드캐리어가 좋지만 가격이 엄청나다. 단프라박스는 5만 원 정도면 구매할 수 있다. 

미니벨로 전용 단프라박스는 아직 출시되지 않아 일반용으로 구매했는데 필요 이상으로 커서 빈 공간을 옷가지나 완충재로 메워야 한다. 단프라박스 크기가 인천공항 행 고속버스 화물칸 입구 높이보다 커서 할 수 없이 바닥에 눕히고 그 위에 다른 승객의 캐리어를 얹는 바람에 자전거 프레임이 틀어질까봐 노심초사했다.

단프라박스와 미벨전용 캐리어는 대형위탁수하물로 분류된다. 대형수하물 카운터에서 별도로 부치고 목적지에서도 따로 찾아야 한다.
   
아들의 ‘장경인대증후군’ 불안의 서막

마드리드 공항에서 렌터카에 자전거와 짐을 싣는 장면. SUV 투란 차량에 자전거 4대와 개인 짐을 싣고 사람 4명이 탑승했다. 미니벨로가 2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신 뒷좌석에 탄 2명은 불편을 겪었다.
렌터카가 빈틈없이 짐으로 가득 찼다.

당초 산티아고 행은 미국여행에서 돌아온 지 3일 후에 출발하기로 돼 있었지만 업체의 모객에 차질이 생겨 2개월 정도 지연됐다.

장거리 고행길이니만큼 체력 훈련이 필요해 연기된 것에 낙심할 것은 아니었지만 2개월이나 지체된 건 아들에게는 적잖은 시간 손실이었다. 남은 기간 아들이 자전거를 몸에 익히고 체력훈련을 할 시간을 벌을 법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질 못했다.

청춘이란 게 그렇듯 시간여유가 생기자 밤 생활이 길어져 늦잠을 자게 되고 나와의 하루 일과가 어긋나 함께 자전거를 타는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일주일에 한 두 차례 사정하다시피 해서 집 인근 보문산 주변 도로라이딩에 나섰다. 간혹 트럭이 다니지만 통행차량이 많지 않고 업힐과 다운힐이 적절히 배합돼 자전거 훈련코스로 제격이다.

집을 나서서 20㎞쯤 달렸을까. 뒤따라오던 아들이 100여m 뒤에 처져 주춤하더니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한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장경인대증후군인가.’

다음 라이딩 때도 무릎 통증이 도졌다. 일단 정형외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효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장경인대증후군을 호소하는 몇몇 라이더를 겪은 적이 있다. 한 동호인은 주어진 36시간 안에 산악코스 280㎞를 완주하는 280랠리에 참가했다. 주변에서 말렸고 본인도 무리인 줄 알면서도 도전을 감행했다. 280랠리는 산악자전거 동호인이라면 꼭 한번 도전하고픈 빅 이벤트였다. 그 역시 그동안 연습했던 과정을 무위로 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회첫날 요행수를 기대했지만 100㎞지점 이후부터 어김없이 무릎 통증이 시작됐고 나머지 180㎞는 처절한 고통 속에 페달링을 하거나 다리를 절룩이면서 자전거를 끌고 가야 했다. 기어코 완주증을 거머쥔 순간 그는 고통과 희열의 눈물을 쏟았다.

이후 그는 자전거타기를 속 시원하게 그만두었다. 장경인대 증후군은 자전거, 마라톤, 등산 등 장거리 운동을 할 때 무릎 인대의 지속적인 마찰로 통증을 보이다 운동을 중단하면 사라진다.

미리 구입한 심칩을 이용해 구글맵으로 길안내를 받았다. 거치대는 포장용 테이프로 부착했다.

아들은 고작 20㎞를 타고 무릎이 아프다고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다만 군대 구보나 행군에서는 겪어보지 못했던 생소한 증상이라는 점에 다소 위안이 됐다. 낯선 자전거 페달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긴 단순 관절통이라고 믿고 싶었다. 무릎관절 부위를 충분히 스트레칭해줄 것을 아들에게 주문하는 수밖에 없다. 이후 몇 차례 라이딩에서도 통증이 재발했다. 아들은 걱정하는 나를 “참을만하다”며 안심시켰다.

설상가상 아들은 출발 2주전 고갯길인 ‘지프재’에서 ‘S’자 형태의 급커브 내리막을 달리다 사고를 당했다. 내리막 급회전 직전에는 충분히 속도를 줄이라고 당부를 했건만 경험부족 탓에 핸들조작이 미숙했던 것이다. 먼저 내려가서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사고를 직감했다. 차량과의 2차 사고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내려왔던 길로 다시 기어 올라가니 아들이 휘청휘청 자전거를 끌고 내려오고 있었다. 아스팔트에 심하게 고꾸라졌는지 여기저기 옷이 찢어지고 자전거 체인이 벗겨졌다. 팔꿈치와 무릎, 고관절에 깊은 찰과상을 입었다. 다행히 얼굴은 멀쩡하다. 출국 전까지 아들과 연습라이딩은 이날이 마지막이 됐다. 클릿페달 연습을 미리 몇 차례 시킨 게 그나마 다행이다.

70대 어르신의 무(모)한 도전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인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변수는 또 나왔다. 추가 모객이 실패로 돌아가 우리 부자만 산티아고 행 비행기에 오를 것으로 보였으나 막판에 누군가 노크를 한 것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데 산티아고에는 꼭 한번 가보고 싶답니다. 근데 나이가 좀… 중간에 뒤쳐지면 일정에 차질이 생길지 몰라서요. 어떻게 할까요.”

투어업체관계자는 동의를 구하는 눈치였지만 어차피 내겐 누군가의 합류를 거부할 권한이 없지 않던가.

바르셀로나에선 뜻밖의 행운도 만났다.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축구선수 박지성이 출전한 맨유 레전드 대 바르셀로나FC레전드 빅매치를 바르셀로나 전용구장에서 관람했다.
바르셀로나 시내 아파트 발코니에는 카탈루냐 독립을 상징하는 깃발과 문구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소곱창과 천엽 등을 팔는 바르셀로나 시장의 정육점.

강원도 삼척에 사는 ‘멋진남’이라는 분인데 올해 연세가 70이란다. 아무리 신앙심이 신실하더라도 그 나이에 열정만으로 완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20대, 50대, 70대의 사내들. 나이로는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이 조합은 도대체 무엇인가. 내 한 몸도 간수하기 힘든데 무릎통증에 언제 백기를 들지 모를 풋내기 아들과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불사르려는 70대 어르신의 무모함을 모두 껴안고 가야하는 처지가 됐다.
‘아, 시험에 든 것인가.’

나도 모르게 하늘을 향해 ‘마크툽!’을 외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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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아빠 2017-12-26 21:28:08
아들과 해외 라이딩 ! 꼭 해보고 싶네요 ~~~

Jin 2017-12-19 13:58:01
아.. 통증과 사고에도 포기하지 않은 아드님이 멋지네요~~

BWS 2017-12-19 13:55:42
‘아, 시험에 든 것인가.’....

마크툽을 왜 첨에 언급하셨는가 했네요....팔자려니....ㅎㅎㅎ

문홍식 2017-12-17 12:44:12
다음글이 기대되고 이런 라이딩 여행 프로그램이 매력적입니다. 지금은 산티아고에서 푸른 하늘과 바람 들판이 아름다운 여정을 함께해 주니 보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부럽기도 합니다. 즐거운 라이딩 되기를 바랍니다. 안전하게...

kwak 2017-12-12 11:53:01
다음편에선 나이말고 다른 곳에서 공통분모를 찾으셔서 즐거운 여행길이 되셨길 바래요
기대하고 있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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