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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초 지리산 원정대[소담초 에세이] 유우석 교사
지리산 산행 중인 세종시 소담초 선생님들. 사진은 세석에서 장터목으로 가는 여정 중 한 컷.

“지리산 갑시다.”

한마디에 지리산에 갔다. 어쩌면 각자의 생각은 달랐을지 모르겠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주말에 1박2일 지리산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달콤한 주말 내내 산길을 헤매면서 다녀야 하는데. 아니면 잘 몰랐을 것이다. 제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하늘 아래 있고, 가다보면 끝나겠지.

우여곡절 끝에 다섯 명의 소담초 지리산 원정대가 꾸려졌다. 단체 온라인 방을 만들어 생각이 아닌 현실임을 공지하고, 지리산 편지를 띄웠다.

<소담초를 찾고자 하는 선생님께 미리 알려 드립니다. 말 한마디가 현실이 되는 학교, 혹은 말 한번 잘 못했다가 죽을 고생할 수도 있는 학교.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학교, 설마 이게 학교에서 가능할까가 이루어지는 학교, 조심하시라. 또한 말 한마디로 좋은 동료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학교이도 하니 안심하시라.>

떠나기 전 ‘지리산 편지’

그러고 보니 마지막 지리산 편지가 7~8년 전이었네요. 그동안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는 뜻이고, 그 세월 속에 저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뭐, 늙었다는 말입니다. 2003년? 2004년? 즈음 처음 같이 갔던 선생님이 지금의 내 나이였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은 그 선생님은 50대 중반이 넘었겠네요.

돌이켜보면 고생했던 기억이 많아요. 여름에 비를 맞거나 겨울에 눈을 만나면 점점 몸이 늘어지고 힘이 빠지거든요. 저녁이 되어 이슬을 맞아도. 한번은 무릎이 아파 고생했지요. 처음으로 아이젠(미끄럼방지)을 했는데 익숙지 않아 그런지 무릎에 무리가 갔나 봐요. 내려오는 길 내내 한쪽 다리를 끌고 내려왔던 기억도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잘 다녀요. 사실 평상시 움직일 만큼 움직이는 사람이면 그리 무리가 될 정도는 아닌데. 제가 워낙 불규칙적인 생활과 음주를 겸하다보니.

고생만 하면 왜 가겠어요. 음 교감! 교감선생님 할 때 교감 말고. 얼른 사전을 찾아봤더니. ‘서로 접촉하여 사상이나 감정 따위를 함께 나누어 가짐’이라고 되어 있네요. 맞아요. 딱 이런 느낌이에요. 2박3일 산에 있다 보면 같이 올라간 사람들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자주 만나요. 그리고 잠 잘 산장에서도 만나구요.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묘한 동질감도 들고.

참, 산에 올라가는 동안에는 씻지 못합니다. 설거지 당연히 못합니다. 양치는 요령껏 해야 하고, 짐은 그대로 들고 갔다가 그대로, 혹은 뱃속에 넣고 와야 합니다. 물론 화장실은 있습니다. 푸세식으로.

아, 준비물. 준비물은 가볍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을 물건은 가져가지 말고.

먼저 옷은 올라갈 때 편안한 옷. 올라갈 땐 더워요. 몸이 차가우면 따뜻하게. 문제는 땀이 났을 때 괜찮은지가 중요합니다. 참고로 제가 면 속옷과 겉옷을 입고 갔다가 땀에 젖은 옷이 얼어서 고생했다는.

신발은 눈이 있으면 반드시 등산화가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약간 두꺼운 운동화도 괜찮습니다. 눈이 있으면 물이 스며듭니다. 옷은 가라 입을 옷을 들고 가도 되지만 굳이 하루 정도야. 다른 가방 하나 챙겨오세요. 제 차에 실어놓고. 하산해서 갈아입어요. 그렇지만 양말은 챙기시길.

정리해보면 (필수만) 개인 기본 물품은: 양말, 칫솔, 운동화(등산화), 옷, 쉬거나 저녁에 갈아입을 옷(두툼하지만 가벼운 것), 마스크? 모자, 천왕봉에 바람이 엄청 불어요. 조그만 틈만 있어도 춥습니다. 수저. 컵(일회용 안됨). 물통(개인적으로 500ml 생수 추천), 우의(1회용 추천), 작은 랜턴.

같이 챙겨야 할 것은 먹거리 3끼분. 한 끼는 라면, 첫날 점심 라면이 좋아요. 라면 깔끔하게 먹고 짐 정리하고 이동해야 하니까요. 또 한 끼. 저녁은 밥? 햇반? 삼겹살? 소주? 아침은 국물이 있는 라면? 저녁에 먹고 남은 밥이랑 라면? 이정도.

지리산에 올라가면 온도가 많이 낮아요. 아마 정상은 영하 4~5도 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휴대폰 배터리도 빨리 닳죠. 충전기 챙기면 충전할 수 있습니다.

아, 가장 중요한 돈. 일단 참가비. 공통 경비 5만 원 정도 듭니다. 남으면 나누고.

우리 코스는 세종 출발(7시 출발) - 백무동 도착(9시 도착) - 아침 먹기(10시까지) - 세석산장 이동(4~5시간 소요 예상) - 점심(15시~16시) - 장터목 대피소로 이동(2시간 소요 예상) - 18시 저녁- 취침- 기상(6시) - 천왕봉(50분 소요) - 장터목 대피소로 이동(09시) - 아침 식사(10시) - 백무동 이동(14시 도착- 점심 먹고 출발).

이정도 코스가 되겠네요. 시간을 단축하려면 백무동에서 장터목(1박), 다음날 천왕봉- 장터목- 백무동 이동이 되겠습니다. 내려와서 백무동이나 함양 쪽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으면 끝이 납니다.

다녀온 후 ‘지리산 편지2’

지리산 산행을 떠난 소담초 교사들이 바라본 장터목 부근 일출.

하루만 지나도 먼 일처럼 느껴지죠. 예전 같으면 오랫동안 회자될 이야기도 지금은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지난날이 되고. 그만큼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또 한편으로 수없이 많은 일이 벌어지는데, 그걸 비집고 의미 있는 일 하나를 만들었네요.

세종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혜 선생님과 학교를 변화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보통의 직장은 위에서 아래고의 전달이고, 단기적 혹은 장기적으로 목적도 분명하고. 그러나 학교는 넓게, 그리고 느슨하게 펼쳐져 있는데 무엇이 학교를, 혹은 교육을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뚜렷한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분명히 학교는 변하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별을 보여주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선생님이란 특별한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일까요.

‘낄끼빠빠’. 처음에 ‘낄낄빠빠’라고 썼다가 속으로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 그럼 ‘낄끼빠빠’잖아. 하고 검색해보니 맞네요. ‘꼰대’라는 말이 있잖아요. 기성세대. 어느 날 내가 기성세대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꼰대’ 얘기를 해보면 예전 어릴 적에 반공교육을 심하게(?) 받았지요. 아마 반공교육의 끝물 정도 되겠네요. 반공 미술, 웅변, 글쓰기 등등.

그래서 한동안 북한 사람들은 머리에 뿔 달린 줄 알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지만 초등학교 때만 해도 정말 뿔이 달린 괴물로 생각했죠. 그리고 청소년이 되었을 때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신규 발령을 받았을 때 학년 부장 선생님께 그랬지요.

“나는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우길 북한 사람들은 뿔이 달린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 그 당시 어른인 선생님들은 알았을 거 아니냐. 그럼 잘못 가르친 거 사과해야 하지 않냐”고 말이죠. 물론 공손하게요. 

그 선생님은 잠깐 당황했고, 이런 저런 얘길 해주었지요. 슬픈 ‘기성세대’였어요.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본인이 그런 것도 아닌데.

어떤 일을 계속하다보면 노하우가 생겨요. 자신만의 노하우. 그래서 등산갈 때 내 노하우는 ‘무게를 줄여’ 였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가면 최대한 줄여줄여 불편해도 한순간이야. 고생하려고 왔지 호강하려고 왔어? 등등 짐을 줄이기 위한 많은 근거들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죠.

일요일 새벽에 천왕봉에 갔다가 내려오는데 배가 고픈 거예요. 물도 없어 입술이 마르고, 흠흠. 2L 생수병을 지고 가는 다른 선생님의 용기에 감탄을.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어떤 일에 수행함에 있어, 혹은 사람의 인생의 복을 누림에 있어 ‘운이 7이고, 기(재주)가 3이다.’라는 뜻인데. 쉽게 동의를 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저는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를 볼 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은 어떻게 만나는가. 구체적으로 부모를 만나고, 형제를 만나고, 살며 친구를 만나고, 혹은 직장 동료를 만나는 것이 다 ‘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운이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 사람이지요.

수많은 일상 중에 이틀이었지만 그래도 의미를 부여하며.

다녀온 후 ‘RE: 지리산 편지’(이지혜 교사)

대학시절 필자가 자주 가던 대학로 한 맥주집 간판.

대학로에 꽤 자주 가던 맥주집이 있었어요. 흑맥주를 주로 팔던 집인데 돈 없는 대학생들이 가는 곳 치고는 분위기가 제법 근사했죠. 산악부 선후배와 1박2일이나 2박3일 산행을 마친 저녁, 매우 후줄근한 모습으로 말쑥한 사람들 틈에 어색하게 앉아있던 기억이 납니다.

뭐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거기서는 다들 분위기를 좀 잡고 말없이 마른 김을 집어 먹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긴데, 그러고 있다 보면 뭐랄까. 생고생이나 다름없던 우리의 산행이 조금은 품위 있게 매듭지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사실 산을 오르면서도 거창한 생각을 하지는 않죠. 그러다 우석 샘 말처럼 다 지나간 부끄러운 기억이 불쑥 생각나기도 하고, 혼자 시답잖은 생각도 하고. 누구처럼 ‘이 길이 내 인생 같다’는 어록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소담초 원정대의 바로 그 첫날, 오르막에서 그 집 이름이 갑자기 떠올랐어요. 어두운 골목에서 빛나던 동그란 간판에 ‘따로또같이’ 라고 적혀있었죠.

산을 걷다보면 혼자가 되는 순간이 와요. 발걸음이 느렸던 저는 특히 그랬죠. 그렇게 땅만 보고 한참을 가다보면 앞서간 사람을 만나게 돼있어요.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러면 잠시 모여 짐을 내려놓고 쉬면서 우리가 했던 것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요. 얼마를 왔다거나, 얼마가 남았다거나, 잠깐 떨어진 사이에 벌어졌던 일들. 가지고 있던 간식도 나눠먹고. 그러다 다시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 말 그대로 ‘따로 또 같이’ 인거죠.

왜 계속 산을 갔냐는 물음에 뒤늦게 답을 하나 찾자면,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각자 걸어가다 어느 지점에서 만나고 또 말없이 길을 나서는 그 단순한 반복이 묘하게 지루하지 않고 재밌어요. 그건 나중에 제가 앞쪽에 서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던 거 같아요.

내려와서 보니, 많은 일이 그렇지만 학교야 말로 정말 ‘따로 또 같이’하는 곳 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주 혼연일체일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아주 혼자도 아닌. 각자 나름으로 애쓰다 중간 중간 만나 이야기 나누고, 다시 툴툴 일어서 길 나서는 순간에 살짝 불어오는 바람과 새 기분이 바로 변화의 시작 아닐까.

그러고 보니 학교 정문에서 보이는 ‘홀로서기와 함께하기로 삶을 가꾸는 우리’ 문구도 달리보이네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이게 바로 그 ‘따로 또 같이’ 아닌가요? 맞죠? 그러니까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소담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마른안주에 흑맥주를 마시며 말이죠.

‘그 일을 또 하고 싶습니다.’ 이 무슨 군대에서나 들을법한 고백인가 싶지요. 그런데 살면서 이 말을 진심으로 하는 경우가 정말 드물지 않나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저는 그렇거든요. 뭘 한 번 하고나면 싫증을 금방 느껴서 두 번째 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저는 두 번째부터가 ‘진짜’라고 생각해요. 첫 번째는 멋모르고 했더라도, 돌아서서 ‘어, 이거 또 하고 싶은데?’ 생각이 들면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구나’ 그때 깨닫는 거죠.

만약 우리가 다시 배낭을 싸서 지리산에 간다면, 짐작건대 좋아서 일거에요. 무슨 말이냐면, 선생님들과 다시 산에 가고 싶다는 말입니다. 아마 그때는 승훈 샘이 2L 생수병을 과감하게 두고 갈지도 몰라요. 두 번째니까요.

미리 말해두지만 우리가 어디서고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건 순전히 ‘좋아서’ 예요. 저도 뒤늦게 지리산 이틀에 아주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유우석  webmaster@www.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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