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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육강식 사회 바꾼 '아름다운 양보'[미노스의 동화마을] <9>황금원숭이 왕국의 반란

세종포스트는 격주로 동화작가 미노스의 동화마을을 연재합니다. 아이에게 읽어주는 동화부터 어른을 위한 동화,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동화까지. 미노스가 펼쳐 보이는 환상의 세계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편집자 주>

바람 끝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파란 하늘은 더욱더 파랗게 맑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겨드랑이와 귀 밑이 간지러워질 것입니다.

바람이, 휘파람 소리가 회초리 소리로, 회초리 소리가 말채찍 소리로 변하면, 그들은 등은 더욱 굽어지고, 솜털이 빽빽하게 온 몸을 뒤덮어, 외투를 걸친 듯 몸집은 더 커지게 될 것이며, 얼굴은 작아질 것입니다.

티벳 고원의 북쪽, 험준한 산이 창칼을 세워놓은 듯 북서쪽으로 이어 달리는 천산산맥의 비탈진 벼랑.
하늘 위로 빙산은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고, 천길 아래로 깊이를 모를 푸른 빙하가 흐르는 낭떠러지들의 바위 틈.
온 몸이 기름진 윤기로 반짝이는 금색 털에 덮인 황금원숭이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빙산의 봉우리들이 황금빛 노을에 물들어 금빛의 왕관을 쓰고 세상을 굽어보는 양 신화처럼 반짝이고, 황금원숭이들이 금모래가 반짝이듯 산중턱의 여기저기 나뭇가지들을 뛰어다닐 때, 이곳은 신비스러운 전설의 황금 왕국이 됩니다.

비탈의 중턱 기암괴석 바위 사이에는 가지가지 열매와 꽃을 피우는 기묘한 나무들이 곡예 하듯 자라고 있고, 그런 기화요초의 꽃과 나뭇가지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황금원숭이들은 흰 줄무늬 대추나 황금사과, 붉은 바나나를 따서 꿀 맛 같은 성찬을 즐기곤 하였습니다.
이런 열매는 희귀하기만 해서 황금원숭이같이 날렵하고 험준한 지형에 적응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고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벼랑에서의 성찬은 능숙하게 매달리고 뛰어 다니는 강하고 힘 센 황금원숭이들만의 오롯한 즐거움이었습니다.

황금원숭이는 털이 촘촘하고 가늘고 부드러워 휘파람 소리, 회초리 소리, 말채찍 소리가 나는 매서운 겨울바람뿐만 아니라, 구름이 만들어 내는 날카로운 얼음 비수, 창날 같은 고드름, 표창 같은 눈보라에도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천산산맥의 어떤 동물도 이러한 혹독한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털을 갖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 북쪽의 높고도 험한 산에서 빙하의 산등성이를 넘어 불어오는 차가운 삭풍을 마주하며 추위를 이겨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황금원숭이들은 산 너머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고, 귀밑과 겨드랑이에서 솜털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산중턱에 움푹 들어가 있는 바위틈에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바람을 막아주는 바위틈 속에서 서로의 몸을 기대고 가까이 붙여 바람의 칼끝으로부터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람이 세게 불면 불 수록, 눈보라가 세차면 세찰수록 황금원숭이들은  몸을 더 강하게 밀착하여 서로를 따뜻하게 보호하였습니다. 

황금원숭이들은 가족단위로 무리를 이루어 생활을 하였습니다.
아빠 원숭이, 엄마 원숭이, 어린 원숭이들...
그리고 그 가족이 모여 황금원숭이들은 무리 전체가 왕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왕국은 왕과 왕비와 귀족들 그리고 백성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왕국에는 엄정한 질서가 있었습니다.
왕과 왕비가 즐겨먹는 흰 줄무늬 대추나, 단잠을 자는 나뭇가지는 아무 원숭이나 쉽게 범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과 왕비만이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귀족들의 그것에도 그만한 질서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왕은 목숨을 건 처절한 싸움을 거쳐 황금원숭이 중에서 가장 강하고 힘이 센 원숭이가 되었습니다.
왕은 빛나는 금자탑이었습니다. 왕이 되면 가장 안전하였고 가장 안락하였습니다.
투쟁을 통해, 힘의 순서에 따라 그 다음 서열의 귀족이 태어났고, 이들은 곧 왕국의 지배층이 되었습니다. 
왕국의 서열과 지배 질서는 엄격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일반 백성원숭이는 힘이 강한 왕과 귀족에게 좋은 자리와 먹을 것을 갖다 바쳐야 했고, 그들의 엄격한 지시에 복종해야 했습니다.
이 질서를 어기고 왕국에서 살아가기란 어려웠습니다.
그것의 대가는 당장의 죽음이거나, 쓸쓸히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추방이었습니다.

질서와 서열이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은 겨울철의 월동위치였습니다. 겨울이 닥쳐오면 황금원숭이들은 혹한의 바람을 피하기 위해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밀착하여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데, 그 때에 엄격한 서열이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가운데, 그리고 가장 안쪽의 자리가 가장 따뜻한 자리였습니다.   그곳에는 왕과 왕비가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서열과 힘의 순서대로 가운데로부터 점점 가장자리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힘이 약한 원숭이일수록 밖으로 밀려나, 가장 바깥 쪽 자리는 갓 낳은 새끼를 안은 어미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연의 모범생이자 천명의 순응자였습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원칙이 이 황금원숭이 세계에서만큼 정확히 지켜지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황금원숭이 왕국은 그러한 질서와 서열을 통하여 무리 전체가 보다 강하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시련을 통하여 약자들은 더욱 강하게 만들어지는 법이었습니다.

왕국에서의 혹독한 겨울나기.
그것은 약한 자일수록 어렵고도 혹독한 시련이 되었습니다.
겨울을 날 때마다 수많은 약자들이 희생되었고, 그럼으로 왕국은 더욱 강자만으로 구성되는 무리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주먹같이 단단하고도 작고 강한 무리.
이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였으며, 동시에 사는 방식이었고, 법도였는바, 그런 원칙은 어김없이 전통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황금원숭이들은 새끼를 한 마리씩 낳았습니다.
새끼를 낳으면, 아빠와 엄마 그리고 다른 가족들은 새끼원숭이가 자라서 자립할 때까지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들의 양육방식 또한 전통에 걸맞게 엄격한 것이어서, 새끼가 독립하게 되면 황금원숭이들은 부모도 형제도 없이 무한경쟁을 하여 가장 강한 원숭이가 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화려하고 찬란한 황금빛의 털옷을 입고, 맛있는 열매를 먹으면서, 그들은 무섭고도 치열한 생존의 경쟁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파란 하늘, 구름이 거닐고 노니는 저 높은 천산산맥의 우러러 보이는 비탈, 그곳은 그렇게 처절한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황금원숭이 가운데 새끼 한 마리가 태어났습니다.
새끼는 작고 귀여웠습니다. 어느 누구 것보다도 빛나고 아름다운 순금의 황금색 털이었습니다.
어미 원숭이는 새끼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마다 가슴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새끼가 얼마나 예쁜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 털을 가지고 있는지 다른 원숭이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새끼 황금원숭이는 온순하였습니다. 늘 엄마의 품속을 떠나지 않고   두 팔로 엄마의 목을 꼭 감고 매달렸습니다.
엄마 원숭이는 새끼 원숭이를 두 팔로 안고, 때로는 등에 업고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니며 열매를 따먹고 새끼에게 젖을 먹였습니다. 어미 원숭이와 새끼원숭이는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다른 원숭이들이 볼 때에 그것은 조금 유별난 모습이기도 했습니다만, 새끼 원숭이가 워낙 귀엽고 예쁜 탓에 엄마의 사랑을 놓기가  어려운 것으로 그 심정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엄마 원숭이는 늘 바쁘고 고달팠습니다.
그맘때가 되면 어미와 떨어져 스스로 열매를 따먹거나 또래 동무들과 놀아야 할 나이에도 새끼는 엄마에게서 떨어진 줄을 모르고 매달려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미는 자신의 먹이뿐만 아니라 새끼의 먹이까지 구하러 새끼를 업고 두 팔로 이 나무 저 나무를 뛰어다니며 한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느라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행여 새끼 원숭이를 누가 안으려고 할라치면 기겁을 하며 빼앗아 감싸 안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새끼에 대한 사랑이 유별날 수가 없었습니다.
새끼 원숭이 또한 그만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엄마의 젖꼭지나 등에 붙어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를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 원숭이가,

“여보. 이제 그만 아기를 떼어 스스로 자립하도록 훈련도 시켜야 하지 않겠소. 곧 겨울도 닥칠 텐데...”

하며 새끼 원숭이를 엄마 품에서 떼어 놓고자 해도 엄마와 새끼는 한사코 부둥켜안고 있을 뿐,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도 엄마와 새끼는 서로 부둥켜안고 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원숭이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것은 새끼를 위하는 것이 아니야. 이 혹독한 겨울을 넘기기 위해선 튼튼한 체력과 강인한 의지를 길러줘야지, 저렇게 엄마가 안고 보호만 해주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지..
그리고 엄마도 얼마나 힘이 들겠나...’

이런 걱정을 하면서 언젠가는 새끼 원숭이를 엄마에게 떼어 강인한 단련을 시작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엄마에게 새끼원숭이를 독립시킬 기회를 엿보던 아빠 원숭이는 마침 점심 열매를 따서 배불리 먹고 나뭇가지 위에서 졸고 있는 엄마와 새끼 원숭이를 보았습니다. 조용히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품에 안고 있던 새끼를 빼앗으려고 재빨리 팔을 뻗쳤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엄마 원숭이가 번쩍 눈을 뜨더니 아빠의 팔을 세게 후려치며 내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원숭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무의식적이나마 아이를 보호하려는 엄마의 번개 같은 반사 신경은 그렇다 손치더라도, 후려치는 엄마의 가공할만한 팔 힘 때문이었습니다.
놀란 아빠는 엄마와 새끼를 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새끼를 빼앗으려 어마의 품에 긴 팔을 뻗쳤습니다. 이번에도 엄마는 사정없이 아빠를 할퀴고 때리며 물리쳤습니다.
아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요!”

하며 아빠는 엄마에게도 힘을 아끼지 않고 새끼를 빼내려 덤벼들었습니다. 있는 힘을 다하는 아빠를 엄마가 당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엄마 황금원숭이는 이에도 지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아빠에게 대항하며 새끼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었습니다.

어이도 없고, 놀랍기도 하고, 기도 막혀 어미 원숭이를 잡아먹을 듯 쳐다보던 아빠는 말없이 아이를 더욱 더 깊숙이 안고 감싸며 돌아서는 엄마 원숭이의 눈에서 무엇인가를 보았습니다.
눈물이 반짝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원숭이는 마음을 돌려 엄마에게 달래듯 부드럽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요. 나에게 말 좀 해보오..”

하면서 엄마와 새끼 황금 원숭이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한참동안 뒤돌아서서 새끼 원숭이를 품에 안고 있던 엄마 원숭이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아빠 원숭이에게만은 그럴 수 없다는 듯이 아빠를 향해 안고 있던 팔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새끼 원숭이를 아빠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새끼원숭이는 이제까지 어느 원숭이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황금빛으로  빛나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털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름다운 새끼 원숭이는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금빛 눈썹 아래 아름답고 초롱초롱 빛나고 있어야 할 눈동자는 망막을 뒤덮은 회색 구름조각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새끼원숭이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눈먼 황금원숭이였던 것입니다.

“아니, 이럴 수가...!”

누구도 그 아름다운 새끼 황금원숭이가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상상했던 원숭이는 없었습니다.
아빠는 그제 서야 엄마원숭이의 이제까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왜, 진즉에 나에게 말하지 않았소?”

그러나 이 말은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아빠 원숭이가 모를 바는 아니었습니다. 
황금 원숭이 세계에서 약점은 곧 죽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은 강한 황금원숭이 왕국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비극의 운명이었습니다.
새끼원숭이는 자연스럽게 무리에서 도태되어야 했고, 강한 무리의 명예를 해치는 수치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의 망연한 표정을 보면서 엄마는 눈이 보이지 않는 새끼를 다시 가슴에 안고 젖을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곧 아기를 안고 나뭇가지를 타고 열매를 따와야 했습니다.
엄마 원숭이의 눈빛이 다시 맹렬히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추위가 몰려오기 전, 천산산맥의 황금원숭이들에게 또 하나의 위협이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검은 긴 목 독수리였습니다.

긴 겨울이 오기 전 든든히 배를 채워놓아야 그나마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독수리들에게 황금원숭이는 그 계절 최후의 먹잇감이었습니다. 이미 다른 동물들은 겨울이 시작되자, 땅 속이나 굴속에 모두 숨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황금원숭이 왕국에 겨울이 시작되는 초엽에 찾아오는 이 검은 긴 목 독수리는 강한 추위에 앞서 맞서야 할 무서운 천적이었습니다.
사정없이 찢고 쪼아대는 날카로운 부리, 살 속을 파고드는 쇠갈고리  같은 발톱을 감추고 조용히 그러나 급작스럽게 날아드는 악마 같은 독수리는 정말 무서운 적이었습니다.

독수리가 나타나면 황금원숭이들은 매서운 바람이 몰아쳐 올 때처럼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서로 밀착시켜 그들의 공격에 대비하였습니다. 물론 이때에도 왕과 왕비는 가장 안전한 원숭이 무리들의 가운데에서, 힘의 서열에 따라 가장 약한 원숭이는 가장 바깥자리에 자리를 잡고 독수리 공격에 대항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하늘을 빙빙 돌며 원숭이 무리들을 노리고 있는 독수리는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며 가장자리의 가장 약하고 힘이 없는 원숭이들 중에 공격하기 쉬운 희생자를 노렸습니다.
새끼를 안은 엄마 원숭이들이 자연히 그 표적이 되었지만, 정작 발톱으로 낚아채고 싶은 것은 연하고 힘이 없어 먹기에 좋은 품속의 새끼들이었습니다.
독수리는 황금 원숭이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움직이는 황금 조각같이 빛나는 저 아름다운 털을 가지고,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험준한 산에 살며,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기이한 열매들을 먹으며 남 부러울 것 없이 풍요롭고 우아한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정작 그들은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의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강해야 살아남는다는 그들의 철칙에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

라는 말을 뼛속 깊이 새기고 생의 최고의 금언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강자가 되기 위해, 용납되지 않는 것은 없었습니다.
독수리의 눈으로 볼 때 그들 사회에 배신이란 없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란과 비방은 그들 사회에서는 도전과 응전의 앞면이지 뒷면이 아니었습니다.
동정과 연민은 경쟁력을 약하게 할 뿐, 가져야 할 삶의 요소가 될 수 없었고, 사랑과 배려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양보란 곧 포기와 동의어였으며 그들에게 그것은 죽음과 다른 발음의, 같은 뜻의 단어였습니다.

가장자리의 약한 원숭이가 독수리에 의해 희생될 때, 그것은 그만큼 다른 원숭이들에게는 위험부담이 줄어들었다는 행운이자, 그만큼 강한 자만이 남아 더 강한 집단이 되었다는 위안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가장자리의 혹독한 조건에서 단련되어 독해질대로 독해진 자가 무리의 가운데에서 안주하며, 안락이 가져다 준 퇴락 속에 약화된 왕과 귀족의 자리를 빼앗는 것은 당연한 섭리로 받아들였습니다.

약한 자는 먹히고, 강한 자는 먹는다는 약육강식의 진리로 인해, 악한 자가 선한 자를 몰아내는 진실 또한 그 빛을 바랠 수 없었습니다.

검은 긴 목 독수리는 날카로운 눈매로 이미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저 아름답고 빛나는 황금원숭이의 왕국에서, 약자들에 대한 따돌림이란, 곧 강자가 더 강하게 되기 위해 약자를 한없이 약하게 만드는 치열한 경쟁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을.
어미 원숭이들은 끊임없이 경쟁의 치열함을 강조하면서, 1둥이 아니면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철칙을 깨우치지 못하는 우매함을 새끼 원숭이들에게 밤낮으로 나무라고 있다는 것을.
독수리의 공격이 임박하면 강한 자들은 차라리 몇몇의 약자를 희생물로 내줌으로써 자신들의 안전과 왕국의 평화를 도모하는 현명한 길을 택하여 결국 약한 원숭이를 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을.

이 모든 것들이 검은 긴 목 독수리가 겨울이 오기 전 잊지 않고 황금 원숭이 계곡을 날아드는 지혜로운 이유들이었습니다.

독수리 한 마리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표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저기 가장자리, 그것도 나뭇가지 위에 한 마리 황금원숭이가 새끼의 얼굴을 감싸고 온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원숭이의 입장에서 좋은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대단히 어리석고 공격당하기 쉬운 자세였습니다.
독수리의 입장에서 가장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은 원숭이의 눈이었습니다. 눈빛 속에서 삶의 의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눈을 얼마나 시퍼렇게 뜨고 경계하고 있는가를 판단하여 독수리는 공격대상을 골라 왔던 것입니다.
독수리의 습격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직시하면서, 방어태세를 취하는 다른 원숭이들과 비교한다면, 눈을 가리고 웅크리고 있는 저 엄마와 새끼원숭이의 모습은 생을 스스로 포기하고, 왕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겠다는 무언의 의지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미 무리에서 따돌림 당해 한 데로 내몰려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머뭇거릴 이유는 없었습니다. 
넓은 날개를 하늘 가득히 펼치고 독수리는 강습의 자세를 갖추었습니다. 칼 날 같은 부리를 예리하게 벼리면서 송곳 같은 발톱 근육의 힘을 강하게 긴장시켰습니다.
직선으로 날아, 부리로 어미 원숭이를 쪼아대며, 새끼 원숭이를 발톱으로 빼앗아 움켜잡고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면 쉽게 끝날 일이었습니다.

독수리는 눈을 번뜩이며 황금원숭이 모자를 향해 급강하하였습니다.

어미 원숭이는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약점이 곧 죽음이라는 철리를 잊지 않은 엄마는 새끼의 약점인 보이지 않는 눈을 가려주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독수리가 자기들을 공격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부리를 앞세우고, 발톱을 곧추세워 어미 원숭이를 공격하던 독수리는 어미 원숭이의 등에 발톱을 박고 잡아채고자 했습니다.
독수리는 날카로운 부리를 황금원숭이의 등허리에 꽂고자 황금빛 털을 뚫었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독수리의 머리가 쪼개지듯 아프고 쇠몽둥이로 맞은 듯 먹먹했습니다.
어미 원숭이의 손에 바위틈에서 잘려 나온 듯 날카롭게 날이 선 돌멩이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돌멩이의 타격을 받은 독수리는 정신을 차려 이번에는 원숭이의 몸에 발톱을 박아 넣었습니다. 발톱에 힘을 가했습니다.
독수리는 또 경악했습니다. 어미 원숭이가 이번에는 그 발톱을 팔로 뽑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원숭이의 그 팔 힘은 찔러 넣은 독수리의 발목 힘보다도 강했습니다.
당황하며 공격을 거듭하는 독수리의 머리에 벼락이 치듯 충격이 가해졌습니다. 돌멩이의 날이 독수리 머리를 친 것이었습니다.
독수리는 날개의 힘을 잃고 나뭇가지에서, 실 끊어진 연이 떨어지듯 땅 위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늘에서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독수리 몇 마리가 급선회하여 원숭이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어미 원숭이는 이미 피가 철철 흐르는 약점이 드러나 보였고, 더욱이 새끼 원숭이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있는 자세는 다시없이 공격하기 좋은 것이었습니다.
독수리 두 마리가 한꺼번에 원숭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바위틈에서 황금원숭이들은 모두 이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누가 하나 도와주려 나서는 원숭이는 없었습니다.

어미 원숭이는 힘이 빠져 보였습니다.
공격해 오는 독수리 한 마리를 돌멩이로 쳐서 가격해 보았습니다만, 매섭게 공격하는 또 한 마리의 인정사정없는 부리가 어미 원숭이의 등을 파고 들었습니다. 승부가 곧 결정될 것이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엄마 품에 숨어만 있던 새끼 원숭이가 두 팔을 뻗쳐 어미 원숭이의 등을 파고드는 독수리의 목을 움켜쥐고 팔을 부르르 떨며 힘을 주어 조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숨이 막힌 독수리는 발톱을 할퀴며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새끼 원숭이는 목을 움켜준 손을 끝까지 놓지 않았습니다.  
어미 원숭이의 억센 두 팔이 가세하였습니다.
돌멩이가 다시 내리쳐졌습니다. 
결국 세 마리의 독수리가 모자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나무 위에서 맥없이 떨어졌습니다.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아무도 다시 이 원숭이를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공중을 빙빙 돌다가 이 놀라운 반전에 모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독수리들은 물러갔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바위틈의 황금원숭이들은 모두가 놀랍고도 무서운 표정으로 두 모자를 다시 쳐다보았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어미 원숭이는 한 손에는 돌멩이를 움켜쥐고, 또 한 손에는 아기 원숭이를 여전히 부둥켜안고서 바위틈에 있는 원숭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왕과 왕비와 귀족들.
안전하게 앉아있는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분연히 일어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어미 원숭이의 눈에 핏발이 서려 있었습니다.

피 묻은 돌멩이를 움켜쥐고 새끼원숭이를 안은 어미 원숭이는 바위틈으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어미 원숭이가 다가갈수록 앉아있던 원숭이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비키기 시작했습니다.
어미 원숭이는 바위틈의 가운데 자리로 들어갔습니다.
왕과 왕비가 어미 원숭이를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왕은 보았습니다.
어미 원숭이의 손에 들려있는 돌멩이와 새끼를 안고 나무 위를 오르내리느라 강철같이 강해진 두 팔이 번개 같이 날아오며 내는 그 휘파람 소리와 눈앞에서 번쩍이는 그 섬광을.
왕은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삽화 = 서동주

어미 원숭이는 왕이 앉았던 자리에 앉았습니다.
황금원숭이 왕국의 왕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의를 말하거나 반대를 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귀족들은 어미 원숭이를 보고 자리를 비켜줄 뿐만 아니라,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미 황금원숭이는 왕의 자리에 앉자, 주위의 모든 백성 원숭이를 둘러보았습니다. 모두들 왕을 피하거나 고개를 숙여 복종을 맹서했습니다. 두려움에서 나오는 그들의 맹서가 진심일 수 없다는 것은, 또한 그들의 맹서는 또 왕이 바뀌면 언제든지 바뀌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어미 원숭이, 그들의 왕이었습니다.

새로운 왕은, 바위틈의 가운데 안전하고 안락한 자리에 앉아있던 귀족들을 모두 일으켜 세웠습니다. 나름대로 강하다고 입증된 원숭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귀족들의 자리에 새끼를 안고 있는 가장자리의 엄마 원숭이들을 불러 앉게 했습니다.
왕은 귀족들을 모두 바깥쪽 가장자리에 자리를 정해주었습니다.

서열이 정반대로 뒤집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강한 자가 가장 바깥쪽으로. 가장 약한 자가 가장 가운데로.
귀족들은 불만이 속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왕이 움켜쥐고 있는 돌멩이와 강력한 두 팔을 보고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왕은 새끼를 안고, 돌멩이를 쥐고, 천천히 계곡의 나뭇가지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하늘을 노려보았습니다.
하늘을 날며, 원숭이들을 노리던 독수리는 왕의 그 모습을 보고 하늘만 빙빙 돌 뿐, 아무도 덤비지 않았습니다.
독수리들은 멀리 날아갔습니다.

겨울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바람소리에서 말채찍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바위틈에 자리를 잡고 몸을 숨기고 서로 밀착시켜야 할 시기인 것입니다.
여전히 나뭇가지 위에서 왕은 새끼를 안고 바람을 맞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 위에서 한 겨울을 지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원숭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황금원숭이의 왕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원숭이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이제까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쌩쌩 불어 황금원숭이의 귀가 발갛게 물 들며 얼어붙기 시작할  때, 바위틈의 가장 가운데 어린 새끼를 안고 있던 어미 원숭이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다가갔습니다. 자기의 가운데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당신이 앉아야 할 자리입니다.”

왕은 어린 어미 원숭이를 사랑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또 한 마리의 어미 원숭이가 바위틈의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황금원숭이는 가장 어린 어미 원숭이에게 자리를 비워 주었습니다. 그러자 천천히 모든 어미 원숭이들이 일어나 하나씩 자리를 옆으로 비키기 시작했습니다.
양보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서열을 뒤집어 자리를 잡고 맞이한 그 해 황금원숭이 왕국에는 혹독한 겨울이 지나갔음에도 희생이 없었습니다.
바깥 자리일수록 강한 원숭이들이 버티고 있었고, 추위를 못 이겨 희생되었던 약한 원숭이들은 모두 가운데 자리에서 보호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깥자리의 강한 원숭이들은 겨울을 나자 더욱 강하게 되었습니다.
가운데 있었던 어린 원숭이와 약한 원숭이들은 더욱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진실을 하나 깨달았습니다.
이제 검은 긴 목 독수리가 올 때면 가장 강한 원숭이들이 나뭇가지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독수리들은 이제까지 없었던 실패를 거듭하였습니다.
어리고 약한 원숭이는 안심하고 강한 원숭이를 신뢰하게 되었으며, 강자는 더욱더 강한 원숭이가 되어갔습니다.
약자들에 대한 따돌림이 없어졌습니다.
거짓 맹서도, 배신과 음모도, 반목도 없어졌습니다.
양보와 희생과 책임과 의무감이 높아졌습니다.
왕국의 백성을 어루만지는 사랑과 배려의 손이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원숭이 왕국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더욱 커지고 있었습니다.
독수리는 해마다 손쉽게 먹이를 얻던 황금원숭이 왕국을 넘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무도 천산산맥의 겨울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검은 긴 목 독수리가 무섭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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