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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가을이여! 그리운 사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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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가을이여! 그리운 사람이여!
  • 이순구
  • 승인 2017.09.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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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구의 미술산책] <17>모네의 ‘포플러 나무가 있는 풀밭’
이순구 화가 | 만화영상학 박사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이 잦아들고 있다. 귓등에서 울던 매미소리도 귀뚜라미에게 시간을 내주었다. 숲에는 쨍쨍하던 빛이 아닌 비스듬해진 청청한 햇볕이 스며든다.

이 계절은 지친여름을 한숨 돌려 잠시 쉬는 시간이다. 여유를 가지고 푸른 하늘을 우러를 때다. 하지만 잠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뒤따라오는 겨울의 무게에 의해 초조함도 도사린 그런 시간이다. 이 계절의 짧고 축복된 시간에 들어가고픈 한 폭의 그림이 있다.

<포플러나무가 있는 풀밭>은 프랑스의 대표적 인상주의 화가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작품이다.

모네는 이전의 회화양식을 모두 거부하고 색채·색조·질감 자체에 관심을 두고, 빛에 의해 시시각각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를 가지고 자연을 표현했다. 이는 색채나 색조의 순간적 효과를 이용해 눈에 보이는 세계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려 한 것이다.

<포플러 나무가 있는 풀밭>은 그가 고향인 지베르니(Geverny)에 정착해 살던 시기(1883~1926)보다 앞서 제작한 작품이지만 고향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빛에 의해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를 추구한 루앙(Rouen) 대성당, 건초더미, 국회의사당, 절벽 위의 교회, 수련 등의 연작처럼 포플러나무도 그의 주요한 작품소재였다.

‘아르장퇴유 근처 또는 포플러 나무가 있는 풀밭’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캔버스에 유채, 54.5×65.5㎝, 1875년, 보스턴미술관(미국).

바람에 흔들리는 포플러나무의 반짝이는 무수한 잎들은 풍경의 인상을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이후 포플러나무 연작은 그가 추구하던 공기와 색채의 혼합으로 나타나는 빛의 산란에 의한 떨림이 화면 가득하게 나타난다.

이 그림의 화면은 크게 양분해 하늘과 대지로 나뉘어 있으며 수평의 단조로움을 깨듯 포플러나무가 줄지어 원근을 만든다. 저 멀리 평화로운 농작물이 결실을 기다리며 막바지 살을 키우는 듯 공기는 생명으로 가득하고 청량감이 넘친다. 하늘은 멀고 가까움을 층층의 공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공간에 떠있는 구름의 절묘한 표현은 계절의 깊이를 한층 실감나게 한다.

가까운 화면은 보는 이로 하여 한발 내딛으면 바로 화면 속 둑길로 들어갈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나게 한다. 대기는 찬란하고 점점이 부서진 풀잎과 꽃들 사이, 청량감을 더하는 여인의 흰색 옷은 주변에 흐르는 공기의 정점이 된다.

대지와 하늘을 잇는 포플러나무 잎은 대기를 호흡하고, 빛을 받아들여 화면 전체에 휘도는 청청한 기운을 주도한다. 여름이 막바지로 접어들어 왕성했던 초록이 잦아들며 가을의 초입에 들어선 것은 바로 이런 꽃자리이다. 그런 꽃들이기에 더욱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피어나고, 피어있는 것이다.

이 계절에는 그냥 하늘만 바라보아도 가슴 가득 고여 오는 그 무엇이 있다. 초록이 멈춘 여름의 끝자락에 핀 들꽃을 보며 그리운 사람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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