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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야말로 진정한 ‘금수저’[미노스의 동화마을-어른동화] <4>아들 속의 아버지(Father in the son)

세종포스트는 격주로 동화작가 미노스의 동화마을을 연재합니다. 아이에게 읽어주는 동화부터 어른을 위한 동화,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동화까지. 미노스가 펼쳐 보이는 환상의 세계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편집자주>

미래 자동차 서비스 대리점 앞에 검은색 에라스무스 4000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창밖을 내다보던 서기영은 직원에게 눈짓을 했다.
고급 승용차가 들어오면 오너가 누군지 유심히 관찰한다. 직업의식이다. 육중하게 뒷자리 도어가 닫히는 소리.

검은 양복의 신사 한분이 내렸다.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을 맞이했다.
포스가 예사롭지 않았다.
평생 자동차 정비만 하며 기름밥을 먹던 서기영에게는 고객의 느낌이 있다. 주눅이 드는 풍채다.

“서기영 사장님이신가요?”
신사는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먼저 말을 건넸다.

“그렇습니다만…”

“아, 반갑습니다. 미래 자동차정비 국내총괄본부장 민교식입니다. ”

누구? 깜짝 놀랐다.
국내 총괄본부장이라면 서비스 대리점 사장으로서는 직속라인에 있는  최고 사령관이다.  
서기영은 얼른 옷매무새를 바로하고 고개를 깊숙이 숙여 정중히 인사를 했다.

“무슨 일로?…”

“전무님께서 찾아뵈라고 해서 왔습니다.”

정중한 것은 서기영만이 아니었다. 본부장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서기영에게 정중히 답례를 하는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차를 고치러 온 것도 아니고, 서 사장을 만나러 일부러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것인데, 그것이 전무님의 지시라는 말이었다.

“……”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전무님께서 서 사장님을 설득해서 이번에 개설되는 미국 미래자동차 서비스 대리점의 지사장으로 모시고 오라는 말씀이계셨습니다.”

점입가경…
자다가 홍두깨 맞는 격이란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었다.

“저를요? 미국 지사장?
저는 전무님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영어 한 줄 못하는 제가 어떻게 미국이라뇨?...
혹시, 사람을 잘못 보신 거 아닌가요?...”

서 사장은 정색을 하고 물었다.

“자세한 배경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전무님께서 서 사장님의 아버지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 아버지?’

더욱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라니..
아버지는 돌아가신지 5년이 넘었는데... 무슨 아버지 말씀이라니?

본부장은 의외로 진지하였다. 자못 조심스러운 자세로 서 사장을 설득하지 못하면 매우 난처하겠다는 표정으로 서기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닌 것 같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뭔가...”

“서대선 씨 아니신가요? 아버님 존함이?...”

“맞습니다만.”

“혹 고향이 대전 아니신가요? 그리고 서대선 씨의 막내 아드님 되시고요.”

맞았다. 그런데? 아버지?
전혀 미래자동차 전무가 알만한 분이 아니었다.
사업했던 분도 아니었고...돈도 학벌도...
전무님의 레벨이 아닌 분이셨다.

더욱이 나를? 공고출신 흙수저 출신인 내가 미국 지사장?

“맞군요. 전무님께서 꼭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본부장은 서 사장에게 대략 배경을 설명하였다.
요컨대,

미국에 미래 자동차 서비스 신규 대리점을 낸다는 것.
갈수록 미국시장에서 일본과 사활을 건 판매경쟁을 하는데, 기술력으로는 손색없이 일본을 따라 잡았지만, 서비스 측면에서는 한참 뒤져 있다는 것.
말하자면 고객감동이 아직 멀었다는 것.
그래서 고객감동을 줄 혁신적인 새 지사장을 찾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전국의 서비스 대리점 사장을 대상으로 인사기록카드를 전부 조사하여 후보자를 물색했다는 것.
최종적으로 전무가 서 사장을 찍었다는 것.
그러면서 서 사장의 아버지 말씀을 했는데, 내용은 잘 모르겠다는 것.

이것이 전부였다.
여전히 오리무중이요, 수수께끼의 연속이었다.

조건은 나무랄 데 없이 좋았다.
영어? 신경 쓰지 말라 했다.
엔지니어로서 일하는 것이고, 현지 통역이 있으니 걱정 없다는 것이었고, 아이들 학비, 주거비 등도 다 보조해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렇지만, 고객감동?

귀신에 홀린 듯 했다.
가족과 상의해 보겠다는 서 사장의 반승낙을 받고 본부장은 떠났다.

미국 지사장 직책 제안과 고객감동 서비스...
갑자기 들이닥친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서사장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가장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아버지’였다.

아버지. 서대선 씨...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었다.
아버지를 추억해 보았다.
감동이란 것이 없었다.
과묵하여 자식들에게 말씀도 없으셨고, 늘 직장에서 늦으시거나 술을 드시다가 집에 안 들어 오신 날이 많았던 기억이 나고..,

자식들에게는 하느님 아니면 염라대왕같이 무섭기만 한 분.
아버지가 퇴근하면 어머니와 희희낙락하던 자식들도 갑자기 서늘한 분위기가 되어 각자 자기 구석들을 찾아가기 일쑤였다.

자식들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시아버지같이 어렵게 여기셨다.
가부장적이고 전통적인 그 유교식 가장에, 현모양처 그 아내였다.
어머니에게 따뜻한 사랑의 표현 한마디, 농담 한줄 건네는 것을 본 적이 없는 것은 막내아들 기영만이 아니었다. 
아들들이 장성하였는데도 술 한 잔 권하거나 농담 섞인 대화조차 던져보신 적이 없던 아버지셨다.

‘엄부자친’
올바른 가정교육이란 모름지기 아버지는 자식에게 엄해야 하고 어머니는 자상해야 한다는 고지식한 철학을 가진 어르신이었다.
가장은 이래야 한다는 옛날 어른들의 정형을 흔들림 없이 머릿속에 큰 짐으로 이고 계셨던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빈틈없는 모습에 자식들은 질식할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자식들만 보면,
‘너는 장가가면 제발 아버지 같은 남편이 되지 마라’
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옛날 사람들이 그랬다던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벼락, 불, 아버지라고...
바로 그런 아버지였다.

나이어린 막내였던 기영은 더욱이 아버지와 대화다운 대화를 별로 가져 본 적이 없으니, 아버지가 인간적으로 어떤 분인지 알 수도 없거니와 관심도 없었다.
바위 같이 무겁고, 태산 같이 완벽한 분...
무엇이든 알아서 잘하시는 분이거니....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농민은행에 다니셨는데, 당시 농민은행은 선망의 직장이라고 는 하지만, 월급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어려운 농민 상대에 늘 살림이 어려웠다. 형들은 어쨌든 대학이라도 나왔지만, 아래로 갈수록 형편이 어려워져 막내인 기영은 공고를 지망하여 자동차 정비사가 되었다.

흙수저...

지금 생각해보면 기영에게 딱 맞는 말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때때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돈도 빽도 없이, 오로지 나 홀로 일어서야 했던 고달픔.
하지만 배운 것이 없어도 열심히는 일했다. 미래자동차 정비서비스 직원으로 취직하여 대리점의 사장이 되었으니 나름 성공한 셈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5년...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별스러울 것도 없는데 별안간 아버지 말씀을 들으니 새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마음은 정해졌다.
어쨌든 가자. 미국으로.
아이들에게 얼마나 좋은 기회이랴.
모처럼 나도 아버지 노릇 한번 해보자.

기영은 오랜만에 이발소를 찾았다.
기분도 전환할 겸, 미국이라는 세련된 나라에 적응하기 위해 머리 정도는 깎아야 할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향수라도 뿌리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더부룩한 머리칼...
자동차 정비소 사장이 무슨 외모에 신경을 썼겠나.
기름밥에, 기름복만 입었지 양복도 없었고, 입어도 어울리지 않았다.   
모처럼 거울 앞에서 보는 40대 말의 자신이 부쩍 늙어 보였다.
희끗거리는 머리카락에, 벗어지는 이마, 늘어나는 주름살...
머리를 감고 면도하기 위해 거울 앞에 앉은 기영.
눈을 감았다가 무심코 거울을 보던 기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울 속에...
거울 속에...

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어머니는 형제들 중에 막내가 아버지를 가장 닮았다고 말씀하셨는데, 기영은 그 말이 썩 좋지 않았었다.
아버지는 닮고 싶지 않았다. 그런 무뚝뚝하고 사랑이 없는 아버지...
그런데 바로 그 아버지가 거울 속에 앉아 계시는 것이었다.
아버지...
내 속에 살아계신 아버지...

삽화 서동주

얼마 후 기영은 미국으로 떠났다.

샌디에이고.

멕시코 접경지역에 있는 이 곳, 미국에서의 생활도 1년이 지나니 제법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샌디에이고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고 자동차 여행객도 많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1번 하이웨이.
그 기막힌 절경을 자랑하는 태평양 해안도로를 따라 종주하는 장거리 자동차 여행객들.
그만큼 차량 정비나 고장 수요가 많았다.
사업은 잘 돌아갔다.

미국이라는 신천지는 확실히 기회의 땅이었다.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전 세계의 자동차들을 이곳에서는 늘상 볼 수 있었다.
나날이 진화하는 자동차 기술경쟁에서 한국은 결코 약자가 아니었다.
그만큼 도전도 많았다.
서비스의 질과 내용이 인터넷과 SNS상에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경쟁은 피 흘리지 않는 혈투의 연속이었다.  
착실히 정비에 임하는 그의 지사는 일한만큼 실적을 거두어 성과도 수당도 타사에 뒤지지 않았다.

업무상 접하는 고객은 미국인뿐만이 아니었다.
거의 전 세계의 외국인들이 그에게 찾아왔다.
미래 자동차가 그만큼 세계적이 되었다는 자부심이 들기도 했다.
동시에 그들 고객은 서기영에게 큰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이기도 했다.

어느 날,
급작스럽게 1번 하이웨이에서 연락이 왔다. 미래 자동차가 도로상에 정차해 있다는 것이었다.
자동차 고장이라는 것은 늘 그렇게 급작스럽고 예고 없이 벌어진다. 
부랴부랴 렉카차를 끌고 최단시간 내에 현장에 도착했다.
자동차 상태를 보았다. 사고가 아닌 고장이었다.
렌터카였다.
운전자는 황갈색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키 큰 백인.
독일인이라 했다.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뚜렷한 인상의 전형적인 게르만의 모습으로 망막에 새겨졌다.

온 정신을 몰입하여 자동차 수리에 열중하는 기영을 독일인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기영은 고장 수리의 베테랑이다. 어려운 정비였지만, 최선을 다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끝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수리가 끝나자, 기영이 독일인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여 절을 하였다.

“죄송합니다. 미래 자동차는 고장이 없습니다만,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완벽하게 고쳤으니, 걱정 마시고 여행을 즐기십시오.”

그는 독일인 드라이버에게 두 번, 세 번 인사를 하고 현장을 떠났다.
수리비는 받지 않았다. 기록에 남기지도 않았다.
기영은 샌디에이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흘 후였다.
LA에 있는 본사로부터 급히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LA 본사는 바로 해외총괄본부장을 겸하고 있는 전무가 있는 곳이다.
고객 한 분이 기영을 보자고 한다는 것이었다.

서기영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바로 사흘 전 1번 하이웨이에서 보았던 독일인 운전자였다.
가슴이 덜컥했다. 무슨 잘못된 일이라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것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클레임을 걸면 기록으로 대항하여야 할 텐데...

독일인이 서기영을 보면서 전무에게 말을 하였다.

“이 사람이 맞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제 차를 고쳤지요.”

그러면서 자기의 명함을 기영에게 내밀었다.

벤츠자동차 바이에른주 사업 이사.
어마어마한 직함이었다.
어리둥절하면서도 불안감만 더했다.
독일인이 말했다.

“이 사람입니다. 본부장님.
저는 그렇게 성실히 자동차를 단시간 내에 능숙하게 수리하는 기술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고객을 존중하며 자사 자동차 고장에 대해 진지하고 예의바르게 사과하는 직원을 처음 보았습니다. 마치 아들이 잘못한 것을 자신의 죄인 양 사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벤츠도 고장은 납니다.
그러나 고객의 감동은 그 고장을 얼마나 성실하게 치유해 주느냐에 우러나오지요. 저는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본부장님께 이 사람을 칭찬해주고 아울러 우리 벤츠 자동차의 고장도 상호 수리하는 협약을 제안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전무의 안면에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오, 감사합니다. 샌디에이고 서기영사장이지요.
미래 자동차 임직원들은 모두 저렇게 성실합니다.
벤츠와 업무협약을 맺는다면야 대단한 영광이지요.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서기영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자부심과 애정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오, 수고했네요. 이렇게 벤츠 회사의 이사님이 감동을 하셨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디가 고장이 났었나요?”

서기영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그 독일인. 맞았다.
서기영이 입을 열어 말을 하였다.

“저는...,
저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미래 자동차가 고장이 났었다고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미래 자동차는 사고가 아닌 이상 고장 나는 법이 없습니다.
벤츠 자동차가 고장이 난다고 하시는데 미래 자동차는 그런 고장은 없습니다. 저는 이 분 차를 수리해 준 적이 없습니다.
무슨 착각이 계셨나 봅니다.”

독일인이 크게 뜬 청자 빛 두 눈을 반짝였다.
뚫어지게 서기영을 쳐다보았다.

“제가 운전하던 미래 자동차 렌터카 수리를 안 하셨다고요?
사흘 전 1번 하이웨이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미래 자동차는 고장이 나지 않는다고.
무슨 착오가 계셨던 모양인데, 죄송합니다만, 다른데 가서 혹 미래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수리했다는 말씀은 삼가주셨으면 합니다. 미래 자동차의 명예입니다.
저희 자동차는 고장 나지 않습니다.”

“오. 이런 이런... 이럴 수가....”

독일인은 경악한 표정으로 서기영과 전무를 번갈아 보았다.
전무가 서기영의 눈빛을 그윽이 쳐다보았다.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오, 그렇군요.
고객께서 무슨 착각이 계셨나 봅니다. 서 사장이 기억을 못하는 군요.
고장 난 차는 혹 다른 회사 차가 아닐까요?
미래 자동차가 고장 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무 또한 얼굴에 확신 가득 찬 표정이 나타났다.

“손님. 죄송합니다.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미래 자동차는 고장 난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일인은 말을 잃었다.
한참동안 두 사람을 쳐다보더니, 슬며시 사무실을 떠났다.

전무가 벌떡 일어나 서기영에게 다가오더니, 와락 껴안았다. 
서기영은,

“죄송합니다. 회사에 누를 끼쳐서...
벤츠자동차 이사라고만 하지 않았어도...
제 자존심 때문에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을 잇지 못하는 기영을 안고 있던 전무가 기영의 귓가에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야...”

“.......”

전무는 차 한 잔을 하자면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서대선 씨. 아버지 맞지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사실은 나는 서기영 사장 아버지를 잘 압니다. 우리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셨지요. 사실은 우리 아버지가 농민은행에 다니셨었어요. 그때 서대선 선생은 아버지의 직속 상관이셨지요.
지금 우리 경우의 역순이라고나 할까...”

전무는 찻잔을 입에 대고 훅 마시고 말을 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서대선 선생 밑에서 금전출납 일을 배웠대요.
그런데 하루는 큰 실수를 하셨대요. 잘못 계산하여 고객에게 주어서는 안 될 돈을 잘못 지불한 것이었어요. 금융기관으로서 있어서는 안 될 큰 실수를 하였던 겁니다. 은행에 금전상의 손실을 끼친 것뿐만이 아니었죠. 정확성과 신용은 금융기관의 생명이었을 테니까...
아버지는 문책과 함께 배상을 해야 했대요. 난감하였죠.

그런데 이튿날 그 고객이 농민은행을 찾아왔더래요.
돈이 잘못 왔다고 하면서 받은 돈을 반환하러 온 것이었어요.

아버지는 살았다 싶었대요.
그래서 돈을 다시 회수하려고 하는 순간, 서대선 선생이 나타나셨답니다. 감독자였으니까요.
그런데 서대선 선생이 하신 행동이 너무도 의외였답니다.

‘고객님. 지금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우리 농민은행이 돈을 잘못 지불했기 때문에 반환하러 오셨다고요?
아닙니다. 고객님. 그럴 리가 없습니다. 농민은행이 계산을 잘못하다니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저희 농민은행은 정확합니다. 한 치도 틀림이 없어요. 손님이 받으신 돈은 정당하고 정확하게 받으실 돈을 받으신 겁니다.
절대로 농민은행이 실수했다는 말씀이나, 돈을 잘못 받아서 반환했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하면서 돈을 돌려주며 고객을 되돌려 보냈다는 것이 예요.
그리고 그 돈을 서대선 선생이 물어냈다는 거야.
감독자인 내가 잘못 가르쳤다고 하면서...

우리 아버지는 그때부터 서대선 선생이라면 직장의 상사로서가 아니라 전 인생에 걸쳐 최고로 존경하는 멘토로 여겼습니다.
그 분 평생을 쫓아다녔어요. 몇 년 전 돌아가셨을 적에도 3일 내내 상가에 계셨었죠.
모르시나 보네...”

기영은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우리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가...
내가 까맣게 모르던 아버지 말씀을 여기서, 전무에게서 듣다니...

전무는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농민은행에서 크게 출세를 했어요. 최고 책임자가 되었지요. 덕분에 나도 이렇게 배웠고...
그것이 모두 서대선 선생 덕분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잊은 적이 없어요. 늘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어요.
하지만 서대선 선생은 정작 생활이 어려웠지요. 어떻게 돈을 벌었겠어요. 그리 청렴하셨으니...
아이들 가르친다고 밤마다 숙직을 도맡아 하셨다지만 그게 무슨 큰돈이 되었겠어요...”

전무가 서기영을 발탁한 것은 지난번 미국 서비스 대리점 책임자를 인사기록 카드에서 살필 때였다고 했다.
서기영의 아버지가 서대선 선생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무릎을 쳤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서기영을 발탁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그런데 오늘 나는 살아 돌아오신 서대선 선생을 본 것 같아요.
어쩌면 이럴 수가...
이게 우연일까요? 필연입니까? 저는 기적인 것만 같군요.
아마도 농민은행 고객에게 돈을 반환받으려 했을 때, 우리 아버지가 서대선 선생에게 받은 감동이 바로 오늘 같았을 것 같아요.
당신은, 아니 아들이 아버지를 그대로 닮았군요. 
당신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소이다. 그려...”

서기영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아버지....아, 아버지...
우리 아버지가 그런 분이셨나?
가슴이 사무쳤다.
사랑이 없는 분인 줄만 알았고, 감동이 없는 분인 줄만 알았었다.
가슴속에서 회한이 잔물결 일 듯 일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도 아들은 아버지를 이렇게도 모르는 법인가.
이 못난 아들...

기영은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를 회고해 보았다.
지나간 먼 회상의 편린들이 무수히 머리를 스치고 지나쳤다.
그제 서야 그것들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처럼 하나하나 의미를 담고 다가왔다.

그랬구나. 술 마시고 안 들어오신다고 생각했던 것이 숙직을 도맡아 하신 거였구나...
자식들 대학까지 교육시키느라고 뼈가 휘는지도 모르게 고생하셨구나...
아버지로서의 고통과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그렇게 자식들에게 무뚝뚝하셨구나...

오. 돈도 빽도 없어 흙수저인 줄만 알았던 내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구나...
아버지의 그런 책임감, 성실성, 감동이 있는 영감...
그런 아버지의 성품을 물고 내가 태어났구나. 백만 불짜리 수저를...
  
아이들이 생각났다.
우리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자기 안경으로, 자기 각도로만 나를 보고 있을 뿐 아버지의 속 모습을 볼 수 있기나 할까?
아버지는 아버지가 되어 보아야 이해한다.
아버지를 이해할만한 나이가 되면 아들은 이미 늙어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고 놀란다...

가슴이 시렸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서기영이 샌디에이고로 돌아온 지 한 달 후..,
전무와 서 사장에게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 자동차 회장명의로 전문이 하나 도착했다. 자동차 상호 수리 업무협약을 체결하자는 MOU(양해각서)였다.
어려운 조건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서기영이 아버지 산소를 찾아 한국으로 출장 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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