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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공간과 뻔뻔한 클래식[편집국장브리핑] 한여름 수요일 밤의 세종호수공원
대표 겸 편집국장

줄설 필요가 없다. 정해진 좌석도 없다. 삼삼오오 몰려든 시민들이 야외극장을 가득 메웠다. 무대 앞에 돗자리를 깐 가족들, 연인, 동료, 노부부, 각양각색의 군중이다. 요즘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세종호수공원에서 펼쳐지는 진풍경이다. 세종시에서 이뤄지는 공연 중 가장 ‘핫’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연은 맥키스컴퍼니(이하 맥키스)가 세종시민들을 위해 무료로 제공한다. ‘뻔뻔한 클래식’이다. 이 공연은 사실 역사가 꽤 된다. 올해로 6년째다. 세종에서도 이미 정부세종청사 대강당, 세종시청, 세종포스트빌딩 등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선보인 바 있다.

맥키스는 오투린(O2린)이란 브랜드의 소주를 만들어 파는 회사다. 1973년 설립된 선양주조가 모태다. ‘벤처창업 영웅’ 조웅래 회장이 2004년 인수해 화제가 됐었다. 조 회장은 1인 창업으로 시작해 휴대폰 벨소리와 컬러링을 파는 ‘5425(오사이오)’를 국내 모바일콘텐츠업계 1위 회사로 키웠다. 아이티(IT) 회사 씨이오(CEO)에서 소주회사 씨이오로 변신한지 13년. 맥키스는 이제 단순한 주류회사가 아니다.

맥키스는 조 회장과 함께 변신을 거듭해왔다. 지금은 자연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 받는 ‘에코힐링’이란 말을 흔히 쓰지만 실은 함부로 쓰면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2007년 조 회장이 상표로 등록해놨기 때문이다. 소주를 팔면서 건강을 외치는 역발상이다.

이 때만해도 조 회장의 관심사는 온통 자연과 힐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 회장은 42.195㎞ 풀코스를 50회 이상 완주한 마라톤 마니아다. ‘산소를 넣어 빨리 깨는 소주’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대전 계족산이 한국관광공사가 해외에 소개하는 한국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가 된 것도 온전히 조 회장의 ‘에코힐링 경영’ 덕택이다. 산에 황토를 깔더니 맨발마라톤, 맨발축제를 열어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었다. 숲길 사이사이에 공연 팀들을 데려다 연주도 시켰다.

세종호수공원에서 지난달 12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열린 '뻔뻔한 클래식'은 세종시에서 열렸던 그 어떤 공연보다 매력적이다. 생태공간과 문화의 만남처럼 멋진 일이 없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는 숲속에 상설공연장을 만들어 월1회 숲속음악회를 개최했다. 그것으로 부족했던지 ‘그랜드피아노를 산위에 올려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소프라노 정진옥이 단장으로 있던 ‘유쾌한 클래식 퍼니퍼니(funny funny)’를 만난 게 바로 이 때다. 클래식을 대중화하자는 취지에 공감한 성악가들이다.

‘퍼니한 클래식이 소주랑 콘셉트가 딱 인데!’ 조 회장은 ‘퍼니퍼니’란 이름을 ‘뻔뻔(fun fun)한’으로 바꾸고 아예 주말마다 공연을 열자고 제안했다. 2012년이었다. 이때부터 계족산에서는 4~10월 토‧일요일마다 ‘뻔뻔한 클래식’이 열린다. 정장 입고 음악회 가는 2%가 아니라 티셔츠 차림의 98%를 위한 공연이다. 3대가 함께 깔깔거리며 즐기는 음악회다.
 
맥키스는 작정한 듯 ‘에코힐링’에 ‘문화’를 결합하기 시작했다. 숲속음악회는 어느새 곳곳을 찾아가는 음악회가 됐다. 공부하느라 고생한다고 학교를 찾아다니고, 겨울에는 대전 중앙로 지하상가, 도시철도 시청역에서 정기공연을 한다. 대전과 세종, 충남 각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런 식으로 1년에 소화하는 공연이 약 150회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외연도, 호도, 삽시도, 장고도, 원산도 등 충남 서해안 5개 섬을 순회하는 ‘섬마을 힐링음악회’도 열었다. 생전 처음 접하는 공연에 눈물까지 뚝뚝 흘리는 섬사람도 직접 봤다. 관광객들은 여름휴가를 왔다가 뜻하지 않게 황홀한 저녁을 보냈다. 나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뻔뻔한 클래식’은 한 번 본 사람이 다시 보는 중독성이 있다. 계족산에서, 중앙로 지하상가에서, 세종호수공원에서…. 이 과정에서 의미 있는 현상이 발견됐다.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공연을 보면서 자신이 들은 곡이 어떤 곡인지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찾아냈다.

소프라노 정진옥의 ‘아베 마리아’가 카치니의 곡이란 걸, 더 자세히 검색해본 사람은 블라디미르 바빌로프가 무명일 때 작곡했다가 카치니 곡으로 둔갑했다는 사실도 안다. 나는 지금껏 클래식의 대중화에 이만큼 기여한 예술단체를 만나보지 못했다. 고전의 위기 속에서 대중이 스스로 고전을 읽도록 만드는 힘, 그것이 이 ‘뻔뻔한’ 문화현상의 실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종호수공원에서 지난 7월 12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열린 맥키스오페라단의 '뻔뻔한 클래식'은 어린이들을 위한 레퍼토리가 유달리 많다. 세종시만을 위한 특별한 배려다.

'뻔뻔한 클래식'은 무엇보다 어린이들이 즐거운 공연이다. 이들이 다른 그 어떤 공연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레퍼토리를 이렇게 많이 준비한 걸 본적이 없다. 세종시만을 위한 특별한 배려다. 가족 관람객이라면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오페라의 유령’보다 동요메들리가 더 잊히지 않을 것이다.

공연 때마다 용기 있는 아이 하나가 무대 앞으로 나가 율동을 시작하면 어느새 소프라노 정진옥은 아이들에 둘러싸인다. 정진옥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동요를 들려줄 때면 아이들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요.” 그렇다. 사람의 눈은 공감해야만 반짝인다. 그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다.

오늘이 벌써 세종호수공원에서 ‘뻔뻔한 클래식’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지난달 12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빠짐없이 공연을 봤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세종시민들에게 2017년 호수공원의 수요일 밤은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다. 생태공간과 문화의 만남처럼 멋진 일이 어디에 있을까.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심장, 호수공원에 뻔뻔한 문화 바이러스를 전파해준 맥키스와 조웅래 회장, 그리고 소프라노 정진옥 단장을 비롯해 테너 장경환‧구병래‧박영범, 바리톤 이병민‧고성현‧박민성, 피아니스트 박혁숙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이충건  yibi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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