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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고향과 닮은 조치원 골목길, 그 시간을 기록하다[인터뷰] 한상천 사진작가
한상천 사진작가.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사진=김누리 인턴기자] 빛바랜 담장, 페인트칠이 벗겨진 낡은 계단. 우리네 골목길에는 잘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애달픔이 있다.

세종시 조치원도 골목길이 많은 동네다. 조치원읍 신흥리에는 예로부터 ‘아홉거리’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아홉 군데서 사람이 오는 길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아홉 갈래 길을 통해 사람은 모이고, 또 흩어져 떠난다.

조치원 구석구석의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이가 있다. 자신의 옛 고향과 조치원이 꼭 닮아 이 작업을 시작했다는 한상천(45) 사진작가다. 지난 1일 조치원읍 평리 정수장에서 전시 중인 그를 찾았다.

옛 고향과 닮은 풍경에 끌려… 조치원 랜드마크는 ‘육교’

한상천 작가가 조치원읍 정리 골목길 전경을 담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상천 작가는 지난 20여 년 간 사진작가로 활동해왔다. 고향은 천안이지만, 2013년 한국영상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세종시와 연이 닿았다. 조치원의 골목골목을 본격적으로 작업한지는 5년 째. 도시 개발로 실향민 아닌 실향민이 되고, 옛 고향과 비슷한 조치원의 정취에 이끌리면서부터다.

“구불구불한 장항선,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푸르던 신작로는 언제부터인가 무서운 곳이 됐어요. 굉음을 내지르며 지나치는 빠른 기차, 층수를 헤아리기도 버거운 높은 아파트로 채워진 거죠. 조치원은 장항선 대신 경부선이, 21번 국도 대신 1번 국도가 다니는 곳이지만, 제 고향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땐 소중함을 몰라 기록하지 못했던 모습을 이제라도 기록하려 합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행복도시)에서 20여 분이면 도착하는 조치원은 신도시와 달리 옛 모습이 잘 남아있는 지역이다. 특히 동네 한 가운데를 지나는 철도 건널목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기도 한다.

“철도가 도시 한 가운데를 지나는 조치원은 이쪽 동네와 저쪽 동네를 잇는 터널이나 고가가 많은 편이에요. 변화와 변주를 품고 있는 동네죠. 가장 좋아하는 피사체는 바로 육교입니다. 수많은 육교들은 조치원의 랜드마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치원 육교 시리즈 작업도 염두해 두고 있어요.”

시장통·지하차도·담벼락… 있는 그대로 ‘멈춰진’ 풍경

작품명 'THE WALL'. 정수장이 위치한 조치원읍 평리 한 주택가 풍경.

이번 전시회는 그의 4번째 개인전이다. 조치원의 현재와 과거를 주제로 총 12점이 전시됐다. 신흥1리 철도 건널목, 조치원읍 정리의 한 골목길, 세종전통시장, 욱일지하차도, 평리 주택 담벼락 등이다. 길가의 쓰레기와 떨어진 종이컵까지 있는 그대로를 담았다.

특이한 점은 배경과 함께 그곳에서 실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해냈다는 점이다. 추운 겨울 달리는 기차 앞에 선 건널목 안내원, 지하차도 한 가운데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아주머니. 특히 허름한 골목길 풍경에서는 런닝 차림의 할아버지가 그의 사진 속을 걷고 있다.

“흘러가는 기차와 철도건널목 안내원, 시장을 찾은 젊은 엄마와 킥보드를 타고 가는 아이의 모습 등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연치 않게 찍힌 사진들도 있지만, 보통 1주일 간 포인트를 오가며 찰나의 순간을 기다리는 게 다반사예요. 진안 마이산 촬영을 4년 넘게 다녔는데 아직도 맘에 드는 사진을 못 찍었다죠.”

관객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작품은 전시장 입구에 위치한 ‘THE WALL’이라는 작품이다. 조치원읍 평리의 한 골목에서 찍은 풍경인데, 우연치 않게 집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계단을 오르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만족스러운 작품이 탄생했다.

78년 역사 평리 정수장,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

현재 전시공간으로 활용 중인 조치원읍 정수장 벽돌건물. 1935년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 중 하나다.

이곳 전시장은 지난 2013년 폐쇄된 평리 정수장을 활용한 문화공간이다. 세종시 도시재생사업지로 선정되면서 일단 전시장으로 변모했다. 현재 세종시 청춘조치원과에서는 이곳 정수장에서 문화 아트 캠프 등을 개최하고 있다. 

이 시설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만들어졌다. 8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세종시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근대 건축물인 셈. 과거에는 바로 옆 조천에서 취수한 물을 정수해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했지만, 2013년 광역상수도 체계로 전환됨에 따라 폐쇄됐다.

“이곳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오래된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시재생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지요. 이제 도시재생은 하드웨어를 싹 바꾸는 재개발이 아닌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로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역할이 물론 중요하겠지요.”

정수장 현판에는 감천류여람(甘泉流如藍)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감미로운 샘물이 흐르며, 푸른 하늘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가장 허름한 골목 그곳의 세련된 예술인들

한상천 작가가 개인전 '동행'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한상천 작가는 조만간 재미있는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조치원의 가장 허름한 골목들을 찾아 가장 세련된 모습을 한 문화예술인을 피사체로 놓는 것. 빛바랜 골목에는 노인들만이 살고 있으리란 고정관념을 바꿔보려는 의도다.

“허름한 배경을 두고 펼치는 세련된 문화예술인의 퍼포먼스는 말 그대로 부조화죠. 하지만 오래된 도시에는 노인들만 살고 있으리란 선입견을 깨보려 합니다. 또 이곳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문화예술인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동지애, 동료애라고나 할까요. 세종시 창작 예술인들의 역사를 보존하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그의 4번째 개인전 ‘동행’. 누군가는 그를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방인 쯤으로 볼지라도, 그는 변모하는 도시의 진정한 동행자가 되고 있다.

한지혜 기자  wisdo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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