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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은고개에 묻힌 갑남을녀, 끝나지 않은 현대사기말고사 마친 세종국제고 학생들, 6-3생활권(산울리) 찾은 까닭은?
세종국제고 학생, 교사들이 11일 오후 옛 연기군 은고개 터에 모여 국민보도연맹 사건 피해자 참배식을 가졌다.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김규동·김누리 인턴기자] 세종국제고등학교 학생 35명이 지난 11일 옛 연기군 시절 은고개라 불리던 터를 찾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산등성이에 수풀을 베고, 길도 냈다. 기말고사를 막 마친 학생들은 왜 이곳에 모였을까.

이 곳 은고개는 옛 충남 연기군 남면 고정리였다. 현재는 6-3생활권(산울리)에 편입됐고, 국제고 뒤편 세종시 아름동 오가낭뜰공원 너머에 위치하고 있다.

‘은고개’라는 지명에는 은가락지를 스님께 시주하고 선친의 묘를 여기에 썼더니, 그 후 자손이 후하게 영화를 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하지만 지명에 얽힌 이야기와 달리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100여 명의 민간인들이 학살돼 묻힌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 학생들은 1950년 7월 8일 이곳에서 자행된 국민보도연맹 학살 피해자를 위로하기 위해 이날 이곳에 섰다. 참배를 마치고, 저마다의 글귀를 쓴 노란 리본도 달았다. 향후에는 작은 위령비를 세우기 위한 모금활동에 나설 예정이라고 한다.

구천을 떠도는 억울한 사연, 연기군 피해자만 200여 명

학살 피해자들이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 은고개 길목 앞에 세워진 푯말.

“올 때 트럭에 한 가득 싣고 왔어. 그 다음 차가 또 사람들을 싣고 재를 넘었어. 천으로 뒤로 묶어 내리게 하고 안 풀어줬지. 총 소리가 탕탕탕 나고 탄피가 나돌았어. 전부 죽어 누워 있더라구. 신발이고 옷이고 전부 뒹굴었어. 세상 아무것도 모르고 살다가 그런 일 당하니 안타깝제...” - 다큐멘터리 <레드 툼>에 나온 보도연맹 학살 피해자 가족 증언

잠재적 빨갱이 소탕을 이유로 한국전쟁 직후 최소 20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됐다. 희생자 대다수는 이승만 정권이 좌익세력을 계몽·지도한다는 명분으로 조직한 반공단체인 국민보도연맹원들이자 무고한 주민들이었다.

1949년 6월 5일 창설된 보도연맹은 좌익활동 전력이 있는 국민들을 전향시키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정부가 주도한 연맹이었던 만큼 대대적으로 가입을 독려했고, 마을 단위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아무나 가입시키는 일이 허다했다. 어린 학생들까지 명단에 올렸다는 기록도 있다.

6.25 전쟁 무렵 연맹원은 전국적으로 33만 명에 달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이틀 뒤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을 떠났고, 정권은 전국적인 보도연맹원 학살을 자행했다.

비극은 이곳 현재의 세종시도 피해가지 못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옛 충남 연기군에서는 200여 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학살당했다. 한국전쟁 발발 다음 날인 1950년 6월 26일 조치원경찰서로부터 ‘보도연맹원들을 지서에 모아 놓아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소집명령은 각 지서로 전달됐고, 통지를 받은 주민들은 조치원경찰서로 이송됐다. 이후 이들은 7월 8일 은고개와 비성골(현재의 장군면)에서 학살돼 묻혔다는 기록이 있다. 아직도 여전히 어딘지 모를 산등성이에 묻혀있다는 얘기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후퇴하던 수도사단 17연대 군인들은 피난민 중 연기군 보도연맹원들을 색출해 총살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비극적인 역사,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전의를 디자인하는 사람들 윤은실 대표(왼쪽)와 세종국제고 서명원 교사(오른쪽)가 학생들에게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의를 디자인하는 사람들 윤은실 대표도 이곳을 찾았다. 참배 후 학생들에게 은고개라는 옛 지역에 대한 설명과 역사적 사실을 강의하기 위해서다.

윤 대표는 “이곳 은고개는 연기군 남면 연기현이 있던 곳으로 공주로 통하는 중요한 길목이 되는 중요 지점”이라며 “송길영이라는 사학자가 이곳에서 보도연맹 사건이 있었다는 기록을 발견해 이 언저리에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보도연맹 사건이 결국 대한민국 정부와 경찰에 의해 자행된 일이라는 비극적인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윤 대표는 “그때는 보리쌀을 받고 보도연맹에 가입할 만큼 어려운 시절이었고, 기록상으로는 2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더 큰 희생이 있었을 것”이라며 “누군가가 이야기 하지 않으면 이런 역사들은 묻힌다. 학생들과 선생님이 이런 행사를 연 것은 역사에도 길이 남을 일”이라고 했다.

서명원 국제고 역사교사도 “5년 전 박사과정 중 보도연맹 유족을 만나게 됐는데, 당시 80대 할아버지들이 모두 말문이 막혀 우시는 모습을 봤다”며 “이곳 역시 그저 올라오는 길에 세워 둔 철제 간판 하나 뿐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발굴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눈으로 확인한 현대사, “이 사람들은 누가 위로하나요?”

세종국제고 김동욱(왼쪽) 학생과 양소연(오른쪽) 학생이 학생 주도 참배식을 열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1990년대 민간단체에 의해 추진된 유해발굴 작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했고,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 조사와 유해 발굴이 추진됐지만 결국 2010년 중단됐다.

조사위 활동에도 불구하고 최종 명령권자가 누군지, 희생자가 몇 명인지 등 진상은 충분히 밝혀지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못다 한 과거사 진실규명 완수’를 공약한 가운데 각종 법률안이 발의되는 등 2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김동욱(2학년) 학생은 “학교 ‘세계문제’ 과목을 통해 제노사이드(Genocide) 개념에 대해 배웠고, 우리나라에서도 폴란드 아우슈비츠 학살과 같은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돼 참배식에 참여했다”며 “수업과 친구들과의 조사를 통해 이곳 세종에서도 국민 대 국민으로 학살해야만 했던 비극적인 현대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군은 “국가의 존재 이유는 당연히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사건은 절대 반복되지 않아야 하고, 우리뿐만 아니라 모두가 기억해야하는 역사”라고 말했다.

양소연(2학년) 학생도 “보도연맹 사건 지역 등 여러 도시에서 위령제와 추모제가 열리고 있는 만큼 세종시에서도 이런 행사를 열어야 한다고 느꼈다”며 “이를 위해서는 학생과 선생님을 비롯해 시민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향후 국제고 학생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각종 홍보활동을 통해 시민 참여를 독려, 작은 위령비 세우기 모금 캠페인에 나설 계획이다.

한지혜 기자  wisdo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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