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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이의 영웅이 보낸 용서의 메시지 ‘아, 아버지!’[화제의 인물] 세 아들 공개입양한 곽상학 한솔고 교사
 
[세종포스트 한지혜 기자] 어린 시절 모든 아버지들은 아들의 우상이었다. 대체불가한 나만의 영웅이 상실됐을 때, 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생애 최초의 우상을 상실한 아들과 그 아들이 가슴으로 낳은 또 다른 아들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지난 24일 제20회 공무원 문예대전 시상식이 열린 세종시 어진동 세종포스트빌딩 5층에서 곽상학(46) 씨를 만났다. 현재 한솔고등학교 문학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이날 ‘봄날의 흔적(痕迹)’ 이라는 작품으로 수필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이번 공무원문예대전에는 전현직 공무원 1484명이 참가해 시, 소설, 수필, 시조, 동시, 동화, 희곡 7개 부문 2968편을 출품했다. 세종시 현직 공무원 중에서는 그가 유일한 수상자였다. 

일그러진 영웅 아버지, 작품으로 승화시킨 ‘용서’의 의미


곽상학 교사는 2년 전 서울에서 전입해 세종에 정착했다. 인근 충남 금산이 아버지의 고향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낯설지만은 아닌 곳이다.

그는 “어릴 적 자주 오갔던 기억으로 충청권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이 있다”면서 “서울에 오래 살면서 노후에는 인근 중소도시에서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싶은 마음도 있어 세종으로 이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상작에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아버지로 인해 받은 상처와 스스로 아버지가 돼가면서 이를 극복한 내용이 담겨있다. 모티브로 사용한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 속 붉은 산수유 열매는 그의 수필 속에서 연두색 안티푸라민 연고로 등장한다. 

곽 교사는 “아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크는 법이지만 아버지의 외도를 알게 되면서 청소년기 오랜 시간 위기를 겪었다”며 “결혼 10년차가 돼서야 이 상처를 극복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험문제를 틀려 종아리 100대를 때리고 나서 아버지께서 몰래 발라주셨던 연고, 그게 지금까지 날 버티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그가 아버지를 용서하게 된 건 30대 후반이 되고 나서다. 한 공중파 파일럿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게 계기였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의뢰인이 그 대상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당시의 이야기를 곱씹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방송을 통해 그는 6·25 전쟁고아로 자라온 아버지의 과거와 힘겨운 가정형편 등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곽 교사는 “평생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아 살아왔지만, 늙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동질감, 연민 같은 것이 느껴졌다”며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장남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용서는 봄빛처럼 왔다”고 했다.

당시 서울 모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던 곽 교사의 이야기는 반 아이들에게도 전해졌다. 결손가정 비율이 꽤 높았던 학교 아이들은 선생님의 솔직한 고백에 마음을 활짝 열었다.

곽 교사는 “공개적으로 상처를 오픈하는 이유는 결손가정이나 가정의 위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들이 ‘나와 비슷한 사람도 있구나’하는 공감대와 위로를 전하기 위해서였다”며 “그래도 열심히 사니 선생님이 됐다고, 힘든 아이들에게 희망의 증거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가슴으로 낳은 세 아들, 첫 눈에 알아보다


곽 교사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절 교회에서 현재의 아내를 만났다. 부부는 예진·은택·은찬·은준 네 남매를 키우고 있는데, 첫 딸 예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공개입양을 통해 얻은 귀한 아이들이다.

그는 “결혼 전부터 지금의 아내와 입양에 대한 생각을 서로 공유했다”며 “입양기관에 몇 차례 상담을 하러 갈 때도 큰 딸 예진이와 동행해 동생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6년 전 7개월 된 장남 은택이를 가족으로 맞이한 뒤 지난해 11월 넷째 은준이까지 아들 셋을 입양했다”고 밝혔다.

흔히 부부의 인연은 팔천 겁, 형제 자매의 인연은 구천 겁의 무한한 시간을 돌아 만난다고들 한다. 이 중 부모와 자식은 1만 번의 인연이 닿아야 만들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입양 전 부부가 세 아들을 만나기까지의 과정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곽 교사는 “파양율이 높기 때문에 입양 전 기관에 상담을 하러 가면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병이 있을 수 있다거나 안 좋은 사례들을 들려준다. 처음 아이를 보여주는 것을 ‘선본다’고 하는데 세 아이 모두 처음보고 바로 데려왔다”고 했다.

입양의 경우 아이들을 직접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양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성별뿐. 입양기관 사회복지사들은 우스갯소리로 아이를 점지해주는 ‘삼신할매’로 불리기도 한다. 

장남인 은택이는 5살 때까지 자폐 성향을 보였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고, 발달도 느렸다. 아이가 자폐 성향을 벗어난 건 놀랍게도 큰 딸 예진이가 척추측만증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직후다.

그는 “입양아 대부분은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태교 등의 문제로 발달이 지연되는 경향이 있다”며 “은택이도 마찬가지로 자폐 성향이 있어 육아휴직을 내고 돌보면서 걱정이 많았는데 큰 딸 예진이가 돌아오면서부터 마치 운명같이 사라졌다”고 했다.

건강·행복 담은 기도문… “‘봄’ 같은 아빠 되고 싶어”  

청소년기 일그러진 영웅이 된 아버지 때문에 인생의 동력을 상실했던 그는 ‘글쓰기’와 '종교'를 통해 마음을 치유했다. 그는 다 써버리고 나면 고갈되는 사람이 아니라 쓰면 쓸수록 차오르는 옹달샘 같은 사람이었다. 분노를 용서로 바꾼 힘은 네 아이에게만큼은 영원한 영웅으로 남고 싶은 아버지로서의 책임감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자녀들에게 ‘봄’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며 “우리말에는 항상 ‘보다’라는 동사가 많이 붙는다. 바라보고, 겪어보고, 먹어보고 느껴보고 아이들이 봤을 때 항상 생동감 있고 따뜻한 아버지이고 싶다”고 말했다.

먼 미래에 그는 공개입양을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 ‘미혼모’에 대한 생각을 실천할 계획이다. 꿈꾸던 전원주택을 좀 더 넓게 지어 미혼모들의 단기 쉼터를 작게나마 마련하고 싶다는 것. 

곽 교사는 “첫 아이를 가족분만으로 낳았는데, 탯줄을 끊으며 품에 안고 했던 기도는 '건강하게 해주세요, 행복하게 해주세요' 이 두 가지 뿐이었다”며 “대한민국 모든 부모들이 백이면 백 같은 기도를 했을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분만실에서 했던 기도처럼 잘 자라는 것을 보는 부모가 되고 싶다”고 했다.

매일 같이 복수를 꿈꿨던 그의 심장이 이제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잔뜩 웅크렸던 열다섯 소년은 이제 네 아이의 영원한 영웅이 될 것이다. 

한지혜 기자  wisdo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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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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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마을 2017-05-25 20:04:14

    감동적입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네요.
    잘 살아야겠다늣 생각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삭제

    • 나그네 2017-05-25 14:05:16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이야기네요.
      배우고 갑니다. 기회가 허락된다면 이분들처럼 살길 원합니다. 이 가정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 자기가족만 생각하고 사는 각박한 이 시대에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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