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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화가' 변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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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화가' 변시지
  • 이순구
  • 승인 2017.05.0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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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구의 미술산책] <13>질긴 인고와 고뇌의 황토 빛

변시지(邊時志, 1926~2013)는 제주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성장기를 거쳐 십여 년의 서울생활을 뒤로하고 고향 제주에서 ‘제주의 그림’을 그렸다. ‘제주의 그림’에는 ‘풍토(風土)’ 속에 포함된 깊은 삶의 생태와 인간의 깊은 심성이 드러나 있다.


그의 작품생활 66년의 여정은 일본시절과 비원파 시절, 그리고 제주시절 등 삶에 따른 장소성으로 구분 지을 수 있으며, 이에 따른 예술적인 변화양상을 보였다.


일본시절에 보인 번득이는 예술적인 기질은 광풍회(光風會)에서 최고상을 받아 그 진가를 더했다. 하지만 도쿄생활은 “우성(宇城) 변시지의 작품엔 일본인의 기질과는 다른 그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평론가들의 말처럼 마음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다. 그것은 한국인의 기질이 무의식적으로 묻어났던 것이며 민족성에 대해 자각이었다.


“고향으로 가자. 내 조국의 풍속이나 문화에 젖으면 새로운 화풍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는 조국에서 새로운 미술세계를 모색하겠다는 각오로 일본생활을 청산하고 영주 귀국했다. 처음에는 서울대 교수로 재직했으나 지연과 학연으로 맺어진 화단의 반목과 질서는 1년도 견디질 못하게 했다. 당시 서울의 여러 황폐한 시대상황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


당시 일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서양문화를 모방해 왔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대신 한옥의 처마와 고궁에 자리 잡은 정자, 지붕과 기와의 섬세하고 소박한 곡선미를 발견하고 이에 빠져들었다. 이때부터 비원풍경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또 당시 비원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가들과 함께 ‘비원파’로 불리게 된다. 비원파 시절의 그림은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만 날마다 새로운 방법론을 꿈꾸었다.


그 즈음 제주대에서 강의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순간 제주의 아득한 유년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풍광이 섬광처럼 되살아나고 새로움을 꿈꾸던 화가에게 막힌 숨통이 터지듯 창작의욕을 고양시켰다. 이로써 1975년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 제주도로 돌아간다. 고향을 떠난 지 44년 만이었다. 고향이기에 낯설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환경에서 2년여의 방황과 모색 끝에 오늘의 작품을 만들게 된다.

 

 

변시지는 주로 제주의 바람과 바다, 말을 그렸다. 거기에 구부정한 어깨에 고독과 비애감이 고즈넉하게 얹어있는 화가 자신이 있다. 돌담의 까마귀, 한 마리의 바닷새가 폭풍을 견디고 날아왔다. 보잘 것 없는 초가와 소나무 몇 그루, 그리고 휘몰아치는 바람의 소용돌이와 마주한 사내의 가슴에는 많은 것이 묻혀 있었다.


변시지의 화면은 모든 사유물이 황토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제주 농민들이 즐겨 입는 ‘갈중이’ 색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갈중이란 제주 농부의 작업복이다. 땡감을 찧어 그물로 염색한 진한 황토 빛 옷이다.


화면 전체의 건삽한 황토 빛은 제주의 척박하고 고된 삶을 대표하지만, 그는 그 질긴 인고와 고뇌의 색채로 귀의한다. 이 황갈색은 그가 말하는 “의식의 세계를 그리는 색”이다. 삼라만상의 화려한 색을 내려놓고 황갈색을 얻은 것은 그것이 제주의 언어이고 사물의 영혼을 듣는 소리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후 명명된 ‘제주화’는 그만의 특질과 제주의 풍토에서 우러나는 기질이 조화롭게 합일을 이루어 드러난 결과다.


변시지 예술에서 풍토적인 구성은 자연적인 요소, 그리고 문화와 정서적 요소가 수용되어 녹아있다. 제주의 자연적 요소는 바람, 돌, 태양, 바다, 한라산과 오름들, 해안, 절벽과 코지들이고, 그 풍경 안에 소나무, 말, 까마귀, 강아지, 게, 송아지 등이 등장한다. 바람을 막으려 촘촘히 엮은 초가지붕, 돌담, 해녀, 돌하르방 등 삶의 풍습들은 문화적인 요소다. 그곳에서 느끼는 고독감과 외로움, 평화적이지만 격정적인, 황량하면서도 그리운 고향이 감각의 층위를 이루고 있다.


그가 풍경과 인물을 그릴 때 고졸(古拙)한 맛으로 다가오는 검은 선과 선묘는 어릴 적 어깨너머로 보며 배우던 서예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이 선들의 역동성은 자연과 함께 어울려 장대한 대자연의 율동으로 형상화되어 꿈틀거린다.


까치와 바닷새와 쓰러져 가는 초가에는 초라하지만 따뜻한 인적이 느껴진다. 이 풍경 안에 등장하는 인물은 때로는 초가집 안에서 붓을 잡고 인고의 힘으로 삶의 무게를 버티는 화가로, 때로는 바람 혹은 태양을 마주하고 망연히 서 있는 사내로 나타난다. 때로는 허리가 휠 정도의 바람을 안고, 때로는 역풍을 등진 그 사내는 대부분 혼자다. 화가는 ‘대화’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사람이 없는 풍경화 보다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시간과 마주하는 풍경이다.


절대적 외로움을 숨김없이 보여주어 자기를 긍정하게 하고, 다시 거친 세상과 대결을 모색하기 위한 화가의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이는 인간에 대한 우수이며 삶의 끈질긴 모색을 위한 좌절이고, 이 절망은 소생을 준비하는 염원의 씨앗이다.

 

 

듬성듬성 이은 이엉들을 촘촘히 묶은 초가지붕이며 돌로 쌓은 담벼락은 전형적인 제주의 집이다. 마구간과 주거공간이 함께하는 초가집에서 노(老) 화가는 그림을 그린다. 말은 모델을 서는 듯 고개를 숙이고 화가 앞에 순응의 자세를 하고 있다. 그림을 음미하는 것인가. 지붕너머 갈색 빛 수평선은 담 아래까지 너울거린다.


오늘은 바람이 자고 작은 배가 유유히 떠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움으로 붓을 잡은 노 화가는 무념의 경지로 그림을 그린다. 주인 옆에서 사나운 자연을 꿋꿋이 견디는 조랑말의 거친 갈기와 튼튼한 다리는 그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바람, 돌, 여자로 지칭되었던 제주, 그 척박함으로 인해 모진 땅이라 칭하던 곳, 그곳의 풍광을 담아낸 갈색의 절박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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