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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인 사랑, 기독교 최대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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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인 사랑, 기독교 최대의 적
  • 박한표
  • 승인 2017.05.0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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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표의 그리스

제우스는 아프로디테가 올림포스에 올라가자 히메로스라는 신녀(神女)를 붙여줬다. 히메로스라는 말은 ‘나른한 그리움’이란 뜻이다. 여기서 신녀는 격이 가장 낮은 여신, 으뜸 신들이나 버금 신들을 섬기는 하급 여신이다.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여신이지만, 그 중에서도 육체적인 사랑을 관장한다. 그녀의 곁에는 사랑의 신 에로스가 늘 동행한다. 아름다움과 사랑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남성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여신 앞에만 서면 얼음 같은 이성도 봄볕에 눈 녹듯 맥없이 녹아버리고 만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아프로디테는 뜨거운 여신이다. 차가운 여신 아테나와 라이벌 관계다. 아프로디테는 스스로도 자유분방한 애정행각을 벌인다.


여신은 케스토스 히마스(Kestos Himas, 그리스의 여성용 거들)라는 허리띠를 두르고 있다. 상대방을 사랑의 포로로 만드는 마법의 띠다. 어떠한 남성이라도 그것을 맨 여성의 성적매력에 저항이 불가능해지는 특수한 효능이 있었다. 그래서 여신들은 가끔 아프로디테의 케스토스를 빌려가기도 했다.


아프로디테의 허리띠는 남편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 준 것이다. 이 허리띠는 엄청난 (성욕을 촉진시키는) 최음제라고 한다. 최음제를 영어로 ‘아프로디지악(aphrodisiac)이라고 하는데, 바로 아프로디테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니 허리띠를 풀면 넘어가지(?) 않는 남성이 없었다.

 

 

아프로디테의 남편, 헤파이스토스는 대장장이 신이다. 추남인데다 절름발이여서 그렇지, 팔 힘이 좋고 손재주가 빼어나 마음만 먹으면 못 만드는 물건이 없었다.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이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절름발이에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헤라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더욱이 헤라가 그를 올림포스 산에서 던져버렸다.


헤파이스토스는 바다에 떨어졌고, 오케아노스의 딸들인 테티스와 에우리노스에 의해 구출돼 키워졌다. 그가 대장장이 기술을 배운 게 바로 이 때다. 그렇게 커가면서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점점 커져갔다.


성장한 헤파이스토스는 어머니 헤라에게 복수하기 위해 근사한 황금의자를 만들어 올림포스에 보냈다.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이 황금의자는 누가 보아도 탐낼 만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헤라가 그 의자에 앉자마자 가는 쇠사슬이 튀어 나와 그녀를 옭아맸다. 헤파이스토스가 의자에 속임수를 써놓았던 것이다.


헤라는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끝내 쇠사슬을 풀지 못해 꼼짝달싹 하지 못했다. 헤파이스토스만이 헤라를 풀어줄 수 있기 때문에 신들은 그를 올림포스로 불러들이려고 했다.


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이 가시지 않은 그는 쉽사리 올라가지 않았다. 그래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아직 취해본 적이 없는 헤파이스토스에게 술을 먹였다. 그렇게 헤파이스토스가 잔뜩 취했을 때 신들은 그를 억지로 올림포스로 데리고 갈 수 있었다. 그러나 헤파이스토스가 완전히 취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헤라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아프로디테와 결혼을 요구한 것을 보면. 아프로디테가 헤파이스토스의 아내가 된 사연이다.


헤파이스토스가 절름발이가 된 사연을 소개하는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날 남편의 바람기에 화가 난 헤라가 제우스와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헤파이스토스가 어머니 헤라의 편을 들자 화가 난 제우스가 그를 발로 걷어차 렘노스 섬으로 추락했다. 그 사고로 헤파이스토스가 다리 불구가 되고, 얼굴도 추해졌다는 것이다.


렘노스 섬의 트라키아 인들은 헤파이스토스의 다리를 치료해 주었는데, 그 보답으로 금속 세공기술을 전수받았다. 지금도 이 섬의 금속세공 기술은 유명하다.

 

 

제우스는 올림포스에서 가장 못생긴 헤파이스토스에게 가장 아름다운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삼게 했다. 이 둘의 결합을 두고, ‘미녀와 야수’ 스토리텔링의 원조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 결합을 ‘아름다움과 추함의 조화’로, 어떤 사람은 ‘미와 기능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예술’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둘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헤파이스토스가 대장간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름다운 아프로디테를 본 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여신, 특히 육체적인 사랑의 여신이다. 아프로디테는 끊임없이 바람을 피웠다.


아프로디테는 원래 만물의 종족 보존과 번식을 관장하는 풍요와 다산의 여신이었다. 그리고 성행위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책무였다. 대자연의 종족 번식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반면, 이성을 소유한 인간은 항상 이러한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려 한다. 때로는 과도하게 성을 탐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성을 억압하고 금기시 한다. 특히 가부장 사회가 도래하면서 자연스러운 성행위는 억압되고 왜곡된다.


여신은 성의 해방과 자유를 외친다. 여신 앞에서 사랑이 정신적이니, 육체적이니 하는 이분법적 분류는 무의미하다. 여신의 사랑은 계산적이지도, 관습과 도덕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여신은 지나치게 왜곡된 사랑(예컨대 동성애)도, 순결과 금욕도 거부한다. 여신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을 맡기라고 말한다.


아테나가 가부장제에 현실적이며 이기적으로 적응했다면, 아프로디테는 성의 자유를 외치며 가부장제의 억압되고 뒤틀린 성 문화에 온몸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헬레니즘이 끝나고 새로운 기독교의 헤브라이즘과 함께 아프로디테의 지위는 추락한다. 불같은 에너지를 지닌 아프로디테의 사랑은 이성과 윤리의 이름으로 언제나 강력한 견제와 통제의 대상이 됐다. 아프로디테의 자유분방함은 가부장 사회와 엄격한 기독교 윤리 아래에서 철저히 비하되고 무장 해제됐다.


아프로디테는 마녀, 사탄, 탕녀로 단죄되는 운명에 처해졌다. 지유 분방한 그리스 문화에서 사랑받던 아프로디테는 기독교의 도덕성 앞에서 끝없는 추락을 맛보게 된다. 그리하여 여신은 ‘음란한 아프로디테’라는 뜻의 ‘아프로디테 포르네’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되고, 음란과 외설의 상징으로 비하된다. 포르네는 ‘음란한 영화나 사진’을 뜻하는 ‘포르노그라피(pornography)’의 포르노와 같은 의미다. 여신은 기독교 최대의 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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