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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때문에 친구끼리 의절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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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때문에 친구끼리 의절해서야
  • 김충남
  • 승인 2017.04.24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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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남의 고전에서 배우는 지혜] <26>관포지교(管鮑之交)

지금으로부터 2700여 년 전 춘추시대. 관중(管仲)은 당시 제나라 군주 양공(襄公)의 아들인 규(糾)의 측근이 됐고, 포숙아(鮑叔牙)는 규의 이복동생인 소백(小白)의 편에 섰다. 아버지인 양공이 죽자 두 이복 형제간에 왕위 쟁탈 싸움이 벌어졌다. 자연히 죽마고우였던 관중과 포숙아도 본의 아니게 주군을 따라 정적이 됐다.


두 이복형제의 왕위 쟁탈전에서 이복동생인 소백이 승리했고, 소백은 환공이 되어 제나라 왕위를 이어 받았다. 왕위 쟁탈전에서 패한 규는 자살했고 규의 측근이었던 관중은 압송돼 사형에 처할 위기에 놓인다.


이때 환공의 측근이 된 포숙아는 눈물로서 자기의 주군인 환공에게 간언했다.


“전하, 제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으로도 충분할 것이 옵니다. 하오나 천하를 얻으려 하시면 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관중을 기용하시옵소서.”


환공은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 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를 맡겼다. 이윽고 재상이 된 관중은 대정치가로서의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해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고 환공을 춘추의 첫 패자(覇者)로 만들었다.


친구로 인해 목숨까지 구할 수 있었고 재상까지 된 관중은 훗날 포숙아에 대해 이렇게 술회했다.


“내가 가난하게 살았을 때 포숙아와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했으나 포숙아는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군주에게 내 쫓겼지만 포숙아는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 싸움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아는 나를 겁쟁이라 하지 않았다.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관중과 포숙아의 고사를 통해 오늘날의 우리를 성찰해 보면 어떨까 한다.


첫째, 우리는 정치적 이해관계나 사물의 득실에 의해 우정과 인간관계가 좌우되고 있지는 않은지.
둘째, 우리는 친구나 남의 어려움을 구제하는데 자신의 어려움처럼 혼신을 다 하고 있는지. 셋째, 우리는 나보다 뛰어난 친구나 동료를 높이 평가하기는커녕 시기 질투하고 모함하지는 않는지.
넷째, 이기적인 요즈음 세상에서 나는 얼마나 남의 아픔이나 어려움, 고통을 이해하고 감싸주는지.
다섯째, 우리는 ‘못된 것은 남의 탓이요. 잘된 것은 다 내 탓’이라는 말처럼 남의 은공을 자기의 공으로 돌리고 있지는 않은지.


후대 사람들은 흔히 관중의 빼어남을 칭송하면서도 그를 끝까지 이해하고 우정을 보여준 포숙아의 인간됨에 대해 칭송한다.


그렇다, 관중과 포숙아의 지고한 우정이나 인간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친구나 가까운 사람의 기쁜 일이나 경사 그리고 성공을 시기질투하지 않고 내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 줄 수 있다면 그는 진정 축복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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