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이무기’ 허균
상태바
‘이무기’ 허균
  • 김형규
  • 승인 2017.04.23 16: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규의 자전거 역사문화기행] <2-4>홍길동의 고장 전남 장성

 

전남 장성군이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홍길동은 1460년대(세조 6년)부터 성종을 거쳐 1500년(연산군 6년) 유배형을 받을 때까지 몇몇 사서에 행적을 남깁니다. 충남 공주 무성산까지 세를 뻗쳐 집단생활을 하며 관군에 대항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홍길동은 일본 오키나와에도 진출한 것으로 장성군은 보고 있습니다.


허균(1569-1618)은 역사 속 홍길동보다 100년 정도 후 관가 안팎에서 활동했습니다. 홍길동이 실제 의적이었는지 강도였는지 명확하진 않습니다. 도적도 상대가 가진 게 있어야 겁박해서 강탈할 텐데 당시 민초들에게 훔쳐갈 재물이나 있었겠습니까. 당시 궁핍했던 시대상황과 서얼출신이라는 단서가 허균이 갈망하는 혁명사상과 맞물려 최초의 한글소설로 태어났을 거라 추측합니다.


허균은 모반혐의로 50세의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홍길동전에 이어 의적을 소재로 한 소설로 홍명희의 ‘임꺽정’, 황석영의 ‘장길산’ 등의 대작이 굵직한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홍명희는 월북작가로 남한에선 금기시됐고 황석영은 1993년 북한을 방문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었죠.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던 허균이 오늘날 태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그의 재능은 삭일 수 없는 반골기질 때문에 꽃도 피우기 이전에 국가보안법에 꺾이고 말았을지 모르겠습니다.


허균의 호는 교산(蛟山)입니다. 교(蛟)는 ‘뿔 없는 용’, 즉 이무기입니다. 혁명을 완수하지 못한 슬픈 교산. 허균은 자신의 최후를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요. 어차피 호를 용산(龍山)이라 했더라도 왕에 맞선다는 모반죄를 벗기 어려웠겠죠.


홍길동허균보다 더 그리운 허난설헌

 

 

허균이 이무기로 생을 마감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허황된 욕심을 슬며시 던져봅니다. 허균보다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누나 허난설헌(1563-1589)이 현시대에 태어났다면 세계문단은 일대 파란이 일었을 겁니다.


난설헌은 아버지의 배려 덕에 조선시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초희’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둘째 오빠 허봉은 여동생의 재능을 알고 당대 최고의 시인에게 교육을 맡기기도 합니다만 불우한 결혼생활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됩니다.


난설헌의 시집은 그의 요절 이후 중국과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의 시세계는 동서고금 모두에 통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극치였으니까요. 허균과 허난설헌. 동지섣달 오누이가 마주앉아 요즘 세태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면…. 문풍지 너머 밤새 귀담아 듣고 싶습니다.
 

홍길동테마파크를 나와 축령산(622m)휴양림으로 향합니다. 거리는 10㎞. 끊임없는 업힐구간입니다. 족히 1시간여는 페달링을 해야 합니다. 축령산에서 장성군 맞은편 20㎞ 떨어진 병풍산까지 자전거로 다녀오려면 오후 대전으로 돌아가는 기차시간이 버겁습니다.


이른 저녁식사까지 장성에서 해결하려면 홍길동처럼 축지법을 써야 합니다. 결국 바로 옆 도시 광주에 거주하는 자전거 동호인 ‘모래추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모래추님은 대전에서 온 동지들을 위해 흔쾌히 하루를 내줬습니다. SUV 트렁크에 미니벨로 두 대를 집어넣고 축령산휴양림으로 출발합니다.


편백나무 숲은 장흥이 유명한데 장성도 노령산맥 지맥 축령산과 병풍산(826m) 편백나무 숲의 규모가 대단합니다.


 자연유산 숲, 후세대에 큰 은혜

 

 

장성 편백나무 숲은 한국전쟁 이후 황폐해진 산을 되살리기 위해 전남 순창 출신의 임종국(1915-1987) 선생이 1956년부터 1987년까지 사재를 털어 조림했다고 합니다.


가산을 탕진하고 빚까지 내서 숲을 가꾸는 바람에 일부 산림이 남의 손에 넘어갔다고 합니다. 2002년 산림청이 매입해 국유림으로 접수한 뒤 임종국조림지로 명명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숲의 명예 전당’에 헌정됐습니다. 임 선생은 2005년 수목장으로 자신의 숲에서 영원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축령산에는 수령 50여년 된 편백삼나무숲이 258㏊에 달합니다.


대전의 장태산휴양림을 원래 조림했던 임창봉 선생이 떠오르는군요.


축령산에 다가갈수록 길 양쪽에 최근 지은 것 같은 펜션이 즐비합니다. 편백나무가 건강에 유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가족단위 휴양이나 치유를 위해 환자들이 몰리자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우후죽순 조성된 듯합니다. 편백나무 특유의 향이 서늘한 바람을 타고 코를 자극하더니 폐부 깊숙이 침투합니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두 번 세 번….


고독하지만 아름다운 임 선생의 나무심기가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수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치유의 숲으로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산 너머 금곡영화마을은 민박집이 많습니다. 축령산 입구 치유숲길 안내도에 6개 코스의 산책로가 소개돼 있습니다. 5코스를 따라 가면 금곡마을이 나옵니다. 영화 ‘태백산맥’ 촬영지로 이름을 알렸죠. 인근에는 한국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 기념관이 있습니다.


축령산치유숲길 입구에 있는 기념품 판매점에서 편백나무로 만든 빗을 두 개 사서 집사람에게 선물했습니다. 빗이 놓인 화장대에 접근할 때마다 알싸한 향이 기분을 전환시켜줍니다.


축령산을 뒤로하고 담양과 경계에 있는 병풍산으로 향했습니다. 편백나무 규모로 봐서는 병풍산이 더 풍성하게 느껴지는군요. 평일인데도 도로 양옆에는 삼림욕을 즐기기 위해 나들이온 차량이 즐비합니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