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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 가득 봄기운이 소용돌이 치는 이유[이순구의 미술산책] <9>반 고흐의 ‘꽃이 핀 아몬드나무’

봄은 겨울을 밀어 내고 솟아오른다. 봄은 웅크리고 준비된 모든 것들을 밀어 올리는 힘을 지녔다. 봄을 맞이하는 대지에는 축복이 가득하다. 생명을 부추기는 진정성은 새싹이요, 그 화사함은 꽃이다. 한 움큼의 하늘에서 블루를 뽑아내고 한 아름의 구름에서 흰색을 발라내며 바람 하나 가득 연노랑을 풀어 헤친다. 그것이 봄의 예술이다.


우리는 길에서 인생을 얻고, 가면서 버리며, 여정의 끝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 지난한 시간을 참고 견뎌 우리 삶에 온정 가득 터트릴 꽃망울을 만든다. 그것 또한 깊고 넓은 예술이다.


봄의 향연하면 대지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격정적인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붓 터치가 떠오른다. 그의 부적응적인 현실감각과 불우한 삶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그림에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 계절에 유난히 그가 떠오른다.


‘꽃이 핀 아몬드 나무(Branches of Almond Tree in Bloom)’는 그의 그림 중 유난히 밝은 파란색이 배경을 이룬다. 조카의 출생을 기념해 동생 테오(Theo van Gogh)에게 그려준 작품이다.


테오는 1890년 1월 31일 아들이 태어나자 형의 이름을 따 빈센트라 불렀다. 그리고는 고흐에게 “이 아이가 형처럼 강직하고 용감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편지를 썼다. 이에 답해 고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조카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답장을 보냈다. 고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라고 썼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최근에 그린 것은 꽃이 핀 나무인데 잘 그려졌다. 너도 내가 뛰어난 솜씨로 대단한 참을성을 가지고 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림에 나타나는 붓의 움직임은 아주 침착하고 확고한 것이었다.”


고흐는 자신이 편지에 썼던 것처럼 평상시 표출되는 격정을 참아내며 끈기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억제는 그림을 완성한 후 자신의 병까지 낫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몬드는 남프랑스에서 봄의 전령으로 불린다. 추위가 가시기 전 가장 일찍 피는 꽃 중 하나여서다. 그래서 아몬드 꽃은 젊음과 생명의 상징이다. 고흐는 조카의 출생을 진심으로 축하하기 위해 이 꽃을 그렸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복사꽃과 비슷한 모양의 아몬드 꽃 그림은 처음엔 약간의 분홍색 빛을 띠었다가 물감색상이 퇴색해 흰 꽃처럼 됐다. 분홍색의 쉽게 변질되는 속성 때문이다. 열정의 화가가 조카를 위해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까 생각해보라. 예술성 이전에 화가의 뜨거운 인간미가 느껴질 것이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봄에 꽃이 피는 나무의 특성대로 나뭇가지에 잎이 없다. 흰색 꽃은 하늘을 배경으로 활기찬 동세를 가지고 있다. 굵은 세 줄기의 가지가 전면에서 교차해 배치돼있고 저마다의 기운 넘치는 가지들에서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하늘을 뚫을 기세다. 이러한 상승의 힘찬 기운을 오른쪽 가지 하나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붙잡고 있다. 나뭇가지의 뒤섞임과 교차하는 구도에 의해 활기 넘치는 봄기운이 빠져나가지 않고 소용돌이처럼 휘돈다.


고흐는 기질적으로 꿈틀거리는 화법(畵法)을 구사한 화가다. 이 작품에서도 아몬드 나뭇가지의 역동적인 구성은 그가 화법을 절제하기 힘든 상태였으리라 짐작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갓 태어난 조카를 위해 감정을 추스르고 절제해 그린 이 작품의 붓 터치 하나하나에 인고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당시 유행했던 일본 우키요에(浮世澮, 일본전통풍속화)의 영향을 받아 화면을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하늘공간의 배열이나 절제하며 표현한 꽃에서 동양의 매화도를 떠올리게도 한다.


봄의 생명력을 기원하며 그린 이 작품이 그가 생을 마감하기 60일전에 그린 그림이라는 것은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고흐의 삶은 짧은 생애였지만 강하고 굵은 시간이었고, 그 안에서 잔잔한 휴머니티를 발견할 수 있다. 37년을 살며 10여년 남짓 그림을 그린 그는 370년같이 작품에 영혼을 모두 바쳐 불살랐다. 이는 그가 진정한 자아를 찾은 화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밀고나가는 것은 사회적·경제적 어려움이 있다 해도 소신껏 살아갈 뚝심이 있어 가능했으리라.


고흐의 작품은 일생동안 단 하나만 팔렸다고 한다. 아마 동생 테오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그림도 남아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생활고에 의해 더 일찍 죽었거나 화가의 길을 포기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7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예술가의 삶을 부추기고 이끌어간 동생 테오, 그 우애야말로 고흐의 진정한 예술을 키우는 원동력이었다.

이순구  webmaster@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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